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 28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2). >
4.
“여러분 보셨죠? 백퍼센트 속는다니까요!”
미다스의 말에 87명의 시청자들로 채워진 채팅창 안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미다스는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다.’
그러한 미다스의 머릿속으로는 1시간 전 상황이 떠올랐다.
BJ대마도사의 이름이 스몰 파크 랭킹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자신을 노리는 사냥감에게 포위당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제한 구역에서 벗어나자!
‘그때는 예상외로 많아서 당황했지만……'
하지만 미다스가 게임에 접속해서 제한 구역 밖의 상황을 봤을 때 이미 적지 않은 파티들이 자신의 위치를 꽤 정확히 파악한 채 대기중이었다.
그야말로 호랑이 무리에게 둘러 쌓인 상황.
미다스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때문에 미다스는 거기서 도주라는 선택지를 쉽사리 선택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게 기회가 됐지.’
그 순간 미다스는 깨달았다.
‘나만 당황한 게 아니었으니까.’
미다스, 자신이 당황한 만큼 자신을 노리고 온 이들 역시 이토록 많은 경쟁자의 존재는 예상치 못했을 테고, 때문에 분명 당황했으리란 것.
‘하물며 얘네들은 호랑이들이지. 하이에나 떼가 아니라.’
더욱이 그들은 이익을 위해 언제든 무리 짓고, 손잡을 수 있는 하이에나 떼가 아니었다.
하나하나 저마다의 의지를 품고, 제 실력을 믿는 자들, 자기들의 파티 구성원이라면 동급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신감과 업적을 가진 호랑이들이었지.
‘사전 합의는 없다.’
그런 호랑이는 사냥감을 두고 결탁을 하지 않는 법.
그러한 호랑이들이 사전에 어떤 식으로 BJ대마도사를 잡을 것인지 합의를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었다.
‘호랑이 놈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라, 남들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지.’
이 게임 초창기에 그러한 호랑이들 부류들이 어떤 식으로 경쟁을 하는지 직접 몸소 느껴본 경험에서 나오는 추측이었다.
즉, 미다스는 그 누구보다 그런 호랑이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그들 사이를 빠져나갈 방법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켄타우로스 연기가 먹힐 수밖에 없지.’
폴리모프 마법으로 켄타우로스로 변신한 후에 몬스터인 척 그들의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
‘분명 내가 한 번 모습을 드러내면 전투태세가 될 테고, 그때 켄타우로스가 리젠되면 다들 잔뜩 경계하면서 부디 자기한테 오지 않기 만을 간절히 소망할 테니까.’
호랑이들의 습성을 아는 미다스는 이 방법이 먹히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30초 정도만 벌면 끝.’
더불어 그런 방식이 굳이 오래 먹힐 필요는 없었다.
도중에 자신을 노리는 이들이 눈치를 채도 상관없었다.
필요한 건 적당히 거리를 벌릴 정도의 시간뿐.
‘거리만 벌어지면 그때부터는 내가 무조건 빠르다.’
미다스의 근력 스탯은 어지간한 근접 딜러 이상이었으며, 그에게는 헤이스트와 스트랭스 마법마저 있었으니까.
더욱이 추격전은 파티 플레이를 하는 이들에게 아킬레스건과 같았다.
근접 딜러들은 빠르다.
하지만 탱커나 힐러, 마법사 딜러들은?
그들을 놔두고 근접 딜러가 BJ대마도사에게 달려든다? 그러면 과연 승산은 있을까?
여기까지 계산이 됐을 때 미다스의 고민은 하나였다.
‘문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도망치는 거지만……'
그냥 꽁무니를 드러낸 채 도망치는 건 BJ대마도사의 기존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포장하기 나름이지.’
그것을 위해서 미다스는 도망치는 것을 포장을 하기로 했다.
‘살인도 실시간 중계를 하면 쇼가 되는 법.’
도망치는 과정을 라이브 방송으로 하기로, 그러함으로써 이것도 하나의 쇼로 만들기로.
