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 53화. 버스 기사 (1). >
라이브 방송 종료를 앞두고 시청자 숫자는 줄어드는 게 아주 일반적인 경우였다.
미다스도 마찬가지였다.
최고 323만 명을 기록했던 시청자 숫자는 방송의 끝을 앞두고 260만 대로 주저앉은 상태였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장난 아니네.’
그러나 세 거물이 움직이는 순간 그 당연한 수순이 비틀어졌다.
‘아니, 무슨 400만을 이렇게 쉽게 찍어?’
400만 명 돌파!
그게 바로 이름값이었다.
- 라포 님, 여기서 이러지 말고 똘똘이를 보여주십시오.
- 아즈모 님! 라이브 방송 좀 하세요! 여기 와서 아즈모 님을 봐야겠어요?
- 구스타프 님, 이럴 시간에 몬스터라도 좀 더 잡으시죠? 아즈모 타도! 외치고 레벨업 각오하신 게 엊그제였던 걸로 아는데요?
스타를 뛰어넘는 슈퍼 스타들의 이름값.
‘장난 아니네.’
300만 명조차 아득하다고 느낀 미다스 입장에서는 이 사실에 즐거움보다는 허탈함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지.’
물론 지금 미다스가 생각해야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안 돼. 광고 건은 내 영역 밖이다.’
광고 혹은 그와 관련된 협상은 전적으로 라이징 스타 채널의 몫, 실수로라도 미다스가 처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하, 재미있을 것 같지만 이런 건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해야죠. 그 부분에 대한 것들은 라이징 스타 채널하고 상담하시죠.”
‘더 커지기 전에 불을 잡는다.’
미다스가 타오르는 분위기에 물을 뿌렸다.
- 아, 역시 안 되는 건가?
- 하긴 상식적으로 이건 좀 아니지.
그 사실에 시청자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긍했다.
그 순간이었다.
[와튼 님이 10,03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와튼 : 라이징 스타 채널 관리자입니다.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방식을 조금 바꾸고 싶습니다.]
채팅창 위로 기름이 뿌려졌다.
2.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방식을 조금 바꾸고 싶습니다.”
그 말이 곧바로 채팅이 되어 라이브 방송 중인 BJ대마도사에게 전달되는 순간 라이징 스타 채널 라이브 방송실에 있던 모든 직원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사, 사장님이 나섰다!’
‘그, 그런데 이래도 되는 거야?’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박영준이 후원금을 설정한 후에 곧바로 후원 채팅 내용을 말했다.
“경매는 하지 않겠습니다. 의뢰 내용과 보상, 두 가지를 제시하면 그중 하나를 BJ대마도사님께서 고르십시오.”
그러한 말은 곧바로 채팅이 되었고, 후원금과 함께 후원 채팅이 전달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박영준이 어느 때보다 긴장된 기색으로 확인했다.
‘경매는 위험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상황은 꽤 위험한 상황이었다.
분명 경매 자체는 이익이었다.
지금 이 판에 끼어든 이들의 면면은 어마어마한 부자들!
특히 구스타프와 아즈모의 관계는 세계가 인정하는 라이벌, 그것도 대부호 라이벌이었다.
그 둘이 진심으로 불이 붙으면 말도 안 되는 제안이 나올 터였다.
박영준도 그것을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경매가 끝나면 최고액을 제시한 이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
문제는 지금 무엇을 얻기 위한 경매인지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막말로 그 조건이 게임 오버 당하는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그 제안을 받고 게임 오버를 당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거래를 없던 걸로 돌릴 뿐.
‘거래를 파기하면 그 자체로도 손해이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거래를 없애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법 아닌가?
아니, 남지 않는 수준을 넘어 정상적인 거래를 얻을 기회가 날아가는 셈이었다.
‘그 후에 거래를 하려면 그때보다 보상이 적을 수밖에.’
혹여 경매에서 탈락한 이와 다시 거래를 하더라도 그때보다 좋은 조건을 얻어낼 수 있을 리 만무.
그렇기에 박영준은 나서서 과정을 바꾸었다.
의뢰와 보상, 두 가지를 한 번에 제안하면 그중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의뢰까지 이쪽에서 선택하게 해야 해.’
그럼으로써 의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그게 BJ대마도사가 원하는 바일 테고.’
다른 누구도 아닌 BJ대마도사를 위해서!
그게 박영준이 이러한 제시를 한 이유였다.
그러한 제시에 곧바로 BJ대마도사가 대답했다.
3.
“어, 그렇다네요.”
대답을 하면서도 미다스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미치겠네.’
아니, 이제 상황은 아무래도 좋았다.
‘진짜? 나보고 결정하라고?’
미다스 입장에서는 자신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느 때보다 부담되고 고민될 뿐.
‘어떻게 해야 하지? 거절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그냥 거절하면 분명 기분 상하실 텐데? 아니, 그보다 뭘 골라야 하지? 여기서 아이템 요구하면 너무 나만 해먹는 거 같지 않나? 그럼 금전적인 보상으로? 그러면 액수는 얼마가 적당한 거지?’
