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화. < 134화. 폭군 (2). >
4.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으면 사람은 더더욱 몰입하게 되는 법.
BJ대마도사와 소드 길드의 폭군 레이드 레이스가 그러했다.
- BJ대마도사랑 소드 길드가 붙는다!
- 1시간씩 돌아가면서!
- 디데이는 내일!
날짜는 물론 이제는 대결 방식마저 확정된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생각할 건 오직 하나였다.
“누가 이길까?”
과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그렇게 세상은 BJ대마도사와 소드 길드의 매치업에 몰입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소드 길드가 이기겠지.”
“하지만 상대는 BJ대마도사잖아? BJ대마도사가 그냥 순순히 이대로 질 것 같진 않은데?”
“아무리 그래도 솔로로는 한계가 있는데 가능하겠어?”
“아니지, 솔로이니까 가능한 거지. BJ대마도사는 솔로일 때 무적이라고, 무적!”
세상이 BJ대마도사와 소드 길드의 이야기로만 가득 찰 정도.
“이제 잠시 후에 시작이구나.”
“난 오늘 이거 보려고 여기 왔다니까.”
“아무렴, 이런 날 누가 게임을 하겠어?”
당연한 말이지만 그 세기의 대결 라이브 방송을 앞두고 갓워즈에 접속하는 플레이어는 존재치 않았다.
모두가 게임 밖에서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따름.
“이런 날에도 게임하는 건 게임하고 결혼한 인간 말고는 없을걸?”
“그렇지. 애인 대신 게임하고 평생 함께 하기로 맹세하지 않은 이상.”
그러한 손님들의 대화를 듣던 이혁주가 한마디 했다.
“어? 현우 형은 게임 중인데요?”
그 말에 말을 뱉은 둘이 이혁주를 보며 말했다.
“갠 어차피 애인 없잖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어차피 해도 안 될 건데, 현우는 그냥 게임하고 결혼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둘의 말에 더 이상 정현우가 게임을 하는 사실에 의문을 던지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의문을 던질 수도 없었다.
“그렇긴 하죠. 아, 라이브 채팅창 열렸네요!”
드디어 세기의 대결이 시작됐으니까.
5.
크르!
크르르!
암흑 대륙에서 오우거 사냥은 흉포한 울음을 토해내며 끼리끼리 돌아다니는 오우거 세 마리를 잡는 것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장한 오우거 세 마리가 보여주는 압박감, 신장이 5미터에 가까운 거대 괴물, 그것도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듯한 괴물을 상대한다는 건 사람으로 언제든 달릴 준비를 마친 탱크 근처에 가는 것과 비슷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이 주저함 없이 그 오우거 무리를 향해 갈 수 있는 건 경험 그리고 믿음 덕분이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동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나오는 믿음.
달리 말하면 동료에 대한 믿음과 신뢰 없이는 오우거 무리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벅, 저벅.......
그런데 지금 플레이어 한 명이, 그 어떤 동료도 품지 않고, 곁에 두지 않은 채 오우거 무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크르르?
적을 보는 순간 흉포한 반응을 토해내는 오우거들조차 한 명뿐인 플레이어의 등장에 묘한 반응을 보일 정도.
물론 그 반응은 짧았다.
크어!
크아!
자신들의 인식 범위에 플레이어가 등장하는 순간 오우거 보초병들은 그 한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쿵쿵쿵쿵!
마치 불도저처럼 오우거 정찰병들이 숲에 길을 만들어버리는 플레이어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그 순간이었다.
팟!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오우거 세 마리의 시선 끝에 있던 플레이어가 사라졌다.
도망친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 그것은 공격이었다.
푹!
단숨에 하늘 높이, 10미터 높이까지 도약한 플레이어가 그대로 오우거 한 마리의 왼쪽 어깨 위로 검과 함께 꽂혔으니까.
크어!
그 공격에 당한 오우거가 비명을 내지르며 오른손을, 몽둥이를 쥔 채로 왼쪽 어깨를 쳤다.
퍼억!
크어!
격한 소리가 났고, 그 뒤를 이어 제 몸을 친 오우거의 비명이 터졌다.
소리가 나는 건 그것뿐이었다.
플레이어는 어느새 꽂은 검을 뽑은 채 오우거의 목덜미를 지나며 이번에는 오른쪽 어깨로 이동했다.
스윽!
그 순간 검으로 목덜미에 기나긴 상처를 남겼다.
푸홧!
동시에 깊숙한 상처이기도 했다.
검이 들어간 깊이는 고작해야 20센티미터, 오우거의 덩치를 고려한다면 그냥 가볍게 베인 정도에 불과했으나 플레이어가 휘두른 검에는 푸른빛의 아지랑이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갓워즈의 370레벨 레전더리 등급 스킬, 오러 블레이드가.
결정적으로 휘두르는 검이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
현재까지 갓워즈에 공개된 모든 종류의 검 아이템 중 최고라고 평가받는 무기!
그 아이템과 스킬 앞에서는 고작 오우거 정찰병이 가진 방어력은 종잇장과 다를 바 없다.
방어구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스윽!
