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 102화. 디펜스 (2). >
4.
어디에나 남들보다 눈치 빠른 자들은 존재하는 법.
갑작스럽게 여황 개미 습격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 여황 개미 이벤트라고?
ㄴ 또 빅이벤트인가"?
ㄴ 이야, BJ대마도사 덕분에 별의별 이벤트가 다 보게 되네.
ㄴ BJ대마도사랑 같이 사냥하는 플레이어들 부럽다. 남들은 경험도 못하는 이벤트 경험하고.
ㄴ 여기에 워즈튜브로 돈도 벌지. 개부러움.
ㄴ 잘하면 떡상도 가능하고 =.
대부분은 그 이벤트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에만 흥미를 가지고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벤트를 누리는 플레이어들, 현재 하얀숲에서 사냥하는 이들을 향해 부러움을 드러냈다.
허나, 눈치 빠른 자들은 달랐다.
- 이벤트 알림을 보니까 그냥 여황 개미를 잡는 게 아니라 몰려오는 개미 군단을 상대로 막는 디펜스 같은데?
- 4시간 동안 공격을 막으라고 했다면서? 그럼 이거 운석 충돌 지점이나 모래숲 때와는 상황이 다를 것 같은데?
- 좋아할 일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일 아님?
이번 퀘스트가 모두가 생각하는 것과는 어떤 식으로든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중원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발생한 여황 개미 퀘스트는 디팬스에요. 여황 개미를 잡는 게 아니라 버티는 디펜스.”
정보를 얻는 순간 예화는 이 퀘스트의 방식을 바로 눈치챘다.
그리고 바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우리는 BJ대마도사랑 여황 개미를 잡는 것을 두고 레이드 레이스를 하겠어요.”
BJ대마도사를 상대로 여황 개미를 누가 먼저 잡나, 경쟁을 하겠다고.
“예?”
“마스터,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그 발언에 길드원들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디펜스라면서요?”
“버티는 게 퀘스트 목적인데, 잡으러 가시겠다고요?”
예화가 본인 입으로 이것은 막는 거다, 잡는 게 아니다, 라고 했는데 그걸 잡는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
그 의문에 예화는 대답했다.
“잡으라고 만들어진 몬스터를 가지고 BJ대마도사와 경쟁하면 여지가 남아요. 그는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만드니까요.”
“그야……."
“그러니까 잡지 말라고 만들어진 몬스터를 두고 경쟁해야죠.”
그 대답에 길드원들은 생각했다.
BJ대마도사는 그렇다고 치고, 그럼 우리는 그 몬스터를 어떻게 잡습니까?
그러나 그 생각은 길지 않았다.
“설마 지금 이 멤버를 보고도 못 잡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이어진 예화의 물음에 길드원들이 서로를 스윽 바라보았다.
‘하긴, 우리는 3백 명이니까.’
‘BJ대마도사가 아무리 세도 이보다 전력이 셀 순 없지.’
3백이 넘는 머릿수.
그게 중원 길드의 새로운 전력이었다.
‘그냥 3백 명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머릿수만 많은 게 아니었다.
최근 중원 길드는 1티어급 길드들을 인수함과 동시에 실력자들을 추가 영입했다.
그 후에 300레벨 이하, 하얀숲에서 사냥이 가능한 플레이어들을 전부 모았다.
그렇게 해서 모인 숫자는 611명.
예화와 중원 길드는 그 611명을 데리고 하얀숲에서 개미들과의 치열한 전투를 통해 그 숫자를 3백 명까지 줄였다.
즉, 지금 남은 3백 명은 그냥 단순히 모인 실력자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한 번 더 치열하게 걸러진 정예라는 의미.
“개미 잡는 게 이제는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당연히 하얀숲에서의 사냥하는 것에는 도가 튼 상황이었다.
‘어렵기보다는 너무 싱거워서 문제지.’
‘이제는 뚫고 갈 수 있고.’
히트 앤 런이 아니라 히트 앤 고, 몰려드는 개미들을 잡아가면서 돌진을 할 정도.
그 사실에 이르렀을 때 예화의 말에 더 이상 의문이나 우려를 표하는 이는 없었다.
‘이거 해볼 만해.’
오히려 예화의 말처럼 이건 어떤 의미에서 BJ대마도사를 상대로 확실하게 승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예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멤버로 못 잡을 몬스터는 없다.’
이미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를 한다는 개념을 벗어난 파티원을 구성한 상태.
‘아니, 이 멤버로도 못 잡으면 오히려 환영이다.’
심지어 예화는 차라리 이 멤버로도 잡을 수 없을 만큼 여황 개미가 강하기를 소망했다.
그리한다면 BJ대마도사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잡을 수 없다는 의미이니까.
예하, 그녀가 동귀어진의 각오를 하는 순간.
당연히 그녀는 여기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그래, 기왕 같이 죽는 거 확실하게 죽어보자고. 사냥뱀 길드를 움직여야겠어.’
끝장을 볼 생각.
‘개미가 우글거리는 상황에서 암살자들이 달라붙으면, 제아무리 BJ대마도사라고 해도 답이 없지.’
