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 59화. 럭키 익스프레스 (3). >
8.
갓워즈에서 길드의 등급을 나눌 때 흔히 쓰는 표현이 바로 1티어급 길드라는 표현이었다.
사실 이 표현은 굉장히 애매한 표현이었다.
어떠한 공신력 있는 집단이 모두가 합의한 규칙이나, 기준을 가지고 당신은 이제부터 1티어급 길드가 되었습니다, 같은 말을 하면서 인증서 같은 걸 주는 게 아니었으니까.
해서 많은 이들이 이와 관련되어 논쟁을 벌이고는 했다.
그러나 막상 1티어급 길드들은 그 사실에 딱히 논쟁을 가지거나 하지 않았다.
명확한 기준이 있는 덕분이었다.
“BJ대마도사가 접속했다.”
“위치는?”
“여기서 동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진 곳.”
“특별한 움직임은?”
“딱히 없는 거 같아.”
“좋아, 그럼 계획대로 움직인다.”
평소에는 경쟁도 하고, 싸움도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즉, 1티어급 길드들은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든 채 그 안에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든 세계에 없다면 1티어급 길드가 아닌 셈.
그만큼 그들이 만들어놓은 카르텔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질기고, 강인했다.
지금 그러한 1티어급 길드 9곳에 소속된 173명의 플레이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영웅쪽은 동쪽으로.”
“스카프 길드는 정면이지?”
그 움직임은 마치 예전부터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파티였던 것처럼 일사불란하기 그지없었다.
“자리 잡았다.”
“대기 완료.”
“BJ대마도사 라이브는?”
“아직 방송 안 켰어!”
덕분에 그들은 BJ대마도사가 등장하고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 그의 주변을 단숨에 포위할 수 있었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이야.’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획한 마스, 본인이 보기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하긴, 자기들 밥그릇 걸린 일인데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그렇게 감탄하던 마스가 이제는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BJ대마도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얼굴 표정이 굳었다.
준비가 완벽하다는 건, 총으로 따지면 장전을 맞추고 조준을 완료한 것과 같았다.
이제 정말 BJ대마도사와 얼굴 붉힐 만큼 싸우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
여기서 마스는 다시 한 번 더 계획을 점검했다.
그렇게 점검을 마친 마스의 표정은 굳어있을지언정 실패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BJ대마도사 성격상 분명 방해꾼이 오면 맞불 작전을 펼치겠지. 그렇게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사이…… 사냥뱀 길드가 BJ대마도사를 친다. 함정은 완벽해.’
지금 만들어놓은 함정은 저번 트리플 헤드 트롤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했으니까.
‘이미 포위망을 갖춘 만큼, 조력자가 있어도 BJ대마도사를 돕는 건 불가능해.’
다른 누구도 아닌 1티어급 길드들이 손에 손을 잡고 포위망을 갖춘 상황 아닌가?
어지간한 무리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셈.
때문에 마스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BJ대마도사가 마이웨이를 시작하기만 하면 돼.’
오늘 이곳에서 BJ대마도사가 최초로 게임 오버를 당하리란 것을.
그러한 상황 속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BJ대마도사가 라이브를 시작했어.”
“그래?”
“우리들을 눈치챈 거 같아.”
동료의 말에 마스가 옅게 웃으며 질문했다.
“BJ대마도사가 우리보고 피해달라고 부탁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무릎 꿇고 부탁한다거나?”
“그럴 리가. 마이웨이지.”
마이웨이.
그 단어에 마스가 BJ대마도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게 나와줘야지.’
혹시 모를 변수, BJ대마도사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상한 수를 쓸지도 모르는 것마저 사라진 상황.
거기까지였다.
“어?”
마스를 비롯해 모두가 됐다, 라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건.
“어!”
본인의 채팅창을 통해 서포터로부터 BJ대마도사 라이브 방송에 대한 정보를 받던 동료의 거듭된 이상한 반응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야?”
“그게…… 아, 잠깐만.”
이윽고 비공개 방송의 채팅창을 통해 보고를 받은 동료가 말했다.
“오늘 진 주인공 특집의 주인공이 BJ대마도사가 아니라 럭키야! 럭키가 마이웨이를 한대!”
그렇게 설명을 뱉는 이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물론 믿기지 않겠지만 분명……."
말을 하는 자신도 믿기 힘든데 듣는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다행히도 설득을 위해 노력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잠깐만, 지금 저기 럭키 말이야…… 커진 거 같지 않아? 아니, 커진 거 같은데?”
이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었으니까.
“설마 거대화?”
오늘 주인공이 누구인지.
9.
갓워즈에서 레벨이 오를수록 플레이어들이 마주하는 몬스터의 덩치들도 커졌다.
근접 딜러, 탱커들에게 거대화 스킬이 각광받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근접 전투에서 체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으니까.
크왕!
이제는 정령수에 비해 더 큰 덩치를 가지게 된 럭키는 그 사실을 백분, 그 이상 활용했다.
쾅!
그동안은 쉽사리 쓰지 않았던 몸통박치기를 사용했다.
