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 85화. 도와드립니다 (1). >
1.
갓워즈 역사상 일어난 적 없는 역대급 이벤트 무대, 운석 충돌 필드.
당연히 사람들은 그 무대에서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빌어먹을!”
갓워즈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역대급 사건이 일어났다.
단지 문제점은 그게 좋은 의미의 사건이 아니라 참사로 표현할 만큼 좋지 못하다는 것.
그 정도로 운석 충돌 필드는 참혹했다.
“무슨 놈의 몬스터가 이렇게 세?”
“외형만 보석급이지, 사실상 운석급이잖아!”
“이건 말도 안 되는 사냥터야. 일반 몬스터 무리가 보스급이라니, 미친!”
부푼 마음을 가지고 입장한 플레이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몬스터들은 그만큼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멋모르고 마주한 플레이어들에게 쓴맛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냥 삼도천 강물 맛을 보여주는 수준.
“처음에 뒤돌아보지 않고 덤빈 게 문제였어.”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대기 타다 들어갈걸!”
더욱이 이번 운석 충돌 필드 던전의 경우에는 초반 입장 인원 숫자가 너무 많았고, 그만큼 피해도 많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갓워즈 최초의 이벤트 필드 등장, 여기에 따로 입장권을 구매할 필요도 없는데 입장을 망설이면 그게 멍청한 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덤벼든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몬스터를 잡는다!
이 설레는 경험을 대기표도 뽑을 필요 없는 상황에서 기다릴 이유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나갈 수도 없고……."
“24시간이었지?”
“그냥 나가지 말라는 거지.”
운석 충돌 필드는 입장한 이들은 24시간 동안 퇴장이 불가능했다.
밖으로 도망친 후에 전력을 추스르는 수작 따위는 할 수 없다는 의미.
“로그아웃하자.”
“에라, 모르겠다. 그냥 로그아웃하자!”
그 대목에서 플레이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그냥 깔끔하게 로그아웃이란 선택지를 골랐다.
"저기가 그렇게 지옥이야?”
"들어가면 그냥 게임 오버임.”
"어우, 그냥 들어가지 말자.”
한편 뒤늦게나마 운석 충돌 필드를 경험해보려던 플레이어들 역시 소식을 듣는 순간 도전을 포기했다.
자연스레 운석 충돌 필드에 입장한 플레이어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달리 말하면 현재 운석 충돌 필드에 입장한 이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훨씬 커졌다는 의미였다.
몬스터들은 로그아웃 따위를 하지 않았으니까.
“저희 파티는 이대로 가겠습니다.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보스는 보고 죽어야죠!”
‘젠장, 미치겠네. 여기서 어떻게 사냥을 하라고?’
“한 번 들어왔으면 끝을 보는 게 프로 플레이어의 자세죠.”
‘끝을 보긴, 개뿔, 이러다 백퍼센트 게임오버다.’
일반 플레이어들과 달리 감히 쉽게 포기하고, 도망칠 수 없는 이름값을 가진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 다들 곡소리 내뱉네.
- 곡소리 나오겠지. 전투 한 번이 보스전이나 다름없는데.
- 몬스터 숫자도 엄청 많고.
딱 한 명만 예외였다.
- 그런데 왜 BJ대마도사한테는 안 오는 거지?
미다스.
필드에 입장하고 20분이 넘었음에도 그가 치른 전투는 고작 2번에 불과했다.
“아니, 왜 이렇게 몬스터가 안 보이는 거야?”
더불어 그 두 번의 전투는 무척이나 쉬웠다.
“그냥 광역 마법 콤보로만 잡으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없는데, 골치 아프네요.”
전투 시간의 텀이 길다는 건 그만큼 마법의 쿨타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의미.
좋은 소식이었다.
“이거 좀 짜증나네요.”
이런 말을 지껄인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미친놈 소리를 들어 마땅한 희소식.
- 다른 플레이어가 이런 말 하면 병신처럼 보이는데 BJ대마도사가 하니까 있어 보이네.
- 역시 BJ대마도사, 병신 같지만 멋있어!
그러나 미다스의 명성은 도리어 그러한 투정을 그리고 푸념을 마땅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럭키, 골드는 뭐 싸워보지도 못했네요. 럭키야.”
왕!
“어떻게 생각해? 우리한테 몬스터가 안 오는 것에 대해서?”
왕!
“뭐라고? 내가 너무 강해서 몬스터들이 도망친 거 같다고?”
왕!
이제는 너무 여유가 넘치는 나머지 전의를 다듬기는커녕 이제 콩트마저 할 정도.
“아, 모르겠다. 이대로 직진으로 가면 진짜 몬스터 없는 거 같은데 한 번 크게 돌아가겠습니다. 동선 길게 하면 몬스터 한 번이라도 더 만나지 않겠어요?”
심지어 아예 일부러 동선의 거리를 더 늘린다는 말에 시청자들은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 일부러 몬스터 만나려고 동선 늘어뜨리는 플레이어는 BJ대마도사 하나뿐일 듯.
