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대마도사-60화 (60/485)

60화.  < 19화. 전설은 전설이다 (3). >

9.

퍼엉!

적막하던 늪지대, 그곳을 폭음 한 줄기가 가볍게 흔들었다.

말 그대로 가벼운 흔들림이었다.

콰앙!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다시금 들린 폭음은 더 이상 가벼운 수준이 아니었다.

그건 적막하던 늪지대에 전운이 피어올랐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샤아!

스읏!

그 소리에 부응하듯 머리통에 시커먼 그을림을 품은 리자드맨 두 마리가 성난 울음을 토해내며 늪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쿵!

그러한 리자드맨이 마주한 것은 3미터의 거대한 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거인이었다.

그 거인이 자신의 양팔을 좌우로 크게 벌렸다.

다리에 닿을 정도로 축 늘어진 두 양팔이 좌우를 가리자, 5미터를 훌쩍 넘는 벽이 되었다.

묵직한 위압감.

샤아!

물론 이미 공격에 당해 눈이 돌아가버린 리자드맨들은 그 위압감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주눅이 들기는커녕 도리어 더 큰 적의를 불태우며 그 흙덩이를 향해 제 몸을 던졌다.

그 순간이었다.

철퍽!

리자드맨 두 마리가 골렘의 두 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근처에서 늪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건 완벽한 무장을 마친 가디언 골드였다.

골드는 등장하는 순간 괜한 소리 따윈 내지르지 않았다.

스윽!

말보다 먼저 제 손에 든 시미터를 휘둘러 자신에게 등을 드러낸 리자드맨 한 마리의 등줄기 가죽에 사선을 그었다.

깊진 않았다.

적당한 깊이, 굳이 힘들이지 않고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수준.

그렇게 시미터를 휘두른 후에는 골드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방패로 제 얼굴과 몸을 가렸다.

샤아!

공격을 당하는 순간 고개를 돌린 리자드맨은 그 방패를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분명 날카로운 것이 자신을 베었는데 보이는 건 큼지막한 방패뿐인 상황.

리자드맨의 머릿속에 있는 전투 패턴이 한 번 더 계산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리자드맨의 모든 시선이 방패를 향하는 순간 골드는 그 방패로 리자드맨을 후려쳤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리자드맨의 길쭉한 목과 머리가 갈대처럼 옆으로 휘어졌다.

그렇게 드러난 목덜미를 향해 리자드맨이 시미터를 다시 한 번 휘둘렀다.

이번에는 앞선 경우와 달리 가볍지 않았다.

퍼걱!

마치 벼락이 내리치듯이 거칠기 그지없는 공격이 그대로 리자드맨의 목덜미에 꽃혔다.

샤!

리자드맨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뱀이 위협을 내지르는 듯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골드는 다음 공격을 하는 대신 다시금 방패를 앞세우며 기다렸다.

한 번 더 리자드맨이 자신의 방패를 두드리는 순간, 그 후에 역공으로 놈을 물리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게 골드의 스타일이었다.

가디언은 어디까지나 주인의 위협을 제거하는 존재, 결코 자신을 불사르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반면 그런 존재도 있었다.

왕!

럭키는 그러했다.

골드가 상대하는 리자드맨의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걸 확인하는 순간 골렘 머리 위에서 숨죽이고 있던 럭키는 그대로 몸을 날리며 단숨에 리자드맨의 목덜미를 물었다.

콰직!

매우 깊게.

이빨을 빼내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깊게.

그렇게 깊게 물어뜯은 후에 제 몸을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럭키의 몸이 리자드맨에서 떨어졌을 때, 럭키의 입에는 어떻게 물어뜯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큼지막한 살점이 물려 있었다.

[리자드맨을 처치했습니다.]

럭키가 리자드맨의 목줄을 확실하게 뜯는 순간이었다.

그 사실에 골드가 소리쳤다.

“이 나쁜 개! 감히 내 사냥감을!”

자신의 사냥감을 앗아간 럭키를 향해 분노를 토했다.

왕!

물론 럭키는 그 분노를 무시하며, 자신이 사냥한 리자드맨의 시체를 디딤돌 삼은 후에 도약했다.

골렘과 상대하는 다른 한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직!

그 도약 한 번으로 골렘과 아웅다웅하던 리자드맨의 목덜미를 물어뜯음과 동시에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는 리자드맨을 디딤돌 삼아 도약했다.

그 도약의 끝은 골렘의 어깨 위였다.

크르르!

질척한 늪이 아닌 드높은 골렘의 어깨를 타고 다시 머리 위에 올라선 럭키가 언제든 리자드맨의 숨통을 끊기 위해 제 스스로를 장전했다.

감탄이 나올 법한 전투 센스.

“못된 개! 이것은 나의 사냥감이다!”

그사이 남은 리자드맨을 향해 재차 공격을 나서는 골드 역시 흐트러짐이 없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풍경이었다.

