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18화. 가디언 (3). >
10.
갓워즈에서 플레이어들은 튜토리얼 모드를 통해 갓워즈란 게임이 매우 골 때리는 게임임을 깨닫는다.
이후 시작의 마을과 비린내 나는 숲을 지나, 도리도 광산에 이르러선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이제 게임에 좀 적응한 것 같아.”
이제는 어디 가서 갓워즈란 게임 좀 한다고 넌지시 자랑 정도는 해도 될 거 같다고.
그럴 만했다.
도리도 광산을 졸업할 때쯤 되면 플레이어들은 최소 5개의 스킬을 습득하고 있으며, 아이템 역시 충분히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 경험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수틀리면 튀면 되지.”
갓워즈에서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 게임 오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습득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신감이.
“……라고 생각한 플레이어들이 여기서 깨닫게 되지.”
그러한 자신감은 50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을 위한 사냥터, 늪지대에서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이 게임은 쓰레기 게임이라는 것을 말이야.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거든.”
앞서 말했던 도망칠 수 있다, 뒤로 물러나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자신감이 통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이유였다.
“씨발, 진짜!”
“아오, 진짜!”
“에이, 진짜!”
그 범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늪지대, 그곳 곳곳에서 플레이어들의 악에 받친 소리들이 나오는 이유.
보통은 발목, 때로는 무릎을 넘어 골반까지 빠지는 늪은 플레이어들에게 제대로 된 움직임을 용납지 않았다.
샤아!
반면 그 늪을 주무대로 삼는 리자드맨들은 플레이어들보다는 훨씬 능숙하게 늪을 이동했다.
도주가 허락되지 않는 무대.
“차라리 저주받은 숲이 낫겠어!”
오로지 진흙탕 싸움만이 허락되는 그 무대는 필요에 의해서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는 저주받은 숲보다 훨씬 고약했다.
왕!
그러한 늪의 현실은 럭키에게도 유효했다.
아니, 오히려 다리 길이가 플레이어나 리자드맨보다 짧을 수밖에 없는 럭키에게 늪은 더 고역이었다.
더욱이 기동력이 주무기인 럭키에게 그 기동력을 상실했다는 건 매우 치명적인 부분이었다.
끼잉…….
제 활약을 못하는 럭키의 입에서는 기어코 앓는 소리가 나왔다.
퍼엉!
[리자드맨을 처치했습니다.]
그러나 사냥 속도는 이제까지 미다스와 럭키가 함께한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크으, 역시 사냥터는 이래야지.”
끼잉…….
“럭키야, 괜찮아. 여긴 내 밥상이야, 밥상.”
미다스, 그에게 있어서 늪지대는 정말 최고의 사냥터였으니까.
앞서 말했듯이 모든 것이 느려진다는 것은 미다스에게 있어 맞출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
“그것도 슬로우 푸드.”
동시에 적이 다가오는 시간이 느린 만큼 더 많이 맞출 수 있다는 의미였다.
퍼엉!
[리자드맨을 처치했습니다.]
거기에 미다스의 데미지 딜링은 이미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래, 이 맛에 현질하는 거지.”
40레벨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능력치.
거기에 롱토스, 발리스타, 드래곤스 아이에 용의 위엄까지, 네 종류의 스킬 어드밴티지에서 나오는 데미지 딜링은 상식, 그 이상이었다.
미다스의 스킬을 세 개 이상 견디는 경우가 없었다.
“파이어 스피어 앤 파이어볼.”
결정적으로 더블 캐스팅을 기반으로 쉴 새 없는 데미지 딜링은 리자드맨들에게 있어서 악몽과 같았다.
[파이어볼 스킬의 스킬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발리스타 스킬의 스킬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리자드맨 원킬!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엄청난 악몽.
‘벌써 원킬이야?’
미다스 입장에서도 놀랄 일이었다.
늪지대는 50레벨대 플레이어를 위한 사냥터.
그런 사냥터에서 고작 40레벨밖에 안 된 미다스가 원킬 타이틀을 얻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
[리자드맨 원킬!]
- 타이틀 설명 : 리자드맨을 한 번에 죽인 자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 타이틀 보상 : 근력 +3
자신에게 썩 도움이 되지 않는 타이틀 보상임에도 미다스가 미소를 짓는 이유였다.
그때 미다스가 목에 찬 목걸이의 팬던트가 뱀머리처럼 움직이더니, 미다스의 왼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퀘스트 장소가 있다는 의미.
‘이번 퀘스트도 낙승이겠어.’
