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화. < 131화. 암흑 대륙 (1). >
1.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 분야에 존재하는 별을 향해 사람들은 열광을 보낸다.
개중에서도 가장 열광하는 순간은 바로 별과 별이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 BJ대마도사랑 검객이랑 붙는다!
-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 갓워즈에 이제껏 없었던 빅뱅 이벤트다!
검객 그리고 BJ대마도사, 갓워즈를 대표하는 두 슈퍼 스타 플레이어의 충돌에 세간이 열광하는 수준을 넘어 미쳐버린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 와, 서로 친하게 지내는 거 같더니 갑자기 붙네.
- 대체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 확실한 건 둘 사이에 여자 문제로 싸울 일은 없다는 거지.
유명세도 유명세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제까지 친한 사이로 보였던 그 둘이기에 그 둘의 대결은 더더욱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둘이 만들어내는 이 어마어마한 매치업에 모두가 열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
라이징 스타 채널의 사무실 분위기는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했다.
‘검객이라니.’
갓워즈의 10대 길드 중 최고의 길드를 꼽으라면 모두가 어비스 길드를 꼽았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강한 두 번째 길드를 꼽으라면 모두가 소드 길드를 꼽았다.
더불어 소드 길드를 꼽는 이유로 검객을 언급했다.
검객의 이름값은 그 정도였다.
갓워즈를 대표하는 최고의 검사 플레이어!
‘아무리 BJ대마도사라도 소드 길드 상대로는 안 돼.’
그러한 검객을 앞세운 소드 길드를 상대로 BJ대마도사가 이길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았다.
즉,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드는 의문은 오직 하나.
“대체 왜 BJ대마도사한테 선전포고를 한 걸까요?”
그동안 BJ대마도사와 사이가 좋은 편이었던 검객 아닌가? 그런 그가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선전포고를 했을 리 만무.
“그걸 알면 사장님이 저렇게 고민 안 하시지.”
“아무렴.”
때문에 직원들은 박영준이 툭툭,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것 역시 이 의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박영준이 머리를 두드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일단 소드 길드가 선전포고를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비스 길드의 사주를 받은 거다 ’
그가 보기에 소드 길드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 BJ대마도사를 공격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필시 그 대결은 어비스 길드의 기획 아래에서 이루어졌을 터.
‘하지만 한 편이 된 건 아니야.’
그러나 박영준이 아는 소드 길드는 어비스 길드와 손을 잡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비스 길드만 잡으면 최고 길드가 되는데, 그럴 리가 없지.’
2인자 입장에서는 1인자가 되는 것이 절대적 목표일 텐데, 1인자와 손을 잡고 1인자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들 이유는 없다는 것.
‘그런데도 움직인 건 강력한 강제 조항이 있다는 거겠지. 소드 길드를 옭아맬 수 있는 강력한 조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드 길드가 움직였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의미.
‘BJ대마도사가 거기서 협상이나 질문을 하지 않고 받아준 것도 그 때문이겠고.’
그러한 소드 길드의 선전포고에 BJ대마도사가 왈가왈부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BJ대마도사는 필시 이게 협상이 되거나 대화가 될 만한 건수가 아님을 바로 눈치챘을 터.
‘그리고 어차피 겪어야 할 고난이다. 소드 길드를 잡는 것도 어려워하는 주제에 어비스 길드를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동시에 BJ대마도사의 적은 다른 무엇도 아닌 어비스 길드라는 거대한 세력이었다.
그런 세력을 앞에 두고 고작 소드 길드를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
‘현재 저울질 중인 10대 길드들에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
지금 어느 편에 설지, 누구에게 운명을 베팅해야 할지 고민 중인 10대 길드들에게 그 모습이 좋은 의미로 다가갈 리는 만무.
‘그래서 소원을 들어주는 건 걸 테고.’
해서 오히려 BJ대마도사는 추가로 제안을 했다.
이기는 쪽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어때, 라는 제안.
사실 그건 위험한 제안이었다.
만약 BJ대마도사가 진다면 소드 길드 쪽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기는 순간 BJ대마도사는 소드 길드의 복종을 요구하겠지.’
반대로 BJ대마도사가 이긴다면 소드 길드라는 아주 강력한 칼을 손에 쥐고 어비스 길드를 상대할 수 있을 터.
그리고 그 칼을 쥐는 순간 저울질을 하던 이들의 저울이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터였다.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의 도박.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제 할 수 있는 베팅 중에 안전한 베팅은 없어.’
그러나 그 너머에 있는 진짜 적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여기서 겁먹고 꼬리를 말 바에는 차라리 전부를 거는 것이 나았다.
여기서 승부를 보지 않는 것은 패배를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박영준은 지금 BJ대마도사가 어떤 각오를 품고 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BJ대마도사도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있을 거다.’
결사란 이름의 각오를.
‘자기 참모들하고 함께.’
2.
난 BJ대마도사랑 검객이랑 좋은 의미로 붙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붙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진짜 이거 결과가 어떻게 될까?”
