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 60화.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3). >
8.
‘재료?’
재료가 부족하다는 알림에 미다스가 곧바로 고개를 들어 NPC아르비아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NPC아르비아는 바로 대답했다.
“뭘 봐?”
“아니, 그게……."
제 등에 찬 도끼보다 더 섬뜩하게 번뜩이는 NPC아르비아는 두 눈빛을 보는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는 여기서 질문을 한 자신의 머리통이 두 쪽이 나는 장면이 떠올랐으니까.
그와 동시에 미다스는 기억 하나를 더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그렇지!’
퀘스트 하나를 끝냈으니, 이제 새로운 퀘스트를 할 때임을.
‘다음 퀘스트 타이틀이 분해였지!’
그리고 그 퀘스트 타이틀이 무엇인지를.
‘그러니까 이제 다음 퀘스트에서 재료를 모아오면 아이템을 분해해서 능력을 추출해준다는 거네!’
그렇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린 미다스가 이제는 여유 있는 모습을 되찾은 채 말했다.
“제게 시키실 일이 있으신지, 그것이 궁금해서요.”
“시킬 일?”
그러한 미다스의 모습에 NPC아르비아가 찌푸린 눈살을 살짝 풀며 말했다.
“시킬 일이 있긴 하지. 쉽진 않겠지만.”
쉽지 않다!
그러한 경고에도 미다스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무슨 일이든 제가 목숨 걸고 완수하겠습니다!”
이제까지 해왔던 그 어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때보다 각오 가득한 모습, 그 모습에 NPC아르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법은 찾았지만 재료가 필요해.”
이어진 말.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항목에 새로운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알림에 미다스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분해]
- 퀘스트 랭크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15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아이템 분해를 위한 재료를 찾아보자.
-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보상 : 스킬 카드북(레전더리 에픽)
!퀘스트 완료 시 ‘정령왕의 파편’ 진행 가능
그리고 이내 뜬 내용을 보는 순간 미다스의 입가에 만연하던 미소가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굳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퀘스트 보상.
‘레전더리 에픽이라고?’
다시 등장한 레전더리 에픽 스킬 카드에 미다스의 머릿속으로는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퀘스트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퀘스트 난이도가 떠올랐다.
‘또 지랄 맞은 거 같은데?’
그 섬뜩한 느낌 속에서 미다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그 재료가 어디 매우 특이하고, 구석지고, 숨겨진 장소에 있는 건가요?”
그 물음에 NPC아르비아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해주었다.
“아니, 네가 한 번 가봤던 곳이야.”
그 대답에 미다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령의 숲인 모양이구나.’
무대가 정령의 숲이라면 솔직히 필드,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 리 없을 터.
그러한 미다스에게 NPC아르비아가 보다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안개의 숲.”
“예?”
“안개의 숲, 건너왔잖아? 재료는 그곳에 있어.”
이 세상에 쉬운 건 없다고.
9.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부류는 어디에나 있는 법.
하물며 법과 제도의 굴레를 벗어나, 죽어도 게임 오버 페널티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가상현실게임 속에서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령의 동굴 그리고 안개의 숲은 플레이어에게 매우 유혹적인 무대였다.
“정령의 동굴 한 손만 써서 내려가 본다!”
“그럼 난 발만 써서 내려가 본다!”
당장 정령의 동굴, 그 거대한 수직 동굴은 허무맹랑한 도전자들을 탄생시켰다.
“안개의 숲을 퀘스트 없이 지나간 사람이 없다고? 그럼 내가 가면 최초이겠네?”
“응, 내가 먼저 갈 거야.”
그리고 그 동굴에 오는 길목에 위치한 안개의 숲 역시 무수히 많은 무모한 도전자를 탄생시켰다.
인간의 멍청함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멍청한 인간이 얼마나 최악의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무대.
그중에서도 좀 더 최악인 쪽을 꼽는다면 안개의 숲이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퀘스트 없이 안개의 숲을 가로지른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좀 더 과장하면 깊게 들어가서 되돌아온 이조차 없었다.
‘빌어먹을.’
미다스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안개의 숲은 그런 곳이었다.
저승길!
그리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
‘진짜 쓰레기 게임이야.’
물론 미다스에게는 다른 플레이어에게는 남다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조잡하기 그지없는 나무로 된 나침반.
NPC아르비아가 준 아이템이었다.
‘이거 하나 믿고 이 저승길 소리 듣는 숲에 들어가서 재료를 찾아오라니…….'
딱히 위안거리는 못 됐다.
당장 안개의 숲이 위험한 건 그곳이 길을 잃는 곳이라서, 그러한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으니까.
‘길은 그렇다고 쳐도 몬스터는?’
안개의 숲, 그 안에서 우글거리는 정령수와 정령 기사들 때문이었지.
