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 125화. 몰락한 정령 군주 (6). >
17.
대부분의 RPG장르의 게임에서 사냥 방식은 탱커가 탱킹을 하고 딜러가 딜을 하는 방식이다.
갓워즈라고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30미터의 신장에 온몸이 불 혹은 얼음이나 돌, 번개로 된 거인을 상대하는 경우.
이 경우에는 사실상 탱커가 사냥감을 막아선다는 개념은 성립될 수가 없었다.
히트 앤 런, 공격하면서 움직이는 수밖에.
몰락한 자의 수호자를 공략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다들 빨리 움직여!”
“딜링 멈추지 마! 움직일 땐 움직이더라도 파이어볼 하나라도 더 던지란 말이야!”
원거리 딜러들의 역할은 시시각각 움직이면서 저 거대한 존재를 향해 공격을 했다.
“오른쪽으로 정령수 무리 온다!”
“왼쪽은 아이스 트롤이다!”
“탱커들이 아이스 트롤 막고, 근접 딜러들이 정령수를 처리해!”
그사이 접근하는 부하 몬스터들, 그것을 처리하는 게 탱커와 근거리 딜러의 역할이었다.
쉽게 정리하면 추격전이었다.
물론 추격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추격전은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수준이 있는 법.
그리고 그 수준이 클래스를 만드는 법.
지금 현재 몰락한 자의 수호자들을 상대하는 이들은 그 클래스를 기준으로 최상위에 도달한 자였다.
실력이 남다른 건 당연지사.
그들은 그 이상, 스타일도 남달랐다.
“1진 공격!”
웨이브 길드, 그들의 방식은 표현 그대로 파도였다.
“2진 대기! 3진 준비!”
100명의 플레이어를 5개 조로 나누고는 파도처럼 몰아치고는 뒤로 빠지는 전술을 썼다.
- 웨이브 길드 방식은 진짜 눈 둘 곳이 없네.
ㄴ 조직적인 움직임에는 도가 튼 곳이니까. 개미 같지.
ㄴ 그에 비하면 워리어 길드는 단순해서 좋다니까.
워리어 길드는 정반대였다.
“수호자는 무시하고 잔챙이들부터 전부 쓸어버린다!”
전사, 그 단어답게 그들은 탱커 팀이 수호자의 어그로를 끄는 사이 나머지 것들을 빠르게 정리하는 방식을 썼다.
“자, 우리는 간단하게 가자고.”
애로우 길드의 방식도 단순한 편이었다.
물론 방식 자체는 워리어 길드와 전혀 달랐다.
“딜러들, 다른 건 무시하고 수호자만 공격해.”
애로우, 화살이란 표현처럼 강력한 원거리 딜러를 앞세운 그들은 수호자만을 노렸다.
물론 그저 스타일만 그런 게 아니었다.
- 와, 속보 봐.
- 딜 로스가 하나도 없네. 전부 맞잖아!
- 명중률도 명중률인데 탱커들도 타격 거의 없음!
전술만큼 중요한 건 그 전술을 수행할 능력이었으니까.
물론 그런 전술조차 없는 길드도 있었다.
네버다이 길드, 랭커급 힐러를 다수 보유한 그들의 방식은 간단했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다. 죽을 수 있다면 말이야.”
막강한 힐러들을 앞세워서 극단적인 소모전을 치르는 것.
보통 길드라면 자살행위였으나 네버다이 길드의 이름은 그것을 매우 강력한 전술로 바꾸어주었다.
- 네버다이 길드 수준이랑 불사자 길드 수준이랑 이제는 거의 차이 없는 듯?
ㄴ 솔직히 거의 다 따라잡았지.
ㄴ 불사자 길드에서 똘똘이랑 라포 빼면 네버다이 길드가 밀릴 건 없지.
갓워즈에서 불사자 길드가 보여준 방식이었다.
- 여하튼 대단하네. 다들 방식은 전혀 다른데도 완벽하게 수호자들을 공략하네.
어쨌거나 그렇게 네 팀은 네 수호자들을 상대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고 있었다.
- 처음 수호자 네 마리 나왔다고 했을 때는 개판되는 줄 알았는데 이거 쉽게 가겠는데?
전세를 유리하게 가지고 왔다.
‘완벽해.’
자연스레 전투를 치르는 당사자들의 마음속에서는 자신감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몰락한 자의 수호자와 싸워서 이길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아니었다.
