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21화. Live (3) >
7.
보석 악어.
몸길이 10미터인 거대한 녀석의 외형적 형태는 악어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그 거대함이 주는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악어라기보다는 공룡에 더 가까울 정도.
그러한 녀석의 유일한 외형적 특징은 등에 달린 성인 남성 머리 크기의 보석이었다.
일명 신호등 보석.
그 보석의 상태에 따라 보석 악어는 행동 패턴이 달라지는 탓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지금처럼 붉은색의 경우에는 공격 모드였다.
크어!
문자 그대로 늪지대에서 더 이상 몸을 숨기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내며 적을 공격하는 모드였다.
- 보석 악어 등장이다!
- 와 무시무시하네. 저걸 어떻게 상대해?
- 무시무시하지만, 저 모드가 제일 편할걸?
- 저게 제일 편하다고?
기본 모드로, 가장 상대하기 편한 모드였다.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 HP 20퍼센트 깎으면 2페이즈 돌입하는데, 그때부터 저 보석이 1분마다 색이 변해.
- 보석이 검게 변하면 늪잠수 스킬이 발동하고.
보석 악어의 보석이 흑빛으로 변하는 순간, 보석 악어는 늪잠수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늪잠수 발동하면 데미지 딜링 자체가 안 되니까.
- 늪 깊이 잠수하는데 어떻게 잡겠어?
문자 그대로 늪에 잠수하는 것이다.
깊이.
늪이 얕다면 깊은 곳까지 이동해서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잠수시키고는 했다.
그것을 막을 방법 따위는 없었다.
- 더군다나 잠수를 하면 일정 HP를 회복할 때까지는 나오지 않아. 피통 채운 후에 나오는 거지. 데미지 딜링 좆빠지게 해봤자 말짱광이 된다는 거야.
- 그래서 무조건 1분 안에 한 번 이상 보석을 공격해서 흑빛으로 변하는 걸 막아야 해.
때문에 보석 악어의 공략법은 1분에 1번 이상 보석을 공격해서 늪잠수 스킬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보통 보석 악어를 잡을 때는 언제 어느 순간에도 등의 보석을 공격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여력을 남겨두고는 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HP를 깎은 후에 마지막 페이즈에서 모든 전력을 토해내는 식.
“용열병.”
그런데 미다스는 처음부터 전력을 꺼냈다.
- 용열병? 드래고닉 피버?
- 헉, 저거 레전더리 스킬 아니야?
- 미친, 백만 달러짜리잖아!
그 사실에 상황을 보던 모든 이들은 일단 그 스킬의 등장 자체에 기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즈모가 무려 1백만 달러에 사겠다고 이야기했던 스킬 아닌가?
모르는 이가 없는 스킬 중 하나였다.
당연히 그 스킬의 효과도 모두가 잘 알았다
- 그보다 여기서 피버 타임이라니, 바로 폭딜 들어가겠다는 건가?
- 보석 악어 상대로? 지금 탱킹도 제대로 시작 안 했는데?
정상적인 경우라면 보석 악어를 상대로 지금 이 타이밍에 나올 법한 스킬이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알 수 있었다.
‘그래, 정석은 아니지.’
미다스 역시 이게 정석적인 공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방식을 쓰는 건, 지금 미다스가 처한 상황 역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보석 악어만 잡는 거면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미다스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보석 악어는 잡기 어려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분명 보석 악어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놈이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맞출 곳이 많은 놈이었다.
여기에 보석만 1분에 한 번씩 건드려야 한다, 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일도 아닌 상황.
무엇보다 보석 악어는 그러한 능력 때문에 다른 능력들이 많이 부족한 녀석이었다.
데미지는 강력하지만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는 꽤 느렸으며, 공격 패턴도 많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 했다.
만약 10미터나 되는 거대 악어가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도 빠르고, 패턴마저 다양했다면 50레벨대 플레이어가 놈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어쨌거나 보석 악어만이라면 미다스는 이런 식으로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승냥이 떼만 아니면.’