미다스는 머릿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물론 경매 참가자들은 그런 미다스의 심정 따윈 고려치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제안을, 라이징 스타 채널의 확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개중에서도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아즈모였다.
[아즈모 님이 10,033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다음 무대는 얼어붙은 숲이지? 그럼 똑같이 럭키 세븐 해보자고. 얼어붙은 숲에서 스노우 몬스터 777마리 처치. 어비스 길드 기록 깨면 원하는 건 뭐든 주지.]
백지수표!
의뢰 내용과 보상, 모두가 파격적인 그 제안에 시청자들이 곧바로 열광했다.
- 와, 이거 개꿀쨈 각이네? 어비스 길드 기록이라니, 그거 최고 신기록이잖아?
- 거기선 BJ대마도사도 초반부터 달려야지.
- 원하는 건 뭐든 준다고? 와, 이 정도면 BJ대마도사도 이 악물고 달리겠는데?
미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헉? 백지수표? 원하는 거 아무거나?’
의뢰 내용을 떠나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보상에 그대로 표정이 굳어버렸다.
머릿속도 굳어버렸다.
그때 구스타프도 제안을 했다.
[구스타프 님이 10,034달러를 후원했습니다.]
[구스타프 : 아즈모와 같은 조건에 난 라이브 날짜 알려주면 내 라이브 방송으로 BJ대마도사의 라이브 방송 홍보도 해주지.]
아즈모와 동일 조건에다가 자기 방송에서 홍보까지 해주겠다!
- 받고 하나 더?
- 아즈모 대 구스타프, 진짜 한 판 붙을 모양이네.
- 이쯤 됐으면 멀린도 붙어야 하는 거 아님?
- 아니, 그보다 구스타프가 자기 라이브에서 홍보해주면 BJ대마도사 시청자 폭발하겠는데?
파격, 그 이상!
‘진짜?’
미다스 입장에서는 당장 터져 나오려는 환호성을 참는 게 고역일 정도였다.
‘구스타프 라이브 방송 시청자 숫자라면…… 어쩌면 라이브 시청자 1천만 명 넘을지도? 그럼 당연히…….'
동시에 고민도 시작됐다.
‘아니야. 그래도 아즈모가 거물은 더 거물이지. 그리고 그동안 받은 게 있잖아?’
제안만 놓고 보면 구스타프 쪽이 훨씬 나았으나, 아즈모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아즈모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
‘어떻게 하지?’
그 복잡한 상황 속에서 불사자 길드의 마스터 라포가 제안을 했다.
[라포 님이 10,035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라포 : 보상은 기본 백지수표이네. 나도 그럼 백지수표 내야지. 대신 의뢰는 달라. 얼어붙은 땅에 우리 길드가 공략 중인 던전이 있는데 공략해주는 것.]
그 제안에 시청자들이 혀를 찼다.
- 똘똘이, 네 주인이 이렇게 짰니?
- 아, 이거 보면 똘똘이 실망할 듯.
- 똘똘이 조만간 BJ대마도사네로 올 듯?
- 럭키 똘똘이 콤비 가즈아!
앞선 제안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스케일도 약할뿐더러, 어떤 의미에서는 불사자 길드가 이익을 보는 제안.
[라포 님이 10,036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라포 : 참고로 이 던전 내가 발견했던 건데 여전히 미공략 상태야. 지금 애들도 2번 실패했고.]
그러나 추가 설명이 이어지는 순간 시청자들의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앞선 제안들에 비해서는 의뢰 내용 자체가 흥미가 돋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무엇보다 그 제안을 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라포였다.
- 라포가 발견했다고?
ㄴ 라포가 발견했다면 보통 던전 아니라는 건데? 엄청난 보상이 예고된 던전이라는 거잖아?
ㄴ 그렇지. 라포는 갓워즈에서 가장 운 좋은 플레이어이니까.
갓워즈에서 오직 운, 그 요소 하나만으로 10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된 자!
그런 자가 발견한 던전이 평범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 그런데 라포도 공략을 못 했다?
- 라포가 발견했다는 거면 꽤 오래 전의 일일 텐데, 그 이후 계속 시도했는데 실패했다고?
- 난이도 미친 모양이네.
- 난 이게 재미있을 거 같아.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BJ대마도사를 향했다.
과연 그가 무엇을 선택할지.
- 메리트는 구스타프 제안이 제일 좋지.
- 아즈모가 그동안 해준 게 얼만데? 이번에 아즈모 선택 안 하면 뒤끝이 장난 아닐 텐데?
- 그리고 원래 아즈모가 구스타프보다 급 높음.
- 응, 구스타프도 충분한 부자야.
- 분명한 건 불사자 길드 제안이 가장 구리다는 거겠지. 말이 그렇지, 결국 자기들은 못 가는 어려운 길을 BJ대마도사보고 대신 운전 좀 해달라는 거잖아?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각의 선택지에 점수를 매겼다.
