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28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4). >
10.
황금 평야, 그곳에서 사냥하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괜히 지근거리에 있다가 다른 파티의 어그로 관리에 영향이라도 줬다가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 있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모르는 무리와 지척에서 같이 게임 플레이를 하고 싶은 플레이어는 없었다.
“여기라고? 저쯤이 아니라?”
“분명 여기였어.”
그런데 지금 1백 명이 훌쩍 넘는 플레이어들이 일렬로 긴 줄을 만든 채 황금 평야를 헤매고 있었다.
이유 없인 볼 수 없는 광경.
“그래, BJ대마도사가 이 근처에서 뭔가 비밀 던전에 입장했어.”
그 광경의 이유는 다름 아닌 BJ대마도사였다.
“제 입으로도 말했잖아? 비밀 던전에서 새로운 몬스터를 보여주겠다고.”
현재 그가 황금 평야에 존재하는 비밀 던전에서 사냥을 한다는 건 라이브 방송에서 제 스스로 입을 통해 밝혀진 바.
당연히 플레이어들은 그 말을 단서 삼아 그가 말한 비밀 던전 탐색에 나섰다.
물론 그곳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진행자만이 입장할 수 있는 곳.
하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던전 찾으면 대박이다.”
“분명 입구가 있을 거야.”
혹여 던전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BJ대마도사의 인기를 일부라도 훔칠 수 있을 테니까.
그 순간이었다.
“어?”
“뭐야?”
백여 명이 모여 있는 황금 평야 사이로 빛무리가 뿜어지기 시작했고, 좌중의 시선이 그곳에 몰렸다.
“맙소사!”
이윽고 그 빛무리 사이로 등장한 이들을 확인하는 순간 주변이 모두 격한 반응을 보였다.
“BJ럭키다!”
“BJ골드다!”
그 어수선함 사이에서 미다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예상대로 떼로 모였네.’
보이는 플레이어의 숫자만 1백 명 이상.
‘밖은 이제 위험해.’
미다스에게는 좋을 것 없는 숫자였고, 때문에 미다스는 결계의 틈을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순간 미다스는 럭키와 골드를 향해 말했다.
“들어간다.”
그 외침에 그 두 동료가 소리쳤다.
왕!
“주인님의 명을 받듭니다!”
그 외침을 끝으로 럭키가 주변 플레이어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림을 내뱉었고, 골드 역시 주변을 향해 금색 눈동자를 살벌하게 빛내기 시작했다.
주변 이들이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살벌한 분위기.
그러한 분위기를 풍기며 미다스가 결계의 틈, 그 안으로 단숨에 몸을 집어넣었다.
[제한구역에 입장했습니다.]
“어휴.”
이윽고 그 알림이 들린 후에야 미다스는 긴장을 살짝 풀었다.
그러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난이도 최악 던전이 오히려 훨씬 더 안전하다니.'
작금의 상황에 대한 헛웃음이었다.
그러한 헛웃음은 이내 사라지고, 대신에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이 얼굴에 걸렸다.
‘이대로는 절대 게임 못하지.’
전략적 후퇴는 매우 유용하다.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한 번 제대로 박살을 내야 해.’
결국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건 폭력을 통한 확실한 응징뿐.
‘그러니까 제발……'
그렇기에 매우 중요했다.
[스킬 카드북(레전더리)을 개봉합니다.]
이번 레전더리 스킬 카드북에서 나올 스킬이.
“제발 괜찮은 스킬 하나만 나와주세요, 제발! 김민수 님 , 좋은 거 주시면 이번에 찾아가서 세 번 절해드릴게요.”
때문에 미다스가 기대감보다 간절함을 품은 채 보상으로 얻은 레전더리 스킬 카드북을 펼쳤다.
호우우우!
“주인님, 신께서 보살피실 겁니다.”
그런 미다스를 향해 곧바로 럭키와 골드가 응원을 보냈다.
그 응원과 함께 미다스의 눈앞에 다섯 장의 황금빛 카드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발! ’
미다스의 눈이 빠르게 그것들을 살폈다.
“어?”
그리고 모든 카드의 스킬을 살피는 순간 미다스의 시선과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그 상태에서 미다스는 저도 모르게 뱉었다.
“……끝났다.”
힘이라고는 한 올도 들어가지 않은 그 말에 럭키가 하울링을 멈추고 꼬리를 축 내려뜨렸고, 골드 역시 굳은 표정을 지었다.
끼잉…….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제가 주인님의 위업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격려하는 그 둘을 향해 미다스는 대답 대신 자신의 눈앞에 있는 스킬을 선택하며 말했다.
“이제부터 나한테 덤비는 새끼들 다 끝났다고.”
그 말과 함께 이제는 미소를 짓는 미다스의 귓속으로 알림이 들렸다.
[불굴의 의지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11.
[불굴의 의지]
- 스킬 랭크 : F
- 스킬 효과 : 불굴의 의지가 발동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상황에도 캐스팅이 취소되지 않는다. 스킬 랭크가 오를수록 캐스팅 타임 패널티가 줄어든다.
