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 72화. 개척자의 땅으로 (1). >
1.
“실버, 소형화 해제.”
미다스의 주문에 소형화 상태였던 실버의 몸이 빠르게, 4미터에 이르는 거구가 되었다.
[아이템이 해제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실버가 몸에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들이 주인을 잃은 채 바닥에 떨어졌다.
미다스가 그렇게 떨어진 아이템을 살펴본 후 실버를 바라봤다.
‘소형화 모드에서만 착용이 가능하고, 평소 형태나 거대화가 되면 해제되는구나.’
소형화 모드에서만 아이템 착용이 가능하다.
간략하기 그지없는 정보.
‘장난 아닌데?’
그러나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엄청났다.
‘이러면 어지간한 중형급 보스 몬스터를 가디언으로 삼아도, 아이템 착용이 가능다는 거잖아?’
소형화 모드의 경우에 능력치는 일반 모드일 때의 80퍼센트에 불과했으나, 아이템을 쓸 수 있다는 메리트를 더하면 그 20퍼센트 차이는 무시해도 좋았다.
실제로 그 때문에 미다스는 골드의 몸을 여전히 아이스 나이트인 채로 놔두고 있었다.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상위 보스 몬스터를 가디언으로 삼는 것보다 훨씬 유리했으니까.
즉, 이제는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골드야.”
“예, 주인님.”
“새로운 몸으로 바꾸자.”
“새 몸으로, 주인님의 전설을 위해 백골이 될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좋아, 준비해.”
“이 자리에서 바로 벗겠습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골드는 착용한 아이템을 해제하기 시작했고, 그사이 미다스가 고리 원숭이 첫째의 시체 앞에 섰다.
“아이템 루팅.”
[인벤토리에 2개의 아이템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템 루팅을 끝나는 순간 바로 그 시체를 골드의 새로운 몸으로 바꾸었다.
“소형화.”
이후 소형화 모드 상태로 바꾼 골드가 해제했던 아이템을 하나둘씩 착용하기 시작했다.
‘작을 때의 메리트는 없지만.......'
물론 이로써 미니 골드 모드에서 볼 수 있었던 압도적인 기동력은, 몬스터들의 허리 아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모습을 보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됐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 미다스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템 세팅만 제대로 해주면 얼마든지 메울 수 있다.’
그 부족해진 부분은 아이템으로 얼마든지 커버가 가능했으니까.
아니, 그 이상도 가능했다.
‘템 세팅만 제대로 해주면…….'
“어휴.”
그 대목에서 미다스가 잠시 생각을 멈추고 골드와 실버를 바라봤다.
“선배님, 멋진 모습이십니다!”
“그래, 이제 이 새로운 몸이 닳고 닳을 때까지 주인님의 영광을 위해 싸우자!”
“예!”
서로 의지를 다지는 둘을 바라보는 미다스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골드에 실버에 정령 전사 애들까지…….'
이제부터 이들을 위한 아이템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한숨이었다.
‘버는 건 늘어나는데, 쓰는 건 더 늘어나네.’
헥헥!
그렇게 거듭 한숨을 내뱉는 미다스의 곁으로 럭키가 다가와 머리를 비볐다.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듯이.
미다스가 그런 럭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럭키야. 이번에 너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지. 정말 고맙다. 우리 사이 이대로 가자.”
왕!
주인의 손길에 즐거운 기색을 드러내는 럭키, 그런 럭키의 머리를 지나 몸을 쓰다듬으며 미다스가 말을 마저 뱉었다.
“이대로, 우리 럭키는 굳이 아이템 같은 거 없어도 강하니까…… 이대로 가자. 알겠지?”
왕!
“아이템 따위는 필요 없다고?”
왕!
“그래, 역시 럭키는 멋지다니까.”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친 미다스가 이내 정신을 바로 잡았다.
푸념은 이제 끝.
미다스가 지금 자신이 가장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했다.
“퀘스트창.”
퀘스트창을 활성화한 후에 가장 최근에 갱신된 퀘스트 항목 홀로그램 창을 띄었다.
[제단 파괴]
- 퀘스트 등급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18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무대나무 위에서 제단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찾아 내려간 후 제단을 파괴하라!
-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보상 : 스킬 카드북(레전더리 에픽)
!퀘스트 완료 시 ‘개척자의 땅’ 진행 가능.
그렇게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미다스가 고개를 돌려 무대나무 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보이는 붉은빛 한 줄기에 미소를 지었다.
‘저기군.’
그 순간이었다.
"응?"
‘자, 잠깐. 뭐?’
무언가를 떠올린 미다스가 시선을 돌려 다시금 황급히 퀘스트창 내용을 확인했다.
“레전더리 에픽?”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보상 항목을 다시금 확인한 미다스가 기겁했다.
왕!
“주인님, 무슨 일이십니까?”
꾸우?