플레이어가 오른쪽 어깨에 이르러서 휘두른 검에 오우거 정찰병이 착용한 방어구의 어깨 부분이 잘렸다.
양쪽 어깨 끈이 잘려나가는 순간.
흐루루!
자연스레 오우거 정찰병이 입은 갑옷이 앞뒤로 나뉜 채 바닥을 향해 흘러내렸다.
무장이 파괴되는 순간.
그 순간 플레이어는 오우거의 어깨에서 도약하며 다른 쪽 오우거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 후에도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오우거 정찰병들의 무장을 해제했다.
크어어!
물론 오우거 정찰병들이 순순히 그 과정을 허락한 건 아니었다.
크어어!
그들은 플레이어를 쫓아 흉포한 울음을 토해내며 각자 든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 공격은 플레이어에 닿지 않았다.
플레이어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오우거들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피해내며 오우거의 몸 위를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퍼억!
크어!
결국 오우거들의 발악은 그저 서로를 공격하는 꼴사나운 결과로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오우거 세 마리의 무장을 해제시킨 플레이어가 그대로 바닥에 착지하면서 말했다.
“처리해.”
“예."
그 순간 어느새 주변을 포위한 탱커들, 그리고 그 탱커들 사이로 검을 든 검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이후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무장이 해제되는 건 물론, 고작 한 명의 플레이어에게 어그로가 끌리는 동안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 검객 장난 아니다!
이게 바로 소드 길드의 방식이었다.
-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검객의 원맨쇼는 경이롭다니까.
동시에 검객의 방식이기도 했다.
- 진짜 검객이 어그로 다 끌면서 시간 버는 사이 나머지가 세팅 완료.
검객, 그가 갓워즈를 대표하는 최고의 검사로 평가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서 수십 마리의 오우거를 상대로도 시간을 버는 것, 그 이상을 할 수 있었으니까.
- 진짜 이건 필승 패턴이라니까.
그리고 검객이 버티는 동안 소드 길드는 그 상황에 맞는 가장 완벽한 전술과 전략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제까지 소드 길드가 단 한 번의 굴욕 없이 그리고 패퇴 없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아무리 폭군의 군대라도 소드 길드가 무너지는 일은 결단코 없지.
이 견고하기 그지없는 검이 부러지는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고.
검객, 본인의 생각도 같았다.
‘우리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한 달이 넘는 훈련과 준비 속에서 소드 길드는 실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지울 수 있었다.
소드 길드의 실수로 인해 BJ대마도사에게 승기가 가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럼으로 BJ대마도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그런 우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우리보다 빨리 잡는 것밖에 없을 거다.’
소드 길드를 뛰어넘는 것.
“그럼 이제 함정을 판다.”
그리고 지금 소드 길드가 그 한계선을 제시했다.
6.
- 1시간 됐다!
- 그래서 몇 마리 잡았어?
약속된 1시간이 끝난 직후, 소드 길드가 만든 결과물에 세상에 보인 반응은 하나였다.
- 354마리다!
ㄴ 맙소사, 어떻게 350마리를 넘게 잡지?
ㄴ 거의 분 당 6마리 꼴로 잡은 격이네.
ㄴ 허허, 웃음만 나온다 웃음만.
헛웃음을 흘리는 것.
그 정도로 소드 길드가 1시간 동안 보여준 퍼포먼스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당장 잡은 숫자가 엄청났다.
- 잡은 것도 잡은 건데 더 무서운 건 단 한 번도 폭군을 자극하지 않았다는 거야.
- 단 한 마리도 안 놓쳤으니까.
심지어 그 과정에서 소드 길드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마주한 오우거 중 단 한 마리도 살아서 본진으로 돌아가는 걸 용납지 않았다.
그건 곧 이런 수준의 퍼포먼스를 앞으로 몇 번이고 더 무리 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
- 이제 BJ대마도사 어떻게 하냐?
-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거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거 같은데?
- 솔로는 솔로일 뿐이지.
이쯤 되자 이제는 BJ대마도사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이들도 이성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 BJ대마도사님 빨리 사냥하세요! 지금 1분 1초가 아깝다고요!
- 일해라, BJ대마도사!
소드 길드가 기록한 엄청난 사냥 숫자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으니까.
여러모로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제부터 제 턴이군요.”
그러한 상황을 정리한 건 다름 아니라 미다스의 외침이었다.
“모두 집합!”
그 외침에 미다스의 주변으로 럭키와 골드 그리고 실버와 잭팟이 단숨에 모였다.
모인 네 동료들 사이에는 진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 어? 뭐지?
- 뭔가 준비한 모양인데?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채팅창에도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짙게 깔린 긴장감 속에서 미다스가 입을 열었다.
“럭키, 골드, 실버, 잭팟. 너희들에게는 이제부터 매우 중요한 임무가 주어질 것이다.”
중요한 임무!
왕!
“네, 경청하겠습니다!”
그 단어에 럭키를 포함한 넷이 동시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답했다.
그 사실에 긴장감이 만연하던 채팅창 위로는 기대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뭔가 있다!
