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 126화. 솔킬 (2). >
4.
갓워즈에서 1티어급 길드들이 누리는 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리고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기가 그들의 어마어마한 수입의 이유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그게 그들의 약점이기도 했다.
여론의 흐름에 거스를 수 없다는 것.
- 보상까지 해준다고? 이건 콜해야 하는 거 아님?
ㄴ 아무렴, 이 정도면 물러날 만하지.
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몰락한 정령 군주 깨운 것도 BJ대마도사잖아? BJ대마도사가 잡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여론은 몰락한 정령 군주 레이드 중인 1티어급 길드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그냥 까놓고 말해서 지금 1티어급 길드들이 몰락한 정령 군주 잡는 것보다 BJ대마도사가 맞짱 뜨는 걸 훨씬 더 보고 싶다.
ㄴ 맞아, 이런 건 돈 내고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거잖아?
ㄴ 이번 한 번만 양보해주면 좋겠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잖아?
여러모로 BJ대마도사에게 몰락한 정령 군주 레이드에 대한 권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으니까.
자연스레 관계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징 스타 채널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정말 턴이 넘어오는 걸까?”
“그보다 넘어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정말 1대1 가는 거야?”
“1대1로 싸우면 승산은 있나?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사실상 몰락한 정령 군주 레이드를 포기했던 상황,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1대1 레이드를 한다고 하는데 긴장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쨌거나 직원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깜냥으로는 도무지 이해도, 해석도, 분석도 불가능했다.
결국 그들의 시선은 박영준을 향할 수밖에.
“사장님 어떻게 될 거 같나요?”
그 의문에 박영준이 대답했다.
“BJ대마도사에게 기회를 주겠지.”
“준다고요? 진짜요?”
“뭐, 다른 사람들 생각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애로우 길드의 마스터는 그러고 싶을 거야.”
“길드 마스터면 로빈이요? 아!”
그 대답에 직원들 모두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박영준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로빈의 희생이 거룩한 희생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굉장히 뜬금없이 죽은 감이 없진 않잖아? 몰락한 정령 군주에 데미지 딜링을 눈곱만큼도 한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보면 분위기 취해서 멋모르고 덤벼들다가 엿 된 케이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이어진 설명에 직원들의 표정이 더 진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이대로 다른 멤버들만으로 몰락한 정령 군주를 잡으면……내가 애로우 길드 마스터면 그리 기쁠 것 같진 않은데?”
그리고 그 설명이 끝났을 때 이제는 모두가 확신했다.
‘그래 맞아, 애로우 길드 마스터는 주자고 할 거야.’
‘이대로 끝나면 결국 애로우 길드만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셈이니까.’
다른 누구는 몰라도 최소한 애로우 길드만큼은 이 여론에 부응하자고 나오리란 것을.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애로우 길드가 가장 발언권이 높을 수밖에 없지.”
또한 이러니저러니 해도 현재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애로우 길드인 만큼 그들이 무언가 하자고 하면 거기다 대고 응, 꺼져, 라고 말이 나오기가 쉽지 않은 일.
“언제나 그렇지만 목소리 높은 사람 상대로 같이 목소리 높이면 그때부터는 싸움이지.”
결국 논쟁이 격화되면 사실상 지금 모인 팀은 팀워크가 흔들릴 터.
“더군다나 지금 몰락한 정령 군주 레이드에 참가한 1티어급 길드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을 치르던 이들이야. 서로 찌를 듯이 날카로운 칼날들을 모아다가 풀로 어설프게 붙인 관계가 견고할 것 같진 않은데?”
그리고 흔들리게 될 팀워크는 근본부터가 단단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몰락한 정령 군주는 많은 이들이 참가할수록 피해도 많을 수밖에 없는 타입이야.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하고 그중에는 로빈 같은 사례가 또 나올 수도 있지.”
“손해를 자처하는 사람은 없겠죠.”
