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화. < 128화. 시간 낭비 (2). >
4.
[멀린 님이 10,307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무한 미로 밖으로 가는 길이 심심하다면 기꺼이 이벤트 NPC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지. 그것도 그냥 NPC가 아니라 화끈한 이벤트를 주는 녀석들로 말이야.]
멀린의 채팅이 나오는 순간 채팅창의 분위기 역시 화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멀린이 이벤트 준다! 화끈한 놈으로!
- BJ대마도사님 땡 잡았네 ! 축하합니다! BJ대마도사님이 바라시던 불꽃길 가자고요!
- BJ대마도사는 고생해야 제맛!
일단 대부분은 멀린이 이벤트를 준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 격렬하게 열광을 했다.
멀린의 이름값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 이제 확실하네. 멀린 님도 BJ대마도사 빠로 전향하셨어. 백퍼센트야!
- 이거이거 아즈모 님 긴장 타셔야겠네.
하물며 그런 멀린이 이벤트를 준 대상이 BJ대마도사라는 사실 앞에서 열광하지 않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물론 모두가 열광하는 건 아니었다.
일부는 열광하는 대신 냉정하게 의문을 제기했다.
- 아니, 그런데 무한 미로에서 이벤트 NPC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건가?
ㄴ 모르지, 정보가 제대로 풀린 게 아니니까.
ㄴ 정보를 떠나서 사례 자체가 적지. 무한 미로에서 등장하는 네임드 몬스터 중에 가장 많이 나온 거라고 해봤자 미노타우로스로 레이드 횟수는 19번이 전부잖아?
과연 멀린이 정말 무한 미로에서 특정 인물에게 이벤트를 줄 수 있을까?
[멀린 님이 10,308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무한 미로의 미로 자체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NPC들이 등장하는 이벤트 필드 범위는 한정되어 있지.]
[멀린 님이 10,309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또 이벤트NPC는 한 번 이벤트를 깨면 사라지지. 반대로 그 점을 이용하면 이벤트를 하기 전까지는 홀딩시킬 수 있지.]
그러한 의문에 멀린은 기꺼이 설명을 해줬다.
[멀린 님이 10,31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그리고 현재 탐험가 길드가 그런 방식으로 이벤트 NPC 몇 명을 홀딩하고 있는 중이고. 원래는 탐험가 길드가 VVIP들을 위해 준비한 것들로, 아직 제대로 가격조차 측정하지 않은 서비스이지만, BJ대마도사의 뜨거운 방송을 위해 기꺼이 공짜로 제공해주지.]
그 친절하기 그지없는 설명에 더 이상 그 부분에 있어 의문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아니, 의문을 가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었다.
- BJ대마도사가 최초로 서비스 받는 거네?
ㄴ 크으, 탐험가 길드한테 이벤트 서비스 받다니, 쩐다.
ㄴ 이쯤 되면 서비스 받는 게 아니라 서비스 체크해주는 거지. 미슐랭이라고 해야 할까?
ㄴ 미슐랭이 아니라 미솔랭 가즈아!
다른 무엇도 아니고 탐험가 길드가 제대로 공개조차 하지 않은 서비스를 최초로 받는 것 아닌가?
무한 미로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를 최초로 받는 셈.
더더욱 이 상황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징 스타 채널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운이 제대로 따라주는데?”
“갑자기 이런 식으로 떡밥이 생길 줄이야. 한동안 라이브 방송 소재 걱정은 없겠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박 아니야? 이런 식으로 기획해서 무한 미로 이벤트 라이브 방송하는 건 우리가 처음이잖아?"
“심지어 마법 융합에 럭키 아이템 세팅도 있으니까…… 와, 무한 미로에서 라이브 방송 수익 제대로 터지겠는데?”
이 정도 빅이벤트가 보장되면 당사자들도 어쨌거나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는 일.
이런 상황에서 기쁨을 표출 못하는 건 단 둘 뿐이었다.
일단 박영준 그중 한 명이었다.
방송을 보던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툭툭 자신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아는 탓이었다.
‘멀린이 갑자기 BJ대마도사에 대한 격렬한 팬심이 생겼을 리는 없고.’
멀린의 목적이 결코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 이거 시간 낭비시키려는 건데…….'
호의는커녕 멀린의 목적은 BJ대마도사를 무한 미로에서 1분 1초라도 더 머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무한 미로 밖에서 뭔가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시간을 끌려는 이유 역시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10대 길드들하고 손을 잡기 위한 협상, 그 협상을 위한 시간.’
지금 이 시점에서 무한 미로 밖에서 활동 중인 길드들은 극히 소수, 사실상 10대 길드 밖에 없었으니까.
더욱이 멀린의 이 제안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그 제안에 담긴 의도는 너무나도 뻔했고, 그 뻔한 의도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즉, 자신들의 의도를 아주 노골적으로, 상대방이 기분 나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의미.
BJ대마도사의 뒤통수가 아니라 이마를 향해 주먹을 날린 격이었다.
어쨌거나 박영준은 생각했다.