- 몬스터들이 무서워서 피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
- 역시 모든 것이 피해가는 솔로의 제왕답네요! 몬스터도 미팅하기 싫어하는 듯!
물론 시청자들은 몰랐다.
‘어우, 저기에 우글우글하네. 일단 피하자.’
그 이유가 몬스터를 피하기 위함임을.
미다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몬스터의 위치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에.
‘어그로 범위는 인식했으니, 저쪽으로 가면 걸리진 않겠네.’
더욱이 미다스에게는 몬스터의 위치만이 아니라 몬스터들의 어그로 상태를 보여주는 신호등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전투를 통해 운석 충돌 필드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인식 범위마저 파악한 상태.
그렇게 파악한 몬스터들의 어그로 범위를 가늠하여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움직이고 있었다.
보인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미다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어.’
그러나 계속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 그래도 너무 운이 좋은데? 설마 보스 만날 때까지 운 좋게 가려나?
ㄴ 설마,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건 아니지.
ㄴ 그러면 핵 프로그램 의심해야지.
일단 시청자들이 운 좋게, 몬스터와의 전투 없이 보스 몬스터에 이르는 것을 쉬이 납득할 리가 없었다.
‘몬스터 개체수도 줄여야 해.’
또한 이러니저러니 해도 주변에 있는 몬스터를 잡아야 했다.
‘최소한 보스 몬스터 주변은.’
정말 몬스터 무리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보스 몬스터에 이르렀다고 해도 주변에 몬스터가 우글거린다면, 그 상태에서 보스 몬스터와 싸우는 것보다 멍청한 짓은 없을 테니까.
- 그보다 이거 전투 너무 없으니 노잼이네.
- 보스전까지 다른 방송 보고 올까?
- 일단 화장실 좀 다녀옵니다.
결정적으로 이건 라이브 방송이었다.
다른 1티어급 길드들이 이 지옥 속에서 괜히 전투를 자처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시청자들에게 재미없는 건 보여줘서는 안돼.’
HP가 깎이는 것보다 시청자 숫자가 깎이는 것이 훨씬 더 뼈아프다는 것.
미다스라고 다를 바 없었다.
‘벌써 4천만 넘었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은 다시는 찾아오기 힘든 최고의 빅 이벤트 무대, 흥행이 가능한 무대 아닌가?
이 열광적인 무대에서 고작 몸을 사리겠다고 재미없는 방송은 할 수 없는 법.
결정적으로 미다스는 약속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시청자들에게 BJ대마도사의 실력이 무엇인지, 럭키와 골드를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이 충분함을 증명하겠다고.
그 대목에서 미다스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몬스터가 너무 없는데……."
‘좋아, 여기서 하자.’
미다스가 잠시 멈춘 후에 채팅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별수 없네요.”
미다스의 말에 곧바로 채팅창에 물음표 가득한 반응이 올라왔고, 그 반응에 미다스가 대답했다.
“이럴 바에는 몬스터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게 낫겠네요.”
그 말과 함께 미다스가 소리쳤다.
“몬스터가 너무 많아서 도움 필요하신 분, 도와드립니다.”
BJ대마도사의 헬퍼 서비스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
갓워즈에서 게임 오버에 따른 페널티는 꽤 셌다.
그런 이유로 갓워즈의 플레이어들은 생존에 많은 노력 그리고 투자를 했다.
헬퍼 서비스, 문자 그대로 게임 오버를 앞둔 플레이어를 도와주는 서비스가 성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 서비스를 기반으로 탐험가 길드가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게임을 하다 보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 베푼 은혜가 내일 얻을 수혜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게임 플레이 도중에 헬퍼 역할을 수행하는 건 이상할 거 없었다.
- 헬퍼? BJ대마도사가?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러나 BJ대마도사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 BJ대마도사라면 헬퍼 수준이 아니잖아?
- 헬퍼라기보다는 버스 기사지.
일단 너무 강했다.
운전기사로 운전 실력이 좋은 사람이 오면 좋지만, F1 레이서가 오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 아니, 그보다 지금 레이드 레이스 중이잖아? 그런데 지금 헬퍼를 하겠다고?
무엇보다 지금 BJ대마도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중원 길드를 상대로 매우 중요한 시합을 진행 중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보스 몬스터에 닿아야 마땅한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를 도와준다?
그것도 고작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이 말했다면 웃기지도 않았을 말.
- 그런데 보고 싶긴 하다.
- 재미있긴 하겠네.
- BJ대마도사라면 이런 또라이 짓 해도 이상할 건 없잖아?
한편으로는 BJ대마도사이기에 시청자들은 그의 발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 사냥터 난이도 보니까 할 거 다하고 레이드 레이스 해도 늦지 않을 듯?
ㄴ 솔직히 이대로 가면 다 뒈지고 BJ대마도사만 살아남을 거 같음. 레이스가 무의미한 수준이잖아? 지금 중원 길드 애들도 죽는 소리 뱉던데?