“그래, 그럼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지겠지. 동시에 사람은 고민하게 되면 머릿속에 최악의 상황이 떠오르거든.”
“최악이면…… BJ대마도사가 레이드에 성공하는 건가요?”
부하 직원의 되물음에 박영준이 피식 웃으며 도리어 질문했다.
“BJ대마도사가 몰락한 정령 군주 솔킬에 실패할 것 같다고 판단되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까? 무조건 말리고 도전을 할까? 아니면 그냥 하게 놔둘까?”
“당연히 후자 아닐까요? 어차피 실패할 거잖아요?”
“그럼 반대로 성공할 것 같으면? 오히려 기회를 주기 싫겠지?”
“그렇겠죠.”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기회를 막고 본인들이 도전했다가 레이드에 실패를 하면? 보스 몬스터 정보는 정보대로 공개하고 HP는 나름 깎을 만큼 깎은 사태에서 실패한다면? 그래서 BJ대마도사에게 강제로 기회가 넘어간다면?”
그 순간 더 이상 반문은 없었다.
그리고 의문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모두가 납득했으니까.
동시에 모두의 온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역시 사장님,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시는 거죠?”
“와튼이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그러한 칭찬에 박영준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가격이 오른 주식을 분석하는 건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뭐 그게 대단하다고. 진짜 대단한 건 주식을 오르게 만드는 거지. 안 그래?”
“설마 BJ대마도사가 이 모든 걸 노리고 기획했다는 건가요?”
“그럼 그저 운 좋게 이런 상황이 나왔겠어?”
이어진 박영준의 물음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사장님, 극한의 정수를 기증한 4개 길드 대표로 애로우 길드 마스터가 연락을 했습니다.”
상황을 이해한 또 다른 이들이 연락을 했다.
“BJ대마도사에게 기회를 주겠답니다.”
그 말에 박영준이 웃으며 말했다.
“BJ대마도사가 기뻐하겠군.”
5.
“아, 연락이 왔네요. 제게 기회를 주겠답니다.”
드디어 무대 위에 주인공으로 올라서는 게 허락되는 순간.
- 와, 미친! 진짜 해줬어!
- 대단하다, 기어코 이걸 얻다니!
- 이게 되네!
그 사실에 시청자들 대부분은 모두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진짜 해주네?’
그리고 미다스 역시 놀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도를 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 이렇게 허락을 해줄 줄이야.
‘감사합니다.’
미다스 입장에서는 이러한 배려를 해준 상대편에 대해서 무한한 감사를 느낄 다름.
‘꼭 잡겠습니다. 잡아서 로빈님의 희생을 가치 있는 희생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 감사만큼 책임감 역시 느꼈다.
그리고 그 책임감 속에서 미다스는 더 이상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 따윈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여기까지 왔으면 어설프게 할 게 아니라 확실하게 해야지.’
이제는 무엇을 하든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서 오로지 전진만을 해야 했으니까.
- 그래서 이 제안 어떻게 하실 건가요?
- 받아들일 건가요?
그러한 미다스에게 시청자들인 이제 그의 선택을 물었다.
다들 BJ대마도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세상 일 모르는 법.
막상 무대를 비워주면 서먹서먹하게 주인공이 되기를 망설이는 경우는 의외로 많았다.
심지어 상대는 무지막지한 괴물 아닌가?
여기서 내뱉은 말을 무른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일.
물론 미다스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BJ대마도사 사전에 한 번 내뱉은 말을 무른다는 건 감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선언했고, 그 선언에 시청자들은 기꺼이 환호했다.
- 역시 BJ대마도사!
- 그래, 이래야 우리 형이지!
동시에 의문도 던졌다.
- 그런데 BJ대마도사 사전에 연인도 없지 않나?
ㄴ 소개팅도 없는 걸로 앎.
ㄴ 여자친구란 단어도 없지.
ㄴ 커플이란 단어도 이미 삭제된 걸로 압니다.
