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 76화. 대격변 (2). >
4.
축구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지루한 일이었다.
축구에 깊은 관심이 있는 이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그렇기에 축구에 그냥 적당한 관심이 있는 이들은 순간적인 이슈에 반응하고는 했다.
누군가 골을 넣는 순간, 그동안 경기를 보지 않았던 이들도 경기를 보는 것처럼.
이번 BJ대마도사와 중원 길드의 매치도 마찬가지였다.
- 중원 길드가 어비스 길드 기록 깼다!
- 3분 35초! 1분 단축했어!
중원 길드의 압도적인 신기록 경신!
그 실시간 속보가 라이브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지 않고 있던 이들을 자극했다.
- 진짜?
- 와, 그게 가능해?
자극을 받은 이들은 당연히 라이브 방송에 접속했다.
그로부터 약 2분 후, 또 한 번 소식이 들렸다.
- BJ원콤맨 등장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식이.
- BJ원콤맨이 뭐야?
BJ대마도사 새로운 별명!
ㄴ 무슨 의미인데?
ㄴ 마법 원콤으로 갈기 하이에나 싹 다 쓸어버린다는 의미!
ㄴ 뭔 개소리야?
그 소식 앞에서는 이제 이벤트 매치에 관심이 없던 이들의 관심도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1,500만 명을 돌파했군.”
BJ대마도사의 라이브 방송 시청자 숫자 역시 치솟았다.
“이 기세라면 2천만 찍는 건 일은 아니겠어.”
여러모로 놀라운 일이었다.
“뭐, 앞으로 늘어날 속도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지만.”
그러나 이마저도 앞으로 시작될 상승세를 생각하면 우스운 수준이었다.
적어도 멀린이 보기에는 그랬다.
이번에 BJ대마도사가 보여준 것은 그저 단순히 한 번의 콤보로 몬스터를 잡는다,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이건 문자 그대로 게임 체인저였다.
이제까지 권력자들, 포식자들이 만든 룰을 단숨에 바꾸는 게임 체인저!
“앞으로 BJ대마도사는 1티어급 길드들도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
만약 BJ대마도사가 그러한 힘을 게임의 판을 바꾸는데 쓰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대격변이 올 터.
이미 희생자는 등장했다.
당장 중원 길드, 자금력으로는 1티어급 길드조차 뛰어넘는 그들이 BJ대마도사에게 잡아먹혔다.
물론 아직 BJ대마도사는 기존의 룰을 바꾸겠다는 것을, 대격변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건 아니었다.
중원 길드를 먹어치운 것은 그들이 먼저 공격했으니 그랬을 뿐.
- 이것으로 일곱 번째 무리를 처치했으니, 조만간 샌드 하이에나가 절 찾아오겠네요. 샌드 하이에나 잡는데 10분 이상 걸리면 그 시간부터 라이브 방송 은퇴합니다!
지금 후원을 거듭하던 큰손이 갑자기 후원을 멈추고 상황을 주시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과연 BJ대마도사가 그 이빨로 자신들을 위협하면서 원하는 바를 요구할 것인지.
아니면 그 이빨로 자신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후에 뱃가죽 속에 있는 것을 강제로 먹어치울 것인지.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그렇게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멀린의 귓속으로 라이브 방송 이후 단 한 번도 들리지 않던 엠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화, 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5.
“샌드 하이에나 잡는데 10분 컷! 보여드리겠습니다.”
말을 뱉은 미다스가 속으로 숨을 골랐다.
‘어휴, 힘들어 죽겠다.’
사냥을 시작한 지 24분째.
당연한 말이지만 쉼 없이 20분 넘게 사냥을 한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이렇게 빠를 줄이야.’
더욱이 미다스의 20여 분은 남들과 달랐다.
보통 파티에게 20여 분이란 시간은 갈기 하이에나 2개 무리 혹은 3개, 아주 실력이 좋다면 4개 무리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미다스에게는 무려 7개나 되는 무리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포션 소비량도 그렇고.’
