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대마도사-68화 (68/485)

68화.  < 22화. 위가의 하얀 지팡이 (1). >

1.

캡슐의 문이 열리고, 정현우가 제 스스로 문 밖으로 나왔다.

“형!”

그러한 정현우의 얼굴을 향해 이혁주가 다짜고짜 엄지를 치켜 드며 말했다.

“대박! 대박 사건!”

그 갑작스러운 말에 이제 막 게임에서 나온 탓에 여러모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정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BJ대마도사가 라이브를 했어요! 그것도 보스 몬스터 레이드요! 기습 방송했다고요!”

그 표정 앞에서도 이혁주는 멈추지 않고 제 말을 이어갔다.

“진짜 이걸 라이브로 보셨어야 했는데! 장난 아니었어요. 초반부터 폭딜하더니 갑자기 매너겜한다고 여유 부리고, 콧노래에 어깨춤 추면서 보석 악어한테 다가가고, 아즈모 등장하고……"

흥분한 채 자신이 본 것을 토하듯 내뱉었다.

그러한 이주혁의 거듭된 말에 정현우는 대답 대신에 손으로 휙휙 저으며 말했다.

피곤하니까 다른 곳 가서 이야기 해줄래?

그러한 제스처에도 이혁주는 마저 말을 이어갔다.

“보니까 그냥 돈 많은 금수저 개새끼가 아니더라, 진짜 완전 개병신 또라이 새끼더라고요. 정신과 의사한테 그 라이브 영상 보여주면 당장 입원시키라고 할걸요? 그 정도로 미친 또라이 병신 새끼였어요. 개병신 또라이 새끼!”

개인적인 감상마저 덧붙였다.

그제야 정현우도 한마디를 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병신 또라이 새끼가 뭐냐?”

“아, 진짜라니까요. 같이 보던 모든 사람들도 똑같이 말했어요. 저 새끼 완전히 개병신 또라이 새끼라고.”

그 감상에 정현우는 더 이상 대화를 받아주지 않은 채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에 이혁주를 지나쳤다.

그리고는 카운터 근처에 마련된 소파에 몸을 쑤셔 넣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곧바로 정현우의 눈앞에서 조금 전 있었던 광경이, 첫 라이브의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그 당시에 느낀 전율도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게 지나갔다.

‘아, 최악이다.’

그 후에 오는 것은 다름 아닌 후회였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법.

‘진짜 운이 좋았어.’

하물며 정현우가 조금 전 자신이 한 것이 외줄타기였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는 몰라도 최소한 정현우 본인은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대로 갔으니 다행이지, 도중에 문제 터졌으면…… BJ대마도사 접었겠지.’

운이 좋아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상의 평가는 결코 줄 수 없었다.

‘아, 거기서 사장님한테 어필도 제대로 했었어야 했는데……'

개중에서도 정현우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만드는 건 그 중요한 순간 라이징 스타 채널의 대표에게 보다 확실하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

결국 윗사람 마음에 얼마나 드느냐가 앞날의 밝기를 바꾸는 법.

그 윗사람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을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운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리고 아쉬워해야 했다.

보다 높은 곳에 가는 이라면 그 무엇에도 만족하지 않은 채 아쉬워해야 하는 법이니까.

"씁."

그 사실에 정현우가 살짝 분노를 토해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아......."

그렇게 정현우가 하염없이 푸념을 내뱉었다.

물론 그 푸념을 길지 않았다.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면 진짜 아무것도 안 되는 거야.’

후회는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후회를 한 다음에 무엇을 하는가, 바로 그것이었다.

정현우는 최소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단 퀘스트도 정리할 겸 위가의 도시로 이동한 후에 그곳에서 추가 멘트 좀 날리자.’

때문에 정현우는 휴식에 취하지 않았다.

“혁주야, 나 바로 다시 들어간다.”

“벌써 들어가세요?”

“놀면 뭐하냐?”

이어진 대화에 이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열심히 해야 먹고 살죠.”

그 말에 정현우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여기서 만족하면 여기서 그칠 뿐이지.'

2.

“오케이, 됐다!”

BJ대마도사가 보석 악어 레이드에 성공하는 순간, 그 광경을 보던 라이징 스타 채널 방송팀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환호성 뒤로 부하 직원들이 방송실 가장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영준을 향해 소리쳤다.

“사장님, 최고 시청자 숫자 4만 5,323명! 대박 떴습니다!”

“후원금도 대박 났습니다!”

“이거 제대로 터졌는데요?”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이번 BJ대마도사의 레이드 라이브 방송의 성공을 축하했다.