문제는 이 순간 자신을 노리는 놈들, 자신의 아이템과 보석 악어라는 보스 몬스터 스틸을 노리는 놈들이었다.
즉, 지금 이 순간 미다스가 하고자 하는 건 그 승냥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미다스, 그가 손에 든 사할린의 지팡이를 허공에 띄운 후에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꺼냈다.
그것을 본 모두가 다시 한 번 놀랐다.
- 저거 위가의 활 아님?
- 아니, 마법사 주제에 위가의 활?
- 와, 대체 이번에는 얼마를 지른 거야?
그렇게 놀라는 이들에게 미다스는 보다 분명하게 보여줬다.
“파이어 애로우 앤 아이스 애로우.”
미다스가 날린 화살 첫발이 그대로 보석 악어의 등에 있는 보석, 황금빛 과녁에 꽃혔다.
팅!
그 후 미다스는 쉴 새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세밀한 조준은 필요 없었다.
그 모든 정확도는 위가의 활이 알아서 해결해줄 터.
그렇게 단숨에 파이어 애로우 3발, 아이스 애로우 4발을 소모한 미다스가 소리쳤다.
“윈드 애로우 앤 라이트닝 애로우.”
용열병 스킬 덕분에 캐스팅은 단숨에 끝났고, 미다스는 그 상태에서 단숨에 윈드 애로우 3발과 라이트닝 애로우 3발을 그대로 보석 악어의 보석에 꽃았다.
도합 13발의 화살이 10초도 되지 않아 보석 악어에 꽃혔다.
- 이게 말이 돼 ?
- 뎀딜 실화냐?
상상할 수 없는 데미지 딜링.
그것을 통해 미다스는 자신을 노리는 승냥이 떼에게 말했다.
‘쫄리는 놈들은 먼저 뒈지시고.’
8.
라이브 중 최고는 직관이다.
“BJ대마도사가 동쪽에서 사냥 중이야!”
“야, 라이브 방송 뭐하러 봐? 그냥 직접 보러 가는 게 최고지!”
그러한 말을 증명하듯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는 순간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전투의 장소로 이동했다.
물론 그중에는 관중이 아닌 승냥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잡기만 해도 최소 1만 달러!’
BJ대마도사를 사냥감으로 품은 그들은 사냥감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연히 그들은 잘 볼 수 있었다.
“용열병도 있다고?”
“위가의 활?”
“미친, 위가의 활에 용열병 버프 상태로 애로우 4개 연속 공격이라니? 순간 데미지 딜링이 대체 몇이 나오는 거야?”
“어? 보석색이 변했다!”
“뭐? 지금 전투 시작한 지 1분 조금 막 넘었잖아?”
“맙소사! 1분 만에 2페이즈에 도달했다는 거야? HP 20퍼센트를 1분 만에 깎았다고?”
1분여.
그 짤막한 시간 동안 보석 악어의 2페이즈를 발동시킨 BJ대마도사의 딜링을.
관객이라면 보고 탄성이 나올 만한 딜링이었다.
그러나 BJ대마도사를 사냥하기 위해 모인 승냥이들에게는 달랐다.
‘저 딜링이면 우리는 그냥 바로 게임오버겠는데?’
끔찍하다, 그 외의 표현은 붙일 수 없는 딜링이었다.
“위가의 활이라니, 저것도 골 때리는데.”
“맞으면 끝이지.”
여기에 추격 기능이 있는 위가의 활을 들었다는 사실은 그 끔찍함의 농도를 더 짙게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일부는 생각했다.
‘그냥 포기하자.’
‘뒈지면 의미 없지.’
‘못 잡아, 저건.’
굳이 잡으려고 고민하지 말고 그냥 관객으로 태세를 전환하자고.
물론 일부일 뿐, 여전히 기회를 노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렇게 승냥이로 남은 자들은 더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보다 초반부터 저렇게 달린다는 건 뭔가 또 준비한 게 있다는 걸까?’