물론 너무 대놓고 라이브 방송을 하면 시도를 하기도 전에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다스는 라이징 스타 채널에 요구했다.
20초 동안 라이브 페이지를 공개한 후에 비공개로 돌려달라고.
그 후에 마치 테스트 방송인 것처럼 뜸을 들여 달라고.
그러면 자연스레 정말 할 일 없는 BJ대마도사 팬들 소수만이 채팅창에 남을 거라고.
“아직도 잠잠한 걸 보니까 여전히 눈치 채지 못한 모양입니다. 정보 엄수 감사합니다.”
미다스가 고작 87명에 불과한 시청자들을 상대로 라이브 방송을 하는 건 그런 이유였다.
- BJ럭키 팬이라면 당연히 해야죠!
- BJ골드 팬이라면 당연한 일이죠.
- BJ대마도사 팬들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있었으면 아마 죄다 유출했을 거예요!
실제로 정보 유출은 늦춰졌다.
미다스가 알랍과 아바트를 상대로 연극을 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그게 미다스인지 모른 채 긴장한 게 그 증거였다.
물론 언제까지 늦춰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BJ대마도사다! 저거 BJ대마도사다!”
먼 곳에서 자신을 향한 외침이 들리는 순간, 켄타우로스로 변신 중이었던 미다스가 말했다.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군요.”
그 말에 채팅창이 어수선해졌다.
- 와, 어떤 놈이 프락치질 했냐?
- 자수해라.
- 전 아닙니다.
- 우리 집 고양이가 한 거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 어수선한 채팅창을 향해 미다스가 말했다.
“자, 그럼 들킨 거 이제 비공개 해제합니다. 공개 라이브 시작합니다!”
곧바로 비공개 방이 공개가 되었고, 그러자 두 자릿수였던 시청자 숫자는 단숨에 다섯 자릿수로 바뀌어 있었다.
3만 3천 명!
이제는 넘치는 시청자들을 향해 미다스는 소리쳤다.
“이제부터 캐치 미 이프 유 캔 쇼를 시작합니다!”
줄행랑이 쇼가 되는 순간이었다.
5.
갓워즈에서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웹서핑이나, 인터넷 활동은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송은 다름 아니라 라이브 방송이었다.
라이브 방송을 할 경우 채팅창을 통해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1티어급의 길드나 게임 컴퍼니에서 본격적으로 지원을 받는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았다.
아바트와 알랍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라이브 방송을 활성화한 채 외부 모니터링 요원으로부터 정보를 받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훈련을 받은 상태였다.
긴급한 순간에 채팅창에 눈을 빼앗기지 않는 훈련을.
“켄타우로스네.”
당연히 그들은 갑자기 켄타우로스 두 마리가 등장했을 때 모든 이목을 그곳에 집중시켰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위험 요소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들은 한눈을 팔지 않은 채 언제든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하고 대처할 준비를 했다.
그 때문이었다.
“저거!”
“뭐?”
“저기 달리는 게 BJ대마도사야!"
그들이 BJ대마도사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데에 제법 시간이 걸린 것은.
그 후에도 시간 낭비는 이어졌다.
“뭐라고?”
“상황을 잘 모르겠는데 모니터 링 요원이 쟤가 BJ대마도사래!”
“그게 뭔 개소리야?”
“몰라, 자기들도 지금 막 들은 거래!”
모니터링 요원조차도 믿기 힘든 정보인데, 그 정보를 받은 아바트나 알랍이 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오히려 머릿속으로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때 몇몇 이들이 움직였다.
“BJ대마도사다! 저거 BJ대마도사다!”
이미 달려가는 켄타우로스 두 마리를 향해 질주를 시작했고,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기점으로 나머지 모든 이들 역시 반응했다.
“따라가!”
“잡아!"
갑자기 황금 평야에 때 아닌 추격전이 시작되는 순간. 물론 제대로 된 추격전은 아니었다.