얼굴에는 흥분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징 스타 채널이 나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채널이긴 하지만, 여전히 신생 채널 취급을 받는 상황.

라이브 방송보다 영상을 주로 취급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워즈튜브에서 영상으로 100만 조회수를 만드는 것보다 라이브 방송으로 1만 명의 시청자를 모으는 게 더 어려웠으니까.

즉, 라이징 스타 채널의 직원들 입장에서 이 정도 결과물은 처음이었다.

그들이 이제까지 해온 노력이 결실을 조금은 보이는 순간이 기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터.

“사장님?”

그러나 막상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박영준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침착했다.

그 침착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여전히 방송 중인 BJ대마도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BJ대마도사가 말했다.

- 앞으로 라이징 스타 채널을 통해 자주 라이브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짝짝짝!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박영준이 그 자리에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갑작스러운 박수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이거지.”

박영준이 그 시선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광경.

“뭐 있나요?”

부하 직원 중 한 명이 결국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박영준이 도리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긴 뭐야, 지금 다 봤잖아?”

“예? BJ대마도사가 레이드 성공한 거요? 그야 봤죠.”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내가 말하는 건 마지막 저 대사야.”

“대사요?”

그제야 모두가 기억을 살짝 더듬었고, 이내 박영준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라이징 스타 채널을 통해 찾아뵙겠다는 그 말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거 그냥 인사치레 아닌가요?”

이어진 그 말들에 박영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 그냥 인사치레라니……"

“그럼 아닌가요?”

툭 나온 반문에 박영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 데미지 폭딜부터 마지막에 럭키의 어그로 스킬을 이용한 클라이맥스까지, 이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계하고 심지어 이 레이드를 위해서 100만 불짜리 용열병 스킬에 최소 4만 달러는 하는 위가의 활을 준비해온 플레이어가 클로징 멘트로 내뱉은 유일한 말이 그냥 인사치레다?”

“그건……"

"응? 진짜 이게 그냥 단순히 할 말이 없어서 툭, 내뱉은 그냥 인사치레 같아?”

반문한 부하 직원이 말문이 막힌 모습을 보였다.

다른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이렇게 완벽하게 설계한 사람이 클로징 멘트라면 당연히 준비한 멘트일 텐데?’

그러한 생각에 박영준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심지어 아즈모까지 섭외한 인간이? 어비스 길드도 한 번 방송에 나오기만 해도 100억을 준다고 했는데도 어비스 길드 방송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아즈모인데?”

아즈모!

그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모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인사치레가 아니라 신호야. 앞으로 라이브 방송은 라이징 스타 채널하고만 하겠다. 그러니 나한테 러브콜 보내는 새끼들은 더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

박영준, 그가 맞았음을.

“그동안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해온 것들이 아주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증거이지.”

그 모습에 부하 직원 한 명이 감탄과 함께 말했다.

“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역시 와튼 스쿨입니다!”

그 감탄에 박영준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야지.”

“다음이요?”

“그래, 다음. 이제 BJ대마도사와 우리 관계는 공생 관계가 된 거야. 윈윈을 해야 한다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저 이익만 보면 BJ대마도사가 이 관계를 유지하겠어?”

"그냥 이번에도 스킬 카드나 아이템 선물하면 되지 않을까요?”

부하 직원의 그 물음에 박영준은 제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대답했다.

“무언가 BJ대마도사의 마음에 쏙 들 물건이 필요해.”

말을 하던 박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BJ대마도사 본인도 분명 그에 대한 신호를 줄 거야. 어떤 식으로든 말이야.”

3.

사냥터에는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쉼터가 있으며, 그곳에서는 언제나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많은 이야기가 모이는 것은 그 사냥터의 중심에 있는 도시인 법.

가장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건 당연히 위가의 도시였다.

“BJ대마도사 보석 악어 솔로킬 라이브 봤어?”

“와, 장난 아니더라.”

그리고 지금 그 위가의 도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BJ대마도사의 존재였다.

이미 위가의 NPC 호위 사건으로 위가의 도시 내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상황.

“보석 악어를 솔로킬을 내다니.”

“그것도 10분 1초, 최단 시간이었어.”

그런 상황에서 나온 이번 보석 악어 레이드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건 단순한 레이드가 아니었다.

“에이, 그래 봐야 돈지랄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돈지랄해서 나온 기록이라고 해도 그건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무시하고 자시고가 아니라, 쇼맨십이 달랐잖아? 돈지랄이야 돈만 있으면 가능하지. 하지만 BJ대마도사는 분명 달랐다고.”

“보니까 그냥 기록만 노렸으면 7분 컷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3페이즈 앞두고 여유 부리는 거 봤잖아?”

