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 121화. 하얀 사막 (1). >
엄청난 일을 해내면 역사가 되지만, 엄청난 일을 끝내주게 해내면 전설이 되는 법.
지금 BJ대마도사의 경우가 그러했다.
더블 헤드 드래곤 레이드,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주인공이 될 법한 제물.
- BJ대마도사가 더블 헤드 드래곤을 잡았다!
그러한 제물을 BJ대마도사는 세상 그 누구도 보여준 적 없는 방법으로 마무리했다.
-공중에서!
하늘로 날아오른 드래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리어 드래곤을 잡았다.
- 물리 마법으로!
감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하지만 무척이나 끝내주는 방법으로.
- 추락한다!
그렇게 더블 헤드 드래곤이 검은 사막, 그 모래 위를 향해 추락을 시작했다.
그 후의 광경도 압도적이었다.
꽈광!
모래 위로 더블 헤드 드래곤의 몸뚱이가 닿는 순간 지진이 일어났고, 거대한 충격파가 생겨났고, 그 충격파에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삽시간을 검은 연기로 자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요함도 자욱하게 퍼졌다.
그 어떤 소리도 용납하지 않는 고요함이.
심지어 화면 밖에 있는 시청자들마저 조용히 안개가 가라앉기를 기다릴 따름이었다.
아즈모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아즈모는 자신의 호화 요트 갑판 위에서 조용히, 비서들과 함께 거대한 모니터에 집중했다.
- 흠, 안개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건 울 팬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리틀 토네이도.
그때 BJ대마도사의 멘트와 함께 그의 주변으로 거대한 소용돌이 바람이 등장하며 삽시간에 모래 먼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시청자들은 볼 수 있었다.
- 자, 보십시오!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입니다!
더블 헤드 드래곤의 피를 머금고 봉인에서 깨어난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를.
갓워즈 세상에 단 세 자루만 존재하는 그 검을.
그제야 비로소 고요했던 아즈모의 요트 갑판 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진짜 얻었네요.”
“와, 대단하다, 대단해. 저걸 기어코 혼자서 얻어내다니.”
비서들의 감탄에 아즈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건 의미가 없지.”
“예?”
“BJ대마도사는 마법사라고.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를 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아즈모의 그 말에 반박은 없었다.
“기껏해야 물리 마법 쓸 때나 써먹겠지.”
그의 말처럼 BJ대마도사에게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를 쓸 곳은 마땅치 않았으니까.
‘그것도 무서울 것 같긴 한데.’
물론 BJ대마도사의 스탯을 생각하면 그가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를 휘둘렀을 때의 파괴력은 상식 밖일 것이 분명했다.
크로커스 한 마리를 물리 공격만으로도 잡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
“이번에 얻은 소득에 비하면 장난감이지.”
무엇보다 오늘 일을 기점으로 BJ대마도사는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얻었다.
“소득이요?”
“멀린은 이렇게 말했지.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부터 제대로 얻어 봐, 그 후에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온다면 그리고 도전한다면 기꺼이 받아주겠어, 라고.”
다른 무엇도 아닌 어비스 길드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를.
“BJ대마도사는 어느 것보다 그 소득이 마음에 들 거야. 표정을 봐봐. 진심으로 기뻐하는 저 표정을.”
아즈모가 보기에 지금 BJ대마도사가 화면 속에 어느 때보다 기쁜 듯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BJ대마도사가 그저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나 후원금 따위 때문에 저토록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쁜 표정을 지을 리가 없잖아?”
2.
몰아치는 소용돌이, 그 속에서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를 높게 든 미다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크으, 대박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끝내주는 라이브 방송을 했다고.
‘기획을 하긴 했지만.......'
오늘 더블 헤드 드래곤 레이드를 앞두고 미다스는 정말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웠다.
게임 밖에서 오로지 기획만 생각하느라 오랜만에 조카가 아이스크림 사달라는 부탁을 듣고도 까먹을 정도, 그래서 집에 들어갔다가 조카의 시무룩한 얼굴을 봤을 정도, 그 정도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기획대로 될 줄이야.’
놀라운 건 그렇게 세운 무수히 많은 기획 중에 가장 좋은 기획이 현실이 됐다는 것이었다.
타이밍부터 시작해서 마무리까지.
그게 이유였다.
‘아, 좀 점잖은 표정 지어야 하는데 도무지 미소가 사라지질 않네.’
평소라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라는 표정을 지었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러지 못한 건.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보인 건.
당연히 지금 미다스는 정신이 없었다.
-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 있는데 설마 마법 쓰고 그러는 거 아니지?
- 형, 이제 검사로 전직하자!
- 지금 우리는 최초의 솔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보고 계십니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과 후원금 내역은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
[더블 헤드 드래곤 슬레이어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의 주인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타이틀 달성 알림도 마찬가지.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 이후 이어진 시스템 알림 역시 미다스의 귓속에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라포 님이 10,277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라포 : 이번 건 진짜 부럽네. 저건 우리 길드도 없는데.]