!99회 캐스팅 성공 시 타이틀 ‘꺾이지 않는 의지’ 획득
!999회 캐스팅 성공 시 타이틀 ‘멈출 수 없는 자’ 획득
!9,999회 캐스팅 성공 시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획득
불굴의 의지.
새로이 얻은 자신의 레전더리 스킬을 바라보는 미다스의 얼굴에는 어느 때보다 흥분한 기색이 가득했다.
‘최고의 시나리오다.’
그만큼 불굴의 의지 스킬은 매우 좋은 스킬이었다.
일단 레벨이 높아질수록 마주하는 몬스터들 대부분은 범위 공격, 일명 광역기 스킬을 사용했다.
반면 마법사 클래스들의 상위 마법은 보다 긴 캐스팅을 요구했다.
여러모로 캐스팅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은 셈.
그러나 불굴의 의지는 그 가능성을 없애주었다.
‘이걸 사용하면 캐스팅 타임이 늘어나긴 하지만……'
물론 스킬이 발동되는 동안 캐스팅 시간은 더 늘어났지만, 취소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일.
‘PK에서는 그딴 건 페널티도 아니지.’
특히 PK 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때 이보다 더 좋은 스킬은 존재치 않았다.
‘무빙 캐스팅이 더해지면 게임 끝이고.’
더욱이 이런 불굴의 의지 스킬이 무빙 캐스팅 스킬과 합쳐졌을 때의 시너지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물론 무빙 캐스팅만으로 자신을 노리는 각 길드의 실력자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무슨 마법을 캐스팅하느냐, 그 역시 중요하니까.
‘더 제대로 써먹으려면 광역 마법이 필요하지만.’
그리고 PK, 그것도 실력자를 염두에 둔다면 범위 마법이 필수였다.
‘그 재빠른 놈들 맞추는 건 쉽지 않으니까.’
실력이 보통인 이들을 맞추는 건 쉽다.
그러나 재능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길드나 게임 컴퍼니로부터 적지 않은 월급과 지원을 받는 플레이어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런 그들은 제아무리 명중률이 뛰어난 미다스라고 해도 10번 중 서너 번 맞추긴 힘든 노릇.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광역기가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문제는 돈이다.’
그저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일 뿐.
‘무빙 캐스팅만 해도 가격 장난 아닌데……'
개중에서도 무빙 캐스팅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매물이 없어서 혹여 매물이 나오더라도 경매가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격 변동이 매우 높을뿐더러,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낙찰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광역 마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법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광역 마법 스킬 카드들, 개중에서 유니크 등급 스킬 카드들 중 쓸 만한 것들은 기본 1만 달러에서 거래가 되었다.
물론 미다스는 그런 이유 때문에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결국 돈만 있으면 다 해결 가능해.’
이러니저러니 해도 해결책은 분명한 상황.
더군다나 지금 미다스에게는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만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은가?
“후우.”
그렇게 머릿속으로 필요한 자금을 계산을 마친 미다스가 짧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정면을 바라봤다.
‘큰그림 그리는 건 좋은데, 당장 눈앞에 있는 걸 놓쳐서는 안 되겠지.’
검은 안개 바람이 몰아치는 사나운 세상, 그 세상 앞에서 미다스가 긴장의 끈을 조였다.
‘이번 퀘스트도 쉬울 리 없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다스가 당장 직면한 과제는 메인 시나리오 퀘 스트.
‘자가라의 반지가 뭔지는 모르지만 최소 유니크 등급 이상일 텐데, 난이도 보통 이상일 거야.’
이제까지 미다스가 경험해 본 것을 토대로 본다면 이번 퀘스트의 난이도 역시 매우 높을 게 분명했다.
“다들 긴장해.”
그렇기에 미다스가 럭키와 골드에게도 긴장의 끈을 조이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 신호에 그 둘은 바로 대답했다.
왕!
“예!"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을 보인 채, 어떤 적이라도 무찌를 날 선 각오를 보여주었다.
“좋아, 그럼 다시 한 번……"
그 각오를 본 미다스 역시 전투에 임하는 전사의 표정을 지은 채 눈앞에 집중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정체 모를 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
!공격에 성공하면 단서를 남긴다.
쉼 없이 몰아치는 검은 안개 바람 너머, 먼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존재 하나를.
그것을 본 미다스가 미소를 지었다.
12.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위한 사냥터인 제한구역, 그곳이 최악인 점은 오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눈앞은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바람 소리는 귀마저 제 역할을 못하게 만들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조차 현기증이 날만한 일.
그런 그곳에서 정체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올 만한 일.
그게 이유였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갓워즈는 퀘스트 밸런스 설계가 아주 좆같단 말이야. 그렇지, 럭키야?”
왕!
“응? 럭키야, 뭐라고?”
왕!
“그래서 이 게임이 갓겜이라고?”
미다스가 지금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유.
“그래, 갓겜이지.”