BJ대마도사는 그 영상을 통해 자신이 그저 아이템과 스킬로만 무장한 플레이어가 아님을, 자신에게 그냥 평범한 금수저 플레이어들과는 다른 플러스알파가 있음을 증명했다.

그 무렵이었다.

“BJ대마도사다!”

“위가의 도시에 BJ대마도사가 등장했다!”

여전히 BJ대마도사에 대한 이야기의 온도가 따뜻할 무렵, BJ대마도사가 위가의 도시에 등장했다.

언제나 그렇듯 뜨거운 감자에는 관심이 크지 않은 사람도 모이는 법.

모두가 BJ대마도사를 보기 위에 움직였다.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럭키다!”

“와, 럭키다!”

“럭키 귀여워!”

그 누구보다 확실한 마스코트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보다 왜 위가의 저택 앞에 있는 거지?”

동시에 미다스는 위가의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위가의 저택, 그곳으로 가는 정문의 앞에 서있었다.

물론 그가 위가의 저택에 온 것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위가의 호위를 받은 유일무이한 플레이어가 보스 몬스터를 잡고 위가의 저택에 온 건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

“안 들어가고 뭐해?”

“일부러 안 들어가는 건가?”

하지만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건 누가 보더라도 다른 의도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기자회견이라도 할 속셈인가?”

그런 좌중의 예상대로 미다스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오늘 라이브 방송을 봐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부터 전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정중한 인사.

그 인사에 소란이 조금 진정되는 사이, 미다스는 말을 이어갔다.

“별건 아니고, 이런 자리가 아니면 몇 가지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드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일단 지금 제 라이브 방송권과 영상 송출권에 대해서 엄청난 러브콜이 오고 있는데,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당분간은 라이징 스타 채널을 통해서만 영상 및 라이브 방송이 나올 예정입니다.”

그 말에 모인 플레이어들 중 몇 명이 말했다.

“그딴 거 딱히 안 궁금한데?”

“알게 뭐야?”

“뭐래?”

그딴 사정에 별 관심 없다!

물론 미다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이딴 거 궁금한 인간이 얼마나 되겠어?’

미다스가 진짜 스타 플레이어, 몸값만 수십, 수백 억이 넘는 플레이어였다면 그가 어느 채널에서 방송을 하느냐가 엄청난 이슈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미다스는 지금 제법 인상적인 활약을 한 루키에 불과했다.

그가 어디서 방송을 하든 딱히 그건 별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는 수준.

그럼에도 미다스가 이런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제시하는 계약금이 적진 않은데, 까놓고 말해서 그런 돈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거든요. 억 기준으로 달러나, 유로화나, 파운드를 제시한다면 모를까. 그러니 괜히 힘 빼지 마세요.”

‘그래도 이렇게 말해야 라이징 스타 채널 사장님이 좋게 봐주시지.’

라이징 스타 채널을 향한 보여드리지 못한 애정과 감사를 마저 보내기 위해서.

매우 유치한 짓이었다.

그러나 세상일 대부분은 의외로 유치한 것을 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생 최고의 효도는 부모님께 매일 전화로 사랑해요, 라는 말을 해드리는 것처럼.

라이징 스타 채널 입장에서도 유치하지만 들어서 기분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걸로 사장님에 대한 애정을 보였고, 이제는 떡밥을 뿌려야지.’

물론 여기서 끝날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이 말만 한다면 여기 모인 이들이 아무런 수확도 가지고 가지 않는 셈.

“뭐, 이런 이야기는 관계자분들만 궁금할 이야기이니까 이 이상 할 필요는 없겠고…… 그래도 어려운 발걸음하셨는데 이곳에 모인 분들께도 선물 하나는 드려야죠.”

모인 이들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팬서비스를 할 필요가 있었다.

미다스가 기꺼이 그 서비스를 했다.

“여기 모인 분들에게 럭키의 귀여운 애교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좌중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싸해지기 시작했다.

왕?

럭키도 주인을 향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주인님?”

골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미다스를 바라봤다.

그 상황 속에서 미다스가 피식 웃었다.

“장난입니다.”

그 말 뒤로 미다스는 말해주었다.

지금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대답을.

“제가 잠시 후 이곳에서 받을 보상은 위가의 하얀 지팡이입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분위기가 바뀌었다.

싸늘해진 분위기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갓워즈에서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져본 적 없는 최초의 아이템이죠.”

그리고 이어진 그 말에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아이템에 대한 옵션 등은 라이징 스타 채널을 통해서 발표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미다스가 등을 돌렸다.

이번 라이브 방송을 가장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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