[구스타프 님이 10,278달러를 후원했습니다.]
[구스타프 : 아이템도 아이템인데 분명 타이틀 적잖게 얻었을 텐데, 그게 더 부럽군.]
[사사키 코지로 님이 10,279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사사키 코지로 : 난 별로 안 부러운데? 아, 다들 없구나. 그럼 부러울 만하지.]
심지어 큰손들의 후원 채팅마저 지금 이 순간 미다스의 귀에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 네놈이 이제 내 새로운 주인인가?
그런 미다스의 귓속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 소리에 미다스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예, 감사합니다. 그렇죠, 이 검의 주인이죠. 이제부터 물리 마법은 이걸로 갑니다.”
대답하는 미다스는 당연히 그 소리가 누군가의 후원 채팅이라고 생각했다.
- 이번 주인은 헛소리를 하는군.
“에이, 헛소리라니, 제 전매특허 중 하나가 물리 마법인데. 저한테 이걸로 맞으면 장난 아닐걸요?”
그쯤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후원 채팅 목소리가 평소 듣던 목소리가 아닌데?’
미다스가 지금 들리는 목소리에 이상함을 느끼는 것.
그 사실에 미다스가 채팅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뭐야? BJ대마도사 지금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지?
ㄴ BJ대마도사가 미친 모양임.
ㄴ 귀신하고 이야기라도 하나?
ㄴ 어쩌면 BJ대마도사가 이렇게 게임을 잘하는 건 말많은 전설의 프로게이머가 귀신으로 붙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ㄴ 어디서 삼류 소설에서도 안 쓸 설정을 가져오고 있네. 또라이가 아닌 이상 그딴 걸로 소설 쓰는 작가가 있을 리가 없잖아?
혼잣말을 하는 미다스의 행보에 대한 시청자들의 뒤숭숭한 반응이 보였다.
그제야 미다스는 상황을 깨달았다.
- 기구한 운명이군, 이런 정신 나간 놈에게 그분의 가르침을 주어야 하다니.
‘검이 거는 거다!’
지금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누구이며, 이유가 무엇인지.
- 들어라, 나는 위대한 드래곤 슬레이어 바르망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자. 묻겠다, 그 위대한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
이어진 대답에 미다스가 바로 대답했다.
“예!"
그와 동시에 채팅창도 반응했다.
- 확실하지? 누구랑 대화하는 거 맞지?
ㄴ 대체 누구랑 대화하는 거지?
ㄴ 어쩌면 여자친구일지도 몰라.
ㄴ 여자친구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ㄴ 아니, 머릿속에 여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잖아!
ㄴ 아, 뇌내 애인? 하긴 , 솔로로 오래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그럴 것 같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BJ대마도사의 모습에 채팅창이 어수선하게 변했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항목에 새로운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화에 미다스는 신경 쓸 수 없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가르침]
- 퀘스트 등급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369레벨 이하
- 퀘스트 내용 :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의 시험을 통과한 후 드래곤 슬레이어 바르망의 가르침을 받자.
-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보상 : 악카투스의 가죽
!퀘스트 완료 시 ‘바르망의 유산’ 진행 가능
눈앞에 뜬 퀘스트창을 보는 순간 미다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
‘악카투스의 가죽? 악카투스면 그 드래곤? 드래곤의 가죽을 주겠다는 건가? 아니, 잠깐만! 다음 퀘스트가 뭐? 바르망의 유산?’
그만큼 엄청난 퀘스트창 내용이 눈앞에 보이는데 채팅창의 반응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정신 차려, 정신.’
물론 미다스는 잊지 않았다.
‘라이브 중이야. 놀란 모습 보이지 말고, 스무스하게 넘어가야지.’
지금 자신이 무려 3억 명이 넘는 시청자들 앞에 있음을.
‘방송 종료 이상하게 하면 이제까지 한 게 다 꽝이 되는 거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다른 무엇도 아닌 커튼콜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그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시나리오가 기획됐다.
‘일단 상황도 무마시킬 겸 떡밥 뿌리자. 이대로 가면 그냥 또라이 취급 받고 끝날 거야.’
이윽고 기획을 마친 미다스가 검을 든 채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다름 아니라 이 검이 저한테 말을 걸었거든요. 그래서 이야기한 겁니다."
혼잣말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 검이 말을 했다고? 진짜인가?
- 이거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를 들어봤어야지 구라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을 텐데.
- 형, 그냥 말해. 형이 머릿속에 있는 여자친구랑 이야기했다고 해도 우리는 믿어줄게.
- 그래서 검 목소리 여자 목소리임?