BJ대마도사의 사전에 없는 건 생각보다 많다고.
“에헤이, 남의 사전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습니까? 됐고, 상황에 집중해주십시오.”
그 사실에 대충 대답을 마친 미다스가 곧바로 소리쳤다.
“럭키, 골드, 실버!”
그 외침에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왕!
“예, 주인님!”
“분부만 내리십시오!”
숲을 울릴 만큼 우렁찬 대답.
“무대를 만들어라!”
그 대답을 향해 미다스가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에 셋이 바로 움직였다.
“잭팟, 너도 가서 도와!”
꾸우!
심지어 잭팟마저 돌려보내면서 사실상 자신의 곁에 그 어떤 아군도 두지 않았다.
그건 의지의 표현이었다.
- 진짜 작심하고 1대1 하려는 모양이네.
- 그래, 지금 상황에서 어설프게 럭키, 골드, 실버 쓰면서 1대1 이라고 하면 오히려 욕먹기 딱 좋지.
- 오늘 진짜 솔킬 보겠네. BJ대마도사가 이기든, 지든 간에.
내뱉은 말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 의지를 드러낸 미다스가 이제는 고개를 돌려 전장에서 빠르게 물러나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제 혼자가 되어가는 몰락한 정령 군주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주문을 외웠다.
“헬파이어.”
이윽고 캐스팅이 끝나는 순간 동시에 몰락한 정령 군주가 오롯한 혼자가 되는 순간 미다스가 손에 든 시커먼 헬파이어를 그대로 몰락한 정령 군주의 명치를 향해 던졌다.
퍼엉!
그 후에 들리는 아득한 폭음.
[지옥의 불길이 몰락한 정령 군주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선명한 알림음 속에서 미다스가 소리쳤다.
“와라!”
6.
히트 앤 런.
어쩐지 멋져 보이는 표현, 하지만 직접 봤을 때는 멋있다, 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실을 말하자면 결국 치고 도망치는 것뿐.
허겁지겁 공격을 한 후에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치는 꼴이 멋져 보이기는 쉽지 않았다.
BJ대마도사의 전투 역시 그러했다.
쿵!
가슴팍에 검은 불꽃으로 된 목도리를 두른 듯한 몰락 정령 군주.
퍼엉!
그러한 몰락한 정령 군주를 상대로 BJ대마도사는 파이어볼을 던지고, 도망치는 작업만을 반복했다.
말 그대로였다.
처음 헬파이어를 사용한 이후 BJ대마도사는 오로지 단 하나, 파이어볼만을 사용할 뿐 다른 마법을 쓰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 왜 파이어볼만 쓰는 거야? 설마 파이어볼만으로 잡겠다는 건가?
ㄴ 그게 아니라 파이어볼밖에 못 쓰는 거야.
ㄴ 왜?
ㄴ 이런 상황에서 다른 마법들을 쓰면 타이밍 박살나니까.
ㄴ 그리고 타이밍 박살나면 도망치는 게 힘들어지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더욱이 도망치는 꼴도 그다지 좋진 않았다.
- 그건 그런데, 튀는 게 쉽지 않네.
ㄴ 숲이잖아, 그냥 뛰는 것도 쉽지 않지.
ㄴ 곳곳에 숨어있는 정령수들이나 골렘들도 덤벼들고.
도망쳐야 하는 장소는 숲, 그것도 그냥 숲이 아니라 돌로 된 나무, 얼음으로 된 나무 그리고 불타오르는 나무가 가득한 숲이었다.
말이 숲이지 그냥 장애물 경기장이나 다를 바 없는 셈.
물론 다들 알았다.
- 그래도 대단한 거지. 한 번도 거리를 안 좁혔잖아?
ㄴ 던진 것도 파이어볼뿐이지만 다 맞음.
ㄴ 명중률은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거리도 최소 200미터 이상이잖아?
