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대마도사-86화 (86/485)

86화.  < 27화. 제한 구역 (3). >

7.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검은 안개 바람.

휘이잉!

보이는 것은 하나 없으며, 들리는 좀비 켄타우로스들의 울음소리마저 바람 소리에 묻히는 황금 평야.

출구조차 쉬이 찾을 수 없는 그곳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악몽과 같은 무대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7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전쟁만을 위한 용이 당신에게 기회를 줍니다.]

물론 미다스는 예외였다.

“이야, 개꿀이네, 개꿀이야.”

그에게 있어 이곳, 제한 구역은 갓워즈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안락하고 쾌적한 사냥터였다.

왕!

“뭐라고 럭키야?”

왕!

“너무 꿀을 빨아서 당뇨가 생길 것 같다고?”

너무 여유가 넘치는 바람에 관객조차 없음에도 럭키와 상대로 만담을 할 정도.

“어때? 골드, 네 생각은?”

“그저 주인님의 위용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그래?”

럭키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듯 미다스는 골드를 상대로 만담을 이어갔다.

물론 미다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 전 한 게 우습지도 않은 만담이란 것을.

[미다스]

- 레벨 : 70

- 성좌 : 워드래곤

- 직업 : 대마도사

- 능력 : 근력 (5+356)/체력 (5+337)/지력 (356+523)/마력 (75+431)

- 잔여 스탯 : 4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능력치 창 앞에서는 그 어떤 재미없는 만담을 들어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끝내준다.’

단 하나의 사냥터에서 무려 10레벨을 올렸으니까.

레벨업 속도도 엄청났다.

‘단 한 번의 방해도 없이 레벨업을 하게 될 줄이야.’

그러나 그 레벨업 속도보다 미다스를 기쁘게 해주는 건 그 어떤 플레이어들과의 충돌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쾌적하다, 같은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덕분에 사고는 하나도 안 터졌어.’

몬스터는 잡거나 말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달랐다.

잡더라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그게 문제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좀 더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면 가해자가 도리어 성을 내며 피해자에게 덤벼드는 경우도 있었다.

‘갓워즈에서 완장 찬 새끼들 대부분은 자기밖에 모르는 빌어먹을 새끼들이니까.’

하물며 갓워즈는 폭력이 가장 확실한 잣대인 세상.

그런 의미에서 이렇다 할 플레이어와의 충돌 없이 레벨이 오른 건 대단한 일이었다.

‘슬슬 분위기도 식어가고.’

그리고 미다스가 제한 구역에서 레벨업을 하는 동안 그에 대한 관심도 제법 식었다.

일단 도전자들이 겁을 먹고 꼬리를 말았다.

매치업이 예고되지 않은 셈.

그런 상황에서 BJ대마도사가 한동안 황금 평야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면?

BJ대마도사가 어비스 길드의 멀린 같은 대마도사 랭킹 1위라면 모를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냥 요즘 소란스러운 60레벨짜리 플레이어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관심을 가지는 이는 많지 않을 터.

‘아주 좋아. 이대로 황금 평야 쪽 퀘스트는 조용히,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겠어.’

미다스 입장에서는 베스트 시나리오였다.

‘뭔가 엄청난 게 터지지 않는다면 말이야.’

물론 세상 일은 모르는 법, 이런 상황이 언제든 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다스는 솔직히 그 부분에 있어서 이렇다 할 걱정을 하지 않았다.

‘뭐, 갑자기 엄청난 일이 터지겠어?’

8.

“터졌네요.”

그 감탄사와 함께 이혁주가 고개를 돌려 정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몰 파크 랭킹에 BJ대마도사가 999위에 새로이 랭크업되다니, 와 대박 터졌네요. 그렇죠, 형?”

그 말을 들은 정현우는 대답 대신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그 상태로 지금 막 들어온 소식을 다시 한 번 분석했다.

사실 이해가 어려운 소식은 아니었다.

스몰 파크 랭크 999위에 BJ대마도사 랭크업이 됐다, 소식 내용은 그게 전부였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스몰 파크 랭킹이 뭔지는 정현우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의문이었다.

“아니, 아직 100레벨도 안 됐는데 어떻게?”

스몰 파크 랭킹은 200레벨 이하 플레이어만을 대상으로 한다.

때문에 그 랭킹, 1위부터 999위까지 차지하는 이들 대부분은 150레벨 이상이었다.

당장 BJ대마도사가 들어오기 전 가장 낮은 플레이어 레벨이 121레벨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이제 67레벨,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70레벨 대에 불과한 BJ대 마도사가 올라왔다?

