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 56화. 하극상 (3). >
7.
라이틀링의 비약 퀘스트는 간단했다.
“비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얼어붙은 숲에서만 나오는 차가운 마력 결정이 필요하네. 20개 정도면 될 걸세."
모아올 재료는 20개.
“내 올빼미가 그곳의 위치를 알려줄 걸세.”
더불어 필요는 없지만 안내인마저 붙었다.
이제까지 미다스가 경험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중 가장 친절한 퀘스트였다.
물론 그렇기에 미다스는 확신했다.
‘찾는 게 쉬우면 얻는 게 어려운 법이지.’
여기까지가 쉽다면 앞으로는 훨씬 더 어려우리란 것을.
그러한 미다스의 예상은 적중했다.
꾸우!
[차가운 마력의 땅에 입장했습니다.]
[혹한의 기운이 엄습합니다.]
올빼미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그곳.
쉼 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탓에 무언가를 찾기는커녕 코앞을 확인하기도 힘든 곳에서 미다스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스노우 몬스터 66마리.’
한 가족처럼 한 곳에 모여 있는 스노우 몬스터들 66마리를.
그런 스노우 몬스터들의 외형은 가지각색이었다.
‘그중에서 트롤급 덩치를 가진 놈만 다섯 마리네.’
덩치가 트롤 급으로 큰 녀석부터 늑대와 같은 적당한 크기의 날렵한 녀석에 오크나 고블린까지.
‘욕 나올 만한 조합이군.’
얼어붙은 숲에서 플레이어들이 가장 마주하기 싫어하는 조합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위험한 조합이었다.
일반적으로 몬스터 무리를 사냥할 때는 그 몬스터에 맞는 기본 공략법이 있지만, 저렇게 다양한 타입이 있으면 기본 공략법이란 게 사실상 무의미해졌으니까.
특히 트롤처럼 덩치가 큰 녀석과 반대로 고블린 같이 작지만 빠른 녀석의 조합은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욕이 절로 나올 조합이었다.
그러나 미다스의 표정은 달랐다.
‘차라리 잘 됐어.’
오히려 마주한 이 난관을 반기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헥헥!
그러자 적을 발견하고 숨소리를 낮추는 럭키의 모습, 그 너머로 숨소리 한 점 내뱉지 않는 아이스 나이트, 골드가 보였다.
이윽고 골드와 눈이 마주치자 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미다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골드의 전력을 확인할 수 있지.’
이후 다시 전장을 바라본 미다스가 짧게 숨을 들이마신 후에 그 숨을 내뱉었다.
그 숨과 함께 명령도 내뱉었다.
“골드야, 쓸어버려.”
귀를 기울여도 휘몰아치는 눈바람 소리에 묻혀 듣지 못할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
“For the lord!”
그러나 그 목소리에 골드는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찬 모습을 보인 채 망설임 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크르르!
끼이?
그 질주에 모여 있던 스노우 몬스터들이 일제히 골드를 향해 이목을 집중시켰고 동시에 적의도 집중시켰다.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그대로 뒤덮였다.
소름 끼치는 광경.
그 순간이었다.
“인페르노!”
미다스가 내뱉은 주문과 함께 등장한 인페르노의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며 눈보라와 눈밭에 모습을 감춘 스노우 몬스터 무리를 향해 거대한 불길을 토해냈다.
화르르르!
그러한 불길이 장막과도 같은 눈보라를 녹이고, 눈밭을 치운 후에야 비로소 전장이 제대로 보였다.
사실 그냥 사냥만 하고자 했다면 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미다스의 눈은 눈보라나 눈밭 따위에 현혹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무대를 만든 것은 보다 정확하게 보기 위함이었다.
‘골드, 네 능력을 보여줘라.’
골드, 새로운 힘을 얻은 그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
그렇게 전투가 시작됐다.
8.
[스노우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무대의 마지막 스노우 몬스터를 처치한 골드가 스노우 몬스터의 몸에 꽂힌 칼을 뽑아내며 소리쳤다.
“주인님! 제가 이번 전투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칭찬을 바라는 듯한 골드의 모습에 미다스는 막상 칭찬을 해주지 못했다.
칭찬은커녕 미다스는 이렇다 할 말 한마디 못한 채 전장을 바라만 봤다.
그 정도였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골드가 보여준 전투력은 미다스의 상식 범주를 가볍게 넘었다.
그저 공격력이 세고, 스탯 높다 수준이 아니었다.
‘전투 방식이나, 공격 패턴도 다양하고, 영리하다.’
오히려 미다스를 감탄케 한 건 전투 상황에서 생기는 무수히 많은 변수에 대한 대처 능력이었다.
‘우연이 아니야.’
더불어 이러한 판단은 한 번의 전투를 보고 낸 것이 아니었다.
이번이 스무 번째였다.
스무 번의 전투 속에서 골드는 자신이 보여준 전투력이 운이 아닌 진정한 실력임을 증명했다.
‘템 세팅만 진짜 제대로 하고 버프 받으면 나보다 딜링을 더 잘할지도…….'