이렇게 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 이런 건 슈퍼 솔로 BJ대마도사만이 할 수 있는 거야.
ㄴ 아무렴, 이런 솔로 플레이는 BJ대마도사가 솔로의 제왕이라는 증거지.
갓워즈에 존재하는 수억 명의 플레이어 중 오로지 BJ대마도사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 그래도 멋지진 않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저 그런 모양새가 멋져질 수는 없는 노릇.
그때였다.
- 어? BJ대마도사가 그냥 뛴다!
그래도 나름 치고받던 전투를 하던 BJ대마도사가 이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추한 모습.
그러나 그 사실을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 광역 마법이다!
몰락한 정령 군주의 마법, 쇼크 필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뿐이었으니까.
꽈르릉!
그렇게 대지가 쇼크 필드에 의해 다시 한 번 천둥소리를 내며 뒤집혔다.
“휴우.”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그 속에서 다행히도 범위 밖으로 이동한 미다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감탄이 나와 마땅한 모습.
- 진짜 피했네!
- 대단하다, 대단해.
실제로 모두가 감탄을 내뱉었다.
허나, 그 감탄은 이제까지 BJ대마도사가 보여준 퍼포먼스에 대한 감탄보다 덜했다.
그 이유.
“다들 재미없죠?”
미다스가 직접 말했다.
“이렇게 치고 도망치기만 하는 거 보는 거 지루하죠?”
그러한 미다스의 말에 시청자들은 별 말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 뭐 어쩌겠어, 몬스터 디자인이 저런 걸.
- 우리는 BJ대마도사가 솔로인 것만 보면 돼. 그럼 배가 불러.
- BJ대마도사, 뭐가 되든 좋으니 솔로 길만 걷자!
해서 BJ대마도사 팬들은 기꺼이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에이, 결과가 좋아도 과정이 노잼이면 의미가 없죠. 여러분 BJ대마도사 사전에 노잼은 없습니다.”
그러나 미다스는 도리어 그 응원과 격려를 거부했다.
그 순간이었다.
아우우우우!
고요해진 전장으로 럭키의 하울링이 울려 퍼졌고, 그 소식에 미다스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우리 귀여운 럭키와 골드 그리고 실버가 무대를 다 만든 모양이군요.”
그와 동시에 미다스가 턱짓을 하자, 그제야 비로소 카메라가 장면을 바꿔주었다
- 어? 뭐야 이거?
- 길이 뚫렸네?
숲 위로 생긴 드넓은 길이.
- 엄청 큰데? 비행기도 다니겠어!
- 거리도 꽤 되는 듯?
그 길은 활주로와 비교해도 무방할 정도로 넓었고, 또한 길었다.
- 설마?
그 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역시 무대는 깔끔해야죠. 그럼 트랙에서 어디 한 번 더 화끈하게 싸워봅시다.”
그리고 미다스는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바를 실현했다.
그가 곧바로 새로이 만들어진 길, 그 나무와 돌덩이가 깔끔하게 치워진 곳에 올랐다.
쿵!
그리고 미다스를 따라 몰락한 정령 군주 역시 그 길 위에 올랐다.
그러한 그 둘 사이에 이제 더 이상 무언가 장애물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 따위는 없었다.
미다스 입장에서는 훨씬 여유로운 무대.
“리볼버.”
그 무대 위에서 미다스가 드디어 꺼냈다.
- 리볼버 나왔다!
- 제대로 딜링하려고 한다!
자신이 꺼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트라이던트 앤 제우스의 번개 조각.”
제우스의 번개 조각!
“애드원."
그것을 하나도 아닌 도합 세 개를 준비했다.
그 사실에 지루함을 느끼던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뜨겁다 못해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 드디어 나온다!
- 저거 두 방에 돌의 수호자 바로 뒈졌다면서?
- 이번에는 2개도 아니고 3개임!