‘후발 주자 새끼들 제한구역 파트에서 아주 제대로 피똥 좀 싸겠는데?’
그 미소를 지은 채 미다스가 자신의 먼 곳에서 거듭 움직이는 정체 모를 자를 바라봤다.
꽤 분주한 움직임이었다.
보통 플레이어들이라면 얼핏 존재를 확인해도 착각이라고 생각할 정도.
그러나 그 모든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미다스 입장에서는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맞추기만 하면 퀘스트 종료.’
심지어 퀘스트 완료 조건도 간단했다.
싸울 필요도 없었다.
공격을 한 번 명중시키기만 해도 사실상 퀘스트 종료가 되는 상황.
그렇기에 미다스는 공격하지 않았다.
‘지금 내 활동 가능 시간은 채 30분도 안 남았다.’
일단 당장 미다스에게 주어진 플레이 타임이 많지 않았다.
퀘스트 조건을 달성하더라도 웨스트 캐슬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즉, 여기서 정체 모를 자를 공격하더라도 퀘스트 완료를 하는 데에는 9시간이 더 걸린다는 의미.
‘조금 전 백 명이 넘었으니, 9시간 후면……'
그렇다면 과연 9시간 후에 제한구역 밖의 상황은 과연 어떻게 되어있을까?
‘어휴, 상상도 안 되네.’
분명한 건 지금보다 배가 넘는 인원이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BJ대마도사를 노리는 호랑이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 것이다.
그때도 다시 한 번 캐치 미 이프 유 캔 쇼를 할까?
할 수는 있다.
반응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전략적 후퇴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지금까지 모은 돈에 가진 아이템 일부를 처분하면…… 무빙 캐스팅을 구할 수 있어.’
그리고 전략적 후퇴는 어디까지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만 고를 수 있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지금 미다스에게는 그것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지금 레벨은 72레벨이니까…… 그간 레벨업 속도를 가늠하면 4일 안에 80레벨 찍을 수 있고.’
전략적 후퇴를 고민케 하지 않을 확실한 선택지가.
그 생각에 이른 미다스가 고개를 돌려 정체 모를 자가 아닌 좀비 켄타우로스를 바라봤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
13.
라이징 스타 채널 사무실.
“장난 아니네. 모인 인파 숫자만 이제 1천 명을 넘어설 것 같은데?”
그곳에서 동료 직원 한 명의 말에 다른 직원들이 저마다 말을 건넸다.
“전부 BJ대마도사 보려고 모인 거지?”
“그렇겠지. 그게 아니면 뭐하러 황금 평야에서 이렇게 옹기종기 모이겠어?”
BJ대마도사가 다시 비밀 구역으로 들어간 지 3일째, 현재 BJ대마도사가 사라진 그 근처 지역에는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 모이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게 없었다.
BJ대마도사의 이름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중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많이 모일 이유가 있나?”
문제는 그 숫자가 1천 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는 것이었다.
그건 단순히 이름값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름값을 베이스 삼아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가능한 일.
“캐치 미 이프 유 캔 쇼가 너무 강렬했잖아?”
“하긴.”
그 플러스 알파는 BJ대마도사가 벌인 쇼였다.
BJ대마도사는 라이브로 자신을 노리는 이들을 농락하는 모습을 쇼처럼 보여줬다.
그리고 그 쇼는 엄청난 흥행이 되었다.
그런 쇼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에 시간을 투자하는 걸 아끼는 이는 없을 터.
“술래잡기가 되어버렸으니까.”
또한 그 쇼에는 누구든 참가할 수 있었다.
굳이 PK를 할 필요도 없었다.
도망치는 BJ대마도사를 발견해서 술래잡기 하듯 터치만 하더라도 충분히 이슈가 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면 재미없지.”
그때 대화를 듣던 박영준이 한 마디를 던졌다.
“톰과 제리에서 추격전이 재미있는 건 톰이 제리를 진짜 잡으려고 달려드니까 재미있는 거야. 그게 그저 술래잡기 같은 놀이가 되면 누가 톰과 제리를 보겠어?”
이어진 그 말에 부하 직원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뭐가 좋을까요? 여기서 뭔가는 해야 하잖아요?”
“캐치 미 이프 유 캔 쇼를 해야지.”
이어진 그 대답에 부하 직원들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하면 재미없다면서요?”
“그래, 그냥 하면 재미없지. 그러니까 새로운 조건을 붙여야지.”
말과 함께 박영준이 손에 든 태블릿PC를 부하 직원에게 건네주었고, 부하 직원이 그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다른 직원들 역시 태블릿PC의 화면을 확인하고는 똑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무빙 캐스팅 스킬 카드를.
‘설마?’
당연히 이 구하기 힘든 물건을 구한 박영준의 의중도 알 수 있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 단 이번에는 도망 안 칠게.”
박영준, 그가 BJ대마도사에게 PK콘텐츠를 요구하기 위해 이 물건을 구했음을.
“이제 BJ대마도사가 우리 요구를 들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