당연히 미다스는 이번 퀘스트 진행에 대해 조금의 고민이나 근심도 품지 않았다.
‘천 마리 잡으라고 해도 기꺼이 잡아주마!’
그 자신감을 품고 미다스가 퀘스트 장소로 이동했다.
11.
“아."
짧은 탄식을 내뱉은 미다스가 스윽, 자신의 팔을 뒤엉킨 두 나무 사이, 문처럼 보이는 그곳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미다스의 눈앞에 정보가 떴다.
[리자드맨의 둥지(히든)]
- 던전 등급 : Main Scnerio
- 던전 입장 가능 레벨 : 60레벨 이하 입장 가능
- 리자드맨의 둥지이다. 아주 많은 숫자의 리자드맨이 똬리를 틀고 침입자를 경계하고 있다. 안에 있는 모든 리자드맨을 처치해야 한다.
- 저주받은 목걸이를 가진 자들만 입장 가능
메인 시나리오를 가진 자만이 진행할 수 있는 히든 필드 던전.
이 자체로는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이 퀘스트를 진행함에 있어 외부의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 아닌가?
미다스 역시 처음 이것을 보는 순간 쾌재를 외쳤다.
!현재 남아있는 리자드맨 : 1,998마리
그러나 그 아래 존재하는 이 숫자가 미다스를 지금 멍한 표정을 짓게 했다.
“씨발.”
결국 미다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
‘혼자서 어떻게 2천 마리를 잡아!’
2천 마리.
그냥 잡으라고 하면 못 잡을 숫자는 아니었다.
문제는 환경이었다.
이 히든 필드 던전은 필시 제한된 공간일 것이다. 공간 안에 들어가는 순간 리자드맨 무리에 포위 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잡다가 도중에 강제 로그아웃 당하지!’
더욱이 5시간 내에 전부 잡을 수 없다면 도중에 강제로 로그아웃이 될 터.
그 후에 다시 접속했을 때 바로 지척에 리자드맨이 있다면?
그것 외에도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했으며, 그 변수 대부분은 플레이어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아, 젠장…… 누가 봐도 파티 플레이용이잖아……'
물론 파티 플레이로 한다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상식이었다.
이 게임을 만들었을 때 퀘스트 난이도 기준을 솔로 플레이로 삼지는 않았을 터.
결정적으로 이번 퀘스트는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를 공략하는 건 미다스, 그 혼자뿐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퀘스트 진행을 포기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진짜 씨발.”
그게 미다스가 이토록 이를 가는 이유였다.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것.
“럭키야.”
왕!
“일단 가디언부터 뽑자.”
왕!
그것을 위해 미다스가 움직였다.
12.
맨몸의 리자드맨과 달리 어느 정도 무장을 한 리자드 워리어.
퍼엉!
그러한 리자드 워리어의 얼굴 정면을 향해 날아온 불덩이가 거대한 폭발음을 냈다.
그 한 번의 공격에 리자드 워리어의 얼굴이 새카맣게 타올랐다.
그러나 비명은 없었다.
[리자드 워리어를 처치했습니다.]
리자드 워리어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철퍼덕!
늪이 그렇게 쓰러진 리자드 워리어의 몸을 천천히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미다스와 럭키가 등장한 건 그러한 리자드 워리어의 몸이 간신히 보일 정도로 잠긴 후였다.
미다스가 그 상태에서 리자드 워리어의 시체를 바라봤다.
이제는 마네킹처럼 본래의 색을 잃은 무미건조해진 리자드 워리어의 시체.
아이템 루팅, 그것 외에는 딱히 할 게 없는 시체.
“가디언 소환.”
그러한 시체 앞에서 미다스는 남들과 다른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곧바로 알림이 들렸다.
[리자드 워리어를 가디언으로 삼으시겠습니까?]
“예."
짤막한 대화가 끝나는 순간 늪에 파묻혔던 리자드 워리어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네킹처럼 무미건조했던 무채색 피부 위로 다시 본래의 피부색인 초록색과 하얀색이 감돌기 시작했으며, 상처 입은 부위는 빠르게 수복되며 모습을 갖추었다.
푸홧!
이윽고 힘차게 몸을 일으킨 리자드 워리어의 모습에는 시체의 흔적 따윈 보이지 않았다.
단 하나, 눈동자만은 달랐다.
번쩍!
리자드 워리어라기보다는 용의 눈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황금빛 눈동자가 말해주었다.
이 존재가 그냥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라 미다스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칠 가디언이라는 것을.
“주인님.”
