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 41화. 트리플 헤드 트롤 (3). >
7.
갓워즈에서 플레이어들은 레벨이 높아질수록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제 자리에서 십여 미터 넘게 점프를 하는 건 물론, 90도 경사나 다름없는 절벽을 가뿐하게 오르거나 혹은 몸통 박치기만으로 몬스터를 수십여 미터 멀리 날리는 것도 가능했다.
그 사실은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몬스터에게 맞아 수십 미터를 날아가거나, 굴러가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다.
의외로 자주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근접 딜러, 탱커들이라면 보스 몬스터 레이드 도중에 한 번 이상을 겪어볼 일.
그러한 일을 겪었을 때 중요한 건 날아가거나, 굴러가는 와중에 최대한 정신 상태를 온전하게 유지하며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에 따라서 생존율이 매우 크게 차이가 났으니까.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훈련을 했다.
미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임 오버를 당하는 순간 자신은 물론 형과 조카의 밥줄마저 끊길지 모르는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훈련이었다.
‘아……'
그렇기에 골렘에서 굴러떨어지는 상황, 보통 플레이어들이라면 정신이 없을 상황 속에서 미다스의 정신은 매우 또렷했다.
'......쪽팔려.’
당연히 느끼는 창피함 역시 또렷했다.
철퍼덕!
이윽고 미다스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미다스는 간절하게 소망했다.
‘다른 데 찍어라…… 제발 다른데!’
라이징 스타 채널이 자신의 이 부끄러운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을 송출해주기를.
물론 그럴 일은 없었다.
라이징 스타 채널 입장에서는 사전에 연출을 상의한 적이 없는 상황, 당연히 그들은 이게 연출인지 사고인지 알지 못했다.
도리어 그들은 굴러넘어지는 BJ대마도사를 더 제대로 찍을 수 있는 화면 각도를 찾아 라이브 방송에 송출했다.
심지어 바닥에 넘어지는 순간 화면을 3분할 한 뒤 위에서, 옆에서, 앞에서 본 장면을 동시 송출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미다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세를 잡았다.
두 다리로 잘 착지한 듯한 자세를, 소위 히어로 랜딩이라 불리는 자세를.
그 상태에서 슬쩍 채팅창을 바라봤다.
- 굴렀네.
- 굴렀어.
그 반응에 미다스가 크흠, 헛기침 한 번을 내뱉은 후에 말했다.
“하하! 어떻습니까? 노잼 방송이라서 제가 일부러 한 번 굴러봤습니다. 하하하!”
그 말에 시청자들도 바로 반응을 보였다.
- 진심으로 구른 거였어?
- 장난 아니라 진짜 구른 거였네?
- 와, 리얼이었구나! 진짜 실수로 구른 거였네!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러한 미다스의 반응에 이게 장난이 아니라 실제 해프닝임을 확신했다.
그 모습에 미다스가 재차 말했다.
“에이, 리얼이라니? 연출입니다. 연출! 설마 제가 저기서 정말 물리 마법 쓸 생각에 정신이 나가서 골렘 위에 있는 걸 모르고, 발을 헛디뎠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멍청하게 보이십니까?”
그때였다.
왕!
럭키가 울음소리와 함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미다스에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럭키의 모습에는 트리플 헤드 트롤을 상대로 보여주었던 강인하면서도 살벌한 맹수의 기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헥헥!
마치 큰일을 해낸 강아지가 주인에게 칭찬 받을 생각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발랄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증거였다.
이번 전투가 끝났다는 증거.
왕!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와 제 다리에 머리를 비벼대는 럭키의 모습에 미다스가 말했다.
“럭키야, 네가 설명해줘라.”
왕!
“그래, 그래.”
왕!
“주인님이 사전에 이걸 연출할 거라고 말해줬다고? 그렇지? 분명 이거 사전에 준비한 연출이었지?"
왕!
“이것 보십시오, 제 말이 맞죠?”
그러한 미다스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BJ대마도사야추하다 님이 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부끄러움은왜우리몫인가 님이 1유로를 후원했습니다.]
[구스타프 님이 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님이 1달러 1센트를 후원했습니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미다스를 조롱하는 후원과 채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에이, 진짜! 연출이라니까요!”
그 채팅에 미다스가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잘 무마했다.’
동시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괜히 분위기 싸해지는 것보단 이게 나아.’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차선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상황.
'쯧.'
물론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선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거기서 물리 마법 썼으면 그림 제대로 나오는 건데.’
기존의 계획대로 했다면 이보다 더 화끈한 반응을 가져올 수 있었을 터.
그렇게 아쉬움을 곱씹는 미다스를 위로하려는 듯 그의 귓속으로 알림이 들렸다.
