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 29화. PvP (3). >
8.
불굴의 의지.
누가 보더라도 마법사에게 있어 좋을 수밖에 없는 스킬, 레전더리란 등급이 붙어도 이상할 것 없는 스킬.
하지만 의외로 이 스킬에 대한 인지도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일단 그 효과가 화려하기는커녕 애초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불굴의 의지 스킬이 발동했다는 건 달리 말하면 그 마법사의 캐스팅이 취소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 빠졌다는 의미.
위기 상황에 빠지는 것을 보여줘서 좋을 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실제로 10대 길드를 대표하는 마법사들 중에 불굴의 의지 스킬을 가진 이는 제법 많았지만, 그 스킬이 발동하는 경우는 없었다.
‘분명 공격이 먹혔다.’
아바트가 눈앞에서 자신에게 마법을 사용한 미다스를 보고 공황 상태에 빠진 건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마법을?’
아바트는 이 순간 미다스가 보여준 저것이 불굴의 의지 덕분이란 걸 상상조차 못했으니까.
비단 아바트만 그런 건 아니었다.
“저거 뭐야? 마법을 썼어?”
“헬파이어볼이 진짜 있었어?”
“아니, 헬파이어볼이 아니라 마법을 쓴 게 이상한 거라니까!”
이 광경을 직접 보는 플레이어들 대부분 역시 이 상황에 놀란 표정을 지을 뿐, 해석하지 못했다.
[아즈모 : 불굴의 의지 스킬이 있으면 외부적 요인으로 캐스팅 취소는 안 되지. 물론 본인이 직접 취소하는 건 다르지만.]
라이브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역시 아즈모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정도.
그러나 그 라이브 방송을 볼 수 있을 리 만무한 아바트의 상태는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조사해볼게요!
그를 도와주는 모니터링 요원 역시 답을 내려주지 못할 정도.
그렇게 아바트가 혼란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미다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확인한 아바트의 머릿속에 불이 켜졌다.
여전히 아바트는 불굴의 의지란 스킬을 떠올리지 못했지만, 대신 지금 상황이 자신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건 떠올릴 수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캐스팅을 취소시킬 수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으니까.
무엇보다 조금 전 아바트는 느껴봤다.
‘끝난다.’
BJ대마도사의 파이어볼, 가장 낮은 레벨의 마법에 맞았음에도 자신의 HP가 10퍼센트가 그대로 날아간 걸.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하는 데미지 딜링, 하물며 맞은 공격이 파이어 스피어나 아이스 스피어였다면?
그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 아바트가 본능적으로 미다스를 향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무조건 공격해야 해.’
근접 딜러에게는 오로지 공격만이 전부였으니까.
그러한 아바트의 접근을 확인한 미다스가 눈빛을 바꾸었다.
‘역시 재능은 다르네.’
대개 이런 경우에서 보통 이들은 뒷걸음질을 치거나 행동하더라도 어색한 행동을 보인다.
그럼에도 아바트는 이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고, 행동에 옮겼다.
스카프 길드, 그 위세 좋은 길드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재능 덕분이었다.
미다스 역시 아바트의 그 재능을 인정했다.
‘그래, 이렇게 나와줘야지.’
인정했기에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고, 예상한 그대로 바로 대응에 나섰다.
미다스가 황소처럼 달려오는 아바트를 피해 그대로 자신의 오른 편으로 몸을 날렸다.
엄청난 속력으로 전진하던 아바트가 그대로 급정거를 한 후에 그대로 고개를 돌려 미다스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모든 이들 역시 당황했다.
“움직였어?”
- 캐스팅 취소된 건가?
마법사는 캐스팅 도중에 움직일 경우 그대로 캐스팅이 취소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더욱이 불굴의 의지 스킬은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방해를 받았을 때 캐스팅을 가능케 하는 거지, 플레이어가 자의적으로 행동할 때는 적용되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스킬만이 그것을 가능케 할 뿐.
[아즈모 님이 1,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무빙 캐스팅도 배웠네. 하긴, 이건 구할 만하지. 비싸봐야 10만 달러도 안 하니까.]
무빙 캐스팅!
이번에는 아바트 역시 그 스킬의 존재를 파악했다.
파악했기에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빌어먹을……'
무빙 캐스팅을 가지고 나올 경우는 상정 범위였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달라붙었다.
무빙 캐스팅은 어디까지나 이동 시에 캐스팅을 가능케 해주는 스킬일 뿐, 공격을 받으면 캐스팅은 취소됐으니까.
그러나 앞서서 공격을 당해도 캐스팅이 취소되지 않는 걸 본 상황 아닌가?
아바트 입장에서는 답이 없는 문제를 직면한 기분.
그사이 캐스팅을 마친 미다스는 망설임 없이 오른손에 든 라이트닝볼을 그대로 아바트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파직!