그 생각에 예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BJ대마도사, 어떻게든 하얀숲에서 발목을 잡아주마.’
아주 밝은 미소가.
5.
‘아, 최악이다.’
드넓은 거실, 그 거실의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소파에 앉아 있던 정현우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였다.
‘중원 길드분들이 이렇게 나올 줄이야.’
짜증의 원인은 당연히 중원 길드.
‘아니, 잡으라고 나온 몬스터가 아닌데 그걸 가지고 어떻게 레이드 레이스를 해?’
중원 길드가 여황 개미를 잡자고 한 게 이유였다.
‘이러면 중원 길드분들 진짜 위험한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여황 개미 레이드 레이스를 하면 승패의 유무를 떠나서 중원 길드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 정현우를 고민케 하는 핵심 이유였다.
‘나야 튀면 된다고, 튀면.’
그도 그럴 것이 정현우의 경우에는 여차하면 제 몸을 피신할 능력이 충분했다.
헤이스트를 쓰든 아니면 텔레포트를 쓰든, 블링크를 쓰든, 솔직히 튈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아서 고민.
그렇게 튄 후에 대처도 간단했다.
못 잡으면, 까짓것 못 잡았네요, 하고 도망치면 될 일이고, 그러면서 게임 참 빌어먹을 쓰레기 게임이네요, 개발사는 각성하시죠, 갓워즈가 그럼 그렇지, 역시 쓰레기야, 라고 갓워즈를 씹으면 될 일.
그러나 중원 길드는 어떠한가?
그들은 그냥 불만을 품는 수준에서 그칠 리가 없었다.
‘대거 게임오버 당하면…… 어우.’
도망치려는 순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한 일.
파티원들 절반 이상이 게임 오버를 당하는 참사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냥 단순한 경쟁자와의 경쟁이라면 막 튀긴 팝콘보다 고소한 일이었다.
‘절대 고객님이 그런 몹쓸 기억을 가지고 가셔서는 안 돼.’
그러나 정현우에게 중원 길드는 경쟁자가 아니라 고객이었다.
‘이제까지 나하고 라이징 스타 채널에 해주신 게 있는데.’
그것도 그냥 고객이 아니라 이제까지 정말 많은 것을 아낌없이 주신 최우수 고객님.
‘좋은 기억만 드려야지, 다음 고객님들하고도 계약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더욱이 정황상 중원 길드가 정현우의 고객이 되는 건 이번으로 끝이었다.
레벨업 페이스를 보았을 때 더 이상 중원 길드가 정현우를 쫓아오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이번에 중원 길드와의 이벤트 매치는 좋게 끝날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잡지 말라고 디자인된 여황 개미를 잡으러 가는 중원 길드가 무사히 이벤트를 마치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덜컥!
그렇게 정현우가 머리를 뜯을 때 방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정태우가 등장했다.
비어있는 머그잔을 들고 등장하는 정태우의 표정 역시 그다지 밝지는 않았다.
그런 정태우가 이내 거실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정현우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 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 그 상황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정현우였다.
“형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동생의 질문에 정태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너한테도 말해줄 수 없어. 보안이 뚫리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의 입이니까.”
냉정하기까지 한 형의 반응에 정현우가 실소와 함께 손을 휙휙 저으며 말했다.
“아유, 궁금하지도 않네요.”
“그러는 넌 무슨 일인데, 머리를 쥐어뜯는 거야?”
형의 질문에 정현우는 시큰둥한 대답을 떠올렸다.
새로 사귀게 된 모델 출신 러시아 여자 친구랑 데이트할 장소가 떠오르지 않아서, 라는 정말 씨알도 먹히지 않을 대답을.
‘장난 칠 때는 아니야.’
그러나 지금 조우한 상황의 심각성이 정현우를 진지하게 만들었다.
“형, 형은 고객이랑 많이 상대해봤잖아?”
“많이는 아니지만, 너보단 많겠지.”
“그럼 고객 중에 아주 귀한 고객님이 무리한 주문을 하면 어떻게 대응했어?”
진지하게 속내를 드러냈고, 그런 동생의 진지함에 정태우 역시 진지한 대답을 해줬다.
“솔직히 상황에 따라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확실하게 답을 말해줄 순 없어. 대신 크게 설계를 하자면…… 엔딩을 네 종류로 나눈다."
“네 종류?”
“윈윈, 고객과 내가 둘 다 이득을 보는 경우. 혹은 반대로 루즈루즈, 둘 다 손해를 보는 경우.”
설명에 집중하는 정현우.
“남은 둘은 고객이 이득을 보지만 내가 손해를 보는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다.”
그 순간 정현우의 눈이 반짝였다.
“형, 잠깐만.”
이후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고 이제는 드넓어진 베란다로 향하는 정현우의 모습에 정태우가 옅게 미소를 머금었다.
머금은 채 널찍한 부엌에 마련된 커피포트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제 숨 좀 돌리겠군.’
그 순간이었다.
삑!
