445화. < 136화. 신의 무덤 (2). >
4.
노네임드.
신의 무덤에서 등장하는 이 몬스터에 대해서 아즈모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노네임드가 어떤 몬스터냐고? 뭐랄까…… 최종 시험 같은 놈이지.”
최종 시험.
그러한 표현이 붙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일단 이제까지 조우한 모든 몬스터로 변할 수 있잖아?”
하나는 노네임드가 갓워즈의 모든 몬스터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는 것.
“보스 몬스터까지.”
그 범주에는 한계가 없었다.
“페이즈까지 똑같이 발동하는 놈을 잡는 건데, 보통 이런 건 시험 볼 때랑 비슷하지.”
더불어 사용하는 능력에도 한계가 없었다.
물론 그 능력치마저 똑같은 건 아니었다.
시작의 마을에서 만나는 고블린과 똑같이 생긴 녀석이라고 해도 몬스터 레벨은 400레벨!
그 강함은 신의 무덤에 입성한 플레이어들을 곤란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최종 시험이란 표현처럼 예전에 사냥했을 때보다 훨씬 더 골치 아프지만.”
다른 하나는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동시에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공부해온 각각의 문제들이 하나가 되는, 더 어려운 문제가 되는 느낌.
어쨌거나 확실한 건 아즈모의 입에서 최종 시험이란 표현이 나올 만큼 신의 무덤 난이도는 어려웠다.
“빌어먹을! 저기서 오우거 나왔어!”
“고블린 튀는 거 잡지 마! 안개 너머로 나가는 순간 언제 게임오버 당해도 몰라!”
“라인! 라인 잡아! 일단은 뭉쳐야 해!”
“켄타우로스 달려온다! 탱커 라인 이 꽉 물고 버텨!”
“발밑! 저기 마법사들 발밑에서 오크가 올라온다!”
그리고 이제는 10대 길드들이 몸소 그 사실을 제 곡소리를 통해 증명하고 있었다.
아니, 그나마 곡소리가 나오는 쪽은 다행이었다.
“힐러! 힐러!”
“젠장, 사냥터 미쳤네. 벌써 몇 명이나 당한 거야?”
게임오버 당한 쪽은 그 곡소리를 뱉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그동안 갓워즈를 해오면서 모든 사냥터에서 최고가 아니었다면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는 곳.
물론 예외도 있었다.
5.
"음."
신의 무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미다스의 눈을 가득 채운 것은 몬스터 데이터들이었다.
그 숫자는 엄청났다.
‘그냥 물 반 몬스터 반이네.’
정말 너무 많아서 샐 수가 없을 지경.
심지어 미다스의 발 근처에도 정보가 있었다.
[노네임드(L435)]
!적을 인식 시 주술사 고블린으로 변화
!적과의 거리가 5미터 이상일 경우 파이어볼 사용
!주변 고블린 타입 몬스터에게 자동으로 미치광이 주술 발동
!HP가 20퍼센트 이하일 경우 불사르기 스킬 발동
미다스의 발목 근처에서 찰랑거리는 검은 물줄기, 그 물줄기도 노네임드였다.
“음.”
그게 미다스가 거듭 신음을 흘리는 이유였다.
‘왜 다들 신호등 상태가 시퍼렇지?’
말과 함께 미다스가 지척을 바라본 후에 자신의 발목 근처를 잡고 있는 검붉은 물줄기를 찰싹, 찼다.
명명백백한 공격.
그러나 그 공격에도 보이는 몬스터의 신호등, 어그로 상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었다.
‘얘네들이 등장하는 조건을 모르겠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어그로 방식.
‘형태를 갖추기 전에는 공격도 안 통하고.’
그리고 이렇게 어그로가 끌리지 않는 초록불 상태에서는 제아무리 공격을 해도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이유가 있었네.’
이곳이 지옥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모든 전투를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맞이해야 한다는 것.
‘차라리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 다들 상황이 좀 더 나았을 텐데.’
결정적으로 노네임드의 이러한 특성을 세상 그 어떤 플레이어도 모르고 있었다.
그 차이는 컸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골인 지점을 알고 있으면 이를 꽉 물고 버티지만, 반대로 그보다 짧은 거리라고 해도 골인 지점을 알지 못하면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치고, 힘든 법이니까.
물론 알고 있다고 해도 골치 아픈 일이란 건 변하지 않았다.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다스가 이 게임 쓰레기 게임이야, 라는 푸념 대신 영문 모를 흠소리를 내는 이유는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방법 때문이었다.
헥헥!
“럭키야.”
왕!
“저기 보고 말이야.”
왕!
“사생결단 한 번 외쳐볼래?”
크-왕!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럭키가 정면을 바라보며 사생결단의 의지를 드러냈다.
[럭키가 노네임드를 상대로 사생결단의 의지를 보입니다.]
푸홧!
그 순간 검은 물줄기 한 곳이 폭탄이 터진 것처럼 치솟더니 곧바로 트롤 모습을 갖춘 노네임드 한 마리가 적의를 가진 채 럭키를 향해 전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미다스가 미소를 지었다.
6.