“근데 저거 마법사 맞아? 뭐 저렇게 빨라?”
“젠장, 우리는 못 잡아!”
“탱커가 저걸 어떻게 잡아!”
당장 탱커나 힐러들은 추격전에 참가할 수조차 없었다.
“일단 가!”
“다른 새끼들 잡는 거라도 막아!”
그런 상황에서 탱커와 힐러들은 추격전이 가능한 근접 딜러들에게 일단 따라가라는 주문을 했다.
그 주문에 근접 딜러들이 반사적으로 켄타우로스로 변한 BJ대마도사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알랍과 아바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미치겠군.”
쉴 틈은 없었다.
몸은 달려야했고, 눈은 쉴 틈 없이 채팅창 위에 올라오는 모니터링 요원의 정보를 살펴야 했으니까.
- 지금 라이브 방송 중입니다! 공개 라이브요!
- BJ대마도사가 하는 말이 캐치 미 이프 유 캔 쇼라는데요?
- 저쪽 시청자 6만 넘었어요!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내용들을 통해 알랍과 아바트는 충분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우리를 놀려 먹고 있어.’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
지금 자신들이 BJ대마도사의 쇼의 처참한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을.
물론 그 사실에 그들은 낙담하지 않았다.
‘저 새끼 무조건 잡는다.’
‘아주 죽여 버리겠어.’
상처를 입어도 호랑이는 호랑이인 법.
그들은 도리어 자신들의 커리어에 크나큰 오점을 남긴 BJ대마도사를 아주 철저하게 박살내기 위한 의지를 불태웠다.
“호우우우!”
그때 그들이 쫓는 켄타우로스로 변한 BJ대마도사의 입에서 하울링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새끼가!’
‘저 빌어먹을 새끼!’
명명백백한 도발에 아바트와 알랍의 머릿속에 있던 이성의 끈 몇 개가 그대로 끊어졌다.
분노는 더 뜨거워졌다.
‘이 새끼랑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협력을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원수와도 같은 라이벌과 손을 잡을 생각마저 머릿속에서 끓어오를 정도.
그 사실에 온몸이 달아오를 정도.
그 무렵이었다.
호우우우!
지척에서 진짜 하울링이 BJ대마도사를 쫓는 이들의 귓속을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럭키!
갓워즈에서 근접 전투력으로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그 신수의 울음에 뜨겁게 달아오른 추격자들의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잠깐.’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럭키에게 습격당하면?’
힐러도, 탱커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버프, 심지어 전광석화마저 발동한 럭키를 홀로 상대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죽는다.’
그 사실에 뜨겁게 달아오른 머릿속은 삽시간에 식어버렸다.
그 사실에 이른 몇몇은 그 순간 추격을 포기했다.
처음에는 열두 명이 달려들었으나, 그 숫자는 럭키의 하울링이 들리는 순간 여섯 명,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추격자가 줄어들수록 추격하는 이들의 등골은 더 싸늘해졌다.
만약 이대로 숫자가 더 줄어든다면?
‘나 혼자만 남으면……'
이윽고 외로운 추격자가 된다면?
과연 그때에도 BJ대마도사는 이렇게 도망칠까?
아니면 얼굴을 바꾸고 도망자가 아닌 맹수가 될까?
답은 알 수 없었다.
‘끝이다.’
단지 분명한 건 BJ대마도사는 스몰 파크 랭킹에 이름을 올릴 만큼의 강자라는 것.
사실상 거기서 추격은 끝이었다.
BJ대마도사와의 거리를 조금씩이나마 좁히던 이들이 하나둘 추격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알랍과 아바트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Fuck!”
이내 추격을 포기한 그 둘이 쓴소리를 내뱉은 채 똑같은 표정을 지은 채 서로를 말없이 마주 봤다.
그렇게 서로의 표정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끝이다.’
다시는 그들에게 BJ대마도사를 사냥할 기회 따윈 오지 않으리란 것을.
6.
“호우우우!”