애초에 여기에 있는 길드들은 몰락한 자의 수호자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던 이들, 그것도 그냥 준비가 아니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준비하던 자들이었다.
심지어 그런 실력을 가진 길드들의 정예들이 모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레전더리 등급 아이템까지 추가 확보한 상태인데 몰락한 자의 수호자를 앞에 두고 계산기를 두드린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터.
‘이 페이스면 몰락한 정령 군주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
그런 그들이 가지는 자신감이란 다름 아니라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리란 사실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당연히 그 자신감은 대기 중인 별동대에게도 전달됐다.
그리고 동시에 상황도 전달됐다.
“네 팀이 수호자들을 몰락한 정령 군주로부터 떨어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수호자들과의 추격전 속에서 수호자와 그들을 따르는 다수의 병력을 유인하는데 성공했다는 상황이.
“루트가 확보됐다.”
몰락한 정령 군주로 향하는 가장 빠르고 길이 안전하게 확보됐다는 상황이.
그 순간 망설임은 없었다.
“포션 도핑하고 버프도 완료.”
준비도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오늘 우리가 전설이 된다.”
그저 행동만이 있을 뿐.
18.
치열하기 그지없는 전장.
- 뭔가 갑자기 움직이는데?
ㄴ 뭐가 움직이는데?
ㄴ 플레이어다! 수백 명이야!
그 전장으로 168명의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발을 맞추며 움직이는 광경은 숨기고자 해서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속보! 지금 움직이는 파티들, 길드 연합이야! 지금 싸우는 4개 팀 소속 길드 연합!
- 지금 라이브 방송 켰다!
그리고 본인들 역시 그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더 화려하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더불어 그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자신들의 존재감으로 BJ대마도사의 존재감을 지우는 것.
어쨌거나 그들의 등장은 곧바로 대기 중인 올스타팀 멤버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아무래도 저쪽이 우리에게 활약할 기회를 안 줄 것 같은데?”
그 사실을 보고 받은 소서가 곧장 고드를 찾아가 말을 건넸고, 그 말을 들은 고드가 고개를 돌려 골렘 위에서 쉴 새 없이 포션을 마시는 BJ대마도사를 바라보았다.
“흠.
그 상태로 고드는 고민을 시작했다.
‘BJ대마도사의 존재감을 없애는 게 저쪽의 목표인 것 같군.’
당장 저들의 목표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예상한 대로야.’
이미 고드는 사전에 나름의 정보망을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받은 상태였고, 그 정보를 토대로 지금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예상했기에 그에 대한 대응 카드들 역시 나름 몇 가지를 준비해둔 상태였다.
‘그럼 선택지는 둘 중 하나.’
그렇게 고드가 준비한 카드 중 지금 고를 수 있는 카드는 강제로 무대에 난입하거나 혹은 지금 저들이 무대에서 알아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 두 가지 정도뿐이었다.
‘우리쪽 입장에서는 저들이 이기는 것도 나쁘지 않단 말이야.’
그리고 현재 고드가 바라는 건 BJ대마도사가 오늘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채 라이브 방송을 종료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BJ대마도사의 명성에는 분명 흠이 생길 터.
반면 조연에 불과한 올스타팀은 받을 타격이 하나도 없었다.
영화가 망하면 욕은 주연 배우만 먹지, 조연 배우가 먹지는 않는 법 아닌가?
해서 고드는 소서에게 질문했다.
“소서, 당신이 보기엔 상황이 어때? 쟤네들이 보스 레이드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물음에 소서는 대답했다.
“60퍼센트 이상.”
“성공할 확률이?”
그 반문에 소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꽤 높네?”
“일단 수호자 네 마리를 붙잡는데 성공했어. 보스 몬스터와 단독으로 싸울 수 있는 기회이지. 여기에 하나 더, 지금 별동대로 움직인 부대 숫자가 150명을 넘는다고 해.”
말을 하던 소서가 전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몰락한 정령 군주를 상대로 탐색전을 마치면, 수호자의 어그로를 끌기 위한 최소한의 부대만 남기고 남은 전력들이 바로 보스전에 투입될 거야. 한 팀에서 30명씩만 빼도 120명, 그들이 포함되면 근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보스전 투입되는 거지.”
그 설명에 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60퍼센트라는 확률이 나오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황.
“BJ대마도사도 같은 판단을 내렸을 거야.”
소서가 내린 판단을 BJ대마도사 역시 똑같이 내렸을 가능성이 컸다.