그동안 장난삼아 말했던 BJ골드 하극상이 장난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
한편으로는 그 생각이 미다스를 결단케 했다.
‘이 정도면 템 세팅을 안 해주는 게 병신 짓이야.’
좋은 아이템을 세팅해주면 그 곱절의 결과가 나오는데 돈이 아깝다고 투자를 망설이면 그거야말로 손해인 법.
‘내 통장 전부를 털어서라도.’
이제 미다스는 골드의 템 세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한 생각 속에서 미다스가 전장 속에 피어난 크리스털 꽃 앞에 섰다.
“아이템 루팅.”
[인벤토리에 아이템을 습득했습니다.]
[퀘스트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NPC라이틀링이 요구한 모든 재료가 모으는 순간.
‘퀘스트만 깨면 나가서 한 번 시세 좀 찾아보자.’
그 순간 이제까지 안내를 해주던 올빼미가 소리를 냈다.
우우!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구슬픈 소리를.
그렇게 몇 번 소리를 낸 후에는 날갯짓을 하며 눈보라 너머로 날아갔다.
그 후 올빼미가 날아간 방향에서 올빼미와 함께 한 사내가 등장했다.
“정말 해냈군.”
NPC라이틀링,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미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받게."
등장과 함께 NPC라이틀링이 손에 들고 있는 병을 미다스를 향해 가볍게 던졌고, 미다스가 반사적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어?’
낚아챈 병의 정체를 확인한 미다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라이틀링의 비약]
- 라이틀링의 비약이다. 선더버드를 성장케 하며 숨겨진 힘을 이끌어낸다.
미다스가 바라던 비약이 눈앞에 등장한 상황.
‘재료 주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지금 미다스는 제 인벤토리에 모은 재료를 단 하나도 건네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놀란 게 당연한 일.
“자네를 시험해본 것에 대해 사과하네.”
그렇게 놀란 미다스에게 NPC라이틀링이 사과와 함께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자네가 정말 이름 잃은 신의 힘과 싸울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그럴 힘이 있는지 알고 싶었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그 순간 들리는 퀘스트 알림 뒤로 말이 이어졌다.
“이제부터 자네는 이름 잃은 신의 힘을 이용하려는 자들의 추격과 공격을 받을 테니까.”
“추격과 공격이요?”
누가 들어도 골치 아플 것 같은 단어의 등장에 미다스는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설마?’
NPC초이가 자신에게 부탁을 한 사건을.
“초이가 말해주었을 걸세. 내가 말없이 떠난 이유에 대해서.”
이어진 설명에 미다스는 생각했다.
‘툰가 왕국 내에 적이 있다는 건가? 그럼 혹시?’
그런 미다스에게 NPC라이틀링이 보다 확실하게 말해줬다.
“툰가 왕국, 그곳을 비롯해 곳곳에 이름 잃은 신의 힘을 이용하는 무리가 있네.”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항목에 새로운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동시에 미다스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등장했다.
[라이틀링의 신뢰]
- 퀘스트 등급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145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이름 모를 대마법사의 던전을 찾아 공략한 후 라이틀링의 신뢰를 얻자.
-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보상 : 툰가 왕의 반지
!퀘스트 완료 시 ‘라이틀링의 전우’ 진행 가능
‘드디어!’
이제야 비로소 원하던 것이 나오는 순간.
“물론 당장 자네를 신뢰할 수는 없네. 정확히는 자네의 실력을 확인할 수가 없네. 자네에게 내 대신 역할을 맡길 수 있을지......."
이어서 나온 NPC라이틀링의 말에 미다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안 되면 되게 하겠습니다! 할 수 있음을 증명하겠습니다!”
그렇게 놀라는 미다스를 향해 NPC라이틀링은 경고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얼어붙은 숲에 온 이유는 이곳 어딘가에 이름 잃은 신의 힘을 연구한 이의 던전을 찾기 위함이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찾지 못 하고 있네. 자네에게 내 비약을 준 것도 그 때문이네.”
“비약으로 선더버드의 탐색 능력을 강화하면 되는 겁니까?”
NPC라이틀링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미다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빠르게 가자!’
NPC라이틀링으로부터 받은 비약이 담긴 병의 뚜껑을 연 후에 그것을 손바닥에 흘렸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위로 젤리와도 같은 것이 파란 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꿈틀꿈틀!
그리고 그 액체가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미다스의 손바닥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
그 상황에 놀라는 미다스, 그 순간 잭팟이 날아와 그 파란 액체를 단숨에 부리로 쪼은 후에 그것을 단숨에 삼켰다.
꾸-우!
그리고는 이내 큼지막한 괴성과 함께 힘차게 날개를 펄럭이자 잭팟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잭팟의 새로운 능력을 직접 선택하십시오.]
이윽고 미다스의 눈앞에 알림과 함께 세 장의 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모두가 하나같이 황금빛만을 내뿜는 카드들이.
‘기본 레전더리라고? 그냥 눈감고 골라도?’
어처구니 없는 광경, 그 광경 속에서 카드 한 장을 발견한 미다스의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오리온의 노래 ]
- 스킬 등급 : 레전더리
- 스킬 효과 : 오리온의 노래를 불러 오리온 신의 힘 일부를 지정한 대상에 강림시킨다. 대상의 모든 능력치가 증가한다.