ㄴ 맞아, 중원 길드 이미 2명 게임오버 당함.
ㄴ 듣고 보니 그러네?
그라면 가능한 일이었을뿐더러, 솔직히 말해서 레이드 레이스보다 재미있어 보였으니까.
그 때문인지 미다스의 발언에 시청자들이 나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미다스 입장에서는 바라던 바였다.
“플레이어 몇 분 도와드린다고 딱히 레이드 레이스 질 것 같지도 않네요. 그럼 도와드려야죠. 제가 또 도움 필요하신 분 보면 그냥 못 지나치는 도덕심의 소유자거든요.”
물론 미다스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봉사 정신으로 헬퍼를 자처하는 건 아니었다.
‘여기서 운석 충돌 지점까지 그냥 다이렉트로 가는 건 자살행위야.’
현재 미다스가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그가 운석 충돌 지점,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리라 예상되는 지점까지 전력으로 달리는 상황이었다.
전력으로 달리면 당연히 그 자체만으로도 전력이 소모되고,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시간 좀 벌면서 몬스터 숫자를 줄여야지.’
무엇보다 안정적인 사냥을 위해서는 주변 몬스터 숫자를 줄여야 하는데, 헬퍼만큼 좋은 건 없었다.
어쨌거나 미다스가 돕는 거지, 혼자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플레이어도 이 이상 줄어들면 안돼.’
또한 그렇게 미다스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남아서 몬스터를 줄여줄 게 분명했다.
헬퍼 역할이 여러모로 이득인 셈.
‘어차피 중원 길드 쪽도 단숨에 닿지 못해.’
결정적으로 이 선택을 내린 가장큰 이유는 중원 길드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단숨에 보스 몬스터 사냥에 성공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곳은 완주, 그 자체조차 힘든 무대였으니까.
그렇기에 미다스는 망설임 없이 재차 말했다.
“라이징 스타 채널에 말합니다, 제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으면 말해주세요. 실력 발휘 좀 해드릴 테니까.”
3.
- 실력 발휘 좀 해드릴 테니까.
BJ대마도사의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라이징 스타 채널 라이브 방송실 분위기는 폭탄이 터진 듯한 분위기였다.
살아있는 것이 전부 죽은 듯, 쥐 죽은 소리만 남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헬퍼? 레이드 레이스 도중에?’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
툭툭!
그러한 상황 속에서 박영준 역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민을 하는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역시 BJ대마도사야.’
지금 박영준이 하는 고민이 그에게 무척이나 즐거운 고민이라는 증거였다.
‘이런 식으로 중원 길드와 임시 동맹을 꾀하다니.’
일단 박영준은 BJ대마도사의 의도가 중원 길드와 임시 동맹을 맺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 상황이라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보스 몬스터 레이드 레이스를 하는 두 경쟁자가 손을 잡는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 .
‘지금은 손을 잡아야 해.’
달리 말하면 지금 BJ대마도사와 중원 길드가 처한 상황은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의 지옥이 펼쳐진 상황.
‘이런 곳에서 서로 경쟁이 붙었다면 둘 다 파멸이다.’
그런 지옥에서 BJ대마도사와 중원 길드가 서로 이렇다 할 접점 없이 치킨 레이스를 펼친다면, 그 끝은 결코 좋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이 둘이 바로 웃으면서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손에 손을 잡는다는 게 가능할 리 만무.
그래서 BJ대마도사가 여지를 준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라고. 그리하면 잡아주겠다고.
‘보통 경우라면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물론 단둘이 있다면 손을 내밀 리 만무했다.
그러나 이곳, 운석 충돌 필드에 있는 건 BJ대마도사와 중원 길드만이 아니었다.
나름 세력을 구축한 1티어급 길드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을뿐더러, 그들이 있었다.
‘탐험가 길드가 헬퍼 요청을 하면 골치 아파지겠지.’
탐험가 길드.
만약 그들이 BJ대마도사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면, 그래서 손을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이렇게 항변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드 레이스 도중에 다른 길드와 손을 잡는 게 말이 되냐!
‘그거 가지고 태클 걸면, 할 말은 이쪽이 더 많으니까.’
하지만 과연 혼자서 신수와 가디언을 이끌고 싸우는 BJ대마도사를 상대로 무려 2개 길드, 50인 파티가 왜 다른 길드와 손을 잡느냐고 말한다면 시청자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그 결과에 이르렀을 때 박영준이 머리를 두드리는 것을 멈춘 후에 직원을 향해 말했다.
“중원 길드에 전화 좀 걸어.”
“중원 길드요?”
“응, 중원 길드.”
대체 이 상황에서 왜 그곳에 전화를 해요? 라는 질문을 담은 부하 직원의 표정에 박영준이 친절히 답해줬다.
“거기다 전화 걸어서 헬퍼 필요 없냐고, 질문 좀 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