호우우우!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럭키와 함께 황금 평야를 질주하는 미다스가 슬쩍 뒤를 살폈다.
‘포기했네.’
멈춘 추격자들, 그들을 확인하는 순간 미다스 역시 멈췄다.
- 어? 멈췄다?
- 무슨 일이죠?
채팅창에 의문이 떠올랐고, 그 의문을 향해 미다스가 말했다.
“톰과 제리에서 제리가 톰도 없는데 도망치는 거 보셨어요?”
그 말에 채팅창이 웃음으로 도배가 됐다.
- BJ대마도사 님의 배려에 후원금 쏩니다.
- 이거 리얼 반박불가.
- 역시 쇼 좀 할 줄 아시는 분이라니까.
그 웃음이 증거였다
지금 미다스의 이 줄행랑을 모두가 보고 즐긴다는 이유.
‘됐다.’
미다스 입장에서는 엄청난 소득이었다.
‘이러면 이제부터는 수틀릴 때 도망치는 것도 콘텐츠로 써먹을 수 있겠어.’
BJ대마도사는 이제까지 마주한 모든 것을 엄청난 화력으로 불태우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다.
한편으로는 그게 족쇄도 됐다.
어떤 난관에서도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족쇄.
그런데 지금 그 족쇄가 풀어진 셈이었다.
물론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 추격자들 숫자가 슬슬 줄어드는 게 그냥 얼굴 바꾸고 PK해버릴까요?”
미다스의 말에 채팅창이 다시 한 번 어수선해졌다.
- 아주 박살을 내죠!
- 90레벨 넘는 새끼들이 어디서 깡패 짓이야! BJ대마도사 님의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봐라!
그 어수선함의 대부분은 응원이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BJ대마도사를 잡으러 온 이들 중 대부분은 80레벨 이상, 이곳 황금 평야의 사냥터에 어울리지 않는 레벨을 가진 이들이었다.
속칭 깡패들.
그런 깡패들을 박살을 내주겠다는데 싫어하는 이가 있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일 터.
그러나 그런 응원 속에서 미다스가 등을 돌렸다.
“아니다, 됐다. 그냥 안 잡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정 변화에 채팅창에 의문이 쏟아졌고, 그 의문에 미다스가 답했다.
“그렇잖아요. 저보다 약한 애들 잡아서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쟤네들 다 잡아도 이 폴리모프 스킬 값 하나 안 되는데."
이어진 말에 채팅창이 다시 웃음바다가 됐다.
[평화주의자 님이 4달러를 후원했습니다.]
[노벨평화상위원회 님이 1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간디 님이 10유로를 후원했습니다.]
[부처 님이 1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미다스의 자비로운 정신에 감탄한 이들의 후원도 이어졌다.
물론 정말 미다스의 진심을 달랐다.
‘저 새끼들 잡으면 진짜 좆된다.’
애초에 이 그림을 그린 것부터가 자신을 노리는 무리, 그들의 배경과 원한관계를 맺지 않기 위함이었으니까.
“자, 그럼 이제 갑시다.”
그렇게 웨스트 캐슬을 바라본 미다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채팅창의 분위기도 식었다.
- 이제 끝인가?
- 캐치 미 이프 유 캔 쇼 끝남?
- 에이, 싱겁네.
- 다음 쇼를 기대합니다.
그사이 미다스가 아이템 창을 확인했다.
[선발대가 남긴 흔적(1) X 1]
[선발대가 남긴 흔적(2) X 1]
[선발대가 남긴 흔적(3) X 1]
그것을 확인한 미다스가 미소를 지은 채, 시청자 숫자가 이제는 줄어들기 시작한 채팅창을 향해 말했다.
“빨리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몬스터와 던전을 보여드려야하니까요.”
- 뭐?
- 새로운 몬스터와 던전?
갑자기 던져진 기름에 꺼지던 채팅창의 분위기가 미친 듯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아오른 분위기에 그가 정점을 찍었다.
[아즈모 님이 2,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아즈모 : 빨리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