버프 스킬,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버프 스킬을 보는 순간 미다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경악을 토해냈다.
“씨발, 말도 안 돼!”
이후 제 입을 제 손으로 막은 미다스가 여전히 놀란 눈으로 잭팟을 바라봤다.
꾸우!
이제는 더 커진 몸을 자랑하는 잭팟.
그 모습을 확인한 미다스가 고개를 돌려 골드를 바라봤다.
“저 버릇 없는 나쁜 새가 덩치가 커졌군요. 그래도 저만은 못할 겁니다.”
그렇게 골드를 바라본 미다스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골드가 템세팅하고 이 버프까지 받으면…… 진짜 하극상 일어나겠네.’
BJ대마도사를 짓밟고 골드가 라이브 방송의 주인공이 되는 그림이.
‘템 질러야겠다.’
미다스의 가슴에 조금이나마 있던 망설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9.
얼어붙은 숲.
그곳에서 미다스가 하염없이 눈보라를 마주친 채 서있었다.
그런 미다스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추위 탓은 아니었다.
‘잠시 후 미팅.’
이제 잠시 후에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님과 골드 특집 방송과 관련된 미팅을 해야 한다는 것.
‘블랙 클레이모어를 구매를 부탁해야지.’
그 자리에서 미다스는 라이징 스타 채널에 블랙 클레이모어 구매를 부탁할 속셈이었다.
물론 사달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직접 지르는 건 죽어도 못하겠다.’
돈은 자신이 지불할 테니 거래를 대신해달라는 것.
라이징 스타 채널의 인맥 등을 고려하면 그게 훨씬 더 싸게 먹힐 일이었다.
‘내가 하는 게 최고이긴 한데.……’
물론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미다스가 친 사고의 뒤처리 일부를 라이징 스타 채널에 맡기는 셈이었다.
‘아, 그동안 잘하다가 여기서 이런 실수를 하게 될 줄이야.’
더불어 이게 처음이었다.
그동안 미다스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관리를 라이징 스타 채널에 맡긴 적이 없었다.
라이징 스타 채널이 잘 도와줬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와튼 님이 접속했습니다.]
이윽고 채팅창에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 와튼 : 안녕하세요?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이 등장하자마자 인사를 건넸다.
“크흠."
그 인사에 미다스가 즉답을 못한 채 짧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 진짜 말문 열기가 어렵네.’
자기 죄를 아는 주제에 부탁마저 하는 입장에서 말문이 쉬이 열리면 그게 더 몰염치한 일.
해서 미다스는 일단 우회했다.
“요즘 바쁘시죠? 저 때문에.”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와튼 : BJ대마도사님의 골드 특집 건 때문에 확실히 바쁘긴 바쁩니다.
그러나 이어서 나온 대답에 미다스가 어색한 웃음이 흘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와튼 : 더군다나 너무 일이 커져서, 관련된 일처리를 하는 게 평소보다 좀 힘들긴 했습니다.
이어진 채팅을 보는 순간 미다스는 이를 꽉 물었다.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이 하는 말의 의미는 명백했으니까.
너 때문에 고생이 장난 아니다!
‘아, 젠장.’
그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처럼 별 볼 일 없던 녀석이 갑자기 좋은 성적에 취해 기고만장해지는 바람에 팀 오더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했다가 역전패의 빌미를 주었던 일을.
그 후에 감독 앞에 끌려온 상태에서 변명을 지껄이다가 이후 불호령을 받고 한 달 내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일을.
그 사례가 말해줬다.
‘부탁하면 안 돼.’
지금은 괜히 블랙 클레이모어 구매 건 같은 건 꺼낼 생각도 하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그냥 사과만 하라고.
- 와튼 : 아닙니다. 사과하실 필요는 없죠. 여하튼 바쁘게 움직인 덕분에 물건은 전부 구했습니다.
그때 나온 채팅 내용에 미다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물건이요?”
- 와튼 : 예, 골드 특집에 대한 기대감이 이 정도인데 어설프게 할 수는 없죠.
그 순간 미다스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윽고 미다스는 눈치챘다.
‘내 뒷수습을 위해서 템 구하셨구나!’
라이징 스타 채널이 자신의 실수를 만회했음을.
- 와튼 : 최고의 방송이 아니면 할 이유는 없죠.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만회할 기회를 주고 있음을.
- 와튼 : 물건은 전부 도착했습니다.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앞에서 미다스가 할 말은 하나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오늘 자기 전에 사장님이 계신 곳에 절 세 번 하고 자겠습니다. 만수무강하세요.’
그저 감사를 표하는 것.
그렇게 미팅을 마친 미다스가 이제는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골드야! 템 가지고 올게! 기다려! 바로 올게.”
그로부터 10분 후, 다시 게임에 접속한 미다스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진짜 미치겠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뜬 후 제 인벤토리에 채워진 새로운 아이템들을 보던 미다스가 골드를 향해 말했다.
“골드야, 이제부터 네가 주인공하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