BJ대마도사가 정상적이지 않은 패턴을 가져간 것에 대한 의문.
‘이 주변에 당연히 보디가드들을 대기시켜놓았겠지?’
주변에 점차 모이기 시작하는 플레이어들 중 과연 몇 명이 BJ대마도사의 경호원인지에 대한 의문.
‘잡을 수 있을까?’
‘빼앗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BJ대마도사를 정말 게임오버시킬 수 있을지 혹은 그에게서 보스 몬스터를 스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바로 답이 나올 수 있는 의문들은 아니었고, 때문에 승냥이들이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은 하나였다.
‘일단 지켜보자.’
‘어떻게 돌아가나 보자.’
당장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
그 상황 속에서 BJ대마도사가 사냥을 계속했다.
9.
[보석 악어의 보석이 붉게 빛납니다.]
시시각각 들리는 알림, 그 알림과 함께 보이는 전투는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크라아!
몸길이 10미터의 보석 악어가 늪 위에서 두 발로 선 채 3미터짜리 골렘을 덮치는 광경은 격렬이라는 단어 외의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했으니까.
크왕!
“주인님을 위한 살덩이가 되어라!”
그 사이사이 럭키와 골드, 둘이 쉴 새 없이 보석 악어의 몸뚱이에 칼과 이빨로 상처를 내는 과정은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퍼엉!
그리고 주기적으로 날아와 보석 악어의 등 위 보석을 가격하는 불덩이는 강렬했다.
여러모로 볼 맛이 나는 전투였다.
- 솔로킬이 되고 안 되고 수준이 아닌데?
- 아직 5분 안 됐지? 이 정도면 쉽게 신기록 달성하겠는데?
- 탱킹이 약하긴 한데, 데미지 딜링이 쩌니까 이거 뭐 탱킹이고 나발이고 없네.
관중들은 기꺼이 그 광경을 즐겼다.
‘예상대로다.’
이 모든 건 미다스의 예상대로였다.
‘남은 HP는 23퍼센트. 이제 3퍼센트만 더 깎으면 3페이즈 돌입, 예상한 그대로다.’
전투 상황은 미다스가 예상한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예상대로 승냥이 놈들도 지켜만 보고 있고.’
그리고 현재까지 이렇다 할 방해나 자신을 향한 공격이 없다는 점 역시 예상한 그대로였다.
‘애초에 실력 좋은 새끼들이면 PK나 스틸을 안 하지. 결국 그런 짓 하는 건 애매한 실력에 할 일 없는 새끼들뿐이니까.’
처음에 용열병을 사용해서 데미지 딜링을 했던 게 바로 그것을 위함이었으니까.
사냥감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하다면, 다시 한 번 계산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놈들이 내놓을 답도 뻔하지.’
더 나아가 그들이 그러한 고민 끝에 내놓을 답이 무엇인지도 미다스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다시 한 번 용열병을 쓰고 데미지 딜링에 들어가면, 그때를 노리겠지.’
보석 악어는 3페이즈에 돌입하는 순간 늪잠수 스킬 발동 시간이 1분에서 30초로 단축된다.
보석을 30초에 한 번 이상 건드려야 한다.
그런 이유로 3페이즈에 돌입하는 순간 레이드 참가자들은 전력 질주를, 속칭 피버 타임을 가지고는 했다.
‘전력 질주를 하면 시야는 좁아지는 법이니까.’
오로지 제 할 일에만 몰입하는 사냥감, 사냥꾼 입장에서는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실제로 대부분의 PK범들, 스틸범들은 그 순간을 노리고는 했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줄 수는 없지.’
그렇기에 미다스는 또 한 번 상황을 틀었다.
“레이드 시작하고 5분 21초째.”
전투에 집중하던 미다스가 입을 열었다.
“대충 HP는 20퍼센트쯤 남은 거 같고, 용열병 쿨타임 끝나서 피버 타임 가지면 7분 컷 가능할 것 같네요."