기겁하는 주인의 모습에 곧바로 럭키와 골드, 잭팟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을 보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 반응에 황급히 상황을 얼버무리는 미다스.
그 순간 미다스는 볼 수 있었다.
‘레전더리 에픽이라니, 지금 이게 나오면…….'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는 두 개의 구체, 사역마들을.
‘아.’
2.
아름드리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무대나무, 그러한 무대나무 기둥 중 텅 비어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빈 구멍이 제단으로 가는 입구였다.
“후우."
그 구멍을 미끄럼틀 타듯 타고 내려온 미다스를 마중한 것은 무대나무 아래에 있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축구장 하나 크기의 거대한 공간.
[이름 잃은 신의 제단에 도착했습니다.]
그 공간에 이른 미다스의 귓속에 알림이 들렸다.
그러나 미다스는 그 알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그 거대한 공간 안을 오롯하게 차지하고 있는 비석 하나.
“주인님, 저번 그것과 흡사합니다.”
이어진 골드의 설명에 미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으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레드 고블린 부족장을 잡은 후에 본 비석하고 똑같아.’
잃어버린 사원, 그곳에서의 기억.
“그때 주인님이 나서서 저희를 보호해준 것이 떠오르네요.”
더불어 그 당시에 저 비석이 가루가 되어 자신에게 다가오던 것에 놀랐던 기억도 떠올렸다.
“선배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때 주인님께서 그 위협으로부터 몸소 우리를 지켜주셨지! 이렇게 양팔을 벌리시며!”
그때를 기억하며 자랑스럽게 후배에게 제스처를 포함한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 골드의 모습에 미다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골드야, 그런 건 좀 잊어주렴.”
허나 그 말에 골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어찌 그 용맹하신 주인님의 위용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죽을 때까지 기억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오오,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그 모습에 미다스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저 걸음을 내디딜 뿐.
그때 비석이 그때처럼 가루가 되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들리는 알림과 함께 검은 가루가 미다스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냐?’
물론 이번에 미다스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오는 것을 받아들일 뿐.
그러한 미다스의 가슴 속으로 이내 검은 가루들이 빨려 들어왔다.
[???의 알이 이름 잃은 신의 힘을 흡수했습니다.]
[제단을 파괴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이윽고 들린 알림, 그 알림에 미다스가 훗! 하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인벤토리를 활성화했다.
[???의 알]
!용의 알
!부화를 위해서는 ‘이름 잃은 신의 힘’이 필요
!부화도 : 33퍼센트
그리고 부화도를 확인한 미다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어느새 33퍼센트.’
이제 부화까지 남은 건 67퍼센트, 당연히 이제는 미다스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2/3쯤 남은 건가?’
100퍼센트가 채워졌을 때, 과연 그게 갓워즈란 게임에 어떤 의미를 갖출 것인지.
그 순간 갓워즈란 게임이 끝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무대가 등장할 것인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자신이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그렇게 고민하던 미다스가 고개를 들어, 비석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곳에 떨어진 이번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하는 순간 미다스가 각오를 다졌다.
‘갈 데까지 가봐야지.’
그 각오와 함께 미다스가 바닥에 떨어진 레전더리 에픽 스킬 카드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미다스가 망설임 없이 레전더리 에픽 스킬 카드북을 펼치자, 곧바로 카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이 가진 레전더리 스킬들!
그중에 미다스의 눈이 단 하나의 스킬 카드에 그대로 꽂혔다.
[사역마]
- 등급 : 레전더리 에픽
- 스킬 효과 : 사역마를 소환한다. 소환한 사역마는 주변을 탐색하며, 주인을 대신해 마법을 캐스팅하며, 주인을 대신해 캐스팅한 마법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캐스팅한 마법으로 대신 적을 공격.’
그리고 추가된 옵션.
물론 알고 있는 옵션이었다.
이미 앞서서 레전더리 에픽 스킬을 얻는 과정에서 다른 레전더리 에픽 스킬들이 어떤 옵션인지는 확인한 바.
그렇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하나면 몰라도 사역마가 두 개나 되는데, 나를 대신해서 마법을 써준다면 전력 증가는 최강이다.’
망설임 없이 미다스가 손을 뻗어 스킬 카드를 골랐다.
그 순간이었다.
쿠쿠쿠!
선택을 마치는 순간 미다스가 있는 드넓은 공간에 거센 소리와 함께 먼지들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놀라는 미다스, 그의 귓속으로 알림이 들렸다.
[제단이 파괴됩니다.]
그제야 비로소 미다스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자신이 해야 하는 퀘스트 타이틀이 제단 파괴라는 것을.
‘젠장, 이 빌어먹을 게임!’
그것을 보는 순간 미다스가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핀 후 빛나는 붉은 빛 구멍을 향해 소리쳤다.
“애들아, 따라와!”
3.
쿠쿠쿠!
굉음과 함께 땅이 바닥으로 꺼졌다.