- 역시 BJ대마도사! 다 계획이 있구나!
- 그래, BJ대마도사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여기 왔을 리 없지!
- 아무렴, BJ대마도사는 못 믿어도 럭키, 골드, 실버, 잭팟은 믿을 수 있지!
- 합체다! 확실해! BJ대마도사랑 나머지 넷이 하나로 합쳐서 캡틴 솔로가 되는 거야!
BJ대마도사의 이름 아래에서 무수히 많은 기적이 일어났듯이 오늘 이곳에서도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 다들 조용! BJ대마도사님이 말하잖아!
그렇기에 오히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채팅창 위로는 지독한 고요함이 깔리기 시작했다.
BJ대마도사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이윽고 미다스가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넷에게 중요한 임무를 말했다.
“여기서 날 응원해줘야 해.”
그 응원이란 단어가 나오는 순간, 채팅창 역시 폭발했다.
- 그래, 응원!
- 우와! 응원 !
- 맙소사, 응원이라니!
일단 당장은 모두가 반사적으로 환호했다.
- 어? 잠깐? 응원? 지금 응원이라고 했나?
- 뭐지? 지금 뭔가 개소리를 들었는데? 럭키님이 짖은 건가?
- 아, 아무래도 내 번역기 맛 간 것 같다. 응원이라고 나오네.
허나, 이내 상황을 파악한 채팅창에는 환호성 대신 괴성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 젠장, 잘못 들은 게 아니잖아!
- 드디어 BJ대마도사가 솔로로 오래 지내더니 미쳐버린 모양이야.
- 아니, 럭키, 골드, 실버, 잭팟 빼면 사실상 BJ대마도사 파티는 시체나 다름없잖아!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이 BJ대마도사가 무언가를 해내기보다는 럭키나 골드에 기대감이 높았던 상태.
그런데 그런 럭키와 골드를 배제한다?
어이가 없는 일.
해서 일부는 말했다.
- 쯧쯧, BJ대마도사 방송 원데이투데이 보는 것도 아니고 딱 봐도 그냥 쇼하는 거잖아?
-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다른 뭔가 준비했을 듯.
- 형, 이제 우리 안 속아!
BJ대마도사가 그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장난을 치는 것뿐이라고.
“얘들아, 그럼 주인님 다녀올게!”
왕!
“주인님, 여기서 주인님의 위대한 전설을 응원하고 지켜보겠습니다!”
“주인님, 선배님과 같이 주인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꾸우!
그러나 정말로 미다스가 넷의 응원을 등진 채 조금 전까지 전투가 치열했던 전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순간 시청자들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 진짜 한다. 진짜로 솔로 레이드 한다.
BJ대마도사가 정말 순수하게 혼자서 싸울 생각임을.
시청자들의 그 생각에 미다스가 확실하게 말했다.
“여러분, 전 솔로로 하는 거 아니면 게임 안 합니다.”
정말 혼자서 할 거라고.
이쯤 되자 시청자들은 이제 질문을 던졌다.
-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성공 유무를 떠나서 BJ대마도사가 준비해온 것이 대체 뭘까?
그 의문에 미다스는 천천히 단서를 줬다.
“용열병.”
시작부터 용열병을 썼다.
- 용열병? 지금 벌써?
- 처음부터 아주 제대로 엑셀을 밟는다는 거잖아?
그건 곧 전력질주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가고일.”
- 어?
- 설마?
그리고 이내 첫 번째 캐스팅 마법이 가고일인 게 알려지는 순간 채팅창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 몰이 사냥하려고?
- 광역 마법으로 한 번에?
BJ대마도사가 준비한 공략 방법이 무엇인지 예상되는 순간.
“앤 인페르노 앤 블리자드.”
이어진 캐스팅에 예상은 확신이 됐다.
- 미친, 진짜 한 번에 잡으려고?
그리고 확신이 되는 순간 절규가 나왔다.
- 안 돼, 될 리가 없어!
- 라포 버프 받았을 때도 원콤 안 나왔는데 지금 나올 리가 없잖아!
이미 BJ대마도사가 최고의 버프를 받은 상황에서도 원콤이 나오지 않은 게 증명된 바.
그런데 버프도 받지 않는 지금 혼자서 콤보를 쓴다면?
어림도 없는 일.
- 한 마리라도 놓치면 폭군이 BJ대마도사 잡으러 움직인다고!
그리고 그 어림도 없는 일을 강행한 대가는 그 무엇보다 비쌀 터였다.
- BJ대마도사님, 이건 아닙니다. 그냥 졌다고 합시다.
- 형, 그동안 파티에서 꺼지라고 한 거 장난이었어! 형, 죽지 마!
- BJ대마도사님, 언젠가는 연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포기하지 맙시다!
여러모로 절규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일.
그러한 절규에 미다스는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남은 두 사역마를 통해 마저 캐스팅을 했다.
“사역마 스톤 에이지. 사역마 어스퀘이크.”
새로이 얻은 두 개의 레전더리 마법을.
그렇게 캐스팅을 시작한 미다스가 말했다.
“여러분 진짜 폭군이 뭔지 보여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