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 123화. 바르망의 유산 (2). >
3.
[크로커스를 처치했습니다.]
“후우."
알림을 듣는 순간 미다스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이 6일 차.’
현상금 레이스가 끝난 지 6일째, 그동안 미다스가 한 것은 검은 사막에서 쉼 없이 크로커스를 사냥하는 것이었다.
왕!
“주인님, 저기 또 한 무리가 옵니다!”
무척이나 지겨운 나날이었다.
“그래, 아주 잘 보이네.”
물론 의미가 없는 나날이란 건 아니었다.
‘몸에 다들 과녁을 세 개나 가진 덕분에 더 잘 보인다.’
최근 6일 동안의 전투를 통해 새로 얻은 드래곤즈 아이즈 스킬 활용법을 제대로 연습할 수 있었으니까.
그저 단순히 맞추는 걸 말함이 아니었다.
맞추는 능력은 이미 갓워즈에서도 최고 수준에 이른 미다스 아니었던가?
‘이제 어느 정도 각도 잡는 법도 익숙해졌고.’
연습이라 함은 다양한 곳에서 실시간으로 공격할 수 있는 동선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 연습의 결과 역시 나쁘지 않았다.
‘공격 루트가 늘어나는 만큼 리스크는 줄어들고, 반대로 데미지 딜량은 늘었어.’
드래곤즈 아이 효과로 등장하는 과녁은 하나.
때문에 그 과녁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딜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몬스터가 앞을 보든, 뒤를 보든, 옆을 보든 미다스 입장에서는 언제든 최고의 딜량을 기대할 수 있게 됐으니까.
[크로커스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6일 동안 쉴 새 없이 잡은 크로커스는 미다스의 경험치가 되어주었다.
‘이걸로 338레벨.’
하루에 1레벨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레벨업을 했다.
검은 사막에서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이 들었다면 미쳤다는 소리가 나올 만한 페이스.
솔직히 미다스 본인도 스스로 해내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 대단하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좀 더 노력해라.
‘이 페이스면 내일 중으로 퀘스트는 완료할 수 있겠어.’
자연스레 그 아득하던 검의 과제도 어느덧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여러모로 분명 좋은 일들만 가득한 상황.
“에휴.”
그런 상황임에도 미다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문제는 시청자분들 반응인데…….'
표정을 구기는 이유는 다름 아닌 BJ대마도사의 팬들이 지금 BJ대마도사의 행보에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
당연한 일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퀘스트 이야기 꺼내지 말걸 그랬어.’
당장 현상금 레이스가 끝났을 때 미다스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음 퀘스트를 하겠다고 말했고,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게 솟아올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BJ대마도사의 다음 라이브 방송을 두고 온갖 추측으로 도배될 정도.
그러한 추측들의 수준도 대단했다.
BJ대마도사가 용을 타고 다음 사냥터인 극한 지대를 휩쓸 것이다, BJ대마도사가 드디어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쓴다, 물리 마법만으로 극한 지대를 정복을 할 것이다, 드디어 연애 발표를 할 것이다…… 등.
‘괜히 꺼내서 기대감만 높아지고…….'
그렇게 기대감이 말도 안 되게 폭주하는 상황에서 일주일 가까이 검은 사막에서 크로커스만을 잡았다?
기대감을 배신당한 기분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
‘지금 욕 엄청나던데.’
이미 갓워즈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미다스의 행보에 대한 안 좋은 소리가 가득했다.
물론 욕을 먹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기대감을 심어준 건 미다스 자신이고, 결국 그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한 것도 자신이니까.
문제는 그 욕이 미다스 본인에게 오는 게 아니라 라이징 스타 채널에 간다는 점이었다.
그게 미다스가 걱정하는 바였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 자신을 누구보다 믿어주는 그가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으리란 것.
4.
“사장님.”
“왜?"
“BJ대마도사에게서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나요?”
직원의 질문에 박영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응, 없어.”