전교 1등을 매일 하던 애가 시험이 어렵다고 투정을 부리면 대부분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얼마나 어려운지는 모른다.
갓워즈란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어비스 길드 그리고 아즈모와 아이들, 갓워즈가 학교라면 전교 1등 그리고 2등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둘이 신의 무덤이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을 때 세상은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없었다.
알기 위해서는 다른 제3자가 필요한 법.
그런 의미에 10대 길드의 신의 무덤 전부 입성은 좋은 기회였다.
- 야, 신의 무덤 이야기 들었어?
ㄴ 들었지. 난이도 지랄 났다면서?
ㄴ 지랄 난 정도가 아니라던데?
신의 무덤이 정말 얼마나 어려운지 세상에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
더욱이 10대 길드는 그냥 보여준 게 아니라 제대로 보여줬다.
- 창성 길드는 하루에 만 40명이 게임오버 당했대.
- 피스타 길드는 사냥 딱 30분하고 다들 로그아웃 후에 대책 세우러 갔다는데?
- 소드 길드도 3시간만 플레이하고 일단 잠정 사냥 종료했음.
- 모든 길드들이 대형 사고 터질까 봐 라이브 방송 일정 전부 일괄 취소했다는 소문이 있어.
제대로 된 공략은커녕 라이브 방송조차 하지 못할 정도, 신의 무덤은 그 정도로 처참한 곳이라고.
그쯤에서 소문도 흐르기 시작했다.
- 이야기 들어보니까 결국 콜라보 한다는데?
ㄴ 콜라보 정도가 아니라 연합을 만든다는 소문이 있어.
ㄴ 하긴,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손잡을 수밖에.
이제까지 10대 길드란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공격한 적은 없지만 반대로 손을 잡은 적도 없었던 그들이 손을 잡는다는 소문.
당연히 그 소문에 그가 빠질 수는 없었다.
- 그래서 BJ대마도사는?
이 말도 안 되는 신의 무덤을 마주한 BJ대마도사는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 어? 속보다! 탐험가 길드가 제안했어!
그러한 의문을 향해 가장 먼저 돌을 던진 건 탐험가 길드였다.
- 지금 신의 무덤 초입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다 같이 한 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자고!
ㄴ BJ대마도사도 포함해서!
ㄴ 회담 제의다!
탐험가 길드가 BJ대마도사를 포함해 같이 입장했던 이들에게 자리를 만들자고 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이상할 게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힘겨운 상황 속에서 한 번 다시 만나 공동 전선을 펼치는 건 무척 현명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당사자들은 달랐다.
“탐험가 길드가 BJ대마도사한테?”
“어비스 길드랑 같은 편 아니었어?”
탐험가 길드가 BJ대마도사의 반대편 노선에 있다는 걸 아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라이브 방송으로 회담 중계를 하겠다고?”
심지어 탐험가 길드가 이러한 회담 과정을 중계하자는 제안을 했을 때 모두는 생각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다.’
진심으로 손을 잡으려고 이 자리를 마련했을 리 만무하다고.
‘그러니까 참가해야지.’
그러한 판단 속에서 탐험가 길드의 초대를 거절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동시에 대답도 나왔다.
“BJ대마도사가 오겠다는데?”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기꺼이 초대에 응하겠다는 대답.
그 대답이 나오는 순간 자리가 마련되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럼 가야지.”
“어차피 사냥도 제대로 못하는데.”
사냥조차 잠시 중단된 상태에서 그냥 가만히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보단 차라리 빨리 만남을 가지는 게 나은 일.
세간의 관심 역시 집중됐다.
- 잠시 후에 회담 가진다는데?
- 탐험가 길드는 벌써 방송 켰어!
여러모로 핫할 수밖에 없는 자리.
“BJ대마도사님.”
그리고 그 핫한 자리에서 탐험가 길드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것을 부어버렸다.
“같이 파티 플레이를 하고 싶습니다. 조건은 얼마든지 원하는 것에 맞추겠습니다."
7.
- 같이 파티 플레이를 하고 싶습니다. 조건은 얼마든지 원하는 것에 맞추겠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라이징 스타 채널 직원들 대부분이 보인 반응은 감탄이었다.
“이야, 탐험가 길드가 고개를 바로 숙이네.”
“BJ대마도사만큼 모든 전투에서 만능은 없으니까.”
“탐험가 길드는 어떤 의미에서 불사자 길드보다 전투력이 떨어지는 편이기도 하고.”
“역시 BJ대마도사야, 인기가 넘친다니까. 길드 한정이지만.”
그 대단한 탐험가 길드마저 BJ대마도사에게 애걸하듯 파티 플레이를 제안했다는 사실에 대한 감탄.
반면 박영준의 생각은 달랐다.
탐험가 길드는 어비스 길드의 가장 확실한 파트너, 그런 그들이 파티 플레이를 제안하는 게 단순한 의도일 리는 없었다.
툭툭!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거듭 관자놀이를 손가락을 두드리던 박영준, 그런 박영준의 눈빛이 달라졌다.
‘판을 더럽히려는 거구나.’
그가 파악한 탐험가 길드의 노림수는 간단했다.