당장 안개의 숲을 바라보는 미다스의 눈 보이는 정령수의 숫자만 해도 서른이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고작 나침반 하나를 들고,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재료를 찾아라?
보통 플레이어라면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는 과제였다.
아니, 욕지거리를 넘어서 서너 명으로 구성된 파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장 정령의 숲만 하더라도 여러 파티가 손을 잡은 채 교대로 사냥을 하지 않았는가?
“이 눈이 아니었으면…… 끔찍했겠네.”
물론 미다스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였다.
그 안개의 숲 바닥에 보이는 붉은빛 길이.
“안 그래, 럭키야?”
왕!
“그래, 이 눈 없었으면 이곳에서 다섯 번 정도 게임 오버 당했을 거야.”
왕!
“주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주인님을 기필코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럭키 그리고 골드와 가벼운 대화를 마치고 미다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안개의 숲을 바라보았다.
‘쉽진 않다.’
길을 잃은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몬스터들.
더욱이 안개의 숲에 들어가는 또라이들의 숫자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진 않았다.
‘들어가는 순간 정령수나 정령 기사들 어그로가 우리 쪽에 끌리겠지.’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오로지 미다스, 그 하나만을 보고 달려든다는 의미.
전투를 피하고자 해서 피할 수도 없고, 한 번 전투를 치르면 대규모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포션 값 또 엄청나게 깨지겠네.’
그리고 치열한 만큼 적지 않은 출혈도 예고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물론 피할 수는 없었다.
필요한 건 싸울 각오와 준비뿐.
"좋아, 애들아 준비됐어?”
그 준비를 마친 미다스의 말에 가장 먼저 골드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주인님과 함께 세상에 길이 남을 새로운 전설을 쓸 준비라면 이미 다 되었습니다!”
“그래, 잭팟 너는?”
꾸우!
이어서 나온 질문에 미다스의 머리 위에 있는 잭팟이 크게 날갯짓을 하며 울음을 내뱉었다.
남은 건 이제 하나.
“럭키는 어때? 준비됐어?”
왕!
“혼자 다 해먹을 테니, 주인공도 아닌 놈은 나서지도 말라고?”
이어서 나온 대답에 미다스가 우스갯소리를 뱉으며 후에 안개의 숲, 그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이었다.
왕!
자신의 뒤편에서 럭키의 울음이 들렸고, 그 사실에 미다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돌렸다.
헥헥!
그러자 제 자리에 있는 럭키의 모습에 미다스가 고개를 재차 질문을 던졌다.
“럭키야, 왜 안 와?”
그 물음에 대답은 골드가 했다.
“나쁜 개는 제가 혼내주겠습니다. 주인님, 언제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됐어. 너희 둘이 경쟁하는 건 라이브 방송 진짜 할 거 없을 때 쓸 히든 카드이니까.”
골드의 말에 미다스가 짧게 대답하며 이내 럭키를 향해 다가갔다.
‘아!’
그 순간 미다스는 볼 수 있었다.
왕!
<주인님, 저기 달콤한 냄새가 나요!>
오랜만에 럭키 머리 위에 뜬 목소리가.
‘가만.’
그제야 미다스는 다시 한 번 더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상황을 보니 아르비아의 나침반만 있으면 안개의 숲은 일반적인 사냥터다. 그렇다는 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공략되지 않은 필드라는 거잖아?’
안개의 숲이 갓워즈 탄생 이후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손길도 거치지 못한 무대라는 것.
그 순간 미다스의 눈에 안개의 숲은 더 이상 짜증과 공포와 절망으로 보이지 않았다.
“……심봤다!”
그저 보물창고로 보일 뿐.
10.
사람이란 거리를 정해주고 뛰라고 하면 뛴다.
그러나 반대로 거리가 정해지지 않고 그냥 뛰라고 하면 금방 지치고는 한다.
마라톤을 완주할 만한 능력을 가진 이에게 기약 없이 그냥 뛰라고 하면 오히려 빨리 지치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갓워즈에서의 사냥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러한 상황 앞에서는 제아무리 스펙이 뛰어나더라도 금방 지칠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 좀 더 버티십시오!”
왕!
그런 의미에서 현재 30분째, 몰려오는 정령수들을 상대로 전투를 치르는 미다스의 상황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보통은 이미 문제가 터져서 30분 동안 싸우는 것조차가 불가능했다.
혹여 문제가 터지지 않더라도 전투가 끝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주저앉을 만큼 피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령수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실제로 평소의 미다스라면 이 알림, 당장의 전투가 끝나고 숨 돌릴 기회가 왔다는 알림이 들리는 순간 자리에 주저앉아서 푸념을 내뱉었을 터였다.
“오케이, 끝!”
그러나 전투가 끝나는 순간 미다스는 이 쓰레기 게임, 망해버려라! 같은 저주 어린 푸념을 뱉기는커녕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기색을 드러내며 주저앉기는커녕 움직였다.