그 기대감 속에서 몰락한 정령 군주가 그대로 미다스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쿵, 쿵!
그러한 돌진에 미다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활주로와 같은 확 트인 길을 가볍게.
전력으로.
심지어 미다스의 이동속도가 빠른 탓에 미다스가 달리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몰락한 정령 군주를 여유 있게 바라볼 정도였다.
“후후, 느리군.”
이어진 발언에 시청자들 역시 열광했다.
- 크크, 드디어 다크 솔로 마스터다운 멘트가 나오는군.
- 몰락한 정령 군주, 느리구나. 내 꽁무니를 쫓는 것조차.
모두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로 채팅창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활주로에도 끝이 있었다.
허나, 문제는 없었다.
그 끝에 도달하는 순간 그리고 그 끝까지 몰락한 정령 군주가 다가오는 순간 미다스는 쓰면 될 뿐이었으니까.
“블링크.”
순간 이동 마법을.
더욱이 미다스의 순간 이동 마법은 그냥 마법이 아니었다.
- 블링크? 그럼?
- 어그로 초기화!
어그로를 초기화하는 능력을 가진 마법이었지.
쿵!
그렇게 미다스에 대한 어그로를 잃은 몰락한 정령 군주가 등을 돌리지도 않은 채 잠시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새로운 적을 찾기 위해 주변으로 감각을 확장했다.
그사이 미다스는 거리를 벌렸다.
100미터를 넘어, 200미터 그리고 300미터를 넘어 400미터까지!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몰락한 정령 군주가 등을 돌리며 미다스를 바라봤다.
쿵!
이제 미다스를 적으로 파악한 모양.
미다스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덕분에 정면이 보이는군.’
그렇게 몸을 돌려준 덕분에 헬파이어의 효과가 유효한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으니까.
‘뭐, 계산한 거지만.’
물론 그마저도 미다스가 계산한 바였다.
[캐스팅 완료했습니다.]
마법 준비가 끝날 때에 맞춰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당연히 그다음 행동으로 나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용맥 효과가 적용됩니다.]
그가 길 위에 놓인 용맥, 그 위에 올라서는 순간 자세를 잡고 하나 남아있던 파이어볼을 그대로 던졌다.
퍼엉!
그 검은색 파이어볼이 쏜살처럼 날아가 그대로 몰락한 정령 군주의 명치에 닿았다.
그러자 황금빛 과녁 위로 붉은 원이 생겼다.
그것을 본 미다스가 이번에는 새로 잡힌 얼음창을 다시 한 번 더 던졌다.
트라이던트!
그 기나긴 창이 마치 섬광처럼 빠르게 허공을 찢어 가르며 그대로 몰락한 정령 군주의 가슴팍에 닿았다.
[몰락한 정령 군주가 얼어붙습니다.]
그 공격에 몰락한 정령 군주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물론 그 부자유는 길지 않았다.
길어야 3초 남짓.
허나, 미다스 입장에서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콰직!
주어진 트라이던트 하나를 더 던지는 건 물론, 새로운 번개 조각를 손에 드는 데에는.
파지직!
이윽고 미다스의 비어버린 손에 뇌전의 줄기가 잡히는 순간 시청자들은 소리쳤다.
- 저게 제우스의 번개 조각이구나!
- 보기만 해도 그냥 딜링이 끝장날 것 같네!
번개를 던진다, 표현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듯한 일.
그러한 일을 미다스는 그대로 현실에서 실현했다.
미다스가 자세를 잡고 손에 잡힌 제우스의 번개 조각을 몰락한 정령 군주를 향해 던졌다.
그렇게 던진 번개 조각은 섬광처럼, 정말 눈에 볼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던졌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단숨에 몰락한 정령 군주의 몸에 닿았다.
- 뭐야? 던진 거야? 안 보였는데?
실제로 시청자들은 던졌는지도 모를 정도.
꽈르르릉!
- 어어!