정태우의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울음을 토해냈고, 그것을 확인한 정태우가 곧장 물이 끓기 시작한 커피포트를 놔둔 채 급하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 형. 나 일이 있어서 밖에 좀 나갔……."
이후 밖으로 나온 정현우가 뱉으려면 말을 멈추고는 부엌에서 제 혼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커피포트와 다시 닫힌 형의 방문을 바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바쁜 일이 생긴 모양.
‘아니, 대체 어떤 새끼가 형을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야?’
그 순간 정현우가 형을 바쁘게 만든 이를 향해 작은 저주를 퍼부었다.
‘분명 애인도 없어서 연애도 못하는 솔로인 놈이 분명해. 그러니까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형을 괴롭히는 거지. 그래, 평생 솔로로 살아라, 평생.’
그 짤막한 혼잣말을 끝으로 정현우가 밖으로 나갔다.
6.
새하얀 숲.
“도망쳐!”
“튀어!”
샤아!
플레이어들과 개미들의 치고 쫓기는 히트 앤 런이 쉼 없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정현우는 조용히 자리에 앉은 채 비공개 채팅창을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와튼 님이 접속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등장한 손님, 그 손님을 향해 미다스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 와튼 : 예.
“괜히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여황 개미 이벤트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 와튼 : 중원 길드의 제안을 거절할 순 없습니다.
머리와 꼬리 따윈 없이 본론만으로 이루어진 대화에 미다스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당연히 거절 못하지. 그게 가능했으면 그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이 자리는 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한 답을 말해주기 위한 자리였으니까.
때문에 미다스는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절하는 건 중원 길드분들을 향한 예의가 아니죠, 예의가.”
- 와튼 : 질문이 있습니다. 이번 여황 개미 레이드의 난이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때 툭 나온 사장님의 질문에 미다스가 바로 대답했다.
“잡지 말라고 나온 몬스터입니다. 그런 몬스터를 다 같이 힘 모아서 잡는 것도 아니고, 경쟁적으로 잡으러 간다는 건 단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갓워즈는 그렇게 친절한 게임이 아니니까요.”
그 대답을 내뱉는 미다스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고, 그 미소에 채팅이 바로 떴다.
- 와튼 : 언제나처럼 여유가 넘치시는 걸 보니 이번 일에 대한 묘안이 있으시군요.
- 와튼 :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어서 나온 말에 미다스가 말했다.
“이번 중원 길드의 레이드 레이스, 항복하겠습니다.”
항복.
그게 미다스가 준비한 바였다.
“싸우면 둘 다 파멸뿐인 일인데 그걸 굳이 일부러 자처할 필요는 없잖아요?”
죽지만 잘 싸웠다, 보다는 그냥 안 죽는 게 더 나은 법.
물론 이 방식에는 문제점이 있었다.
- 와튼 : 중원 길드가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중원 길드는 그 항복 선언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
“예, 동시에 시청자분들도 절대 이런 식으로 제가 패배를 선언하는 걸 용납하지 않겠죠.”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 둘이 파멸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걸을 격렬하게 원한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그냥 패배를 선언한다면, 그 순간 BJ대마도사의 이미지는 최소한 반타작이 날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패배를 선언한 대가를 보여줘야죠.”
다른 방식으로 이익을 주지 않는 이상.
그 무언가가 미다스를 미소 짓게 하는 요소였다.
- 와튼 : 준비하신 게 있습니까?
“보통 예전 전쟁에서는 패자가 승자의 밑으로 들어가서 보필을 하고는 했죠.”
- 와튼 : 보필이요? 설마?
“예, 패자가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패배를 한 대가로 제가 중원 길드의 여황 개미 레이드를 돕겠습니다.”
패배를 선언하고, 경쟁 대신 중원 길드 밑에서 여황 개미를 같이 레이드를 하겠다!
‘이렇게 하면 중원 길드 체면도 서고, 리스크도 확실하게 준다!’
그게 미다스가 준비한 방식,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중원 길드를 이익 보게 하는 방법이었다.
나름 그럴싸했다.
어쨌거나 중원 길드 입장에서는 BJ대마도사를 부려먹으면서 여황 개미 이벤트를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피해 역시 최소화할 수 있고.’
동시에 이런 식이면 중원 길드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무리할 필요는 없는 반면, 전력은 압도적으로 강해질 테니까.
‘사장님, 우리 고객님의 안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먹힐 것 같아요?”
이어진 미다스의 물음에 채팅창은 한동안 잠잠했다.
그리고 이내 10초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때, 잠잠하던 채팅창에 채팅이 올라왔다.
- 와튼 : 이대로는 힘들 듯합니다. 그러니 이게 통하도록 상황을 설계해보겠습니다.
그 말에 미다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사이 채팅 하나가 더 올라왔다.
- 와튼 : BJ대마도사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 와튼 : 꼭 통하게 만들겠습니다. 꼭.
무언가 분명 격한 감정이 섞인 그 채팅에 미다스가 마음속으로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의문은 길지 않았다.
‘고객님의 안전을 생각하는 내 모습에 감동 받으신 모양이네.’
“예, 잘 부탁합니다.”
그저 자신에게 감동했구나, 하고 넘어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