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 25화. 툰가 왕국 (2). >
4.
[트가르를 처치했습니다.]
그 알림이 들리는 순간 미다스의 시선이 빠르게 자신의 주변을 훑고 지나갔다.
보통 플레이어들이 보기에는 그저 나무가 가득한 평범한 숲.
[트가르 (Lv61)]
그러나 미다스의 눈에는 나무로 위장 중인 트가르의 모습이 분명하게 들어왔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미다스는 새하얀 지팡이를 손에 쥔 채 주문을 외웠다.
“파이어 스피어 앤 아이스 스피어 앤 파이어볼.”
트리플 캐스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이어볼 캐스팅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림이 들렸다.
[파이어볼 캐스팅이 완료됐습니다.]
그 알림이 들리는 순간 미다스가 오른손바닥을 펼치자 화염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잡는 순간 미다스의 몸이 그대로 마운드 위에 올라선 투수처럼 투구 자세를 취했다.
표적을 향한 조준이나, 심호흡은 필요 없었다.
거듭된 훈련과 실전은 미다스에게 그런 것을 위한 시간 낭비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미다스가 망설임 없이 그대로 파이어볼을 던졌고, 그렇게 날아간 파이어볼이 그대로 평범한 나무에, 그러나 미다스의 눈에는 분명하게 트가르로 보이는 것에 꽃혔다.
퍼엉!
거친 폭발음과 함께 위장하고 있던 트가르가 뜨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미다스는 재차 마법을 던졌다.
파이어 스피어 그리고 아이스 스피어 .
그 두 개의 창이 약간의, 아주 약간의 시간차만을 두고 그대로 트가르의 가슴팍에 보이는 황금빛 과녁에 꽃혔다.
퍼엉!
콰직!
불꽃창과 얼음창이 순차적으로 거의 똑같은 곳에 꽂히는 광경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절반.’
그러나 정말 놀라운 것은 고작 세 번의 마법 공격만으로 트가르의 HP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상식을 초월하는 데미지 딜링.
더 놀라운 점은 이 상태에서 미다스의 마법은 아직 4개가 남았다는 점이었다.
“라이트닝 볼트 앤 파이어 애로우 앤 아이스 애로우.”
화살 마법 4개.
더불어 이제는 아이스 애로우는 D랭크, 라이트닝 볼트는 E랭크로 랭크업이 된 상태였다.
이 3개 마법으로 쓸 수 있는 화살 개수는 12발이라는 의미.
[위가의 활을 착용합니다.]
미다스가 그 12발의 화살이 위가의 활, 그 활시위에 달았다.
핑!
이윽고 활시위를 떠난 얼음 화살이 60미터, 먼 거리를 건너 달려오는 트가르의 가슴팍에 꽃혔다.
황금빛 과녁, 드래곤즈 아이에 꽃히는 순간 미다스는 쉼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조준 따윈 없었다.
그리고 필요 없었다.
푹!
위가의 활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으니까.
삽시간에 12발의 화살이 트가르의 몸에 꽃혔다.
그게 끝이었다.
[트가르를 처치했습니다.]
굳이 남은 마법 하나, 윈드 애로우를 쓸 필요도 없이 그 공격만으로도 중형급 몬스터인 트가르가 그대로 쓰러졌다.
왕!
럭키와 골드가 나설 기회조차 없을 정도.
“주인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게 활약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시는군요.”
그러한 골드의 칭찬에 미다스는 손에 쥐고 있는 위가의 활을 놓으며, 대신에 허공에 뜬 칙칙한 갈색빛을 뿜는 50센티미터 남짓한 나무 지팡이를 쥐었다.
[빌트가르의 뿌리로 만든 지팡이에서 강력한 마력의 힘이 느껴집니다.]
[마력 회복량이 증가합니다.]
[마력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그러자 알림과 함께 미다스의 85퍼센트쯤 남아있던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엄청났다.
[마력이 100퍼센트가 되었습니다.]
1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자 마력이 가득 차오를 정도.
단순 계산으로 치면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도 6분여 정도면 마력이 가득 차는 수준이었다.
‘역시 대단해.’
미다스 역시 제 스스로 경험하면서도 놀랄 정도의 회복량이었다.
[드래고닉 마나]
- 스킬 랭크 : F
- 스킬 효과 : 드래곤의 힘을 각성하여, 주변의 자연으로부터 마력을 흡수한다. 마력 회복 속도가 크게 증가한다.
!누적 마력 회복량 10,000,000을 기록 시 타이틀 ‘자연을 느끼는 자’ 달성
!누적 마력 사용량 20,000,000을 기록 시 타이틀 ‘마력 파괴자’ 달성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다름 아닌 드래고닉 마나 스킬이었다.