[트리플 헤드 트롤을 홀로 잡은 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트리플 헤드 트롤 사냥꾼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상처 입지 않는 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무려 타이틀 보상만 3개.
그게 끝이 아니었다.
[퀘스트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달콤한 레벨업 알림도 들렸다.
‘이걸로 109레벨.’
그 알림 뒤로 미다스가 고개를 돌려 쓰러진 트리플 헤드 트롤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사체.
‘이게 내꺼라니.’
그러한 트리플 헤드 트롤의 사체를 바라보는 미다스는 잠시 동안 감상에 젖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토록 거대한 몬스터 사체를 지척에서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보다 더 큰 보스 몬스터를 잡아본 적은 많았지만, 임시로 고용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미다스에게는 그 보스 몬스터의 지척에 접근 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이토록 거대한 몬스터 사체를 지척에서 볼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선택 받은 이들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템 루팅.”
그리고 그러한 몬스터 앞에서 아이템 루팅을 하는 건 개중에서도 가장 선택받은 이들, 그 무리의 우두머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템 루팅이 시작됩니다.]
[인벤토리에 아이템이 4개 추가되었습니다.]
이윽고 알림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이 어수선해졌다.
- 뭐 나왔어요?
- 무슨 템 먹었는지 보여주세요!
- 새로운 템 공개해주세요!
- 바로 언박싱 가시죠!
그 어수선함은 곧바로 열기로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아이템을 공개하면 그 역시 최초 공개가 되는 상황.
‘아이템 공개만으로 영상 하나는 더 만들 수 있는데, 여기서 뿌리면 안 돼.’
달리 말하면 미다스 입장에서는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미다스가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채팅방 분위기는 이제 요구에서 강요 비슷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템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 열기가 역풍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분위기.
그런 미다스에게 구세주가 왔다.
“네놈, 나를 만난 녀석이구나.”
NPC나타르사, 고스트와 똑같은 생김새를 가진 그가 미다스의 머리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건넸다.
- 고스트잖아?
- 어? 말하네?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채팅창이 어수선해졌다.
‘나이스 타이밍!’
그 사실에 미다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시나리오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라이브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미다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라이브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8.
“끼앗호!”
라이브가 종료되는 순간, 미다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환호의 춤을 추는 것이었다.
“해냈다! 씨발 내가 해냈어!”
사전에 계획했던 시나리오 중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 상황.
그리고 그 시나리오에서 미다스는 최대한 실수를 줄이면서 완료할 수 있었다.
‘이번 거, 대박이다.’
이번 라이브 방송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는 셈.
그렇게 환호하는 미다스를 향해 NPC나타르사가 다가오더니 미다스의 손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수호자의 장갑을 보아하니, 신기루의 숲에서의 나를 만난 모양이군.”
자신을 처음 보는 듯한 NPC나타르사의 질문에 미다스가 환호를 멈추었다.
의문은 길지 않았다.
“영혼이 분리되신 겁니까?”
배경 상황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긴 설명은 필요 없겠군.”
미다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NPC나타르사가 곧바로 손짓을 하며 어디론가 이동했다.
미다스는 그런 NPC나타르사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굳이 퀘스트 진행 매끄럽게 잘 되는데 태클 걸 필요는 없지.’
무엇보다 미다스는 궁금했다.
‘그보다 이번에는 무슨 옵션이 어떻게 되려나?’
과연 이번에 주는 아이템의 옵션이 무엇일지.
그 의문을 품은 채 미다스가 슬쩍 퀘스트 창을 열었다.
[트리플 헤드 트롤의 둥지 ]
- 퀘스트 랭크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10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트리플 헤드 트롤의 둥지에서 트리플 헤드 트롤을 처치하라!
- 퀘스트 보상 : 수호자의 머리띠
!퀘스트 완료 시 ‘수호자의 마지막 보물’ 진행 가능.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미다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뭐, 구릴 리는 없겠지.’
이미 수호자의 장갑만 보더라도 수호자 세트가 레전더리 급 혹은 그 이상임이 확인된 바.
‘머리띠에 엘프의 부츠를 신으면……'
더욱이 이번 의뢰 보상으로 엘프의 부츠를 받게 된 상황이었다.
단숨에 레전더리 아이템이 2파츠나 추가되는 상황.
“여기다.”
이윽고 NPC나타르사가 걸음을 멈추었다.
멈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숲의 풍경만 있을 뿐.
‘맙소사.’
그러나 미다스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주변의 풍경에 녹아든 머리 크기의 돌덩이, 그것을 휘감고 있는 얄팍한 머리띠 하나를.
