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 97화. 운 없는 날 (1). >
1.
- BJ대마도사가 시나리오 사냥터로 이동했다던데?
ㄴ 이야기 들어보니까 난이도 지옥이라고 함. 역대급 지옥.
BJ대마도사의 새로운 행보가 속보로 보고되었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 난이도가 지옥이면 뭐해? 어차피 탐험가 길드랑 같이 하면 그냥 순삭할 텐데.
ㄴ 맞아, 탐험가 길드 끼고 하면 일도 아니지.
ㄴ 들어보니까 탐험가 길드는 못 가는 곳이라던데?
ㄴ 진짜?
ㄴ 그럼 다시 솔로 복귀하는거네?
그리고 BJ대마도사가 탐험가 길드 없이, 홀로 솔로 플레이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에 세상은 열광했다.
‘어우, 긴장돼.’
물론 당사자인 정현우 입장에서는 등골이 싸늘하게 식을 듯이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만반의 준비는 했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도 가늠한 건 물론 사전에 비밀의 정원을 나름 탐색하면서 특성도 파악한 상태였다.
‘몇 번 전투 치렀을 때는 괜찮았다…….'
심지어 적은 횟수지만 전투도 치러본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현우는 라이브 방송을 앞두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전은 다르단 말이야.’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 때문이었다.
“야, 정현우.”
형의 거듭된 부름에도 정현우가 뒤늦은 반응을 보인 건.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정신을 팔고 다니는 거야?”
그런 동생의 모습에 정태우가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정현우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오늘 소개팅 나가거든. 그래서 조금 긴장이 되네.”
동생의 그 모습에 정태우가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구라를 치려면 성의를 담아서 좀 쳐라.”
“아니, 왜? 내가 소개팅 받는 게 이상해?”
“소개팅 받을 수야 있지. 하지만 소개팅 받은 네가 고작 그 정도로 긴장하는 것으로 그치는 일은 없어.”
“뭐?”
“장담하지. 너 소개팅 가는 날 심장 떨려서 도중에 병원에 실려 갈걸? 내기해도 좋아.”
정태우의 그 단호한 말에 정현우는 입을 꾹 다물었고, 그 모습에 정태우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하다, 팩트로 후려칠 생각은 없었는데.”
“됐고, 할 말이 뭔데?”
이어진 되물음에 정태우가 정현우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딱히 대단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말해줄게.”
그 표현에 정현우는 바로 직감했다.
‘뭔가 있네.’
필시 형이 말하고자 했던 게 평범한 게 아님을.
단지 고민하는 동생에게 괜한 고민을 더 얹혀주는 게 미안해서 그렇게 말했을 뿐임을.
그런 형의 배려를 정현우는 괜한 말로 걷어차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할 말은 없는 거지?”
그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정현우를 향해 정태우가 말했다.
“현우야, 긴장해서 안 되는 게 되는 경우는 없어.”
그 조언에 정현우가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형 말이 맞아.’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하는 게 훨씬 나은 법.
그렇게 긴장을 풀기 시작한 정현우에게 정태우가 마지막 말을 했다.
“그리고 소개팅에서 안 될 놈은 죽어도 안돼. 그러니까 넌 긴장을 풀어도 안돼."
“아, 진짜! 내가 기필코 솔로 탈출하고 만다!”
동생의 그 반발에 정태우는 대답 대신 피식, 웃음만 흘렸다.
“나 나간다.”
반면 형의 놀림에 정현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그대로 문을 나섰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정현우에게 더 이상 긴장된 기색은 없었다.
2.
- 방송 열렸다!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시작된 BJ대마도사의 라이브 방송에 시청자들 언제나처럼 폭발적인 기세를 보이며 들어왔다.
[BJ럭키13131호팬 님이 3달러를 후원했습니다.]
[BJ골드9313호팬 님이 2유로를 후원했습니다.]
[BJ실버3512호팬 님이 5파운드를 후원했습니다.]
[BJ잭팟12123호팬 님이 1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앞다투어 채팅창을 응원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BJ대마도사1호팬 님이 1원을 후원했습니다.]
[BJ대마도사2호팬 님이 2원을 후원했습니다.]
[BJ대마도사3호팬 님이 1원을 후원했습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응원 앞에서 미다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BJ대마도사입니다. 오늘도 제 라이브 방송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때보다 작은 목소리로.
- 응?
- 왜 이렇게 조용해?
- 드디어 주제를 알고 목소리를 낮추는 건가?
그 사실에 시청자들이 잽싸게 의문을 제기했고, 그 의문에 미다스가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두어 번 두리번거린 후에 연인의 귓속에 속삭이듯 말했다.