‘BJ대마도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BJ대마도사는 어떻게든 멀린의 제안을 빠져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걸 멀린이 모를 리 없지. 분명 무언가 또 다른 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딜을 준비했을 거다.’
허나, 빠져나갈 구석은 없다는 것을.
그게 이유였다.
“그런데 BJ대마도사 표정이 썩 안 좋은데? 굳은 거 같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가?”
지금 이 순간 표정이 좋지 못한 이들 중 한 명이 그 누구도 아닌 화면 속에 보이는 BJ대마도사인 이유.
5.
‘뭐지?’
멀린의 제안을 듣는 순간, 그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물음표였다.
‘이벤트NPC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가뜩이나 실망감 가득한 상황에서 상상도 못한 제안이 왔는데 그 상황이 바로 이해가 되면 그게 이상한 일.
이해가 되지 않으니 표정 역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이거 진짜야?’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상황을 이해하는 순간 미다스의 표정은 더 굳었다.
‘이야, 멀린님이 진짜 감사…… 표정 관리!’
가슴을 뚫고 차오르는 기쁨을 억누르기 위해서.
‘표정 관리해야지, 지금 라이브 방송 중이잖아!’
그도 그럴 것이 이 제안은 마냥 좋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여기서 너무 좋아하는 모습 보이면 없어 보여!’
일단 이미지 문제가 있었다.
여러모로 가벼운 모습을 보여선 좋을 게 없는 일.
‘더군다나 시청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게 미다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이벤트 NPC를 만나는 거였다면 이런 제안을 받을 필요조차 없었다.
라이브 방송을 끄고, 퀘스트를 받으러 가면 될 뿐.
달리 말하면 미다스에게 중요한 건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이었고,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 그런데 이런 식이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진행 너무 늦어지는 거 아니야?
- 난 BJ대마도사가 그냥 일직선으로 미로 돌파하는 거 보고 싶은데.
실제로 이 제안에 시청자들 몇몇은 멀린의 제안에 탐탁지 않아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제는 미다스가 그들을 설득할 차례.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게임은 어려워야 제맛이긴 하니까요. 그래도 본래 목적 놔두고 딴길 가는 건 제 올곧은 성격에 안 맞아서…… 해서 미다스는 한 번 튕겼다.
“그리고 솔직히 무한 미로에서 네임드 몬스터 잡는 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네요. 걔네들 정도는 저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주 강하게.
- 이야, BJ대마도사 살아있네!
- 그래, 이게 BJ대마도사지.
- 이 정도는 헬모드도 아니다, 이건가?
오로지 BJ대마도사만이 가능한 발언이었고, 그 발언에 시청자들은 기꺼이 열광했다.
그리고 그 열광에 미다스의 마음속에 초조함이 타올랐다.
‘어, 이거 너무 크게 튕겼나?’
그냥 튕기려고 했는데, 이러다가 멀린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진짜 튕겨져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 아닌가?
‘멀린님 제발, 제발 한 번만 더 찔러주십시오. 이 이상 튕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 초조함 속에서 멀린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순간.
[멀린 님이 10,31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현재 내가 파악한 곳이 6곳, 이곳 전부를 공략해주면 스킬 카드를 하나 주지.]
그 순간 멀린이 대답했다.
[멀린 님이 10,31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마법 스킬 이름은 용한증. 마력 부족에 이것보다 더 도움이 되는 스킬은 없을 거다.]
BJ대마도사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성은과도 같은 말.
그 말에 미다스는 고민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화끈하게.
“이거 뭐 멀린 님이 후원 채팅 날리시는 거 보니까 제가 거절하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하게 만드실 것 같은데, 그렇게 원하시는 거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죠.”
그리고 신속하게.
“하물며 제 애청자 중 한 분이신 멀린 님의 부탁이신데 마냥 거절하는 건 시청자를 사랑하는 BJ대마도사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아무렴요.”
‘용한증이 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튕길 순 없지.’
멀린이 주는 용한증 스킬이 어떤 스킬인지도 물어보지 않은 채 그의 제안에 콜을 외쳤다.
“그런 의미에서 시청자 여러분들도 원하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보세요.”
‘이제 이 이야기는 끝, 괜한 잡음도 만들지 말자.’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채팅창 분위기를 돌렸고, 그 의도대로 채팅창 분위기가 흘러갔다.
- 제 소원은 BJ대마도사님 대신 BJ럭키만 나오는 거예요!
- 제 소원은 골드랑 실버만 나오는 거요!
- 제 소원은 잭팟만 나오는 겁니다!
- 전 BJ대마도사님이 연애하는 걸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ㄴ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차라리 어비스 길드를 혼자서 박살 낸다는 게 더 현실성 있겠다.
ㄴ 선 넘네.
ㄴ 글쎄, BJ대마도사 연애보다 세계평화가 더 빠르다니까.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미다스가 말했다.
“그래서 멀린님, 첫 번째 의뢰는 뭡니까?”
6.
- 첫 번째 의뢰는 뭡니까?