“그러니까 대박 사건이죠!”

이혁주의 그 말에 정현우는 반박할 수 없었다.

이혁주의 말처럼 엄청난 일이 터진 게 맞았다.

그게 정현우가 지금 두 손으로 제 얼굴의 표정을, 참담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표정을 감추는 이유였다.

‘씨발 진짜, 이야기가 왜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장담컨대 이번 소식을 기점으로 BJ대마도사를 노리던 이들은 저울질을 다시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한테 관심 없던 새끼들도 관심을 가지잖아?’

더 나아가 BJ대마도사에 딱히 관심이 없을 정도로 위에 존재하는 이들마저 BJ대마도사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스몰 파크 랭킹은 그런 놈이었다.

저 머나먼 하늘 위로 올라가 별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확실한 보증 수표.

비유 따위가 아니었다.

스몰 파크 랭킹에 이름이 오르는 순간, 어느 길드나 게임 컴퍼니를 가더라도 섭섭지 않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진짜 게임을 하면서 돈을 받을 수 있는 보증수표인 셈.

‘아니, 그보다 어떻게 올라온 거지?’

그렇기에 정현우는 더더욱 BJ대마도사가 스몰 파크 랭킹에 올라온 게 의문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 랭크는 이 바닥에서도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은 이들조차 제 이름을 올리기를 바라는 무대였다.

때문에 스몰 파크 랭킹 채널에 자기 사냥 영상 등 가치를 드러낸 자기소개서를 보내는 이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이 훌쩍 넘었다.

그게 핵심이었다.

스몰 파크 랭킹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자기소개서, 랭킹에 오르고 싶은 의지를 드러낸 이들을 올렸다.

‘난 거기에 프로필 보낸 적 없는데?’

하지만 정현우는 단 한 번도 그 채널에 자신의 프로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보낼 이유도 없었다.

보내봤자 커트라인조차 통과하지 못할 게 뻔하지 않은가?

물론 정현우 말고 그것을 보낼 이가 한 명 더 있긴 했다.

‘설마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님이?’

라이징 스타 채널이 힘 좀 썼다는 것.

아마도 그동안 정현우가 보내준 영상 등을 정말 최선을 다해 프로필을 만든 후에 보내준 모양.

실제로 라이징 스타 채널에 속한 플레이어 중 몇 명은 이미 스몰 파크 랭킹에 이름을 올렸었다.

그리고 애초에 라이징 스타 채널이 그런 플레이어들, 떠오르는 별이 되려는 플레이어들을 타깃팅하는 채널이었다.

‘확실해.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님이 뭔가 한 거야.’

정현우 입장에서는 그리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누가 나보고 제대로 엿 좀 먹으라고 뒷돈 줘가면서 내 이름을 스몰 파크 랭킹에 올렸을 리는 없으니까.’

어쨌거나 눈앞에 보이는 상황은 간단했다.

BJ대마도사가 100레벨 미만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스몰 파크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이제부터 그런 BJ대마도사를 노리고 진짜배기 실력자들이 덤벼들 것이라는 것.

자연스레 정현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유 부릴 때가 아니야. 빨리 제한 구역 퀘스트 마치고 움직여야 해. 80레벨 되기 전까지는 일단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해. 진짜배기 실력자 애들 상대로 지금 상태로는 위험해. 그 새끼들 잡으려면…… 아, 잡으면 더 골치 아파질 텐데. 그 새끼들 복수한답시고 지랄할 텐데.’

급격하게 달라진 상황 앞에서 자신의 계획 역시 빠르게 수정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 좆됐다.’

달콤한 나날은 이 시간부터 끝났다고.

9.

“사장님, 이거, 이거 보셨어요?”

부하 직원이 말과 함께 자신이 보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스몰 파크 랭킹 채널.

그곳에 있는 랭킹 페이지, 그 페이지 가장 아랫줄인 999위에 BJ대마도사란 이름이 올라온 것을.

그것을 본 박영준이 대답했다.

“네가 보기 전에 이미 우리 채널에 연락 왔어.”

“연락이요?”

“그래, 연락. BJ대마도사 랭킹에 올릴 테니까 거기에 사용할 프로필 영상 보내달라고 하더라고.”

그 대답에 부하 직원이 잠시 말문이 막힌 듯한 표정을 지은 후에 정신을 차리며 질문했다.

“혹시 이거 사장님이 하신 건가요?”

사장님의 로비력이 이 정도였습니까?

그러한 물음에 박영준이 피식 웃었다.