“이곳에 오우거가 너무 많아서 큰 소리로 말씀드릴 수 없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가 목소리를 낮춘 이유를 파악한 시청자들이 코웃음을 쳤다.
오우거가 무섭다고는 하지만 천하의 BJ대마도사가 이렇게 목소리를 낮출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 진짜 난이도 헬모드인 건가?
ㄴ 에이, 설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자세를 낮출 필요는 없잖아?
ㄴ 혹시 모르지. 진짜 지옥일지도.
혹여 정말 진심으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목소리를 낮추는 거라면 이곳 사냥터의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
- 에이, 장난이라니까.
ㄴ 장난 아니라니까!
채팅창에서 갑작스러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그럼 오늘 이곳, 비밀의 정원 공략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혼란을 느끼는 시청자들을 향해 미다스가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의 오우거 밀도는 매우 높습니다. 또한 오우거들은 최소 3마리 이상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제가 해야 하는 건 NPC세바를 찾는 겁니다.”
그 순간 미다스가 말을 멈추더니 재차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심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미다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에서 전투는 불가능합니다. 단독 개체도 아닌 무리를 상대하는 와중에 단말마가 터질 경우 최소 오우거 10 마리와의 전투를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이곳에는 오직 저 혼자만 있습니다. 다른 플레이어의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곳이죠.”
경계심이 듬뿍 담긴 그 발언에 이제 시청자들도 긴장된 기색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 듣고 보니 장난 아닌데?
- 오우거 무리라니, 지옥 맞네.
- 여기서 사냥하는 건 자살행위지.
그 반응에 미다스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약 뿌리기 완료.’
누가 봐도 어려운 무대를 앞두고 처음부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곳임을 거듭 강조한 후에 비로소 자신 있게 보여야 더 매력적인 법.
당연히 이 다음에도 연출이 계획되어 있었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중간에 에라, 못하겠다! 하면서 전투 선언을 하면 끝.’
그 시나리오대로 미다스가 움직였다.
“그럼 이제 은밀하게……."
그 순간이었다.
[멀린 님이 10,189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그렇게 조용하게 움직이는 건 BJ대마도사 스타일이 아니잖아?]
멀린, 그가 등장하자 긴장감 넘치던 채팅창의 분위기에 더 짙은 긴장감이 어렸다.
그저 멀린이 등장한 것, 그 사실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 멀린이다!
- BJ대마도사 스타일이 아니라니? 그럼?
- 킁킁, 딱 봐도 도발 냄새 난다.
누가 보더라도 멀린이 BJ대마도사를 상대로 어떠한 종류의 딜을 할 분위기라는 것.
그 예상에 부응하듯 멀린이 바로 말했다.
[멀린 님이 10,19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그렇게 조심스럽게 가지 말고 화끈하게 가자고.]
[멀린 님이 10,19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오우거 무리 속에서도 상대로 한 번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
전투를 치러라!
[멀린 님이 10,19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솔로 복귀 기념으로.]
그것도 혼자서!
멀린의 그 요구에 곧바로 채팅창이 아수라장이 됐다.
- 그렇지! 역시 멀린 님이 뭔가 아네!
- 화끈하지 않으면 게임을 하지 말라, BJ대마도사의 명언집 3쪽에 적혀 있었음!
- BJ대마도사라면 그런 설정 따윈 묻고 그냥 바로 가야지! 아무렴!
대부분은 멀린의 반응에 열광했다.
- 이거 위험한 거 같은데?
- BJ대마도사님 무모한 짓 하지 마세요!
- 맞아요, BJ대마도사님 당하면 럭키, 골드, 실버, 잭팟 님이 위험해지잖아요!
한편으로는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미다스는 다른 이유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뭐지? 내 의도를 눈치챈 건가?’
혹시 멀린이 자신의 계획을 눈치채고 미리 스포일러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때였다.
[아즈모 님이 10,193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왜 우리 BJ대마도사를 불구덩이에 집어넣으려고 해?]
아즈모의 등장에 분위기가 살짝 식었다.
- 아즈모가 막으려나?
- 아즈모가 BJ대마도사 커버쳐주는 거임?
아즈모가 멀린의 제안을 막으리란 생각에.
[아즈모 님이 10,194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불구덩이에 집어넣을 거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지.]
물론 이어진 아즈모의 대답에 시청자들은 다시 열광했다.
그리고 멀린은 대답했다.
[멀린 님이 10,195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당연히 준비해왔지. 잭팟의 수호자 모드일 때 쓸 만한 무기라면 괜찮잖아?]