물론 시청자들은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사사키 코지로 님이 10,28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사사키 코지로 : 내가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 얻었을 때는 말 건 적 없는데?]
그때 나온 검객의 말에 채팅창은 더 어수선해졌다.
그는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를 소유했던 경험자였고, 당연히 그의 발언은 그 어떤 플레이어들보다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 드래곤 슬레이어 주인이 아니라는데?
- 여러분 보셨죠? 외로움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 형, 막 이상한 게 보이고 그러는 건 아니지?
그러한 반응에 미다스는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검이 말을 걸었습니다.”
‘오케이, 분위기 잡혔다.’
물론 그 표정은 연기였다.
“검객 님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안 하니까 모르시겠지만, 퀘스트 받으면 검이 말을 걸어요.”
그렇게 당황하는 척하면서 미다스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란 단어를 언급했다.
“아."
그 후에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
그 순간 시청자들은 생각했다.
-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였구나!
- 또 떡밥 하나 큰 거 나왔네.
- 느낌 보니까 원래는 숨기고 있다가 뻥 터뜨리려고 한 것 같은데, 어딜 감히!
- 여기까지 뱉었으면 마저 뱉으시죠! 그래서 다음 퀘스트는 뭡니까? 이제 예고 좀 합시다!
BJ대마도사가 당황한 나머지 뱉지 말아야 할 단서를 뱉었다고.
자연스레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대로 떡밥만 던지면 돼.’
미다스 입장에서는 다음 라이브 방송을 위한 떡밥을 던질 최고의 타이밍이 오는 순간.
그 순간 미다스는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대화 좀 나눠보겠습니다. 아, 저보고 이렇게 말하네요. 정말 위대한 자를 주인으로 섬기게 되어서 영광이라고 하는군요."
그 말에 곧바로 채팅들이 올라왔다.
- 이상한 또라이 같은 주인 만나서 고생길 훤하다고 말했을 것 같은데?
- 하긴, 위대한 솔로이긴 하지.
- 형, 그래서 검 목소리 여자야?
그 채팅에 미다스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지금 굉장히 역사적인 순간 같은데 집중합시다.”
“주인이나 검의 목소리에 집중해라.”
그때 나온 수호자 모드인 잭팟의 한마디에 채팅창에는 환호성이 퍼지기 시작했다.
- 역시 잭팟! 할 말은 한다!
- 잭팟 목소리를 듣고 3시간 뒤에 먹을 탕수육이 소화되었습니다.
그 사실에 미다스가 좀 더 뚱한 표정을 지은 채 검에게 말했다.
“그래서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 이제야 묻다니, 참으로 멍청하고 굼뜬 주인이로군. 이번 주인에게는 가르침보다 시험이 먼저일 것 같다.
“시험이요?”
- 그래, 그 위대한 바르망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 시험을!
“아니, 저 더블 헤드 드래곤 잡은 드래곤 슬레이어거든요? 이 이상 무슨 시험이 필요합니까?”
- 흥, 그저 악카투스의 찌꺼기를 먹은 변종 크로커스를 잡은 주제에 드래곤 슬레이어를 자처하다니, 우습도다.
“얘가 변종 크로커스라고요?”
그 순간 미다스의 표정이 굳었다.
‘이야기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그 시험이란 게 더블 헤드 드래곤 잡는 것보다 더 난이도 높을 것 같은데?’
비단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 뭔가 대화 내용을 보니까 시험이 보통 시험이 아닐 것 같은데?
ㄴ 지옥 난이도 예상합니다.
ㄴ 사탄 또 집 비워줘야 할 듯?
ㄴ 사탄도 악마야! 지옥에서 좀 나가!
시청자들 역시 그 시험이란 놈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할 무렵.
그 무렵에 검이 말했다.
- 변종 크로커스를 잡은 걸 자랑하니, 그걸 시험 주제로 삼지. 하얀 사막으로 가서 변종 크로커스를 잡아라!
그 말에 미다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얀 사막에서 변종 크로커스를 잡으라고 하네요. 그래서 얼마나 잡으면 됩니까?”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필드 그리고 새로운 몬스터.
장난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으나 그 대화를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그 순간 검은 사막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알림이 들렸으니까.
[하얀 사막 필드가 개방됩니다.]
BJ대마도사의 말이 사실임을 알리는 알림이.
- 속보! 전체 알림 떴음! 다 들었다고 함!
- BJ대마도사가 또 새로운 필드 열었다!
- BJ대마도사만 믿고 가자고!
그 사실에 시청자들은 미다스가 바라던 것처럼 열광했다.
반대로 미다스는 차갑게 식었다.
들었으니까.
- 그곳에 있는 모든 변종 크로커스를 잡아라!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기한은 넉넉히 100시간을 주마!
‘맙소사, 100시간 안에 새로운 필드에 등장한 모든 몬스터를 잡으라고? 미친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대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