“뭐, 더 정확할 수도 있지만. 그의 분석 능력과 판단 능력은 상식 밖 수준이니까.”
“그렇지.”
BJ대마도사가 가진 상황 분석 능력은 소서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부족할 리 없었으니까.
고드 역시 그걸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확신했다.
“BJ대마도사 성격상 이대로 그냥은 못 넘어갈 텐데……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있을 것 같아?”
분명 그의 심기가 좋진 않을 것이며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앞서 내뱉은 말이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힘들걸?”
문제는 BJ대마도사가 앞서서 지켜보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BJ대마도사가 제 스스로 내뱉은 말을 제 스스로 어길 리 만무.
그때였다.
골렘 위에 있던 BJ대마도사가 갑자기 크게 도약하더니 이내 바닥에 착지했다.
멋지게.
땅에 착지하자마자 양팔을 벌리면서.
“히어로 랜딩!”
웃기지 않는 대사까지 덧붙인 그가 어느 때보다 여유 넘치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들었다.
“시청자 여러분, 두 분하고 대화 좀 하겠습니다. 오프 더 레코드할 테니까 잠시 소리 안 나와도 양해 부탁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대화 중인 고드와 소서를 향해 다가왔다.
자연스레 둘은 긴장했다.
분명 앞서서 BJ대마도사가 어떻게 움직일 구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
‘BJ대마도사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남들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지.’
하지만 그런 식의 상식으로는 BJ대마도사의 행보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는 그런 플레이어였다.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길을 만드는 자.
그렇게 긴장한 둘 앞에서 미다스는 오히려 어느 때보다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네 팀이 제대로 준비하신 모양입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네요. 안 그래요?”
“예, 그렇죠.”
고드가 바로 맞장구를 쳐줬다.
“덕분에 오늘 정말 쉽게 퀘스트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기쁜 일이죠.”
그 순간 이어진 발언에 고드는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괜히 나서서 일을 틀어지기 보다는 이익만 챙기겠다, 이건가?’
아무래도 BJ대마도사가 무리보다는 안전을 택한 모양.
나쁠 건 없는 선택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BJ대마도사 입장에서는 그 어떤 출혈도 없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공략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저들의 도움 없이 올스타팀만으로 보스 레이드를 진행했다면 적잖게 고생했을 터였다.
‘아까운 포션만 날렸군.’
여러모로 BJ대마도사가 마신 포션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그래서 말인데 저쪽에 양해를 좀 구하고 수호자 한 마리를 양보 받고 싶은데, 될까요?”
“예?”
그 순간 나온 미다스의 말에 고드와 소서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상상치도 못한 말이었기에.
“이대로 포션 먹은 게 아까워서라도 수호자 한 마리는 제대로 잡아봐야죠. 안 그렇습니까?”
이어서 나온 설명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고드와 소서는 BJ대마도사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최악만 면하겠다, 이거군.’
꿩 대신 닭이라도 잡아야 배라도 채울 수 있는 법.
지금 상황에서는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동시에 섬뜩한 일이었다.
‘자존심을 죽이겠다, 이건가?’
‘진짜 대단하군.’
자신의 그토록 고고한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실리를 취하겠다는 것, 그런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BJ대마도사는 아직 제대로 상황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러한 판단을 내렸다.
결단력 역시 남다르다는 의미.
‘정말 무시무시한 인간이야.’
‘적으로 만나기에 최악의 플레이어군.’
그렇게 BJ대마도사에 대해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탄을 삼킨 고드와 소서, 그중 한 명인 고드가 말했다.
“일단 말은 해보겠습니다. 제가 하면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미다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제가 직접 하죠. 오디오 켜주세요.”
그 후에 미다스가 라이브 방송을 향해 소리쳤다.
“돌의 수호자 한 마리, 저한테 주십시오!”
19.
“돌의 수호자를 달라고?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 직접 그 말을 했다고?”
애로우 길드의 마스터 로빈, 그는 BJ대마도사의 요구를 듣는 순간 미소를 지었다.
‘백기를 들었군.’
그가 어떤 의도로 이런 제안을 했는지.
때문에 이 제안을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건 기회였다.
‘돌의 수호자를 BJ대마도사에게 던지고, 우리 세력이 보스전에 참전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다.’
단순히 화력만 놓고 보자면 현재 로빈이 이끄는 팀이 수호자를 상대하는 네 팀 중 가장 강력한 상태.