[아즈모 님이 10,196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설마 나이아의 오브 따위를 말하려는 거 아니겠지? 그런 거 백 개도 구할 수 있는데?]
이어진 아즈모의 반문에 멀린이 바로 대답했다.
[멀린 님이 10,197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이지스의 오브 획득 방법.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그리고 나온 발언에 곧바로 채팅창이 폭발했다.
‘미친, 이지스의 오브?’
미다스의 머리도 폭발했다.
‘300레벨 전에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서포터 아이템 인 이지스의 오브?’
이지스의 오브.
그 아이템에 대한 설명은 간단했다.
현존하는 300레벨 미만 무기 아이템 중 서포터 계열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
이제까지 오로지 단 한 곳, 어비스 길드를 포함해 10대 길드 중에 일곱 곳만이 구할 수 있었던 아이템이었다.
그마저도 어비스 길드가 남은 여섯 곳에 정보를 팔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정보의 대가도 엄청났다.
돈으로 거래가 되지 않을 정도.
‘진짜?’
그런 엄청난 것을 제안받은 미다스는 얼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멀린 님이 10,198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멀린 : 그래서 BJ대마도사의 대답은?]
그런 미다스에게 멀린이 회심의 일격을 날리듯 후원 채팅을 날렸고, 그 채팅에 미다스는 빠르게 고민을 마쳤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할 거였는데…….'
그게 본래 하려던 거 아니었던가?
“당연히 콜입니다.”
4천만 명의 시청자 앞에서 실시간으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선언을 내지르는 순간.
“자, 그럼 방송 시나리오를 바꾸겠습니다.”
그 순간 미다스의 언성이 달라졌다.
앞서서 개미와도 같았던 목소리가 숲을 뒤흔들 만큼 커졌고, 태도가 달라졌다.
“얘들아 나와!”
왕!
“예, 주인님! 제가 왔습니다!”
그 말에 곧바로 숨죽이고 있던 럭키와 골드를 시작으로 실버와 잭팟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등장한 동료들을 배경으로 삼은 채 미다스가 시청자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 라이브 방송 타이틀은 운 좋은 날로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미다스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이 시간부로 숨는 것 없이 당당하게 오우거들 대가리를 박살내면서 전진 또 전진하겠습니다!"
그 외침을 내뱉으며 한 곳을 바라보는 미다스, 그런 그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였다.
“NPC세바를 찾을 때까지.”
2킬로미터 전방에 NPC가 있다는 것이.
3.
오우거의 숲에서 단말마 스킬로 인해 오우거 무리가 만들어지는 사고는 종종 일어났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면 처리는 대개 탐험가 길드의 몫이었다.
당연히 탐험가 길드에는 그러한 사고, 일명 단말마 사고에 대한 매뉴얼이 있었다.
그 매뉴얼의 첫 번째는 바로 오우거 무리를 쪼개는 것이었다.
어떤 방법이든 좋았다.
탱커들이 어그로를 끌어서 나누든 아니면 그냥 오우거 무리에 돌진을 해서 나누든, 무리를 쪼개기만 하면 됐다.
그 이후 쪼개진 무리 중 숫자가 적은 쪽을 딜러들이 빠르게 해치우는 게 정석 매뉴얼이었다.
간단한 설명만 들어도 적지 않은 인력이 투입되는 일이며, 실제로 탐험가 길드는 오우거 무리 숫자의 5배수의 플레이어를 투입하는 것을 권장하고는 했다.
오우거가 다섯 마리가 뭉쳐있다면 25명, 열 마리가 뭉쳐있다면 50명이 투입되는 식.
그런데 그것을 지금 BJ대마도사는 혼자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저 겉핥기식이 아니었다.
- 크르르!
가장 먼저 오우거 무리를 발견하면 실버가 달려가서 놈들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마치 볼링핀을 향하는 볼링공처럼.
- 크어!
그러한 실버의 몸통 박치기에 오우거 무리의 전열이 무너지는 순간, 네 마리의 블레이즈 골렘들이 경쟁하듯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쾅!
그리고 시작되는 거인들의 대결.
푹!
그 대결이 시작됨과 동시에 블레이즈 골렘의 몸에 숨어 있던 하급 불의 정령 전사들이 튀어나와 손에 든 무기들을 휘둘렀다.
- 나쁜개, 저쪽이다!
- 크-왕!
그 다음은 차례는 럭키와 그 위에 탄 골드 그리고 럭키의 그림자.
그 셋이 외톨이가 된 오우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나쁜개 망설이지 말고 들어가라! 주인님께 우리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거다!
왕!
보는 이의 입장에는 과할 정도로 무모하게.
- 쩌정!
