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 62화. 돌아온 에이스 (1). >
1.
- 오늘 BJ대마도사 라이브 날 맞지?
ㄴ 맞아.
ㄴ 라이브 타이틀 공개됐어?
ㄴ 아직일걸?
ㄴ 아니, 뭔데 지금까지 꼭꼭 숨기는 거지?
BJ대마도사의 라이브 방송 날.
- 설마 오늘 라이브 방송한다고 해놓고, 힘들다고 라이브 취소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 그럼 진짜 방송 인생 끝나는 거지.
- 사과 방송이라도 하면 했지, 라이브 안 하진 않을 듯.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날, 많은 이들이 BJ대마도사의 방송에 관심을 기울였다.
- 강행하면 오히려 더 안 좋을 거 같던데.
ㄴ 소문을 들어보니까 안개의 숲에서 뭔가 한다던데?
ㄴ 안개의 숲에서 사냥을 한다고? 미친 거 아니야?
ㄴ 이번에 진짜 망할지도 모르겠네?
그러한 관심은 기존과 관심과 달랐다.
기존의 관심이 놀라운 것에 대한 기대감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번에는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우려 혹은 기대감에서 나왔다.
- BJ대마도사 부담감 장난 아닐 듯.
여러모로 당사자 입장에서는 부담감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현우야.”
“왜?"
“오늘 표정이 왜 그래?”
“표정?”
당연히 당사자의 기분은 평소와 같을 수 없었다.
정현우의 표정이 평소와 다른 건 그 때문이었다.
“실실 쪼개고 있잖아?”
정현우, 그의 표정은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들떠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 표정이 드러난 모양이네. 너무 자신이 넘쳐도 문제라니까.’
그만큼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이어진 형의 질문에 정현우는 어느 때보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어제 내가 집에 오는 길에 엄청 예쁜 여자한테 헌팅 당했거든. 그래서 오늘 데이트하러 가.”
그 말에 정태우가 잠시 정현우를 지그시 바라본 뒤 말했다.
“현우야, 네 발로 병원 갈래? 택시 불러줄까? 지금 내 손가락 이거 몇 개로 보여?”
“에이, 진짜! 나 꾸미고 나가면 연락처 질문 받고 그러거든?”
“구급차가 좋겠다. 119불러줄게. 좀 쉬고 있어.”
그런 형의 반응에 정현우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병원은 형이 가. 오늘 재활 훈련 받는 날이잖아?”
재활 훈련이란 말에 정태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표정의 의미를 정현우가 모를 리 없었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재활 훈련 비용을 동생에게 부담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한없이 미안하리란 것을.
그러한 형의 모습에 정현우가 웃으며 말했다.
“비싼 돈 내고 받는 건데 좀 제대로 받아. 응? 집에 와서 개인 훈련도 잊지 말고. 내가 그 돈 벌려고 요즘 무리하는 거 알고 있지? 그러니까 좀 부담 좀 느끼고 빡세게 훈련 받아. 뽕을 뽑으라고.”
그때였다.
“삼촌! 아빠! 유치원 다녀오겠습니다!”
조카인 정혜린의 해맑은 외침에 정태우가 정현우를 향해 눈짓을 한 후에 휩체어를 끌고 문 앞으로 이동했다.
딸아이가 가는 길, 같이 배웅해줄 모양.
그 부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정현우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재활 훈련으로 체력과 몸 상태가 돌아오면…… 수술해야지.’
그러한 정현우의 머릿속에 수술을 받고,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간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휠체어가 아니라 제 발로 혜린이의 입학식에 참가한 형의 모습이.
‘집도 이사해야지.’
그리고 지금 거실에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현관문이 지척에 보이는 작은 집이 아니라 더 큰 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열심히 벌어서.’
그런 의미에서 오늘 라이브 방송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아이템 구매에 모은 돈의 절반 이상을 사용했을뿐더러, 이번 라이브 방송에서 던전 공략에 실패한다면 이제까지 이룩한 명성의 절반 이상도 날아갈 터.
무엇보다 이번 라이브 방송의 결과가 참담하다면 이제까지 BJ대마도사를 물어뜯다 실패한 이들이 전부 달려들 터였다.
1티어급 길드들!
자신들의 명성에 똥칠을 한 BJ대마도사의 약점을 그들이 그냥 두고 볼 일은 없었다.
여러모로 중요한 일을 이제는 고작 2시간 남짓 앞두고 있는 정현우가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어떤 떨림도 없는 손을.
그것을 본 정현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열심히 벌어야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이 넘치는 미소를 지은 채 정현우가 집 밖으로 나갔다.
2.
열흘 만에 찾아온 BJ대마도사의 라이브 방송.
- 라이브 열렸다!
- BJ대마도사 라이브 시작됐다!