BJ대마도사와 검객의 매치업 이야기로 가득한 캡슐방.
“결과는 무슨, 당연히 소드 길드가 유리하지! 아무리 BJ대마도사가 대단해도 상대는 소드 길드라고! 어비스 길드 다음 가는 길드!”
“그렇게 치면 이제까지 BJ대마도사가 상대한 길드들은 뭐 보통이었나? BJ대마도사잖아, BJ대마도사. 솔로의 전설! 솔로로 이제까지 모든 걸 해온 남자! 솔로 외길만 걸어오는 진짜 솔로! 평생 솔로로만 살아가기를 맹세한 슈퍼 솔로!”
그 치열하기 그지없는 대화 속에서 콜라를 홀짝이던 정현우의 입가가 썰룩거렸다.
그 정도였다.
‘그래, 모름지기 떡밥은 이래야지.’
정현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현재 기분이 좋았다.
언뜻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글쎄 소드 길드는 차원이 다르다니까.”
분명 이번에 이벤트 매치업 상대인 소드 길드는 BJ대마도사 혼자서 감히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패배가 이미 약속된 상황이었으니까.
‘아무렴, 내가 소드 길드를 어떻게 이기겠어.’
정현우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길 필요도 없고.’
애초에 PK도 아니고, 그냥 보스 몬스터 레이드 레이스를 한 번 하는 것뿐 아닌가?
그 승부에서 진다고 해서 BJ대마도사 게임 인생에 크게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하물며 상대는 소드 길드, 지더라도 BJ대마도사의 명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아주 강력한 존재였다.
‘오히려 같이 보스 몬스터 잡으러 가주는 게 다행이지. 암흑 대륙 초입의 보스 몬스터인 폭군은 잡으러 가는 것조차 쉽지 않으니까.’
심지어 이번 대결의 목표가 된 보스 몬스터 폭군은 오우거 군단을 부리는 녀석으로, 정현우 입장에서는 대결이라도 좋으니 소드 길드와 함께 움직이는 게 훨씬 나았다.
“그보다 이기는 쪽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는데, 대체 어떤 소원을 빌까?”
소원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통 상대들이 아니니까 엄청난 빅딜이 오고가겠지.”
“BJ대마도사의 영입을 제안할지도 몰라.”
“아니면 거액을 요구할지도 모르지. 말도 안 나오는 거액. BJ대마도사가 엄청난 부자잖아?”
그에 대해서는 온갖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사실 정현우 입장에서는 딱히 고민이 없었다.
‘그냥 이벤트 한 번 더 하는 거겠지 뭐, 설마 검객님이 나한테 과한 제안을 하겠어?’
프로레슬링처럼 각본과 기획이 존재하는 이벤트 매치일 뿐인데 상식 밖의 요구가 올 리 만무.
“반대로 생각해보자고. 그 제안을 꺼낸 건 BJ대마도사잖아? 그건 이길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이길 자신이 있어서 소원 들어주기를 제안했다…… 그럼 무슨 소원을 원하는 걸까?”
당연히 자신이 이겼을 경우에 어떤 소원을 요구할 건지, 그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 소문이 나오고 있어요.”
“혁주야, 뭔데?”
“하나는 소드 길드에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 거요.”
“절대 복종?”
“예, 그래서 소드 길드랑 불사자 길드를 합쳐서 자기 밑에 두려는 게 목표래요.”
들리는 풍문에 정현우가 콧방귀를 뀌는 건 그 때문이었다.
‘혁주 놈 또 헛소리 지껄이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두 길드가 미쳤다고 그걸 받아들이겠어? 그리고 밑에 둬서 뭐하게? 어비스 길드랑 전쟁이라도 하게?’
여러모로 정현우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으니까.
“다른 소문은?”
“또 하나는…… 아시다시피 검객 여동생이 있잖아요?”
“있지. 모델로 유명한.”
“이기면 검객 여동생 소개시켜달라는 소원을 빌 생각이라네요.”
그 후에 나온 풍문 역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고, 정현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지랄을 한다, 지랄을…… 아니지. 한 번 이건 고민해볼 문제야.’
당사자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따름.
“BJ대마도사라면 그럴 것 같다.”
“하긴, BJ대마도사한테는 소드 길드보다 소개팅이 더 중요할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소드 길드 정복보다 소개팅에서 성공하는 게 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역시 BJ대마도사, 다 생각이 있구나.”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오히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 앞에선 어이가 없는 수준을 넘어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해서 정현우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껐다.
‘그것보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내가 검객님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냐, 그건데.’
사실 지금 정현우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벤트 매치 날짜였다.
여전히 정현우는 무한 미로에 있는 상태, 물론 다음에 접속하면 암흑 대륙에 입장하겠지만 그 후에도 소드 길드가 있는 곳과의 거리는 꽤 됐다.
현재 소드 길드는 암흑 대륙 초입에 있는 폭군 레이드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암흑 대륙 초입이 400레벨에서 419레벨까지 플레이어들을 위한 무대이니까, 19레벨 정도의 거리가 있는 셈이었다.