물론 포션 소비량도 그만큼 많았다.
남들보다 더 많은 거리를 갔으면, 더 많은 기름이 소모되는 건 필연적인 법이니까.
하물며 미다스는 현재 에너지 효율이 그렇게 좋은 상태도 아니었다.
좋기는커녕 마력 소모량 50퍼센트 증가라는 어마어마한 페널티를 얹고 있는 상황.
‘인벤토리에 있던 거 거의 다 썼네.’
현재까지 쓴 포션값만 하더라도 현금으로 따지면 돈 천만 원을 넘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힘든 걸 내색할 수는 없지.’
결정적으로 미다스는 이러한 한계 상태에서 힘든 것을 내색할 수 없었다.
“오늘 먹은 포션값이 라이징 스타 채널 회식비보다 많이 나오겠네요. 생각보다 많이 안 나오네요.”
도리어 그 한계 상태에서 미다스는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력으로 달리는 마라토너가 사람들을 향해 브이를 해주고, 미소를 지어주는 격.
솔직히 평소라면 도중에 휴식을 요청하거나 혹은 저도 모르게 지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시청자 숫자 1,660만 명.’
단숨에 1,500만 명을 넘어서 2천만 명으로 향하는 시청자 숫자가 미다스에게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여기서는 밟아야 해.’
지금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고, 쉴 때가 아니라 자신의 전력을 보여줄 때임을.
미다스가 지금 전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유는 그뿐이었다.
‘끝까지 풀악셀이다!’
그리고 그 이유면 충분했다.
그런 미다스의 눈에 먼 곳에서 모래 폭풍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왔다.’
샌드 하이에나.
개척 퀘스트를 받은 이들, 그중에서 가장 빨리 갈기 하이에나 무리를 처치한 이들만이 마주할 수 있는 미들 보스 몬스터.
케이크 위의 딸기 같은 가장 값진 존재.
그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샌드 하이에나가 오는군요.”
갈기 하이에나 무리를 가장 잘 잡은 파티조차도 샌드 하이에나를 상대로 전멸을 당하는 경우도 없진 않았으니까.
그래서일까?
미다스도 이제는 굳은 표정을 지었고, 시청자들도 그 사실을 눈치 챘다.
- BJ대마도사 표정이 심각한데?
- 샌드 하이에나가 쉬운 몬스터는 아니니까.
- 갈기 하이에나 잡는데 모든 힘을 다 쓰고, 샌드 하이에나 상대로 거짓말같이 패배하는 그림은 의외로 자주 나오지.
BJ대마도사에게도 샌드 하이에나는 쉽지 않으리란 것을.
“일단 샌드 하이에나와 전투를 앞두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다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부터 너무 잔혹한 방송이기 때문에 15세 미만 어린이들은 부모님 몰래 보세요.”
6.
샌드 하이에나.
문자 그대로 모래로 만들어진 하이에나로, 사실 외형만 하이에나일 뿐 그 크기는 하이에나 수준이 아니었다.
몸길이가 무려 15미터!
다리부터 머리까지 높이만도 무려 3미터에 이르는, 그야말로 몬스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괴물이었다.
더욱이 모래로 만들어진 몸뚱이는 플레이어들에게 이렇다 할 꼼수를 용납지 않았다.
공략 방법은 오로지 하나, 데미지 딜링만으로 모래를 덜어내는 것뿐.
하물며 개척자의 땅, 황무지처럼 그 어떤 거슬릴 것 없는 드넓은 무대는 플레이어들에게 몸을 피할 장소나, 도망칠 구석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때문에 개척자의 땅에서 사냥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이 게임은 쓰레기 게임이라고.
퍼엉!
물론 미다스에게는 예외였다.
