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 38화. 트롤의 숲 (2). >
4.
갓워즈에서 몬스터를 스틸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경험치나 관련 타이틀은 마지막에 데미지를 준 플레이어 그리고 그 플레이어와 파티 플레이들만이 받을 수 있었다.
아이템의 경우에는 누가 먼저 아이템 루팅을 하는 쪽이 우선권을 가질 따름이었다.
이쯤 되면 ‘그냥 보스 몬스터를 두고 개싸움을 하라고 일부러 이렇게 설계한 거 아니야?’ 같은 소리가 나올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 몬스터 스틸을 시도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은 많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만큼 조심한다는 것.
두 번째 이유는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시도하는 이들 중에 평범한 플레이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
실제로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시도하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이름난 길드 소속의 유망주들이었다.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고, 지원을 받아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꿈꾸기 힘든 고가의 아이템을 가진 이들.
그런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겼을 경우였다.
스틸에 성공했을 경우, 과연 그 경우 몬스터를 도난 당한 이들은 어떻게 할까?
갓워즈 커뮤니티 게시판에 눈물 어린 아이콘을 뒤섞으며 푸념을 뱉을까?
아니면 자신의 등 뒤에 있는 거대 길드에 사정을 설명하고 처절한 응징과 복수를 부탁할까?
아니, 부탁할 필요도 없었다.
1티어급 길드라면 이러한 일에 대해서 타협 없는 응징과 보복을 해야 했으니까.
그렇기에 갓워즈에서 보스 몬스터를 스틸했던 이들 대부분은 처절한 응징을 당했으며, 그러한 사례들이 쌓이며 생태계를 만들었다.
- 예, 맞습니다. 난입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보세요. 이런 기회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까.
지금 BJ대마도사가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생태계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 다시 말합니다. 이틀 후에 트롤의 숲에서 트윈 헤드 트롤 레이드를 시도합니다. 몬스터 스틸을 하든 PK를 걸든 마음대로 하세요. 어디 길드 소속이건 간에 제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복은 없을 겁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절 게임 오버 시켰을 때의 경우이지만.
레이드 날짜를 공지했고, 라이브 방송을 예고했으며, 그 어떤 후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파격 선언!
때문에 그 선언에 모든 이들이 놀랐다.
“골치 아프게 됐군.”
그중에는 어비스 길드의 핵심 멤버인 멀린이 있었다.
“BJ대마도사란 놈이 정도를 모르는 놈이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200인치, 종잇장처럼 얄팍한 화면 너머로 선명하게 보이는 BJ대마도사의 라이브 방송을 보던 멀린이 고개를 돌려 엠마의 표정을 확인했다.
“이런 식이면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모여들 텐데…… 그러면 사냥뱀 길드가 움직이기도 쉽지 않겠어. 너무 변수가 많잖아?”
그렇게 멀린이 확인한 엠마의 표정에는 심각함이란 단어를 표현하듯 살짝 굳어 있었다.
그 표정을 확인한 멀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아예 판을 키울 줄이야. 역시 보통 재주는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어진 물음에 엠마는 대답 대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러한 한숨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다 사라질 무렵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다른 것보다 BJ대마도사를 잡기 위해 어느 길드가 움직일지, 그것부터 조사해봐야겠네요. 이 정도면 1티어급 길드의 유망주들도 충분히 메리트를 느낄 테니까요. 문제는 시간인데…… 다른 선택지도 염두에 두어야겠죠.”
답이라고 하기에는 힘든 대답.
그러한 그녀의 대답에 멀린은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래, 잘해야지.”
대신 격려 어린 말과 함께 검지로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위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더가 내려올 테니까.”
경고 어린 격려.
그 말에 엠마가 여전히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함 심정을 숨길 수 없음을 얼굴 위로 그대로 드러냈다.
‘상관없어.’
그러나 그 표정과 달리 그녀의 속내에 복잡함은 없었다.
작금의 상황을 예상했던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할 필요가 없었다.
‘사냥뱀 길드가 움직이는 건 모든 게 끝난 다음, 커튼이 내려온 다음이니까.’
애초에 엠마와 사냥뱀 길드는 보스 몬스터 스틸을 시도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사냥뱀 길드가 노리는 것은 보스 몬스터 사냥을 마친 후의 BJ대마도사였다.
BJ대마도사가 의뢰에 성공했음을 느끼고 자신하는 순간, 모든 역량을 토해내는 순간.
그 순간 끝장을 낼 속셈이었다.
즉, 보스 몬스터 레이드 자체가 함정이었다.
‘놈이 오히려 판을 키워서 제 스스로 지쳐준다면 이쪽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지.’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수작을 부리는 건 사냥뱀 길드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재.
‘라이브를 하는 순간, 끝이다.’
무슨 짓을 하든 결국 그 자리에 등장했다는 것이 BJ대마도사에게는 악몽이 될 테니까.
그렇기에 엠마는 더 이상 BJ대마도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다음은 배신자를 처리해야지.’
다음 사냥감을 물색할 뿐.
5.
- 사냥 날짜도 공개했는데, 심지어 난입까지 허락하다니!