그 말에 호응하듯 시청자들이 말했다.
- 크으, BJ대 마도사의 스킬빨템 빨에 감동합니다.
- 역시 템빨갓흥겜은 다르네.
- 그동안 안 깨진 기록이 돈지랄에 깨지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들을 살핀 미다스가 입을 열었다.
“채팅창에 돈지랄해서 이런 기록 세우면 좋냐, 그게 실력이냐, 이 양심도 없는 새끼야, 라는 말이 많네요."
그 말과 함께 미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여기서 7분 컷 해버리면 그건 비양심적인 일이죠.”
그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그 물음표를 향해 미다스는 말했다.
“그래서 적당히 하려고요.”
그때 미다스가 여전히 치열하게 전투가 진행 중인 보석 악어 쪽을 향해 활시위를 한 번 당겼다.
조준은 필요 없었다.
표적을 바라볼 필요도 없었다.
팅!
미다스는 장난을 치듯 가볍게 활시위를 놓았고, 활이 머금고 있던 아이스 애로우 한 발이 수려한 궤적을 그리며 보석 악어의 보석 위로 정확하게 꽃혔다.
“적당히 10분대 기록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이어진 그 말에 채팅창은 아수라장이 됐다.
- 와, 기만 보소!
- 크으, BJ대마도사님의 배려에 눈물 세 방울 흘리고 갑니다.
- 너무 양심적이라서 웃음도 안 나오네요!
사실 누가 보더라도 그건 장난이었다.
돈 많고, 템 좋고, 스킬 좋은 놈이 넘치는 여유를 주체 못해서 보여주는 장난.
정확히 표현하자면 기만.
그러나 미다스를 노리던 승냥이들에게는 달랐다.
“뭐라고? 일부러 10분 컷 하려고 느긋하게 하겠다고?”
“총력전을 안 하겠다는 거야?”
그들에게 미다스의 그 선언은 자신들이 노리고 있던 기회가 사라졌음을 알리는 말이었다.
전력 질주는 없다.
그러니 BJ대 마도사를 잡으려면 BJ대마도사랑 정면으로 치고받을 각오를 해라!
그 사실에 자신 있게 콜을 외칠 수 있을 만큼 실력과 아이템을 갖춘 플레이어라면 애초에 이곳이 아니라 더 높은 곳에 있었을 터.
물론 사실 그건 미다스에게 있어서 허세였다.
‘여기서 용열병 쓰고 데미지 딜링 들어가봤자 어차피 그전에 먼저 마력이 바닥나지만.’
사실 미다스는 이미 앞서서 전력질주로 가진 마력의 상당부분을 소모한 상태였다.
만약 정말로 용열병을 사용해서 마법을 난사한다면, 그전에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 물론 유일하게 탱킹 역할을 해주는 골렘이 사라질 터.
여기서는 정말 연비 주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관객들이 알 리는 만무.
그런 관객들에게 미다스는 보다 확실하게 선언했다.
“그렇잖아요? 돈지랄한 놈이 너무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워버리면 제 다음에 게임하시는 분들이 무슨 재미로 하시겠습니까?”
자신은 이제부터 오히려 느긋하게 보석 악어를 상대하겠다고.
미다스가 그러한 여유를 마음껏 펼쳤다.
“제가 보기에 이 게임에서 저보다 돈 많이 쓰실 수 있는 분은 한 분밖에 없는 거 같은데.”
그 순간이었다.
[아즈모 님이 1,000달러를 후원하셨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즈모, 그가 후원금을 날렸다.
- 우와, 아즈모 님 등장!
- 이야, 돈지랄에 돈지랄로 대응하시네.
- 아니, 진짜 둘이 아는 사이인 거 아니야? 짠 거 같은데?
그 사실에 채팅창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보석 악어의 보석색이 보다 빠르게 변합니다.]
동시에 보석 악어가 3페이즈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