자연스레 그 땅 위를 딛고 뻗어있던 무대나무 역시 땅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꺼졌다.
뿌드득!
그 과정에서 거대한 무대나무의 가지들이, 기둥들이 서로 부딪치며 찢어지는 소리들이 숲을 뒤흔들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저기 땅이 꺼진다!”
근처에 있는 이들은 물론 먼 곳에서 사냥을 하던 플레이어들까지 화들짝 놀랄 정도.
“빌어먹을.”
그 소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미다스가 쓴소리를 내뱉으며 조금 전 자신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폭삭 무너진 그곳을.
왕!
“그래, 럭키야. 진짜 게임오버 당할 삔했네.”
그곳을 바라보는 미다스의 표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만약 이곳에서 게임오버를 당했다면, 정말 갓워즈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게임오버가 되었을 터.
‘아니, 이렇게 파괴되는 거였으면 파괴하라가 아니라 파괴된다, 라고 표현을 해야지 않나? 진짜 빌어먹을 게임이라니까.’
그 끔찍한 상상을 하던 미다스의 머리 위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해냈군!"
그림자의 주인공은 하늘 가오리 그리고 그 하늘 가오리에 올라탄 NPC히투였다.
이내 하늘 가오리가 착지하고, 그 위에 올라탄 NPC히투가 미다스를 향해 말했다.
“일단 타게. 가면서 이야기를 하지.”
그 말에 미다스 일행이 하늘 가오리에 올라탔고, 곧바로 하늘 가오리가 소리 없이 날아올랐다.
그 하늘 가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미다스가 한 번 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그냥 액땜했다고 치자. 앞으로 좋은 일만 있겠지.’
그 후 NPC히투를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개척자의 땅, 그곳에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 생긴 듯하네.”
4.
“개척자의 땅, 거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고?”
멀린의 질문에 엠마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멀린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거기 이상한 일이 벌어질 만한 건수가 있나?”
“중원 길드 아시나요?”
"모를 리가 있나, 중국 굴지의 대부호 따님이 만든 길드인데.”
대답을 하던 멀린이 피식 웃었다.
“하물며 돈으로 스몰 파크 랭킹 1위를 산 최초의 플레이어인데, 모를 수가 없지.”
그러한 멀린의 입에 걸린 미소는 비웃음이었다.
“그녀 덕분에 탐험가 길드가 아주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지. 그때 처음으로 탐험가 길드가 잠시나마 부러워졌을 정도로.”
도박판에 들어온 돈 많은 호구를 바라보는 비웃음.
“중원 길드가 거액에 멤버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어요.”
“영입?”
“스몰 파크 랭킹, 그것도 한 자릿수 출신들을요. 개중에서 랭킹 1위를 얻은 이도 2명이나 영입했어요.”
이어진 말에 멀린이 입가에 걸린 비웃음을 지웠다.
지금 나오는 이야기가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파악했다는 증거.
“그리고 현재 홀딩에 들어간 듯해요.”
홀딩.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해 레벨업 사냥을 잠시 멈춘다는 의미의 단어,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멀린은 눈빛을 빛냈다.
이 순간 더 이상 중원 길드의 의도에 대한 추가 설명은 필요 없었다.
“혹시 엠마, 당신이?”
궁금한 것은 과연 이것마저 엠마가 의도하고 기획한 것인가, 하는 것뿐.
만약 정말 그랬다면 엠마가 가진 역량은 멀린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라는 의미일 테니까.
“아뇨, 전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듯해요.”
“자의적으로?”
“이제 그럴 만하잖아요? 정황상 BJ대마도사가 개척자의 땅에서도 솔로로 활동할 듯하니까. 그리고 개척자의 땅이잖아요?”
그 물음에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척자의 땅은 200레벨 플레이어를 위한 무대였으며, 갓워즈의 플레이어들에게 200레벨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그저 숫자만 남다른 게 아니었다.
캐릭터의 성장과 방향성이 크게 달라지는 구간 그리고 사냥터의 수준과 방식 역시 크게 달라지는 구간이었다.
“BJ대마도사가 좋은 먹잇감이긴 하지.”
그런 무대에서 만약 BJ대마도사가 솔로 플레이를 한다면, 그보다 좋은 트로피는 없을 터.
“그런데 BJ대마도사가 바보가 아니고, 상대해줄 리가 없잖아? 분명 솔로 플레이를 하되, 몸을 사릴 텐데?”
그만큼 BJ대마도사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터.
그러한 멀린의 의문에 엠마가 대답했다.
“아직 확정된 바는 아닌데, 중원 길드 쪽에서 현상금을 걸려는 모양이에요.”
“현상금? BJ대마도사한테?”
그건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우리들이 증명했잖아, 라는 말을 멀린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뇨, 자신들한테요.”
중원 길드, 그들이 준비해놓은 답은 다른 답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