- 세상에 이런 방송은 없었다, BJ인가 또라이인가?
ㄴ 또라이인듯?
ㄴ ㅇㅇ 또라이지.
BJ대마도사의 선언에 사람들은 놀랐고 동시에 흥분했다.
그리고 이내 시간이 흐르며 뜨거워졌던 열기가 가라앉고, 정신이 차가워졌을 때 그들은 BJ대마도사의 진짜 의중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이거 말이 보복 안 하겠다는 거지, 달리 말하면 근처에 오는 놈들은 죄다 적으로 보고 죽이겠다는 거잖아?
- 그래, 이건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게 아니야. 이건 저번에 난입 당한 것에 대한 선언이라고.
BJ대마도사의 선언이 그저 라이브 시청자 숫자를 늘리기 위한 또 다른 하나의 쇼가 아님을.
- 자신을 방해하는 놈들을 문자 그대로 공개 처형하겠다고.
이것이 자신을 향한 도전에 대한 처절한 응징임을.
그 사실에 이르렀을 때 몇몇 이들은 생각했다.
- 와, 이 이야기 듣고 난입하려던 거 포기함.
- 이거 난입했다간 저승행 티켓 끊겠는데?
- 하물며 표적은 BJ대마도사잖아!
이 리스크가 넘치는 일에 과연 누가 발을 담글 것인가?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 그래, 표적이 BJ대마도사지.
- 스몰 파크 랭킹 955위, 현재 갓워즈에서 200레벨 이하 플레이어 중 이슈 랭킹 2위.
- 잡으면 대박.
- 지금 어지간한 200레벨 보스 몬스터 잡는 것보다 BJ대마도사 잡는 게 훨씬 나을 걸?
BJ대마도사가 사냥감이라는 메리트를 생각하면 그 리스크를 감수해볼 만하다고.
그 사실이 또 다른 가십거리가 되었다.
- 사실 이런 기회 별로 없잖아? 여기서 BJ대마도사 잡으면 진짜 로또 맞는 거 아니야?
- 누가 그러던데? BJ대마도사 죽이면 그 자리에서 10만 달러 버는 거라고.
- 이렇게 되면 1티어급 길드가 움직이겠는데? 솔직히 이런 기회 다시는 안 오잖아?
과연 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기꺼이 도전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도전자는 얼마나 될 것인가?
그 도전자들을 상대로 BJ대마도사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 누구도 준 적 없었던 기대감 속에서 결전의 날이 밝았다.
6.
‘개판인 줄 알면서도 개떼처럼 모였네.’
트롤의 숲, 그곳을 채운 플레이어들을 확인한 미다스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그렇게 싫은가?’
적지 않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잡고 싶어하는 플레이어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에 대한 쓴웃음이었다.
더욱이 이들이 자신을 잡으러 온 이들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저기, 골드다!”
“옆에 럭키도 있네.”
트롤의 숲임에도 뻔히 보이는 트롤을 무시한 채 다른 것을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라리는 이유가 달리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BJ대마도사는 안 보이는데?”
“모습을 숨기고 있겠지.”
덕분이었다.
‘그래, 잘 숨기고 있지.’
폴리모프를 통해 트롤로 변신한 미다스가 주변을 배회하며 자신을 노리러 온 이들을 무리 없이 탐색할 수 있었던 건.
‘그보다 다들 길드 빵빵하네. 어중이떠중이들이 찾는 게 더 힘들 지경이야.’
그렇게 미다스가 가볍게 탐색하면서 파악한 플레이어의 숫자는 사십여 명 정도였다.
물론 그냥 사십여 명이 아니었다.
‘궁수 클래스가 스물일곱, 도적 클래스가 열다섯인가?’
먼 거리에서 감시가 가능한 궁수 클래스와 은신 스킬을 통해 모습을 숨길 수 있는 도적 클래스로 구성된 이들만 사십여 명.
‘후방에 남겨둔 파티원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내 주변에만 백오십 이상이네.’
아직 라이브 방송이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벌써 백이 넘는 이들이 꼬리에 붙은 셈이었다.
‘사냥뱀 길드도 보였고.’
그리고 그중에는 사냥뱀 길드원도 보였다.
‘둘이나.’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
그렇게 자신을 포위한 하이에나들과 그 속에 숨은 사냥뱀의 숫자를 가늠한 미다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트윈 헤드 트롤 출몰까지 남은 시간 2분 29초]
보스 몬스터 리젠 타임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저것이 0이 되고 미다스가 등장한 트윈 헤드 트롤에게 공격을 날리는 순간 라이브 방송이 시작될 것이다.
‘라이브가 시작되면 이 세 배는 올 거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면 지금의 배가 넘는 이들이 이곳에 몰려들 터였다.
이제부터 그 어마어마한 무리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사냥뱀 길드 앞에서 트윈 헤드 트롤을 잡아야 하는 셈.
‘뭐, 몇 명이 오든 상관은 없지만.’
그러나 그 상상만으로도 아득한 일 앞에서 의외로 미다스의 기색은 평범했다.