‘떡밥 쉬기 전에 이벤트 매치 가져야지.’
제아무리 뜨거운 이슈도 시간이 지나면 식어버리는 법, 때문에 정현우는 한시라도 빨리 소드 길드가 있는 곳에 도달할 필요가 있었다.
‘정신 차리자.’
그 대목에 이르렀을 때 정현우의 입가에 더 이상 미소는 없었다.
‘이제 암흑 대륙이니까.’
이제부터 그가 움직여야 하는 곳은 10대 길드만이 존재하는 땅, 미지의 위협만이 존재하는 땅이었으니까.
3.
무한 미로, 그 거대한 미로의 끝에는 거대한 문이 존재했다.
“여기까지 왔군.”
그 문 앞에 선 라포가 제 옆에 있는 미다스를 보며 말했다.
“덕분에 편하게 왔어.”
그 말에 미다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니, 그쪽 말고 럭키 이야기야. 럭키가 다 했잖아? 그렇지, 럭키야?”
왕!
“그래, 럭키야 고맙다.”
그 짤막한 콩트를 마친 라포가 다시 미다스를 보며 말했다.
“상황이 참 골치 아프게 됐어. 암흑 대륙에 가자마자 소드 길드랑 붙어야 한다니.”
말을 하는 라포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여기서 지면 그 누구도 BJ대마도사 편에 서지 않을 거다. 그럼 우리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게 될 테고.’
이제 BJ대마도사와 운명공동체가 된 불사자 길드 입장에서는 작금의 상황이 즐거울 리가 만무.
“뭐, 소드 길드가 있는 곳까지 가는 게 골치 아프긴 하죠.”
반면 미다스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거리가 좀 머니까요.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죠.”
그 모습에 라포와 불사자 길드원들은 모두 감탄했다.
‘대단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여유라니.’
‘배포의 크기가 다르구나.’
‘그래, 한 번 믿어보자.’
그리고 BJ대마도사의 이 자신감에 그를 향한 믿음과 신뢰가 솟아올랐다.
‘떡밥 쉬기 전에 빨리 만나야지. 아무렴.’
미다스의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천만다행일 정도.
어쨌거나 미다스 입장에서는 빨리 이동하는 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그게 이유였다.
“그럼 암흑 대륙에서도 같이 움직이는 건가?”
“아뇨.”
“아니라고?”
“예, 당분간은 혼자 움직일 생각입니다.”
불사자 길드의 파티 플레이 제안을 거절한 이유.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깨야 하는데.’
현재 미다스가 가진 퀘스트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암흑 대륙에서 NPC를 찾아야 하는 상황.
당연한 말이지만 미다스의 눈을 이용하면 NPC를 찾는 건 그 어떤 일보다 쉬웠다.
‘개꿀 빠는 걸 보여드릴 순 없지.’
하지만 그 모습을 불사자 길드에 보여주면 필시 그들은 의심할 터.
그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다스는 암흑 대륙에서 당분간 혼자 움직일 생각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고백할 수는 없는 노릇, 해서 다른 이유를 댔다.
“소드 길드랑 한 판 붙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암흑 대륙에서 적응도 좀 해야 하는데 불사자 길드랑 같이 하면 훈련이 되겠습니까? 너무 게임이 쉬워질 텐데.”
훈련을 위해서 편한 길 따위가 아니라 일부러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걷겠다!
‘대단하군. 남들은 그냥 움직이는 것도 힘든 암흑 대륙에서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다니…….'
‘BJ대마도사, 진짜 한계를 알 수 없는 플레이어다.’
‘결국 자기 힘으로 해내겠다, 이건가? 그래, 그런 플레이어니까 지금까지 솔로로 남은 거겠지.’
그 말에 불사자 길드원들은 놀람을 넘어 감동마저 느꼈다.
어떤 의미에서는 플레이어의 귀감이나, 로망이었기에.
“좋아, 본인이 원한다면 기꺼이 응원해야지.”
때문에 라포 역시 그러한 미다스를 향해 더 이상 파티 플레이 제안을 하지 않았다.
“우리도 나름 열심히 레벨업하고, 연마할 테니까 필요할 때면 언제든 부르라고. 부르면 언제든 달려나가 도와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러한 라포의 말에 미다스는 감격했다.
“아, 부르는 방법은 간단해. 내 라이브 방송에 들어와서 평소처럼 후원 채팅을 날리라고. 액수는 알지?”
“아, 네……."
그리고 이어진 설명에 미다스는 생각했다.
‘도움 요청 안해야지.’
자신이 불사자 길드에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결단코 오지 않으리란 것을.
“자, 그럼 먼저 가라고. 우리는 여기서 좀 더 전열을 구축하고 떠날 테니까.”
이윽고 라포의 응원에 미다스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곧바로 무한 미로의 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얘들아, 가자!”
미다스, 그가 암흑 대륙에 도달한 10번째 팀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