그 대답을 들은 직원의 표정이 구겨졌고, 사무실의 분위기 역시 다시 한 번 가라앉았다.
개중 몇몇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 대체 언제까지 욕을 먹어야 하는 거지?’
‘요즘 우리 마누라도 이게 뭐하는 거냐고, 욕하던데.’
BJ대마도사의 행보에 배신감을 느낀 시청자와 팬들이 보낸 비난 여론 탓에 나오는 한숨이었다.
그만큼 BJ대마도사에 대한 작금의 여론은 좋지 못했다.
비단 일반 여론만 그런 게 아니었다.
“또 BJ대마도사 비난 영상 올라왔네.”
“요즘 가십거리 방송 하는 애들은 죄다 BJ대마도사 물어뜯네.”
“비난 기사는 너무 많아서 지겨울 정도야.”
갓워즈에서 제법 인지도 있는 언론이나 워즈튜브 채널들에서도 BJ대마도사를 열심히 물어뜯었다.
BJ대마도사의 유명세가 모두가 달려들 만큼 거대해진 탓이었다.
“진짜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이미 위험하지. 어지간한 걸로는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진짜 거짓으로 솔로 탈출, 연애 발표라도 해야 하나?”
그런 BJ대마도사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역할도 가진 라이징 스타 채널 입장에서는 심정이 편할 리 없었다.
반면 박영준의 심정은 달랐다.
‘정말 현명하다니까.’
그는 오히려 지금 BJ대마도사의 행보에 불만과 우려를 표하기는커녕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올스타팀도 시비를 못 걸지.’
현상금 레이스 종료 직후 박영준은 올스타팀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고 받았다.
고드가 리더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으나 곧바로 이어진 무기명 투표에서 다시 리더가 됐다는 것.
그리고 그의 재선출을 기점으로 올스타팀이 그저 7개 길드가 가볍게 손만 잡은 단체에서 찐한 포옹을 하는 단체가 됐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그 올스타팀이 BJ대마도사를 상대로 명예 회복을 하기 위해 독기를 품었다는 것까지.
그런 급격한 변화는 오로지 단 하나, BJ대마도사를 상대로 명예 회복을 위한 결전을 치르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올스타팀은 구실만 있으면 당장 BJ대마도사를 상대로 시비를 걸 작정이었다.
‘명예 회복을 하려면 모두가 보는 무대에서 싸워야지.’
그러나 BJ대마도사가 검은 사막에서 크로커스만 사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프로가 길거리에서 싸울 순 없는 법이니까.’
검은 사막에서 크로커스를 사냥하는 것 따위를 가지고 BJ대마도사와 백날 싸워봤자 명예 회복은 조금도 되지 않았으니까.
즉, BJ대마도사가 크로커스를 사냥하는 동안 올스타팀은 그에게 어떤 접근도 불가능했다.
‘시간을 버는 거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BJ대마도사는 다음 사냥터인 극한 지대에서 올스타팀을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을 터.
그런 큰 그림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비난 여론에 대한 우려나 걱정은 없었다.
‘과연 뭘 준비하시느라 시간을 버는 걸까?’
도리어 BJ대마도사가 이토록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샘솟을 뿐.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부러 올스타팀을 도발한 만큼, 그들 상대로 확실히 이길 뭔가가 있으시다는 건데…….'
박영준은 BJ대마도사가 저번 라이브 방송 마지막에 내뱉은 멘트가 지금의 이 큰 그림을 위한 노림수라고 믿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거기서 그런 멘트를 그냥 던졌을 리 만무.
‘분명한 건 다음에 연락이 오는 순간이 올스타팀이 끝장이 나는 순간일 것이다.’
즉, BJ대마도사는 올스타팀과의 싸움을 지지부진, 먼 곳까지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아무렴, 이제 조만간 1티어급 길드가 아니라 10대 길드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올스타팀 같은 큼지막한 혹을 달고 있을 순 없지.’