‘어차피 BJ대마도사는 파티 플레이를 할 예정인데, 거기서 탐험가 길드가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을 하면.......'
질문을 했으면 대답이 나와야 하는 법.
지금도 그랬다.
‘거절하거나 혹은 수락하거나, 어떻게든 대답이 나온다.’
이 자리에서 BJ대마도사는 탐험가 길드의 말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해줘야 했다.
제안을 수락한다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그건 피해야 할 일이었다.
‘같이 하면 판을 망칠 거다.’
탐험가 길드가 순순히 BJ대마도사를 도와줄 리는 없으니까.
여러 방법으로 발목을 잡고 늘어질 터.
‘거절을 하면…… 이유를 요구하겠지.’
반대로 거절에는 이유가 필요했다.
물론 네놈들을 뭘 믿고 같이 파티 플레이를 해? 라는 진짜 이유는 언급할 수 없으니 적당한 포장이 필요할 터.
허나, 그 포장이 부적절하면 필시 세상은 의심할 터였다.
‘탐험가 길드 입장에서는 그 이유가 별로라면 정치질하기 좋은 기회가 되겠고.’
그리고 그 의심을 빌미 삼아 어떤 식으로든 수작을 부릴 수 있을 터.
어떤 식으로든 탐험가 길드, 더 나아가 어비스 길드 입장에서는 판에 흙을 뿌릴 수 있는 셈.
‘체면을 버리고 실리를 취하겠다, 이거군.’
그에 대한 대가로 탐험가 길드의 자존심이 손상이 가길 하겠지만, 이 판에 걸린 걸 생각하면 그 정도 수준의 자존심은 팔 수 있을 때 바로 파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 솔직히 말하죠. 신의 무덤이 우리 길드 생각 이상으로 난이도가 높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답이 없습니다. 그만큼 BJ대마도사님, 당신의 능력이 매우 필요합니다.
그러한 박영준의 예상에 화답하듯 어드가 어느 때보다 구구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쯤 되면 부탁을 넘어 읍소 수준.
- 그동안 탐험가 길드가 BJ대마도사에게 적잖은 도움을 준 것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꼭 도움을 주십시오.
이어진 발언 앞에서는 라이징 스타 채널의 분위기 역시 조금 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너무 질척이는 거 아닌가?”
“탐험가 길드가 이런 곳이었나?”
“어드가 저런 말을 하는 거 처음 봐.”
다른 누구도 아닌 탐험가 길드의 최고 플레이어가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저런 부탁을 한다?
그 사실에 박영준도 놀랐다.
‘이 정도까지?’
자존심을 팔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처참하게 찢은 후에 조심스레 내밀 줄이야?
‘최악이다.’
그 순간 박영준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이 정도까지 탐험가 길드가 몸을 숙이면, 그만큼 동정심도 커질 수밖에 없는 일.
거절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드와는 파티 플레이를 하면서 탐험가 길드만을 거절하는 건 더더욱 힘든 일.
그리고 탐험가 길드의 말마따나 BJ대마도사가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서 거절하는 순간 BJ대마도사는 배은망덕한 놈이 된다는 의미.
물론 박영준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거절할 거다. 아니, 해야 해.’
BJ대마도사 성격이라면 세간의 반응보다는 실리를 택할 것이며, 탐험가 길드라는 폭탄을 품고 이 지옥 같은 곳을 가진 않으리란 것을.
- 아, 그게…….
그리고 이내 BJ대마도사가 탐험가 길드의 간절한 요구 앞에서 입을 열었다.
- 어드 님 죄송합니다.
시작은 사과.
- 탐험가 길드하고는 파티 플레이를 할 수 없습니다.
- 이유가 뭡니까?
그 순간 어드가 이제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 다른 곳하고는 파티를 하는데 우리하고는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가 BJ대마도사님에게 잘못한 게 있습니까? 오히려 그동안 여러 곳에서 도와드리지 않았습니까?
분명 그건 무례한 모습이었으나, 앞서 보여준 읍소 탓인지 그것을 나무라는 여론은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은 그러한 어드의 반응에 동조했다.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였는데 그리고 과거에 도움을 줬는데 우릴 외면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 아니, 그게 아니라.......
그 항변에 BJ대마도사도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박영준도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10대 길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존재들이 이렇게까지 밑도 끝도 없는 모습을 보일 줄이야?
‘실수다.’
그 모습에 박영준은 자책했다.
‘놈들의 각오를 너무 얕게 봤어.’
어비스 길드가 이 정도까지 배수의 진을 친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한 건 자신의 실수였으니까.
어쨌거나 BJ대마도사가 당혹감을 드러내는 순간 어드는 놓치지 않고 들어왔다.
- 이유가 있습니까? 솔로 플레이라도 해서, 그래서 파티 플레이를 못하겠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죠?
솔로 플레이를 한다, 같은 허무맹랑한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한 어드의 말에 BJ대마도사가 놀라며 말했다.
-어, 그건데요?
'응?'
그러자 이내 고요해지는 좌중.
그 고요한 분위기에 BJ대마도사가 쐐기를 박았다.
- 솔로 플레이해야 해서 파티 플레이 할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