그 방송이 시작되는 순간 접속한 시청자의 숫자는 무려 5백만 명이 넘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청자 숫자,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앞서 말했듯이 열흘 만의 방송이라는 것.
- 오늘 BJ대마도사가 망한다면서요?
- BJ대마도사 개망하는 방송 보러왔습니다.
- BJ쫄보도사 가즈아!
그리고 지금 BJ대마도사가 이번 라이브 방송에서 최초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풍긴다는 것.
그러한 이유로 모인 시청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다름 아니라 안개였다.
- 안개의 숲인가?
- BJ대마도사 어디 있음?
그러한 의문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BJ대마도사입니다.”
목소리만이었다.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미다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목소리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 사실에 시청자들이 조롱을 내뱉었다.
- BJ대마도사 이제 쫄아서 방송도 못 나오는 거임?
- 그래, BJ대마도사는 됐고 BJ럭키님만 보여줘!
- 럭키님 어디 감?
- 골드님 보여 달라!
그러나 그러한 조롱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늘은 아즈모 님의 의뢰인 안개 미로 던전 공략 라이브 방송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개 미로.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채팅창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바뀌었다.
- 안개 미로? 설마 진짜 안개의 숲에서 사냥을 한다고?
안개의 숲.
이제까지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사냥터로 삼지 못했던 그곳에서 사냥을 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
더욱이 미다스가 말한 것은 안개의 숲이 아니라 안개 미로 던전이란 무대였다.
안개의 숲, 그 안에 존재하는 더 난이도 높은 무대에서 사냥을 한다는 의미.
- 와, 씨발 잠깐만? 진짜 안개의 숲이 사냥터야? 그냥 연출 위해서 안개의 숲에 있는 게 아니었어?
ㄴ 이러면 그동안 열렙할 만하네.
ㄴ 아무렴. 안개의 숲인데 열흘 동안 준비해야지. 가만, 그런데 사냥이 되긴 해?
이제까지 BJ대마도사의 기나긴 공백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물론 모두가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 되긴 뭐가 돼, 안개의 숲에서 사냥하면 돌아오지를 못하는데!
- 게임 오버 방송 가즈아!
오히려 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에 BJ대마도사의 파멸을 확신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다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대체 창성 길드는 이런 던전을 어떻게 발견한 거야?’
당장 미다스는 이 던전을 창성 길드가 발견했다는 사실부터가 이해 불가의 영역이었다.
본인이야 안개의 숲에서 돌아올 수 있는 아르비아의 나침반이 있다고 하나, 창성 길드에게 그런 나침반이 있을 리 만무.
‘이렇게 깊은 곳에 있는데?’
더욱이 안개 미로 던전은 안개의 숲 초입이 아니라, 제법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우연히 발견할 수밖에 없는 곳.
허나, 그 우연마저도 안개의 숲에서 길을 잃고 게임 오버 당할 것을 감수한 이들에게만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발견 후에 관리한 것도 골 때리네.’
심지어 창성 길드는 이 던전을 발견한 후 이곳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꾸준히 플레이어를 보냈다.
그럼으로써 안개 미로 던전의 위치를 거듭 파악하고, 관리했다.
그런 식으로 이 던전에 대한 공략 권리, 일차적인 권리를 고수해왔다.
달리 말하면 이 던전에 대한 공략 의지가 분명 존재한다는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던전은 공략되지 않은 상태였다.
‘던전 내용은 더 골 때리지만.’
첫 번째 이유는 던전의 특징이었다.
“안개 미로 던전의 특징은 간단합니다. 지금 시청자분들도 보이시는 이 빛의 길, 이곳을 벗어나면 길을 잃습니다. 안개의 숲과 같죠.”
안개 미로 던전의 미로는 벽이 있는 미로가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길을 벗어나면 돌아올 수 없을 뿐.
“미로답게 빛의 길에는 갈림길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로라는 표현 그대로 빛의 길에는 갈래가 있었다.
길을 잘못 들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의미.
벽이 없음에도 미로라는 단어가 붙기에 부족함이 없는 설정이었다.
물론 이러한 미로가 적용되는 건 플레이어뿐이었다.
“제가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이곳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는……."
이 안개 미로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
그 몬스터가 이 던전을 골 때리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였다.
“하이브리드입니다.”
하이브리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크르르!
곧바로 자욱한 안개 사이로 늑대 모습의 정령수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해주었다.
- 어? 뭐야?
- 반은 얼음이고, 반은 불이잖아?
얼음과 불, 두 가지가 절반씩 뒤섞인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미다스가 설명을 이어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빙결 속성 공격은 불타는 부위만, 화염 속성 공격은 얼음 부위에만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잘못 맞추면 데미지를 줄 수 없다!
- 미친 설정이네!
- 마법사 킬러잖아?