그런 로빈의 팀이 몰락한 정령 군주 레이드에 추가된다면 그보다 더 든든한 일은 없을 터.
즉, 로빈은 찬성이었다.
“다른 팀들 생각은 어때?”
남은 건 나머지들의 의견뿐.
그리고 그 나머지들 의견도 로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내 의견만 남았다고? 좋아.”
그렇기에 돌의 수호자 사냥에 대한 권리를 지닌 로빈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로빈은 그 권리를 기꺼이 썼다.
“다들 주목! 이 시간부로 돌의 수호자 레이드에 대한 권리를 BJ대마도사에게 양도한다!”
그가 망설임 없이 선택을 내렸다.
“우리는 이대로 몰락한 정령 군주를 잡으러 간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쿵!
쿵!
돌의 수호자가 있는 전장, 그곳으로 향해 격렬하기 그지없는 소리 두 개가 달려왔다.
“골드랑 실버다!”
두 드래곤이 돌의 정령수와 스톤 트롤, 스톤 골렘들을 무시하며 돌의 수호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광경에 로빈이 실소를 머금었다.
‘끝내주긴 끝내주는군.’
갓워즈에서 수호자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이렇게 어그로를 단숨에 끌 수 있는 플레이어는 BJ대마도사가 유일할 터.
BJ대마도사의 존재감이 새삼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다.’
그렇기에 도리어 로빈은 기분이 좋았다.
이러한 존재감 넘치는 배우를 깔아뭉개고 대신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테니까.
“BJ대마도사가 화끈하게 해줬으니, 우리도 화끈하게 가야지. 모두, 최단 거리로 몰락한 정령 군주 레이드팀에 합류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빈이 팀원들을 이끌고 전장을 가로 지르기 시작했다.
“여기야!”
합류 역시 금방 이루어졌다.
또한 이야기도 금방 이루어졌다.
“상황은 어때?”
“3분마다 정령 폭탄을 쓰는 것 말고는 특별할 건 없어.”
“공격력과 방어력은?”
“방어력은 모르겠지만, 근접 공격력은 장난 아니야. 탱커 한 명이 공격 세 번 받고 게임 오버했어.”
“공격 방식은?”
“번개로 된 창에 찔리면 관통이 되는데, 그 상태가 지속될수록 데미지가 들어오는 구조야. 제아무리 튼튼한 탱커라도 10초 버티기 힘들 거야.”
이미 앞서서 몰락한 정령 군주에 도달한 이들이 어느 정도의 정보를 모은 상태.
그리고 그들이 모은 정보가 의미하는바 역시 간단했다.
“그럼 원거리 딜러들이 활약할 때군.”
이제부터 로빈, 그와 그의 애로우 길드가 가장 끝내주는 활약을 하는 일만 남았다는 것.
이윽고 로빈이 바로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거리 잡아!”
그 외침에 곧바로 궁수들이 이리저리 탱커를 쫓아 움직이는 몰락한 정령 군주를 포위하듯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잡은 거리는 250미터.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었으나, 애로우 길드에 속한 궁수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호자에 비할 바는 못하지만 몰락한 정령 군주의 크기 역시 결코 작지 않았다.
“다들 거리 잡고!”
솔직히 빗맞으면 어떻게 하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는 없었다.
“1억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보는데 안전하게 몸통 같은 거 노리지 말고 다들 머리를 노려, 머리!”
그저 얼마나 한 곳에, 그들의 눈에 보이는 약점 포인트에 가까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만을 할 뿐.
“화살 장전!”
그렇게 애로우 길드의 모든 궁수들이 활이 이제는 부러질 듯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을 무렵.
로빈이 그들을 위해 효시를 쓸 무렵.
그 무렵이었다.
파직!
몰락한 정령 군주, 그가 쥐고 있던 번개의 창을 그대로 땅을 향해 내리꽂았다.
‘어?’
대지를 심판하듯.
꽈릉!
그러자 대지가 하늘마냥 천둥소리를 내더니 몰락한 정령 군주를 중심으로 반경 444미터, 그 내의 모든 땅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파지직!
그리고 그 들썩거리며 생긴 틈 사이로 샛노란 뇌전의 줄기들이 뱀처럼 솟구치며 그 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발과 다리를 휘감았다.
부르르!
휘감은 채로 뒤흔들었다.
“으어어어!”