그를 통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균형이 무너진 몬스터가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그 거대해진 입으로 그 약점을 가차 없이 물어뜯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입이 커진 만큼 물어뜯기는 범위 역시 커졌다.
주는 데미지 역시 늘어났다는 의미!
- 우와,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네!
- 저건 밀어붙인다기보다는 그냥 쓸어버린다고 해야지!
- 역시 진 주인공답네!
그러한 럭키의 돌진을 막아내는 정령수는 단언컨대 없었다.
정령 기사 역시 처지는 다르지 않았다.
갑옷으로 무장한 만큼 정령수에 비해 더 나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꽈앙!
거대해진 럭키의 공세를 제대로 버텨내는 이는 없었다.
“럭키야!”
무엇보다 거대화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
“금강불괴다!”
스킬을 사용했을 때 그 효과 역시 거대해진다는 것.
당장 시각적인 효과부터 차원이 달랐다.
- 럭키 님 금강불괴 쓰신다!
- 거대화 쓰고 이게 가능해? 금강불괴는 다른 스킬 못 쓰잖아?
- 금강불괴 상태에서 새로운 스킬을 못 쓰는 거지, 그 전에 쓴 스킬은 적용됨!
거대해진 몸이 쇳덩이로 변했을 때 보여주는 시각적인 임팩트는 평소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금강불괴 상태에서 시작된 공세의 파괴력 역시 평소와 비교를 거부했다.
꽈아앙!
럭키가 곰의 외형을 가진 얼음 정령 기사를 상대로 몸을 부딪치는 순간 앞서서 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났다.
- 우와!
- 소리 봐!
벽돌을 거대한 쇠망치로 때려 부수는 듯한 소리.
결과물은 더 처참했다.
금강불괴 상태에 있는 럭키에게는 사냥감을 물어뜯을 이유조차 없었다.
꽈아앙!
[정령 기사를 처치했습니다.]
곰 모습의 정령 기사 한 마리를 얼음 조각으로 만드는 데에는 다섯 번의 몸통박치기만 충분했다.
- 어우, 보는 내가 다 아프네.
- 몬스터가 불쌍해 보이긴 처음이다.
시청자들이 혀를 내두를 파괴력.
“이야, 럭키 최고다!”
미다스 입장에서는 찬사가 절로 나올 파괴력이었다.
“우리 럭키 어떻습니까? 끝내주죠?”
그러한 미다스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대답했다.
- 럭키? 말이 짧다?
- 승객 주제에 감히 어디서? 럭키님이라고 안 해?
- 럭키님, 이제 딜러도 필요 없는데 그냥 이 쓸모없는 광대는 버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주인공도 아닌데 나대지 말라고.
미다스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역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지.’
그리고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럭키의 비중이 높아지면 결국 BJ대마도사의 존재감이 줄어들 테니까.
- 이 정도 포스면 골드님 빼고는 주인공 자리 위협받을 일은 없을 듯?
ㄴ 확실한 건 BJ대마도사는 끝이라는 거지.
ㄴ 이제 BJ버리고 MC대마도사 가야 하는 거 아님?
ㄴ 노래도 잭팟이 더 잘 부름.
ㄴ 그럼 탱킹?
ㄴ 블레이즈 골렘이 더 잘하잖아?
ㄴ 뭐야, 진짜 쓸모없잖아?
무엇보다 이러한 럭키의 퍼포먼스를 미다스가 제 스스로 뛰어넘는 건 미다스가 보기에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미다스는 만족했다.
[BJ럭키1131호팬 님이 1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BJ럭키데뷔축하 님이 100유로를 후원했습니다.]
당장 후원금 수준부터가 남달랐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미다스를 만족케 하는 건 지금 주변에 있는 풍경들이었다.
‘럭키의 페이스에 맞춰서 움직이는 걸 보니…….'
자신을 방해하러 온 방해꾼들의 움직임이 굼뜬 것이 보였다.
‘다들 당황한 모양이군.’
그들이 당황했다는 증거였다.
만약 당황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금 럭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주변을 초토화시켰을 테니까.
‘하긴, 할 수 있는 게 없지.’
사실 이미 방해꾼들의 계획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다스의 경우라면 방해하는 게 의미가 있었다.
BJ대마도사가 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면 그가 바라던 대로 존재감을 되찾는 게 불가능할 터.
그렇게 되면 협박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그들이 지금 방해꾼을 시도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럭키는 달랐다.
‘지금 럭키를 방해한다고 해서 럭키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지금의 럭키는 굳이 얼마나 더 빨리 몬스터를 잡는지, 그것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이미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어제 방송에서 4억 명이 거대화 스킬을 쓴 똘똘이의 위엄을 봤는데, 더 설명할 필요도 없지.’
라포!
그가 이미 거대화 스킬을 쓴 펜리르의 신수의 존재감을 세상의 뇌리에 각인시킨 상황이니까.
그걸 방해꾼들도 아는 상황이었다.
‘그놈의 자존심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떠났겠지.’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는 건 여기서 물러나는 순간 정말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되는 탓이었다.