미다스 역시 마찬가지로 고민했다.
물론 선택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고르기 좋은 선택지는 정해졌으니까.
‘아즈모다.’
종합적인 부분들을 고려했을 때 아즈모가 가장 무난했다.
‘그러니까 다른 이들이 섭섭하진 않게 말해야 해.’
고민하는 부분은 이대로 아즈모를 선택하면 남은 둘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는 것.
그러니 나름 좋게 이 상황을 넘어갈 말재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 던전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그때 미다스가 던전 이름을 물어봤다.
당신 제안에 관심이 있습니다, 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내심을 숨기고 고민하는 척 연기를 하기 위해서.
그 질문에 라포가 대답했다.
[라포 님이 10,037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라포 : 이름 모를 마법사의 던전.]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하나였다.
“아, 흥미가 돋는 이름이네요.”
‘좆됐다.’
상황이 골치 아프게 됐다는 것.
말 그대로였다.
‘하필이면…….'
다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공략 던전을 현재 불사자 길드가 관리하고 있는 상황.
‘아니, 그보다 그걸 발견했다고?’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까지 미다스가 경험한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는 다른 무엇보다 발견하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다.
미다스의 눈이 아니었다면 길드 단위의 탐색과 수색이 있어야 가능한 수준.
그마저도 인지한 상태에서의 조사와 발견이 필요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라포가 그걸 알고 움직였을 리는 만무.
‘운빨 장난 아니네.’
그는 그저 운 좋게 발견했을 터였다.
‘아.’
그리고 미다스 입장에서는 불운이었다.
이 순간 미다스가 해야 하는 결정은 하나였으니까.
‘여기서 라포를 안 고르면 더 골치 아파져. 필시 그 주변에 길드원들을 배치했을 테니까.’
불사자 길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한 고민 끝에 미다스가 손으로 제 턱을 만지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흥미롭군요.”
흥미진진한 제안을 받았다는 표정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불사자 길드도 공략에 실패했다, 그냥 플레이어들이 세운 기록 깨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 제안이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 그래, 그거지!
- 일반 몬스터 빨리 잡는 것보다 누구도 못 깬 던전 공략이 더 재미있지!
- 크으, 역시 BJ대마도사 님은 뭘 좀 아신다니까.
- BJ럭키님, BJ대마도사가 이렇게 잘 컸습니다! 칭찬해주시죠!
- BJ대마도사 님이 버스 운전하신다!
가장 흥미진진한 선택지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대한 환호.
그 환호 속에서 입찰에 실패한 둘이 말했다.
[아즈모 님이 10,038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오케이, 이제 취향을 알겠네. 이런 거 좋아했구나, 아무도 못 깨는 던전, 사냥터 같은 거 공략하는 거. 게임 하드코어하게 하는 거. 진작에 말해주지. 난 그냥 편하게 게임하는 거 좋아하는 타입인 줄 알았지.]
[구스타프 님이 10,039달러를 후원했습니다.]
[구스타프 : BJ대마도사, 하드코어, 하이 리스크, 헬모드 취향 메모 완료.]
이제 네 취향을 알겠다고.
잘 참고하겠다고.
‘앞으로 의뢰 난이도 엄청 오르겠네.’
미다스 입장에서는 결코 좋을 리 없는 흐름이었다.
그럼에도 이 순간 미다스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하, 원래 게임은 어렵게 해야죠. 지금까지 제가 게임을 너무 쉽게 한 건 사실이잖아요?”
BJ대마도사의 취향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4.
“이거 나도 조만간 후원해야 할 것 같은데?”
BJ대마도사 라이브 방송을 보던 멀린이 헛웃음과 함께 말을 뱉으며 엠마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이번에도 실패한 거 같은데? 결국 BJ대마도사의 전력을 확인하지 못했잖아?”
실패.
그 두 글자 단어에 엠마는 반응하지 않았다.
제 감정을 얼굴 위로 드러내지 않았다.
‘기회가 왔다.’
지금 느끼는 기쁨을 가슴 속에서만 맴돌게 했다.
‘설마 이렇게 기회가 오다니.’
그런 엠마의 머릿속에는 플레이어 한 명이 떠올렸다.
현재 불사자 길드 소속으로 어비스 길드 이적을 위해 물밑에서 협상 중인 플레이어 한 명이.
그리고 그 플레이어를 통해 전해 들은 이름 모를 마법사의 던전에 대한 정보를.
‘잡을 수 있다.’
그러한 생각에 이르렀을 때 엠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멀린이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할까?”
그 질문에 엠마가 대답했다.
“일단 상황을 봐야죠. 필요하다면 멀린 씨가 경매에 참가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아즈모랑 구스타프 사이에 끼라고?”
“어비스 길드도 공략에 실패한 던전 몇 곳이 있으니까요. 그곳에 등을 떠밀어 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그 말에 멀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말을 뱉은 엠마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머릿속에 두지 않았다.
‘이번에 확실하게 발목을 잡는다.’
그녀가 보기에 BJ대마도사에게 다음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