까마득한 안개, 그 너머를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
이윽고 그 발이 멈춘 곳, 제 발치 아래에 허리를 숙였다.
[차가운 이끼]
- 재료 등급 : 유니크
- 재료 효과 : 매우 차가운 이끼다.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지력 및 마력이 증가한다.
그러자 등장한 하얀색 이끼의 모습에 미다스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이끼로 만든 포션은 마법사 클래스에게 있어서 보스 레이드의 필수 아이템이었으니까.
“크으!"
‘300골드 벌었다!’
그래도 값도 꽤 나갔다.
‘와, 오늘 진짜 얼마를 버는 거지?’
더 놀라운 건 이러한 식으로 오늘 얻은 재료 아이템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당분간 포션 걱정은 없겠는걸?’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달콤함을 뛰어넘는 보상 앞에서 전투의 피로감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 일주일 죽치고 지낼까? 재료 씨를 말려버려?’
오히려 이 상황이 오래 갔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할 뿐.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미다스의 눈에 보이는 붉은빛 길이 말해주었으니까.
‘……뭐 불가능한 일이지만.’
빨리 지금 진행 중인 퀘스트를 완료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여기서 일주일 죽치고 있다간 아즈모 님이 환불해달라고 할지도 몰라.’
당장 해야 할 일을 앞두고 이런 곳에서 허비할 시간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고.
[차가운 이끼를 습득했습니다.]
그렇게 차가운 이끼 채취를 마친 미다스가 이제는 허리를 편 채 붉은빛 길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그 끝에 이르렀을 때 얼음으로 만들어진 꽃 한 송이가 미다스를 반겼다.
[서리꽃]
- 재료 등급 : 레전더리
- 재료 효과 : 특별한 곳에서만 발견되는 꽃이다.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 채취 시 거래 불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잎사귀에 묻은 서리들을 모아 만든 듯한 꽃, 서리꽃 앞에 선 미다스가 손을 뻗어 서리꽃을 채취했다.
[서리꽃을 채취한 자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이어서 나온 알림.
[서리꽃을 채취한자]
- 타이틀 설명 : 서리꽃을 채취한 자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 타이틀 보상 : 체력 및 마력 +15
그리고 보이는 정보창을 뒤로한 채 미다스가 말없이 서리꽃을 바라보았다.
‘이제 능력 추출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아이템 능력 추출 시스템을 활성화할 때.
그 생각에 자연스레 미다스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고민이 떠올랐다.
과연 어떤 아이템을 해체해야 할까?
‘역시 장갑이겠지?’
당장 떠오르는 건 수호자의 장갑이었다.
투사체 속도 증가 옵션은 미다스에게 있어서 평생 함께해야 할 옵션이었으니까.
‘아니야, 갑옷이 더 나을지도 몰라.’
물론 수호자의 갑옷에 달린 투사체 개수 증가 옵션 역시 그 메리트는 엄청났다.
‘카모플라쥬 스킬도 중요한 순간 엄청난 도움이 되고.’
수호자의 머리띠에 달린 카모플라쥬 스킬 역시 저번 암살자 사건 때처럼 중요한 순간 미다스의 목숨을 구해줄 스킬이었다.
목숨값을 생각하면 수호자의 머리띠를 해체하는 게 정말 정답일지도 모르는 일.
‘지팡이는…… 죽어도 못하고.’
물론 지금 착용 중인 툰가의 불타오르는 지팡이는 논외의 존재였다.
대체품이 없었으니까.
사실 그게 핵심이었다.
‘수호자의 장갑은 불꽃 장갑으로 대체하고, 수호자의 갑옷은…… 이름 모를 대마도사의 갑옷 또 구해서 입을까? 가만 그러면 투사체 개수가 4개까지 되는 건가?’
대체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인가?
왕!
그렇게 고민하던 미다스를 향해 럭키가 가볍게 짖었다.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고 후식으로 뭐 먹을지 고민하지 말고, 당장 일부터 끝내라는 듯이.
“그래, 럭키야. 퀘스트부터 끝내야지.”
왕!
그러한 럭키의 말에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럭키를 쓰다듬기 위해 바라본 미다스가 이내 발견했다.
<주인님, 저기서 특별한 냄새가 나요!>
럭키의 머리 위에 뜬 문구, 그것을 확인한 미다스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럭키야. 너밖에 없……."
그 말과 함께 미다스가 당장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이내 미다스는 볼 수 있었다.
“……어?"
그리고 이내 굳었다.
굳은 채 자신이 발견한 것을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서, 서리꽃?”
서리꽃, 집중하지 않았다면 결코 찾을 수 없었을 그 글자를 확인한 미다스가 이내 럭키를 바라보았다.
헥헥!
가벼운 숨소리를 내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럭키.
그 럭키를 향해 미다스가 이내 소리쳤다.
“럭키님, 절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