전설은 전설이다, 그리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

이 셋이라면 게임을 날로 먹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 가뿐하게 나올 모습.

역시 빌어먹을 운빨좆망겜이다, 라는 말이 나올 법한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가 있었다.

“후우.”

다름 아니라 미다스, 그가 지금 저 놀라운 셋의 전투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늪지대 위로 흙과 나무 따위를 깔아 만든 봉분, 마운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법한 곳에서 선 미다스의 모습 자체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파이어볼.”

그 위에서 캐스팅을 외치는 모습도, 그 캐스팅이 끝난 후 손에 쥔 불덩이를 던지는 모습 역시 그가 이제까지 보여준 모습에서도 딱히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휙!

불덩이를 던진 후에 짧게 숨을 고르는 모습 역시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차이점은 하나였다.

퍼엉!

그 숨소리가 들린 이후 폭발음이 터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는 것.

‘이제 100미터는 가뿐하다.’

미다스, 그가 100미터밖에 있는 리자드맨을 명중시키는 순간이었다.

럭키와 골드 그리고 골렘이 만들어내는 멋진 콤비 플레이를 무색하게 만들 만한 광경이었다.

100미터란 거리를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

미다스 역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사실 조짐은 있었다.

일단 근력 스탯 자체가 예전 캐릭터보다 높았다.

예전 캐릭터의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근력 스탯이 261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그 근력 스탯이 300을 훌쩍 넘긴 상황이었다.

여기에 스트랭스 버프까지.

근력 스탯이 던지는 힘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먼 거리를 던지는 게 더 쉽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먼 거리를 던질 수 있는 것과 잘 맞추는 건 별개의 이야기.

이번 명중률에 영향을 가장 크게 미친 것은 다름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이었다.

‘확실히 투구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잘 맞네.’

오로지 공격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야구선수들 중에 그런 부류가 있다.

연습에서는 귀신같이 던지는데 실전에서는 쥐약을 먹은 쥐 꼴이 되는 부류들.

속칭 새가슴이라고 불리는 부류들.

보는 이는 가슴을 치며 답답할 일이지만, 막상 그 처지가 되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이 걸린 고독한 무대 위에서 온갖 종류의 변수와 잡음, 신경전과 심리전 속에서 하던 대로 한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이제까지 미다스가 처한 처지도 그러했다.

자신을 구할 사람은 자신뿐이다, 절대 게임 오버를 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미다스의 정신력은 소비될 수밖에 없었다.

‘투구에만.’

지금처럼 오로지 맞춘다, 그것만 신경 쓸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 갖춰진 적은 이번이 처음인 셈.

더욱이 미다스의 눈에는 먼 곳에 있는 몬스터의 존재감이 명명백백하게 보였다.

초목 따위 사이로 몬스터의 HP를 포함한 모든 정보가 그리고 몬스터의 몸뚱이에 드러난 황금빛 과녁까지.

철퍽, 철퍽!

그러한 눈에 확 띄는 표적들이 늪지대 위를 질척이며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미다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이상도 가능하다.’

100미터, 이것은 시작이라고.

근력 스탯이 더 오르고 자신이 그에 맞게 연습과 훈련을 반복하며 경험을 쌓는다면 이보다 더 먼거리에서도 명중할 수 있으리라고.

‘이거면 보석 악어 솔로킬은 충분하다.’

그 사실에 자신감을 품은 미다스가 다시 한 번 투구폼을 취하며 던진 파이어볼이 골렘을 넘어 먼 곳, 120미터 거리에 떨어진 곳에 있는 리자드맨의 머리에 닿았다.

퍼엉!

폭음이 메아리처럼 들렸다.

[리자드맨을 처치했습니다.]

[리자드맨의 악몽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파이어볼 스킬의 스킬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리자드맨의 둥지 안에 있는 모든 리자드맨을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알림이 들렸다.

[저주받은 목걸이가 한 곳을 가리킵니다.]

이번 던전이 종료됐음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10.

철퍽, 철퍽…….

목걸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미다스 일행이 늪지대를 해치며 움직이고 있었다.

왕!

선두에 선 것은 럭키였다.

꼬리를 좌우로 쉴 새 없이 흔들며 길을 만드는 럭키의 모습은 마치 이곳을 즐기는 듯했다.

그 뒤를 따르는 건 미다스였다.

골드의 위치는 가장 후방이었다.

“주인님, 저 나쁜 개가 제가 다 잡은 사냥감을 강탈했습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제가 더 많은 리자드맨을 처치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후방에서 골드는 미다스를 향해 자신이 럭키보다 리자드맨을 많이 잡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미다스는 헛웃음이 나왔다.

‘친밀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이거였나?’

충성도가 오를 경우 추가 개방되는 효과의 실체에 대한 헛웃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헛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내 후방 지켜주려고 이렇게 뒤에 있어 주는데.’

골드가 자신의 뒤에 선 것이 그저 제 처지를 변명하기 위함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니까.

후방 호위였다.