그 순간 모든 플레이어들의 입에서는 비명이 떨렸고, 그들의 귓속으로는 알림이 들렸다.
[쇼크 필드가 발동했습니다.]
[2분 동안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2분!
그 아득한 숫자에 감전 마비 상태에 빠진 이들의 머릿속에는 경악이 떠올랐다.
‘2분이라니, 이게 말이 돼?’
‘이거 그냥 죽으라는 거잖아!’
이토록 치열한 전장에서 2분 동안 무방비 상태라는 건,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자신의 생사에 대해서 그 어떤 권한과 영향도 줄 수 없는 상태.
모든 생사여탈권은 몰락한 정령 군주의 손에 들린 상태.
쿵!
그러 상황에서 몰락한 정령 군주는 자신의 손에 쥔 그 생사여탈권을 거리낌 없이 썼다.
가장 지척에 있는 이들, 탱커들을 향해 손에 든 새로운 뇌전의 창을 찔렀다.
부르르!
그 창에 찔린 탱커들이 온몸을 떨었고, 약 10초 동안의 떨림 끝에 탱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마네킹 꼴을 한 채.
그것을 본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맙소사.’
탱커 하나를 잡는데 약 10초가 걸린다는 건, 주어진 2분 동안 12명이나 되는 탱커를 잡을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
그 정도면 사실상 탱커 라인이 붕괴하는 셈.
그런 상황에서도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서포터(33) : 분석 중입니다.
- 서포터(21) : 도움 요청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비공개 채팅방에 올라오는 서포터들의 무기력한 채팅을 보는 것뿐.
로빈도 마찬가지였다.
- 서포터(1) : 현재 상황 분석했습니다.
- 서포터(1) : 등장하고 10분째에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 서포터(2) : 현재 마비 상태에 빠진 인원은 197명입니다.
그것을 본 로빈이 이를 꽉 물었다.
‘미친!’
197명이라는 아득한 숫자가 당한 상황.
‘데미지도 적지 않아.’
심지어 조금 전 공격에 의한 데미지 역시 상당했다.
당장 로빈의 HP가 40퍼센트나 날아간 상태였다.
아이템을 비롯한 스펙이 동일 레벨 플레이어들 중에서 최정상급인 로빈이 입은 데미지가 그 정도인데 다른 동료들, 원거리 딜러들이나 힐러들은 HP가 최소 50퍼센트 이상 날아갔을 터.
‘이게 10분마다 발동하는 공격이면…… 다음에는 감전 상태로 끝나지 않아.’
더 지독한 건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점이었다.
‘잠깐, 10분? 마비는 2분이라고 했지?’
그 순간이었다.
로빈의 머릿속으로는 몰락한 정령 군주의 또 다른 능력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12분째에 정령 폭탄을 쓸 텐데?’
이 감전 상태가 끝나는 순간 몰락한 정령 군주가 말도 안 되는 선물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감전 상태가 풀리는 순간 모든 플레이어들은 미친 듯이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경고해야 해!’
그러나 그 사실을 로빈은 서포터들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감전 상태는 그를 침묵하게 했으니까.
그리고 서포터들 중에 그 사실을 눈치 채고 보고해주는 이 역시 없었다.
- 서포터(3) : 탱커 이즈라울 사망했습니다.
- 서포터(3) : 힐러 스만 사망했습니다.
- 서포터(9) : 탱커 우초 사망했습니다.
그저 사망자들만이 보고될 뿐.
- 서포터(1) : 30초 남았습니다.
이윽고 1분 30초, 그 영겁 같던 시간이 지나갔음을 알리는 보고 앞에서 로빈은 절망했다.
‘아직도 눈치 못 채다니!’
그때였다.
- 서포터(3) : 긴급! 모두에게 알립니다!
- 서포터(3) : 긴급! 모두에게 알립니다!
- 서포터(3) : 긴급! 모두에게 알립니다!
서포터 한 명이 다급하게 채팅을 3번 반복하며 올렸다.
표현 그대로 긴급 상황이라는 의미.
그제야 비로소 로빈은 반색했다.
‘눈치 챘구나!’
서포터들이 조금 후 있을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주리란 것을.
‘그래, 최소한 정령 폭탄에 따른 피해는 최소화해야지.’
천만다행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
그 순간 새로운 채팅이 올라왔다.
- 서포터(3) : BJ대마도사가 돌의 수호자를 처치했습니다!
‘뭐?’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내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