던진 후에 뒤늦게 들리는 천둥소리가 정말로 번개 조각을 던졌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 미쳤네, 보이진 않고 소리만 들리다니!
- 이걸 어떻게 피해?
꽈르르릉!
모두가 그 사실에 감탄하는 사이, 다시 한 번 더 천둥소리가 시청자들의 스피커를 두드렸다.
- 그래, 이거지! 이런 걸 원했어!
- BJ대마도사, 솔킬 가즈아!
- 아직도 BJ대마도사빠 아닌 흑우들 없제?
그 사실에 시청자들이 이제는 광기 어린 환호성을 내뱉었고, 미다스는 다시 한 번 더 제우스의 번개 조각을 던졌다.
[초지일관이 발동했습니다.]
이제는 다섯 개의 붉은 원이 된 과녁, 그 위를 향해서.
번쩍!
그렇게 던진 제우스의 번개 조각이 몰락한 정령 군주에 닿는 순간, 미다스는 볼 수 있었다.
단숨에 몰락한 정령 군주의 HP의 16퍼센트가 그대로 삭제되어버리는 광경을.
‘딜량 미쳤네.’
본인이 해냈음에도 어이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파괴력!
그러나 그 사실에 미다스가 감탄할 여유는 없었다.
이제는 48퍼센트가 된 몰락한 정령 군주가 드디어 처음으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화르르르!
몰락한 정령 군주, 그가 두른 불꽃 망토와 손에 든 뇌전의 창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꾸르르르!
동시에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지금 이 땅 위에 올라선 모든 이들에게 들렸다.
[몰락한 정령 군주가 정령 폭주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페이즈가 발동했음을 알리는 알림.
그 알림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 흩뿌려진 모든 존재들, 정령수와 골렘들, 트롤은 물론 수호자들까지!
[모든 정령적 존재들의 공격력이 50퍼센트 상승합니다.]
[모든 정령적 존재들의 공격 속도가 75퍼센트 상승합니다.]
[모든 정령적 존재들의 이동 속도가 100퍼센트 상승합니다.]
그 모든 존재들에게 말도 안 되는 버프가 걸렸다.
크어어어!
그리고 그러한 버프를 품은 그 모든 존재들이 몰락한 정령 군주를 지키기 위해, 그 주변에 있는 적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 군주를 지키기 위한 폭주를 시작했다.
- 미친, BJ대마도사한테 다 몰려오잖아!
- 큰일났다! 사방에서 몰려온다고!
- 아니, 게임 좀 너무하네! 이런 페이즈는 사기잖아, 사기!
그 사실에 시청자들이 기겁했다.
반대로 미다스는 여유가 넘쳤다.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떼로 몰려오네.’
오히려 반대, 미다스의 눈에는 이곳으로 몰려오는 천 단위의 몬스터 무리가 누구보다 잘 보였다.
‘역시 정령 폭주 스킬은 이런 식이었군.’
그럼에도 긴장하지 않은 건 이미 일찌감치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당연히 예상한 만큼 그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해두었다.
- 형! 위험해! 도망쳐!
- 블링크! 블링크 써야지! 아차, 블링크 썼구나!
이윽고 정령 군단이 자신의 지척까지 왔을 때, 미다스가 준비해둔 대비책을 꺼내 들었다.
“용의 힘.”
그 순간 미다스의 몸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아, 맞다! BJ대마도사는 나는 솔로였지!
그제야 비로소 미다스가 준비한 대비책이 무엇인지 시청자들이 깨달았다.
- 그래, 날아서 도망치면 되네.
그런 시청자들에게 미다스는 말해줬다.
“사역마 플레임 드래곤.”
- 어?
- 사역마한테 플레임 드래곤을 캐스팅해뒀어?
자신이 준비한 게 그저 단순히 도망치는 게 아님을.
“아, 이번에는 까먹지 않고 준비했습니다. 사역마 인페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