럭키가 앞을 지키고 있으니, 자신은 뒤의 위협으로부터 주인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미다스 입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든든한 보디가드들, 그러한 보디가드들을 비웃을 필요는 없었다.

‘왔다.’

그리고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왕! 왕!

럭키의 거듭된 외침, 그 앞에 있는 무언가가 미다스의 눈에 들어왔다.

‘알?’

그것은 알이었다.

어린아이 머리 크기의 알.

[???의 알]

-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

그러나 알을 손에 든 미다스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용의 알

!부화를 위해서는 ‘이름 잃은 신의 힘’이 필요

용의 알.

‘설마 용 타입의 신수?’

그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으로 현재 공개된 다양한 종류의 신수들, 개중에서 용 타입의 신수들이 떠올랐다.

떠오른 건 제법 많았다.

그러나 미다스는 그 생각을 바로 멈췄다.

‘잠깐, 플레이어 한 명이 신수를 2마리 이상 가질 수 없는데?’

갓워즈에서 신수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그야말로 갓워즈가 점지해준 인연, 로또 복권으로 따지면 1등 당첨과 같았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로또에 2번 당첨되는 인간도 나오는 법.

갓워즈에서도 그 신수를 얻는 행운을 2번이나 마주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 2개의 행운을 동시에 누리는 이는 없었다.

‘분명 하나를 골라야했어.’

그중 하나는 자연으로, 갓워즈의 세상으로 돌려보내야 했으니까.

그러나 그건 일반적인 경우, 이 퀘스트는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아닌가?

혹시? 하는 마음에 미다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이내 미다스가 가늘어진 눈매를 풀고, 대신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수가 된다는 설명도 없는데, 신수가 될 것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지.’

정확한 정보가 드러난 것도 아니며, 이 알이 언제 부화할지도 모르는데 김칫국 때문에 늘어날 염분섭취량과 그에 따른 혈압 변화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일.

‘아니, 상식적으로 플레이어가 신수를 2마리나 데리고 다니는 건 사기지. 갓워즈가 운빨좆망겜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아무렴. 신수가 아니라 그냥 퀘스트일 거야.’

더 나아가 미다스는 그럴 가능성 자체도 낮췄다.

‘중요한 건 이게 레전더리 스킬 카드를 준다는 거지.’

그런 애매한 것보다 더 확실한 보상에 집중했다.

“자, 이제 다시 위가의 도시로 돌아가자.”

그리고 이제 그 보상을 받기 위한 준비를 했다.

‘크으, 전설이 하나 더 추가되는구나!’

전설을 받을 준비를.

11.

갓워즈에서 플레이어들은 사냥터마다 저마다의 구역을 만든다.

대개 그러한 구역은 이미 만들어진 길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위가의 도시 북쪽에 위치한 늪지대 필드도 마찬가지였다.

늪지대에 길이 있는 건 아니었다.

대신 다른 곳보다 늪의 깊이가 얕은 곳이 존재했고, 플레이어들은 그 루트를 길로 표현했다.

당연히 위가의 도시로 돌아가는 플레이어들 대부분은 그러한 길을 이용했다.

롤라.

그가 BJ대마도사가 등장했다는 제보를 듣는 순간 부캐릭터인 레일이란 캐릭터로 접속한 다음에 그 길목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찾았다.’

그런 그의 예상대로 BJ대마도사가 보였다.

구분은 어렵지 않았다.

‘신수 그리고……'

갓워즈에서 신수, 그것도 늑대 신수를 데리고 다니는 플레이어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니까.

‘설마 가디언인가?’

하물며 그 신수에 가디언까지 데리고 다니는 인물이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BJ대마도사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을 터.

‘돈이 진짜 썩어 넘치는 모양이군.’

그 사실을 확인한 레일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디언 스킬이 레전더리 스킬이며, 스킬 카드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일은 이번 사냥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도리어 BJ대마도사의 저 모습은 레일에게 확신을 주었다.

‘2만 달러짜리다워.’

어비스 길드의 매니저가 자신을 찾아와서 …의뢰를 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확신.

그리고 확신은 하나 더 있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용돈벌이를 하는군.’

자신이 BJ대마도사를 사냥할 수 있으리란 확신.

그 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하려는 듯이 레일이 자신의 손에 든 고목으로 만든 듯한 조잡한 활을 바라보았다.

[위가의 활]

- 등급 : 레전더리

- 착용 가능 레벨 : 40레벨 이상

- 위가, 그가 이끄는 공방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활이다.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극히 적은 수량만이 생산된다.

- 공격력 : 63

- 근력 +36

- 모든 원거리 공격력 15퍼센트 증가

- 대상 공격 시 다음 공격이 대상을 추격한다.

위가의 활.

확신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이템.

‘빨리 끝내주지.’

그 아이템을 손에 쥔 레일이 그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는 120미터, 그 거리 너머에 있는 BJ대마도사를 향해 당긴 활시위를 놓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