이제 조만간 더 거대한 전쟁이 있을 테니까.
‘준비는 끝났다.’
그에 맞춰 박영준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그래, 이런 게임을 원했어. 이런 거대한 게임을. 이러니까 도박에 중독된다니까.’
때문에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희열을 느낄 지경.
“자자, 다들 힘든 거 알고 있어.”
물론 박영준은 이러한 생각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참고 버티자고.”
그저 본인도 직원들처럼 표정을 찌푸린 채 직원들을 위로할 뿐.
그 순간 박영준에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왔구나.’
5.
[크로커스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 알림이 들리는 순간.
- 수고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검이 미다스의 레벨업을 가장 먼저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미다스는 그 축하를 받지 않았다.
“스탯창.”
잽싸게 스탯창을 활성화한 미다스가 스탯창을 확인했다.
[미다스]
- 레벨 : 339
- 성좌 : 워드래곤
- 직업 : 대마도사
- 능력 : 근력(5+3291)/체력(5+3321)/지력(1595+5211)/마력(344+4712)
- 여분 포인트 : 4
그리고 이내 능력치 포인트 배분을 마치고는 검에게 말했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죠. 뭘 하면 됩니까?”
‘여기서 시간 낭비할 순 없어.’
속전속결.
-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그 자세, 마음에 들어.
미다스의 그 의지에 검은 기꺼이 응했다.
- 좋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르망의 가르침을 하사하겠다. 지금 거듭된 전투를 통해 네 무기에는 네가 모르는 강력한 힘이 축적되었다. 남은 것은 그 힘을 올바르게 개방해야 하는 것 뿐.
“그 방법이 뭡니까?”
- 이 사막 너머에 무엇이 있는 줄 아느냐?
그 질문에 미다스가 바로 대답했다.
“극한 지대 아닙니까?”
- 그래, 극한 지대지.
극한지대.
검은 사막 다음에 등장하는 사냥터로 플레이어들이 389레벨까지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별명은 극한 지옥이고.’
더불어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사냥터이기도 했다.
‘사냥터 속성이 24시간 단위로 바뀌니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극한 지대의 특징이 24시간, 하루 단위로 바뀐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극한 지대의 숲은 때로는 불타오르고, 때로는 얼어붙으며, 암석처럼 단단해지거나 혹은 안개가 끼거나, 태풍이 몰아치고는 했다.
그리고 등장하는 몬스터들인 극한 지대의 정령들은 그 숲의 속성에 따라 변화했다.
극한 지옥이란 별명이 붙은 건 그 때문이었다.
공격이든 방어이든 특정 속성에 특화된 플레이어들에게는 최악의 경우에는 그냥 하루를 통째로 날려야 했으니까.
더불어 지금 현재 극한 지대에서 사냥하는 플레이어들 중에는 한 속성에 특화된 경우가 많았다.
‘기어코 그곳을 가는구나.’
그런 이유로 극한 지대에서는 레벨업 속도가 다른 사냥터에 비해 매우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 통곡의 벽에.’
그래서 적잖은 플레이어들이 극한 지대에서 발이 묶인 채 통곡을 내지르고는 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무대였다.
- 하루하루 환경이 달라지는 곳. 그곳에서 이제부터 너는 네 무기의 잠재 능력을 깨울 정령의 심장 두 종류를 모아야 한다.
“예? 뭐라고요?”
- 그곳에서 이제부터 얼어붙은 심장, 타오르는 심장, 두 개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주어진 퀘스트 역시 듣기만 해도 쉽지 않은 게 느껴졌다.
‘이거 또 장난 아닐 것 같은데?’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하긴, 무기 업그레이드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지금 자신의 무기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켜야 하는 기회.
그것도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그 대단하신 드래곤 슬레이어 무기를 만드는 기회 아닌가?
쉽다면 그게 이상한 일.
‘아, 미치겠네.’
그러나 미다스 입장에서는 달랐다.