그러나 미다스의 곁에서 언제든 성스러운 벼락을 내리칠 준비가 된 잭팟의 존재가 럭키와 골드의 무모함을 위대함으로 바꿔주었다.
물론 백미는 BJ대마도사였다.
- 콰릉!
이 거인들의 전투 속에서 가장 자그마한 BJ대마도사는 그 누구보다 위력적인 마법을 포격했다.
이제는 정말 전차라는 표현, 대포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
- 콰앙!
그의 파이어볼이 날아갈 때마다 오우거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바닥에 쓰러지고, 마네킹과 같은 꼴이 되어버렸다.
- 맙소사, 길을 만들고 있네.
- 불도저네, 그냥 불도저야.
그렇게 BJ대마도사가 비밀의 정원, 본래는 숨 죽이라고 만든 그 핏빛 숲에서 길을 만들고 있었다.
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혀가 내둘러질 따름.
“대단하군.”
멀린조차도 BJ대마도사가 보여주는 광경 앞에서는 진심을 담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번에는 그 광경을 기꺼이 즐겼다.
“정말 대단해, 이런 속도면 레벨업도 금방 되겠어.”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BJ대마도사가 무리하게 전투를 치르다 게임 오버를 당하는 것이었지만, 세상일이란 게 원하는 대로 돌아가진 않는 법.
지금처럼 압도적인 화력으로 오우거들을 혼자서 사냥하는 것도 나쁠 건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본래는 하지 않았을 레벨업을 하게 되는 셈이었으니까.
“아직 좋아할 때는 아니에요.”
물론 최선이 있으면 최악도 있는 법.
“BJ대마도사가 그 NPC세바를 일찍 찾는다면 더 이상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이 강렬한 사냥이 한순간에 끝나는 경우.
애초에 BJ대마도사의 목적은 NPC를 찾는 거고, 그 NPC를 쉽게 찾을 수도 있었으니까.
“설마 그렇게 운이 좋겠어?”
물론 상식적으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가 NPC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배치했을 리는 없었다.
“모르죠, BJ대마도사라면.”
하지만 한편으로는 BJ대마도사가 그동안 보여준 행보를 생각하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혹은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고 미리 NPC세바를 찾아두고 처음 시작하는 척 연기를 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운이 아니라 운이 좋은 것처럼 사전에 상황을 이미 꾸며놨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비스 길드를 역으로 낚기 위해서.
“설마……."
“저도 큰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정확히는 그럴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 사전 협상을 하지 않은 거니까.”
그러한 엠마의 설명에 말을 내뱉은 엠마 본인과 멀린은 애써 그 경우의 수를 부정하고자 했지만, 그 둘의 표정은 생각과 달리 점차 굳어갔다.
BJ대마도사의 이름이 다른 이들이라면 우스갯소리였을 것을 어느 때보다 현실적인 소리로 만들었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 엇! 저기 NPC가 있는 것 같습니다!
라이브 방송 중인 BJ대마도사가 전투 도중에 한 곳을 가리키자, 곧바로 카메라가 그곳을 찍었다.
그러자 사람 하나가 보였고, 그 사람의 등장에 채팅창의 시청자들이 폭주했다.
- 아, 이제 막 몸 좀 풀렸는데 여기서 끝나겠네요. 그럼 미리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종료해도 놀라지 마세요!
이어서 나온 BJ대마도사의 발언에 멀린과 엠마는 대화는커녕 반응조차 보일 수 없었다.
‘말도 안돼.’
‘이게 가능해?’
그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방송을 볼 뿐.
- 세바님! 제가 구하러 왔습니다! 피요로 님의 부탁을 받고 당신을 구하러 왔습니다.
- 아.......
그때 NPC를 마주한 BJ대마도사가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인사를 했고, 이내 대답이 나왔다.
- 전 세바가 아닙니다.
- 예? 뭐라고요?
그 대화가 나오는 순간 이내 굳어있던 멀린이 이내 피식,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는 이내 표정을 풀며 말했다.
“다른 NPC였군. 그래,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됐는데 바로 발견하는 게 이상한 일이지. 하하!”
그 표정에 엠마 역시 표정을 풀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으니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가만, 다른 NPC가 있다는 건 그게 하나가 아니라 다수일수도 있다는 거잖아?”
전화위복.
“그렇죠.”
“아무래도 이번 퀘스트 난이도가 BJ대마도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어려울지도 모르겠군.”
도리어 어비스 길드가 생각하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나올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 사실에 이제는 표정을 완전히 푼 멀린이 모니터 속에서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BJ대마도사를 보며 말했다.
“BJ대마도사, 운이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