고작 5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던져진 공격은 아바트에게 피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그대로 그의 얼굴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윽!’
아바트가 그 사실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감추고 자세를 낮추려고 했다.
[마비 상태입니다.]
그러나 감전 효과가 그 행동을 굼뜨게 했고, 미다스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바로 아이스볼을 던졌다.
콰직!
아이스볼이 다시 한 번 아바트의 얼굴에 꽃힘과 동시에 수류탄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광경이었다.
그 순간 아바트가 다시 한 번 미다스와 거리를 좁혔다.
현명한 생각이었다.
[아즈모 : 가만히 있어선 답 없지. 그리고 무빙 캐스팅은 발동되면 이동 속도가 감소하니까. 못 잡을 것도 없고.]
무빙 캐스팅의 단점인 이동 속도 감소를 염두에 둔다면 기동력 대결에서 아바트가 질 일은 없을 터.
그러한 아바트의 접근에 미다스 역시 전력으로 다리를 놀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바트의 검이 미다스를 향해 날아왔고, 미다스가 다시 한 번 옆으로 몸을 날리며 그것을 피했다.
이후 다시 한 번 더 아바트가 미다스를 쫓아 움직였고, 미다스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발을 놀렸다.
꼬리잡기를 하는 듯한 그 광경이 몇 번이 더 거듭됐을 때 모두는 깨달았다.
[아즈모 : 왜 이렇게 빨라? 무빙 캐스팅 발동했잖아?]
미다스의 기동력이 아바트와 비교해 부족하기는커녕 오히려 우세한 상황이란 것을.
그 비결은 하나였다.
‘마스터했지.’
마스터 스킬북.
미다스는 그 스킬북으로 무빙 캐스팅 스킬을 마스터 랭크인 S랭크로 만들었다.
쉽지 않은 선택.
그러나 반대로 그 무엇보다 확실한 선택이었다.
‘이걸로 PK는 끝이다.’
적어도 미다스가 동급 플레이어들과의 PK에서는 결코 질 수가 없음을 알려주는 선택.
혹여 잡을 수 있더라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파이어볼.”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미다스의 마법 쿨타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 사실에 아바트의 표정은 이제 더 이상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저 질려버렸다.
사실상 승부가 결정 나는 순간이었다.
아바트가 미다스에게 앞으로 몇 번 더 공격을 명중시킬 수 있겠지만, 캐스팅을 막지 못하는 이상 아바트가 먼저 무너질 터.
하물며 이 대결은 1대 1아닌가?
힐러의 도움도, 탱커의 개입도 바랄 수 없는 1대 1대결.
미다스 입장에서는 이대로만 가도 충분히 그리고 유유히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이대로 끝나면 재미없지.’
그러나 미다스는 그 사실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쇼크 웨이브!”
미다스, 그가 새로운 마법을 꺼냈다.
[아즈모가 1,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얘, 돈 좀 쓸 줄 아네.]
9.
갓워즈에서는 스타 플레이어가 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한 별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거였다.
별을 잡는 것.
갓워즈 초창기에 …가 빈번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별들이 내린 방법은 간단했다.
‘일벌백계라는 단어가 오래 전부터 쓰인 이유가 있는 법이지.’
확실하게 격차를 보여줌으로써 도전 자체를 차단하는 것.
지금 미다스가 준비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1천 명이 넘는 관중과 10만 명이 넘는 시청자 앞에서 미다스는 확실하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저울질 따위가 애초에 불가능하게 해주마.’
BJ대마도사는 애초에 잡을 수 없으니, 그를 잡으면 어떻게 될까? 같은 계산 따윈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러한 미다스의 의중은 분명하게 먹히고 있었다.
쇼크 웨이브!
그 스킬이 등장하는 순간 미다스를 잡으러 왔던 혹은 그럴 의중을 가지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졌다.
‘쇼크 웨이브는 광역기잖아?’
‘저건 피할 수도 없어.’
파이어볼이나 아이스 스피어 같은 스킬은 피할 수 있으나, 쇼크 웨이브는 그 회피조차 불가능했으니까.
물론 그들의 표정은 아바트의 표정에 비하면 나았다.
‘젠장!’
미다스에게 달려드는 아바트의 얼굴에는 이미 패배의 기색이 역력했다.
“폭주!”
폭주 스킬, 잠시 동안 모든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를 늘려주는 스킬을 사용하면서 미다스와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순간에도
퍼억!
제 숏소드로 미다스의 목덜미를 내리찍는 순간에도 아바트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자, 캐스팅까지 이제 15초쯤 남았는데 차라리 그냥 도망치는 게 어때? 응? 도망칠 수 있다면 말이야.”
그 말에 아바트가 대답 대신 미다스의 배를 발로 찬 후에 뒷걸음질 치는 미다스를 향해 다시 한 번 공격을 날렸다.