물론 오로지 드래고닉 마나 스킬 때문에 가능한 건 아니었다.
‘하나하나도 끝내주는데, 스킬하고 아이템 효과가 겹치니까…… 내 상식을 파괴하네.’
마나 리커버리 필드 효과에 빌트가르의 뿌리로 만든 지팡이의 옵션, 여기에 미다스가 착용한 저주받은 목걸이와 사할린의 반지 역시 각각 마력 회복 속도를 35퍼센트와 20퍼센트 올려주는 옵션이 있었다.
마력 회복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게 당연지사.
‘용열병을 쓰지 않는 이상 마력을 바닥내는 게 힘들겠어.’
이제는 마력을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마력을 바닥 내고 싶어도 전부 쓸 수 없을 정도였다.
미다스의 말처럼 용열병 스킬을 발동해야지만 마력이 소모되는 게 가늠될 정도.
그마저도 위가의 하얀 지팡이를 들었을 경우였다.
빌트가르의 뿌리로 만든 지팡이를 들 경우에는 트리플 캐스팅이 불가능해지는 만큼, 용열병 스킬이 발동한 상태에서도 마력 소모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더 이상 마력 걱정은 없었다.
미다스가 지금 걱정하는 것 역시 마력 걱정이 아니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문제는 이 마력을 쓰기도 전에 뒈질지도 모른다는 거겠지.’
미다스, 지금 그에게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으니까.
5.
영화든 콘서트든 스포츠경기이든 인상적인 경기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진행 중일 때보다 끝난 이후가 더 뜨겁다는 것.
BJ대마도사의 빌트가르 레이드도 그러했다.
- 이번 BJ대마도사 빌트가르 레이드 봤음?
ㄴ 노잼이었지 ㅋㅋ
ㄴ o o 본인도 인정한 노잼 방송 ㅋㅋ
오히려 라이브 방송 때보다 그 이후에 세간의 반응이 더 뜨거웠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 아, 젠장 난 라이브 못 봤는데 !
ㄴ 너 말고 많이 못 봤음.
ㄴ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 기껏해야 시청자가 12만 명에 불과했었으니까 말이야.
시청자 12만명.
분명 라이브 방송 횟수가 채 5회도 되지 않는 루키를 기준으로는 엄청난 숫자.
그러나 갓워즈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라이브 시청자 숫자가 기본 천만 단위로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껏해야, 라는 표현이 붙어도 이상할 건 없는 숫자.
즉, 그 라이브를 본 사람보다 보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 그보다 대체 뭘 하는 걸까? 분명 그냥 단순히 레전더리 퀘스트 같은 건 아닌 것 같은데?
ㄴ 분명한 건 10대 길드도 못 찾은 걸 한다는 거겠지.
무엇보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10대 길드조차 보여주지 못했던 걸 보여줬다는 사실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야깃거리라고 해도 밑도 끝도 없이 빌트가르 레이드만 가지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법.
대개 그쯤 되면 이야깃거리는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으로 넘어가고는 했다.
“다음은 툰가 왕국이겠지?”
“재미있겠네. 툰가 왕국에서 플레이하는 애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까.”
그리고 지금 사람들의 이야기 주제는 PK였다.
갓워즈의 5년 넘는 역사 속에서 명성을 떨치는 이들은 대부분 PK라는 이름의 신고식을 치러왔었으니까.
BJ대마도사라고 해서 예외는 되지 않는 법.
아니, BJ대마도사이기에 오히려 더 많은 소문이 붙었다.
개중에는 허무맹랑한 소문도 있었다.
“이거 제가 아주 특별한 루트를 통해서 얻은 소문인데, 10대 길드가 공동으로 현상금을 걸었데요. BJ대마도사를 PK로 잡는 거 영상 찍으면 무조건 상금 1억이라고!”
지금 이혁주가 하는 말처럼, 듣는 순간 실소가 지어질 만큼 허무맹랑한 소문이.
재미난 점은 그 소문을 모두가 실소로 넘기는 게 아니라 귀를 기울인다는 점이었다.
“잡으면 그만한 광고 효과는 되니까.”
“1억이 뭐야? BJ대마도사 잡아서 템 하나만 제대로 낚아도 1억이 되겠던데.”
“그 위가의 하얀 지팡이인가? 그거 얻으면 로또지, 로또.”
BJ대마도사가 만들어낸 존재감은 이혁주의 헛소리조차 그럴싸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한 주변의 반응에 이혁주는 기세등등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더 놀라운 건요, 그 이야기 들은 BJ대마도사가 걔네들한테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데요.”
“뭐라고?”
“너희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당장 템 뽑고 럭키를 몰고 가서! 네놈들 머리통을 박살을 내겠어!”
이 역시 누가 들어도 헛웃음이 나올 헛소리였으나, 이번에도 휴게실 손님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동안 BJ대마도사 행보를 보면 그렇겠네.”