그렇게 평온한 기색을 품은 채 미다스가 트롤인 척 연기를 하며 주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머리 위에 있는 카운트다운이 0이 됐다.
크어어어!
크아아아!
그와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듯이 트원 헤드 트롤의 두 개의 머리가 괴성을 내질렀다.
“여기서 떴어?”
“어? 진짜 뜬 거야?”
그 사실에 BJ대마도사를 감시하던 이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시점은 마지막으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 시간을 알면 가늠할 수 있지만, 등장하는 무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법.
즉, 트윈 헤드 트롤의 등장 자체가 여기 모인 모든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예상치 못했기에 모두가 그대로 굳었다.
그러한 그들을 움직이게 한 건 소리였다.
퍼엉!
불덩이가 트원 헤드 트롤과 부딪치며 낸 소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모두가 똑같이 소리쳤다.
“BJ대마도사가 선공권을 가졌다!"
“레이드 시작이다!”
7.
트롤의 숲에서 등장하는 트롤은 그 덩치에 따라서 레벨이 달라졌다.
3미터에서 4미터 사이 녀석은 110레벨 근처이지만, 5미터가 넘는 애들 중에는 130레벨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그러한 트롤들의 보스 몬스터인 트윈 헤드 트롤의 덩치는 가장 클 수밖에 없었다.
6.3미터의 신장 그리고 그러한 신장을 난쟁이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대한 덩치.
크어!
크아!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러한 거대한 몸뚱이 위에 달린 두 개의 머리였다.
서로가 몸의 주인임을 증명하려는 듯, 경쟁적으로 내지르는 포악한 괴성이 숲을 뒤흔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존재감.
그러한 존재감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것이 보스 몬스터에 대해 실력 있는 플레이어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이유였다.
일반 플레이어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보스 몬스터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으니까.
달리 말하면 보스 몬스터를 상대함에 있어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용기였다.
보스 몬스터를 보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먼저 공격을 날릴 용기.
그런 의미에서 미다스, 그가 보여준 용기는 그 누구보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퍼엉!
망설임 한 점 없이 던진 큼지막한 파이어볼이 두 개의 머리를 품은 가슴, 그 정중앙에 꽂혔으니까.
“대단하네.”
먼발치에서 스킬을 통해 그것을 보던 플레이어들, BJ대마도사를 노리기 위해 온 그들도 그 광경에는 감탄을 토해냈다.
“뒤도 안 보고 일단 날리고 보네.”
“저 괴물을 상대로 말이야.”
만반의 준비를 마친 파티들보다 막상 조우하는 순간 쉽사리 공세를 퍼부을 수 없는 괴물이었으니까.
물론 그러한 놀람은 잠시였다.
BJ대마도사가 레이드를 시작했다는 것을 파악한 감시자들은 그 사실을 후방에 대기 중인 동료들에게 알렸다.
“레이드 시작이다!”
“다들 움직여!”
그것을 보고 받은 플레이어들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계획대로 간다!”
“괜히 다른 플레이어들과 충돌하지 마! 눈이 마주쳐도 모른 척 지나가!”
“BJ대마도사가 레이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몬스터들 씨를 말려버려!”
BJ대마도사가 트윈 헤드 트롤 사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목적은 트윈 헤드 트롤 혹은 BJ대마도사, 둘 중 하나.
무엇을 노리든 간에 이제 막 전투가 시작된 지금 시점에서 노릴 이유는 없었다.
그 둘이 치고받으면서 어느 정도 소모전을 치른 다음에 노리는 게 마땅하지.
‘BJ대마도사를 잡는 최적의 적기는 3페이즈, 두 머리 모드일 때다.’
그중에서도 최적의 타이밍은 트원 헤드 트롤이 3페이즈에 돌입하는 순간, 두 머리 모드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황이 올 때까지 변수가 될 여지를 차단하는 게 훨씬 이익이었다.
“괜히 이상한 짓 하는 새끼들은 우리가 잡는다.”
“이야기 다른 파티원들하고는 끝났어. 2페이즈 전까지 움직이는 놈들은 우리가 처리한다.”
심지어 모인 플레이어들 중 일부는 그저 관심을 받기 위해 이상한 짓을 하고자 하는 관심종자들을 처리할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BJ대마도사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말도 안 되는 놈들 때문에 놓칠 순 없지.”
그 목에 수십만 달러나 되는 값이 매겨진 BJ대마도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안 움직이군.’
그러한 플레이어들의 의중을 미다스는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 나 같아도 3페이즈 돌입할 때까지는 지켜만 보겠어.’
그게 상식적이기에.
한편으로는 섬뜩한 일이었다.
크어어!
미다스가 눈앞에 있는 트윈 헤드 트롤이란 괴물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그 전투가 끝에 이르는 순간 수백 명이 넘는 이들이 자신 혹은 트윈 헤드 트롤을 잡기 위해 덤벼든다는 이야기 아닌가?
‘저런 놈들 사이에서 이걸 잡는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
물론 그 끔찍한 상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뭐, 어차피 지금 잡을 생각은 없지만.’
트윈 헤드 트롤 사냥을 포기하는 것.
그 방법을 떠올린 미다스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