먼저 시비를 건 입장인데 제대로 무언가 하지도 못한 채 물러난다?
1티어급 길드의 자존심이 용납할 리 만무.
“방해꾼들 덕분에 몬스터들이 적당히 오네요. 이거 선물이라도 보내야겠어요.”
그렇게 상처 입은 그들의 심기에 미다스가 소금을 뿌렸다.
“그러지 말고 제가 가서 인사라도 할까요? 포션이라도 한 잔 가볍게 하면서? 왜 왔는지 허심탄회하게?"
진심을 담아서.
말 그대로였다.
- 오우, BJ대마도사 좀 화난 듯?
- 화날 만하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갑자기 태클 들어오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어?
- 까놓고 말해서 BJ대마도사가 저들에게 피해 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시비 걸면 누가 기분이 좋겠어?
시청자들의 말처럼 지금 미다스는 방해꾼들의 행동에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다.
손익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서 끝날 리가 없지. 내가 무릎을 꿇지 않는 이상.’
앞으로 이러한 견제가 멈추지 않으리란 것.
‘그렇다고 칠 수도 없고.’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횡포에 대해서 이렇다 할 행동을 할 수도 없다는 것.
솔직히 여기서 미다스가 저들에게 보복 행위를 했을 경우, 미다스에게 그것을 막을 힘은 없었다.
- BJ대마도사가 진짜 제대로 현실 권력 쓰면 금방 찌그러질 놈들인데 말이야.
- BJ대마도사가 게임에서만 힘쓰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 듣기로는 BJ대마도사가 돈만 쓰면 저기 있는 길드 중 서너 곳은 바로 인수할 수 있다던데?
- 에이, 10대 길드도 인수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도는데 1티어급 애들은 장난감이지, 장난감.
- 그러면 더 빡칠 듯. 장난감이 덤비는 거잖아?
세간의 평가와 달리 미다스의 배경이라고는 재활 훈련으로 이제야 얼굴에 혈색이 돋기 시작한 형과 요즘 치킨을 자주 먹어서 그런지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조카가 전부였으니까.
즉, 미다스는 저들에게 시비를 걸 수 없었다.
“에이, 게임은 게임에서 끝내야죠. 현실에서 힘쓰면 게임을 무슨 재미로 합니까?”
‘착각해주는 게 베스트야.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에 내가 게임 접었겠지.’
허장성세.
지금은 이 거짓이 자신이 가진 가장 확실한 갑옷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오늘은 럭키의 진 주인공 데뷔전 아닙니까? 아름답게 꾸며줘야죠. 럭키가 플레이어 잡아먹는 거 보고 싶진 않잖아요?”
‘그냥 판정승으로 끝낸다.’
그렇게 적당히 상황을 끝내려는 미다스.
'응?'
그러한 미다스의 눈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최대한 발소리마저 죽인 채.
‘하나, 둘…….'
한 곳이 아닌 세 방향에서 세 명이 미다스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었다.
‘쉐도우 어쎄신?’
모두가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사냥뱀 길드!’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이 번쩍였다.
그 사실에 이른 미다스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주변은 포위당한 채 혼자서 마이웨이를 찍으며 마법을 쉴 새 없이 캐스팅하는 자신.
그 순간 강력한 스킬들이 쿨타임에 돌입하는 순간 암살자들의 암습!
‘……날 엿 먹이려는 게 아니었네.’
필시 이 계획을 기획한 자는 생각했을 것이다.
‘제대로 조지려는 거였지.’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으리라고.
실제로 미다스가 생각하기에도 아주 훌륭한 방법이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을 정도.
물론 지금 미다스가 생각해야 하는 건 그들의 철두철미함에 놀라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러면 이야기는 다르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여기서 미다스가 이들을 모른 척 눈감아준다고 해서 이들이 반성하고 착하게 살 리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이것은 명명백백하게 선을 넘는 일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비매너 길드 집단인 사냥뱀 길드를 쓰는 건 허가되지 않는 불법 무기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
이 사실이 공개됐을 때 그리고 그에 대한 응징을 했을 때 대중과 명분은 미다스의 편일 터.
결정적으로 이곳에 온 이들은 지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할 자들이 아니었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는 더 세게 온다.’
오히려 더 확실한 방법을 들고 미다스를 잡으러 올 터.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럭키 새로운 스킬 추천받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다음 따위는 감히 상상할 수 없도록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을 노리는 무리들을 처참하게 분쇄하는 것!
“아, 펜리르의 피어요? 좋습니다! 그럼 쓰는 김에 어떤 느낌인지 제대로 봅시다. 럭키야! 이쪽 보고 펜리르의 피어 좀 써봐!”
‘아주 끝장을 내주지.’
그러한 의지를 실행에 옮긴 미다스의 눈앞에 자신을 바라보는 럭키의 거대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럭키 머리 위로 거대한 황금빛 눈동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펜리르의 피어가 발동했습니다.]
[마주한 모든 대상의 버프 일시 정지합니다.]
펜리르의 피어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