마법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쌍욕이 나올 법한 설정이었다.
- 정령수 상대로 마법사가 딜링 못하면 난이도 최소 2배 이상 오르는데?
더욱이 정령수란 몬스터는 마법사 클래스의 화력 지원의 중요성이 다른 몬스터들보다 훨씬 높았다.
[구스타프 님이 10,067달러를 후원했습니다.]
[구스타프 : 안개의 숲 퀘스트와 같은 설정이면 히트 앤 런은 쉽지 않지. 그렇다고 캐논 스타일도 쉽지 않고.]
개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점은 이곳이 그냥 일반적인 사냥터처럼 마법사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 그러네?
- 여기서는 치고 빠지기도 안 되잖아?
다른 사냥터라면 마법사 본인이 움직여서 몬스터를 맞출 부위를 확보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이동 범위는 빛의 길, 오로지 그 위뿐이었다.
물론 답은 있었다.
[라포 님이 10,068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라포 : 결국 럭키가 다 해주겠네. 역시 신수가 최고라니까.]
근접 딜러의 스페셜리스트가 된 럭키 그리고 골드가 전면에서 나서준다는 것.
- 역시 믿을 건 럭키 님뿐이네.
- 응, 골드 님 독무대.
- BJ대마도사는 또 들러리야?
- MC대마도사네.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관심이 럭키와 골드를 향하는 사이, 미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르!
그러자 불타오르는 모자가 미다스의 존재감을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 어?
- 저거?
그렇게 미다스의 새로운 아이템 세팅을 확인한 모든 시청자들이 곧바로 놀라며 말했다.
- 불타오르는 모자다!
- 불타오르는 모자라면, 설마 최근에 G베이에서 거래된 그 모자인 건가?
그리고 이내 몇몇은 말했다.
- G베이에 최근에 올라왔다 거래된 거라면, 어떤 병신 호구가 눈탱이 시세에 사간 그거 아니야?
ㄴ 눈탱이 시세?
ㄴ 어제 시세보다 겁나 비싼 값에 올라왔는데 누가 흥정 없이 그냥 바로 구매했었음!
불타오르는 모자에 얽힌 이야기를.
[구스타프 님이 10,069달러를 후원했습니다.]
[구스타프 : 진짜 돈이 썩어 넘치는 모양이네. 그걸 그냥 일시불로 구매하다니. 설마 정말 구매한 건가?]
구스타프마저 놀라며 내뱉는 질문에 채팅창이 아수라장이 됐다.
- BJ대마도사가 아니라 BJ흑우였어?
미다스 입장에서는 썩 좋지 못한 분위기였다.
이제는 세계적인 호구가 된 셈.
그러나 미다스는 그 사실에 기분 상하거나, 분노나, 짜증을 내뱉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분위기에 동조했다.
“뭐, 시세보다 무척이나 비싸게 사긴 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있었습니다.”
말과 함께 미다스가 소리쳤다.
“파이어볼.”
그 외침을 내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다스의 귓속으로 알림이 들렸다.
[캐스팅이 완료되었습니다.]
곧바로 캐스팅이 끝나고 미다스의 손바닥 위로 등장한 파이어볼.
미다스가 그 파이어볼로 적의를 드러내는 하이브리드 정령수의 얼굴을 향해 파이이볼을 던졌다.
퍼엉!
날아간 파이어볼은 그대로 얼굴, 개중에서도 얼음으로 된 왼쪽에 명중했다.
휘익!
그와 동시에 미다스의 손에 투사체 증가 옵션으로 등장한 두 번째 파이어볼이 등장했고, 미다스는 빠르게 표적을 향해 던졌다.
퍼엉!
그러자 들리는 강렬하기 그지없는 폭발음.
크헝!
그 폭발음과 함께 전방에 있던 정령수가 빠르게 미다스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거리는 기껏해야 20여 미터.
정령수의 능력치를 고려하면 있으나마나한 거리였다.
마음속으로 숫자 두어 개를 세면 좁혀질 거리.
- 전투개시다!
결코 전투를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 럭키는?
- 골드는?
- 잭팟은?
그 사실에 시청자들 모두가 하나 같이 골드와 럭키 혹은 잭팟의 존재를 찾았다.
하이브리드 정령수를 상대함에 있어 BJ대마도사의 활약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그러한 확신을 가지는 상황.
그러나 어디에서도 골드의 충성심 어린 외침이나 럭키의 힘찬 하울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잭팟의 귀여운 울음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파이어볼.”
들리는 건 오직 하나,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하이브리드 정령수를 앞에 둔 미다스가 두 번째 파이어볼을 캐스팅하는 소리만 들릴 뿐. 그 순간 일부는 깨달았다.
[아즈모 님이 10,07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BJ대마도사, 지금 파이어볼 쿨타임이 몇 초야?]
지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