BJ대마도사의 질문을 받는 순간 멀린은 대답에 앞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한 번 문질렀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로.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성질을 긁는군.”
그만큼 멀린의 심기는 좋지 않았다.
당장 BJ대마도사에게 금싸라기와 같은 정보를 주는 것부터 배 아픈 일이었다.
더욱이 그건 어비스 길드 소유의 정보도 아니었다.
탐험가 길드의 것이었고, 당연히 이것을 얻는 조건으로 어비스 길드는 적잖은 손해를 봐야 했다.
손해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협상 중이었다. 선조치 후협상을 하는 셈이었고, 그만큼 손해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클 가능성이 컸다.
심지어 이것으로도 모자라서 용한증 스킬 카드마저 얹어줬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세상에 공개한 적 없는 스킬 카드.
‘용한증 스킬 카드는 공개된 적 없는데, 질문은커녕 설명할 기회조차 안 주다니…….'
그런 걸 줬음에도 BJ대마도사는 그 스킬 카드에 대해서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
멀린이 보기엔 그 역시 BJ대마도사의 술수였다.
멀린 그리고 어비스 길드, 네놈들의 수작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진 않겠다, 라는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술수.
실제로 멀린은 용한증 스킬을 설명하면서 BJ대마도사에게 자신들이 큰 은혜를 베푸는 주는 식으로 포장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BJ대마도사는 용한증이란 스킬을 설명할 기회조차를 잘라내면서 단번에 그 의도를 차단했다.
‘날 그냥 애청자 취급하다니.’
BJ대마도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번 제안을 받아주는 이유를 멀린이 애청자라서 해주겠다, 라는 식으로 못마저 박았다.
‘어떤 일이든 그냥 당하질 않는군.’
멀린 입장에서는 이렇게 비참한 대우를 받는 것은 꿈에서라도 꾼 적 없었을 터.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당장 그냥 전쟁을 선포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멀린.”
그때 엠마가 나서서 멀린을 진정시켰다.
“계획대로 대답하세요.”
그 말에 멀린이 관자놀이에서 손을 땐 후에 스마트폰을 들고 채팅을 날렸다.
7.
[멀린 님이 10,313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유니콘, 일단 그것부터 잡아줘야겠어.]
그 채팅을 보는 순간 미다스는 말했다.
“의뢰 접수 완료, 아무래도 오늘 라이브 방송은 이것으로 마쳐야 할 것 같네요.”
라이브 방송을 종료하겠다고.
“이렇게 제 애청자이신 멀린 님께서 빅 이벤트 공짜로 주셨는데, 한가하게 농담 따먹기 방송을 할 수는 없잖아요? 조만간 모든 준비 마치고 라이브 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설명에 시청자들은 납득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더 끝내주는 걸 준비해오기 위해서 끝낸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는 법.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물론 미다스가 방송을 종료하는 진짜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라이브 방송이 종료됐습니다.]
“……됐다."
이제는 환호성을 참는 데에 한계가 왔다는 것.
“됐어! 다 됐어! 우와아아!”
그렇게 라이브 방송이 끝나는 순간 미다스는 간신히 참고 있던 환호성을 터뜨렸다.
왕!
그러한 주인의 환호성에 럭키가 기꺼이 맞장구를 쳐줬고, 미다스가 이내 럭키를 껴안으며 소리쳤다.
“그래 럭키야! 다 됐어! 완벽하게 됐다고!”
왕!
“완벽하게 다 됐어! 아주 그냥 라이브 방송복이 터졌어!”
아우우!
그 즐거운 미다스와 럭키의 모습을 보던 골드와 실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주인님, 무슨 일이지는 모르지만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쿵!
골드와 실버 역시 그 큰 몸을 이용해 미다스의 야단법석에 동참했고, 무한 미로에 때아닌 소란이 일어났다.
꾸우, 꾸우!
- 그래, 정말 이상한 주인이구나. 좀이 아니라 많이 미친 것 같다.
잭팟과 지팡이가 그 미친놈들이 저지르는 웃기지도 않는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다행히도 그 정신 나간 짓은 오래 가지 않았다.
“뭘 하는 건가요?”
NPC이리아, 여전히 남아있던 그녀가 미다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플레이어들의 이상 행동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NPC가 이렇게 나온 걸 보면 미다스의 행동이 NPC기준에서도 미친 짓이라는 의미.
“크흠.”
그제야 미다스가 헛기침 한 번과 함께 광기 어린 행동을 멈췄다.
“별거 아닙니다.”
그 후 짤막한 변명을 끝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멀린님.’
그러면서 이제는 각오를 다졌다.
‘이 은혜, 최선을 다해 갚겠습니다.’
자신에게 이토록 천금 같은 기회를 준 멀린의 은혜에 최선을 다해 보답했다는 각오.
“얘들아.”
그 각오를 마친 미다스가 이내 정면의 벽을 보며 말했다.
“부숴.”
그리고는 제 각오를 뱉었다.
“시간 낭비 없이 최단 시간 내에 의뢰를 마친다. 멀린님이 기다리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