“야, 저번에 엘리스 순위 산정이 잘못된 거라고 정정 영상 수십 개를 보냈는데도 씨알도 안 먹혔던 거 기억 안 나? 그런데 내가 스몰 파크 랭킹에 로비를 한다?”

말을 하던 박영준이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더군다나 그 채널 만든 오형훈, 그 머리 한 톨 없는 양반이 얼마나 쪼잔한 인간인데, 내가 푼돈 쥐여준다고 콧방귀나 뀌어줄 거 같아?”

“스몰 파크 채널 사장을 아세요?”

“알지, 학교 선배인데.”

“와튼 스쿨 선배요?”

“그래, 나한테 밥만 백스물세 번을 얻어먹고 단 한 번도 제 돈으로 밥 사준 적 없는 선배.”

그때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박영준이 이내 화제를 바꿨다.

“그 양반 이야기는 오래 해봤자 쓸모없으니 그만하고,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양반을 움직이려면 최소 10대 길드의 길드 마스터급 혹은 그에 준하는 이들만 가능해. 진짜 고이다 못해 석유가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다이아몬드가 되어버린 놈들만 모인 이너 서클 안에 들어간 양반이라서, 어지간한 이들은 로비를 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고.”

그 말에 부하 직원이 고개를 돌려 모니터 화면을 바라본 뒤 다시 고개를 돌려 박영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BJ대마도사는 이름이 올라왔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BJ대마도사의 뒤에 있는 이들이 어지간한 이들이 아니라는 거지.”

“아."

그제야 박영준의 말뜻을 이해한 부하 직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고이다 못해 석…… 여하튼 대단하네요. BJ대마도사는 대체 정체가 뭘까요?”

이어진 물음에 박영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정체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지.”

지금 중요한 건 그의 정체를 고민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BJ대마도사가 기획을 들어갔다는 거지.”

“판이요?”

“처음 BJ대마도사가 툰가 왕국으로 왔을 때 다들 그를 잡아먹을 생각만 했지.”

“그랬죠.”

“그때까지만 해도 BJ대마도사는 먹잇감이었어. 게임 좀 한다는 놈들이 어떻게든 먼저 먹어치우고 싶어 안달이 난 먹잇감. 그러다가 스니코 게임 컴퍼니 애들이 덤벼들고 어떻게 됐지?”

“못 건드는 존재가 됐죠.”

“그래, 그런 상태에서 스몰 파크 랭킹에 이름을 올렸어. 그럼 어떻게 되겠어?”

“더 못 건드는 존재가 되겠…… 응?”

대답을 하던 부하 직원이 자신의 대답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박영준이 말을 이어갔다.

“반대지. BJ대마도사가 유명해봤자, 하고 BJ대마도사를 자기들보다 아래 혹은 그냥 돈지랄하는 관심병자 정도로 취급하던 진짜 실력 있는 애들이 눈이 돌아갈 테니까.”

“그렇죠. 잡기만 해도 대박이니까요.”

대화를 하던 부하 직원이 이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니에요?”

“위험?”

“진짜 실력 있는 애들이 덤빈다는 거 아니에요?”

부하 직원의 그 말에 박영준이 피식 웃었다.

“뭐, 덤비는 건 맞지. 하지만 이렇게도 볼 수 있겠지.”

“어떻게요?”

“BJ대마도사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자기 유명세를 올려줄 먹잇감이 온다고.”

“네?”

“그렇잖아? 어중이떠중이 별명도 인지도도 없는 애들하고 PK하는 거 라이브 방송하는 거랑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길드에서 손에 꼽히는 유망주 소리 듣는 플레이어랑 붙는 거 라이브 방송하는 거랑, 뭐가 더 시청자가 잘 붙겠어?”

그제야 모든 상황을 알아낸 부하 직원이 이제는 도리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여기까지 시나리오를 그리다니…… BJ대마도사는 진짜 상식 이상이네요.”

이 큰그림을 그린 BJ대마도사에 대한 놀람의 표현이었다.

그 놀람을 향해 박영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거기에 맞춰줘야지.”

“뇌물이요?”

이제는 박영준의 방식을 알고 있는 부하 직원의 맞장구에 박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뇌물을 줘야지. 포장도 잘해서 말이야. 편지도 곁들이면 훨씬 좋을 거야.”

“편지요?”

새로이 추가된 요소에 부하 직원이 의문을 품었고 박영준이 그 의문에 대답했다.

“이제 슬슬 우리도 부탁을 해야지.”

“아."

그 말과 함께 박영준이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언제까지 내가 호구처럼 주기만 할 줄 알았다면 크나큰 오산이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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