차고, 공격하고, 차고 공격하고!
마치 시계의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는 듯한 완벽한 연계기, 보는 이는 물론 당하는 쪽에서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을 만큼 훌륭한 콤보 플레이였다.
그러나 그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시간을 가늠했다.
- 카운트다운 들어간다.
- 10, 9…….
그리고 이내 그 시간이 끝나는 순간 미다스의 왼손에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미다스가 그렇게 스파크가 튀어오르는 왼손의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가 듣는 순간 미다스와 아바트, 그 둘을 중심으로 반경 10미터의 공간이 좌우로 가볍게 흔들렸다.
[쇼크 웨이브가 발동합니다.]
그리고는 그 알림과 함께 이번에는 공간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꽈릉!
그 후에 천둥소리가 터졌다.
쇼크 웨이브가 발동하는 순간.
그 순간 아바트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심각한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쇼크 웨이브의 감전 효과가 발동했다는 증거.
그렇게 동상처럼 굳어버린 아바트를 앞에 둔 미다스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제 로브를 툭툭 털었다.
여유를 보여줬다.
“아, 이제 슬슬 마무리 들어가야겠네요.”
넘치는 여유.
물론 오로지 미다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였다.
그것을 구경 하는 모든 관중과 시청자들은 잔뜩 긴장한 채 미다스가 보여줄 피날레를 기다렸다.
“마지막은 달라야죠. 인벤토리!”
이어진 말에는 피날레를 상상했다.
- 다르다고? 새로운 마법인가?
- 무기를 바꾸는 거 아닐까?
그때 그가 분명하게 말했다.
[아즈모 님이 1,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위가의 활을 꺼내겠지.]
그 채팅 내용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멈춰있으니까 위가의 활로 맞히기만 하면…….
- 그 후에는 도망쳐도 무조건 적중!
- 역시 아즈모 님이다!
마비 상태에 빠진 상대로 위가의 활을 꺼낸다는 것, 그보다 확실한 마침표는 없을 터.
그러한 좌중의 관심 속에서 미다스는 인벤토리 안에서 무기 하나를 그대로 꺼냈다.
- 어? 위가의 활이 아니네?
- 활이 아니라 지팡이 같은데?
- 도끼?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도끼.
지팡이 대신 이제는 도끼를 든 미다스가 그 도끼 날로 HP가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낸 아바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물리 마법!
그게 미다스가 준비한 마지막 피날레였다.
[아즈모 님이 1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이건 나도 예상 못했다.]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피날레.
10.
두 번이었다.
퍼억!
미다스가 손에 든 도끼가 아바트 몸을 두 번 내리찍는 순간 아바트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몸뚱이처럼 마네킹처럼 그저 사람 비슷한 형태만 갖춘 채가 되었다.
그 상태로 아바트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바트를 처치했습니다.]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미다스는 일단 쓰러진 아바트의 몸 앞에 섰다.
승부란 승자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취한 후에야 끝나는 법.
[아이템을 루팅합니다.]
그렇게 승자가 취할 수 있는 걸 모든 걸 취한 후에야 좌중이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BJ대마도사가 이겼다!”
“물리 마법이 이겼다!”
터지는 환호성.
그러나 그 환호성 사이로 미다스는 이렇다 할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미다스는 손에 든 도끼를 염력으로 띄우고 대신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그 상태에서 미다스가 말했다.
“다음.”
나지막한 중얼거림이었다.
넘치는 환호성 때문에 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
“야, 조용히 해 봐.”
“BJ대마도사가 뭐라고 말하잖아!”
그 소리를 듣기 위해 환호성을 내지르던 이들이 하나둘 환호성을 멈추기 시작했다.
이내 주변의 소란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이 됐을 때 미다스는 등을 돌려 레드 스네이크 길드 소속, 알랍을 보며 말했다.
“다음!”
그 외침이 나오는 순간에는 더 이상 어수선함조차도 없었다.
모두가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인 채 상황을 바라봤다.
“다음!”
그 상태에서 미다스가 세 번째 외침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외침에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미다스랑 눈을 마주하고 있는 알랍은 도리어 고개를 돌려 눈빛을 피했다.
그러자 미다스가 다른 이를 보았고, 그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더 이상 도전자는 없다.
“맙소사.”
- 맙소사.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클라이막스가 나오는 순간, 그 순간의 주인공이 된 미다스는 이내 럭키와 골드를 향해 턱짓을 했고 이제까지 주인의 전투를 보기만 하던 그 둘이 잽싸게 미다스 곁으로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말조차도 쉬이 내뱉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덤빌 사람 없는 거죠?”
그저 이 무대를 휘어잡은 한 명을 바라만 보며, 그의 다음 행동을 하염없이 지켜만 볼 뿐.
그러한 좌중을 향해 미다스는 말했다.
“그럼 셀카 타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