아니, 예외 정도가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플레이어들에게 모든 껄끄러운 요소들, 샌드 하이에나에게 유리했던 요소들은 도리어 미다스에게 유리한 요소가 됐다.
“이야, 덩치가 크니까 던지는 족족 맞네!”
일단 거대한 덩치는 미다스에게 있어서 그냥 거대한 과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거슬리는 것도 없고.”
드넓은 황무지란 무대는 미다스에게 있어서 최고의 무대.
“딜링은 뭐……."
마지막으로 꼼수 따윈 용납지 않은 채 오로지 데미지 딜링만이 필요하단 요소는 미다스만을 위한 요소였다.
요소 정도가 아니었다.
여러 페널티를 짊어진 대가로 이제는 평소보다 2배 이상의 데미지 딜링이 가능해진 상태.
그런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거리를 벌린 후에 이루어지는 미다스의 포격, 캐논 스타일의 공격이 발휘하는 데미지는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사역마가 아이스 애로우를 사용합니다.]
[사역마가 파이어 애로우를 사용합니다.]
심지어 이제는 그런 미다스의 양 옆에서 두 개의 사역마가 미다스를 대신해 애로우 계열 마법을 사용해주는 상황.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왕!
거대화 그리고 금강불괴 상태인 럭키가 사생결단 상태에서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샌드 하이에나와 밀리지 않는 자웅을 겨루었다.
“주인님을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그리고 그렇게 럭키가 샌드 하이에나의 어그로를 끄는 사이 무장을 마친 골드와 실버가 샌드 하이에나의 틈을 쉼 없이 찔렀다.
미다스를 배제하더라도 데미지 딜링은 끔찍한 수준.
- 샌드 하이에나 몸이 줄어드는 게 육안으로 확인하는 건 처음이야.
ㄴ BJ럭키가 최소 10인분은 하니까.
ㄴ 그리고 BJ골드도 최소 10인분은 하지.
ㄴ 여기에 BJ실버도 최소 10인분 할 듯.
BJ대마도사는 인분이고.
보는 입장에서는 감탄을 넘어 오싹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던 미다스가 멈추었던 말을 마저 했다.
“……딜링은 좀 별로네요.”
그 순간 채팅창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 헐, 지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 지금 데미지 딜링이 별로라고?
- BJ대마도사, 양심 보소!
- 김민수 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셔서 BJ대마도사 하향 좀요!
이 말도 안 되는 데미지 딜량의 당사자 본인 입에 불만족스럽다는 대답이 나오다니?
그러한 의문에 미다스가 왼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만약 양손이 자유로우면 순간 데미지 딜링이 2배는 될 텐데 말이죠. 진짜 아쉽네요."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 그러네?
- 양손으로 던지면 더 나오긴 하겠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시청자들은 오히려 굉장히 진지하게 그 발언을 받아들였다.
- 설마 투핸드 스킬 같은 걸 손에 넣은 건가?
- BJ대마도사라면 모르지. 어떤 스킬을 손에 넣어도 이상할 건 없으니까.
- 어쩌면 투핸드가 아니라 팔이 네 개로 늘어나는 스킬을 준비했을 수도 있어.
- 평생 솔로로 다른 사람 손 없이 살아갈 BJ대마도사에게 꼭 필요한 스킬이네!
이제까지 BJ대마도사는 증명했으니까.
자신에게는 한계가 없음을.
물론 미다스가 진심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허세 좀 부려야 광고주분들도 좋아하시지.’
광고주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끊임없는 이슈거리였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떡밥을 던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떡밥은 이럴 때 던져야 했다.
그냥 갑자기 던지면 그 떡밥은 쉰 떡밥이 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시청자들이 달라붙어 열광하는 상황 아닌가?
미다스 입장에서는 최고의 상황이었다.
‘그보다 왜 이렇게 큰손분들이 조용하지?’
단 하나, 아즈모를 비롯해 이제까지 큼지막한 후원을 해주던 이들의 부재를 뺀다면.