[수호자의 머리띠]
- 등급 : 레전더리
- 착용 가능 레벨 : 105레벨 이상
- 수호자 나타르사의 머리띠이다. 대자연의 힘을 흡수해 수호자에게 신비로운 힘을 준다.
- 근력 +61
- 체력 +59
- 지력 +213
- 마력 +155
- 공격력 +16
- 착용 시 카모플라쥬 스킬 사용 가능
- 습득 시 귀속 (거래 불가)
그러한 머리띠의 옵션을 바라본 미다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감탄도 없었다.
‘카모플라쥬라니……'
예상은커녕 상상조차 못하던 옵션이 등장하는 순간이었기에.
그런 그에게 미다스에게 NPC나타르사가 말했다.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군.”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항목에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9.
참사.
엠마 입장에서는 그리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가 한 건 다름 아니라 직시였다.
- 하지만 광고해주는 곳에서 만드는 제품은 요즘 자주 먹고 있습니다. 좋더라고요. 이번에도 먹고 왔습니다. 이거 꽤 괜찮던데 주식을 사볼까, 고민 중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우습게 만드는 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 이제부터는 시나리오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라이브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라이브 방송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그녀와 똑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멀린이 있었고, 그 역시 BJ대마도사의 방송이 끝난 다음에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우스운 꼴이 됐군.”
짤막한 말.
그러한 말을 내뱉는 멀린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저 던질 말이 없어 툭 내뱉은 말이 아니라 속 깊은 곳의 진심을 꺼냈다는 증거였다.
그렇기에 그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농락이지, 농락.”
이 말을 내뱉는 이가, 어비스 길드라는 갓워즈의 절대 권력의 중추가 이제는 진심으로 심기가 뒤틀렸다는 의미였으니까.
그건 곧 의지의 표현이었다.
“가만히 있는 게 힘들 지경이야.”
이러한 뒷공작 따위는 이제 그만하고 정면에서 어떤 식으로든 짓뭉개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는 의지의 표현.
할 수만 있다면 어비스 길드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모욕감을 준 BJ대마도사를 응징하고 싶다는 심정의 표현.
그러한 멀린에게 엠마가 말했다.
“일단 이제는 위에서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려야겠죠.”
이미 자신들이 무언가를 제 깜냥으로 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난 상황이라고.
“그렇지.”
멀린 역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한가지는 확실하지. 이제 어설프게 의뢰 따위로 놈을 낚으려고 해봤자, 도리어 놈의 인벤토리만 풍요로워질 뿐이라는 것.”
그럼에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은 채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위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이대로 BJ대마도사를 가만히 둘 생각은 없잖아?”
그 물음에 엠마가 대답했다.
“가만히 두는 게 답일 수도 있죠.”
“뭐?”
“말 그대로예요. BJ대마도사에게 그 무엇도 하지 않는 게 답일 수도 있다고요.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거죠. 이제까지처럼 그냥 그가 혼자만 다니게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대답.
“하긴.”
그러나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멀린은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 사냥터는 밤숲이니까.”
밤숲.
“웨어울프와 그 무리들이 나오는.”
그리고 웨어울프.
그 두 가지를 떠올린 멀린이 혀를 내둘렀다.
“15인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무리를 지어서 사냥하는 그곳에서 홀로 외로이 사냥하기란 분명 쉽진 않은 일이지.”
그 말에 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BJ대마도사가 마주하게 될 사냥터는 개체가 아닌 무리를 상대해야 하는 무대.
파티 사냥이라면 할 만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무대였다.
“하지만 놈의 화력을 생각하면 사냥을 못할 이유는 없어.”
물론 이제까지 BJ대마도사가 보여준 능력을 고려하면 난이도가 오를지언정 안 될 것 없었다.
“그렇죠. 대신에 시간은 벌 수 있겠죠.”
이어진 말에 멀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차라리 BJ대마도사 놈이 우리랑 레벨이 비슷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당장 박살을 낼 수 있을 테니."
멀린의 말에 엠마가 대답했다.
“그럴 일은 아마 영원토록 오지 않을 거예요.”
우웅!
그 대답이 끝나는 순간 엠마의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을 토해냈다.
엠마가 곧바로 액정을 확인했다.
그 모습에 멀린이 말을 던졌다.
“급하면 받지? 필요하면 자리를 피해줄 테니까.”
“별거 아니에요.”
대답과 함께 통화 거절 버튼을 터치하는 엠마의 표정은 정말 별거 아닌 듯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멀린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시간을 버는 동안 뭘 할 생각이지?”
“뭐든 해야겠죠.”
두루뭉술한 대답.
그러나 이미 엠마는 답을 내놓은 상태였다.
‘박영준, 지금은 그를 상대하는 게 우선이야.’
지금 박영준,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