“오히려 덤벼들기를 바랄걸? 덤벼드는 놈들은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잖아?”
그러한 호응에 이혁주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덤벼들길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일각에서는 BJ대마도사가 이렇게 상황이 되도록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말까지 나왔다니까요."
“BJ대마도사가 10대 길드에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안 될 건 없죠.”
그 말의 끝에서 이혁주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죠, 현우 형?”
그러한 이혁주의 말에 휴게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정현우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야, 그게 말이 되냐? BJ대마도사가 머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니고 10대 길드에 뭐하러 시비를 걸어?”
타당한 말.
“뭐, 걸 수도 있지 않나?”
“걔라면 그럴 것 같은데?”
그러나 막상 주변 반응은 정현우보다는 이혁주 쪽에 더 호응을 하고 있었다.
“그렇죠?”
그 사실에 콧대가 높아진 이혁주를 보며 정현우는 더 이상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정현우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진짜 골 때리게 돌아가네.’
지금 이 상황이 정현우의 새로운 걱정거리였다.
‘헛소문이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
사실 처음 정현우가 거인의 숲에서 레벨업을 하고자 했을 때 고민했던 것은 세간이 BJ대마도사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였다.
BJ대마도사도 …가 무서워서 최대한 레벨 찍네, 별거 아니었네, 그런 식의 눈초리.
그러나 세간의 분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게 아니면 BJ대마도사가 아직도 거인의 숲에서 랩업사냥 할 이유가 없잖아요? 진짜 제대로 싸우려고 하는 거죠.”
“그렇지.”
“아무렴.”
이혁주의 말처럼, BJ대마도사가 힘을 모으는 것은 진짜 큰 전투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아, 미치겠다.’
정현우 입장에서는 달가운 방향이 아니었다.
‘이런 식이면 날 잡으러 오는 놈들도 망설일 이유가 사라지는데……'
모두가 PK를 바라는 분위기라면, 자연스레 PK를 시도하려는 쪽에서는 부담감이 덜해지는 법.
무엇보다 10대 길드가 거론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BJ대마도사는 10대 길드조차 노리는 트로피가 될 터.
어쩌면 10대 길드가 정말 나설 수도 있었다.
‘10대 길드는 미친 새끼들이라고.’
10대 길드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고, 그 자리를 지키는지 직접 두 눈으로 봐왔던 정현우 입장에서는 등골이 오싹한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상황을 정현우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정현우는 속으로 푸념을 뱉었다.
‘이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믿는 놈들은 대체 머리에 뭐가 든 걸까?’
6.
“10대 길드랑 BJ대마도사랑 붙는다.”
박영준의 그 말에 부하 직원이 놀라며 말했다.
“그거 그냥 소문 아니었어요?”
“소문이든 아니든 간에 BJ대마도사는 10대 길드랑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어.”
말을 하는 박영준의 표정은 진지했다.
근거가 있었으니까.
‘만약 친하게 지낼 생각이었다면 어비스 길드가 우리에게 BJ대마도사를 찾진 않을 테니까.’
10대 길드와 BJ대마도사 관계가 그다지 긴밀하지 않다는 확실한 근거가.
때문에 박영준은 확신했다.
“오히려 BJ대마도사 입장에서는 10대 길드와 싸우는 걸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BJ대마도사가 기획한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예? 본인이 바라고 있다고요?”
“그래.”
“아니, 그게 말이 되나요? 10대 길드랑 붙는 걸 바란다는 게?”
놀라는 부하 직원에게 박영준은 말했다.
“어비스 길드 대 BJ대마도사, 이렇게 타이틀 걸리면 시청자 몇 나올 거 같아?”
“그야……"
그제야 부하 직원도 박영준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확인한 박영준이 입꼬리 한 쪽을 올리며 말했다.
“BJ대마도사는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알뜰살뜰 시청자 숫자 모으면서 성장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어. 툰가 왕국에서 어떤 식으로든 충돌이 있을 거야.”
“……엄청나네요.”
“그래, 우리는 그런 엄청난 사람이 운전하는 버스에 타고 있는 거고.”
이어진 말과 함께 박영준이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PC를 부하 직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러니까 요금을 내야지, 안 그래?”
“또 뇌물 바치시게요?”
태블릿PC를 받는 부하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솔직히 어지간한 스킬은 진짜 이제 줘도 안 쓸 것 같은데…… 의미가 있을까요?”
부하 직원의 그 의문에 박영준이 말했다.
“내가 설마 그걸 모르겠냐? 구매 목록에 있는 스킬 카드를 봐.”
그 말에 태블릿PC를 확인한 부하 직원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향해 박영준이 말했다.
“폭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건 추가 에어백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