분명 그가 극한 지대로 이동하게 되면 무수히 많은 시청자들이 다시 기대감을 품을 터.
‘이거 극한 지대 가서도 그냥 퀘스트만 했다가는 시청자들 불만이 진짜 폭발할 텐데?’
그런데 그곳에서도 이렇다 할 이벤트 없이, 특별한 무언가 없이 일반 몬스터 사냥만 무식하게 한다면?
시청자들 입장에서 느끼는 배신감은 곱절이 될 터.
자연스레 라이징 스타 채널이 느끼는 부담감 역시 곱절이 될 터였다.
‘억지로라도 이벤트 해야 하나?’
이쯤 되면 퀘스트를 하러 가기 전에 다른 길드나 혹은 플레이어와 콜라보 이벤트 매치라도 한 번 해야 할 판.
그 대목에서 미다스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이제 더 이상 그냥 하는 건 불가능해. 라이징 스타 채널에 사정 설명하고 이벤트 매치 한 번 해야겠어.’
퀘스트를 진행하기 전에 뭐든 한 번 해서 팬분들의 달구어진 분노를 조금이라도 식히자고.
‘럭키랑 내가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럭키를 한 번 슬쩍 바라보며 머릿속을 정리한 미다스가 이내 풀 죽은 표정으로 검을 향해 말했다.
“저기, 그 두 심장을 찾는 거 어렵겠죠? 뭔가 쉬운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겠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은 채.
- 아무렴. 두 심장은 각각 극한 지대의 신전에 숨겨져 있다.
“예?”
그때 이어진 검의 말에 미다스의 표정이 달라졌다.
“신전이요?”
- 그렇다.
“그러니까 신전만 찾으면 되는 거다, 이거죠?”
- 그래, 신전만 찾으면 된다. 아무도 모르는 곳, 찾는데 그 어떤 단서조차 없겠지만.
“아, 그래요?”
그 순간 미다스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몬스터 사냥도 아니고, 신전 찾는 거면 개꿀이지.’
극한 지대에 돌입하자마자 자신을 반겨둘 두 개의 빛기둥이 보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이야, 그거 정말 찾기 힘들겠네요. 유후!”
- 그래 찾기 힘들지. 매우. 그런데 어째서 기분이 좋은 것 같군.
“아유, 기분이 뭐 좋을 게 있겠습니까? 듣기만 해도 매우 힘든 고난과 역경이 될 것 같은데. 착각하시는 겁니다.
풉!
- 웃어?
“아니, 갑자기 재미난 일이 떠올라서요.”
대충 웃음의 이유를 얼버무린 미다스가 이제는 미소를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아! 너무 어려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빨리 갑시다, 빨리! 얘들아! 이제 장비 챙겨라!”
‘사장님께 이제 검은 사막 졸업하고 극한 지대 간다고 메일 보내야지. 어떤 이벤트 잡아도 좋다고.’
6.
- 극한 지대로 이동합니다. 어떤 이벤트 매치를 잡아도 됩니다.
그 메일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박영준은 잽싸게 메일을 삭제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이제 올스타팀과 전쟁을 할 때가 왔음을.
‘올스타팀과 붙어야지.’
당연히 이제 해야 할 건 올스타팀을 향해서 선전포고를 하는 일.
‘최대한 비싸게.’
물론 이번 싸움을 공짜로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쨌거나 급한 건 올스타팀, 더욱이 최근 일주일 동안 올스타팀은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대전료를 받아내야 한다는 의미.
그게 이유였다.
"릴."
“예."
“불사자 길드에 연락 좀 해.”
“예? 어디요?”
“불사자 길드 말이야. 지금 거기 1.5군 애들 극한 지대에 있잖아? 이야기 좀 해보게.”
박영준, 그가 10대 길드 중 한 곳인 불사자 길드에 연락을 하고자 하는 이유.
‘비싸게 팔려면 경쟁자를 끄집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