‘너무 조용한데?’
물론 그들이 자신보다 훨씬 바쁜 이들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잠잠한 것은 처음.
미다스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내가 그분들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허나, 상황이 어떻든 간에 게임은 계속되어야 하는 법.
퍼엉!
그렇게 미다스가 파이어볼을 던지는 순간, 샌드 하이에나의 몸이 그대로 우수수 무너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샌드 하이에나의 존재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도 들끓었다.
다들 알고 있는 탓이었다.
- 미친, 전투하고 4분 되고 3페이즈 돌입했어!
- 3페이즈? 그럼?
- 거대화다!
이제 샌드 하이에나의 가장 골치 아픈 모드인 모래 거대화 모드가 발동하리란 것을.
- 어떻게 하려나?
- 여기서 잘못하면 전멸하던데.
자연스레 사람들은 이제까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BJ대마도사가 이 3페이즈라는 난관을 얼마나 쉽게 뚫을지, 그에 대한 기대감을 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사라졌던 샌드 하이에나가 이제는 더 거대한 몸집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이미 거대했던 샌드 하이에나가 거대화 스킬을 통해 무지막지한 괴물이 되는 순간.
그러한 거대한 괴물을 향해 미다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메모라이즈 선더볼트.”
꽈릉!
그 외침을 끝으로 등장한 벼락 한 줄기가 그대로 샌드 하이에나를 관통했다.
[샌드 하이에나를 처치했습니다.]
[샌드 하이에나를 사냥한 자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단숨에 전투가 끝나는 순간.
- 아, 선더볼트가 있었네.
그 사실에 들끓었던 시청자들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마력이 5퍼센트 이하가 됐습니다.]
‘어후, 뒈질 뻔했네.’
그리고 미다스는 들리는 시스템 알림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블레이즈 골렘까지 꺼냈으면 진작에 마력 바닥났겠네.’
보기에는 압도적인 결과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었던 셈.
‘마력 부분을 좀 해결해야겠어.’
그렇게 미다스가 미소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준비할 무렵.
[예화 님이 10,104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예화 : 제 패배를 인정하죠.]
미다스에게 후원 내역 하나가 전달됐다.
예화!
조금 전 미다스와 싸웠던 중원 길드 마스터의 등장에 채팅창이 다시 한 번 아수라장이 됐다.
- 와, 예화가 1만 달러 쐈네?
- 무슨 의미이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조금 전까지 경쟁했던 이가 이토록 거금을 후원하는 건 평범치 않은 일.
"중원 길드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상황을 마주한 미다스는 딱히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만족하셨으려나?’
이번 이벤트 매치는 중원 길드의 요구로 이루어진 매치였고, 미다스는 그 매치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니까.
‘다음에도 의뢰 한 번 더 해주시면 감사할 텐데.’
의뢰인이 고맙다는 말을 딱히 다른 이유로 해석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아, 그렇지.’
그때 무언가를 떠올린 미다스가 말했다.
“참, 제가 이겼으니 그때 약속한 것처럼 라이징 스타 채널에 회식비 쏴주는 건 잊지 마세요.”
‘라이징 스타 채널분들 회식비를 잊을 순 없지.’
이 영광 속에서 가장 큰 지원을 해준 라이징 스타 채널에 대한 배려를 잊어서는 안 되는 법!
그 요구에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예화 님이 10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오케이, 1만…… 응? 1만 달러가 아니네?’
그 대답에 미다스가 기겁하는 사이 후원 채팅이 들렸다.
[예화 : 약속한 물건은 직접 만나서 드리겠어요.]
사냥터 밖에서의 미팅 요구.
그 요구에 미다스는 고민하지 않았다.
“아, 그렇게 하죠.”
‘당연히 부르시면 찾아가야죠!’
새로운 큰손의 말을 거절한다는 것은 미다스의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