그렇게 등장한 가디언이 미다스 앞에서 무릎 한쪽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밑바닥이 늪이란 사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당신께서 주신 새로운 육체를 빌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충성심을 내뱉는 가디언의 모습에 미다스는 감격, 그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왕!
그때 럭키가 질 수 없다는 듯이 가디언 옆에서 똑바로 앉은 채 미다스를 향해 외쳤다.
서로의 충성심을 대결하는 듯한 모습.
그 모습에 미다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충성을 받……"
그때였다.
"응?"
미다스가 말문이 잊은 채 가디언을 바라봤다.
‘얘는 NPC도 아닌 놈이 왜 머리 위에 물음표가 있는 거지?’
미다스, 그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13.
가디언.
모든 마법사 클래스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대마도사, 그 대마도사 클래스만이 배울 수 있는 스킬.
스킬 자체도 멋진 스킬이었다.
드래곤이 레어를 지키는 가디언을 삼듯이, 플레이어가 자신을 지키는 존재를 소환하다!
“가디언 소환? 뭐, 나쁘 스킬은 아닌데……"
그러나 막상 이 가디언 스킬에 대한 인지도는 높을지언정 인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인지도마저도 아즈모란 기상천외한 플레이어가 대부분 만든 것이지, 그를 제외한 대마도사 플레이어 중에 가디언 스킬을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야 돈 쓰면 좋긴 한데……"
투자를 하면 쓸모는 있다.
“그 돈이면 씨발……"
하지만 그 돈으로 다른 스킬을 구매하거나 투자를 하면 더 강했다.
너무나도 분명한 이유였다.
혹여 가디언 스킬을 운 좋게 습득하더라도 그 스킬을 제대로 활용하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리고 대마도사 클래스 가진 애들이 뭐하러 쓸모없는 스킬에 집착하겠어.”
대마도사란 직업은 그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길드나 파티 내에서 왕족 취급을 받는 직업이었으니까.
탱커는 물론 플레이어가 자신을 곁에서 지켜주는 가디언을 기꺼이 자처해주는 직업이었으니까.
그들에게 가디언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딱히 의미는 없는 존재인 셈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몰랐다.
![충성심의 발현]
!33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몬스터를 상대로 주인을 지켜낼 경우 충성도 8급으로 상승
!충성도 8급으로 상승 시 능력치 강화 및 전투 능력 향상
!충성도 8급으로 상승 시 보다 친밀한 대화 가능
가디언, 그들이 일반 스킬과 다르게 충성도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니, 이런 시스템 자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정령사들의 친화력 같은 건가?’
마법사 클래스 중 하나인 정령술사들의 경우에는 정령술을 습득한 이후 정령과의 친화력에 따라 추가 데미지나 특수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마법사 클래스는 아니지만 드루이드 클래스의 경우에도 테이밍을 한 대상과의 친밀도를 통해 보다 높은 능력치나 새로운 스킬을 개발하는 경우가 있었다.
가디언이란 스킬에 충성도가 있으며 그 시스템을 통해 보다 강해지는 것도 이상할 건 없는 셈.
‘그보다 33분 동안 몬스터로부터 주인을 지켜내라…… 그것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이제까지 단 한 명도 알아내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아즈모라면 절대 하지 못할 조건이네.’
33분 동안 몬스터로부터 주인을 지켜내는 것부터가 사실 굉장히 골치 아픈 조건이었다.
이 조건은 다르게 해석하면 33분 동안 상대하는 몬스터가 생존해야 한다는 의미.
아즈모처럼 압도적인 화력으로 몬스터를 분 단위가 아니라 초 단위로 제거하는 플레이어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비단 아즈모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대마도사 클래스 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33분이나 상대하는 경우는 없었다.
사실상 보스 몬스터를 염두에 둔 셈.
‘한 자리에 있는 것도 쉽지 않지.’
하물며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추가 조건마저 붙어 있었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한 자리를 고수한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원거리 딜러들은 때때로 게임 오버 리스크를 감수하고 제 자리를 고수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대마도사 같은 고귀하신 양반들은 무조건 안전빵으로 가야하니까.’
그러나 대마도사는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서 핵심 전력으로 취급받는 만큼 리스크 상황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이동, 배치되고는 했다.
결정적으로 대마도사 클래스 자체가 지극히 희귀했으며, 개중에서 가디언 스킬을 적극적으로 쓰는 이는 더더욱 적었다.
물론 이런 게 있다는 걸 알면 다들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사실을 아는 플레이어는 갓워즈, 그 무수히 많은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단 한 명 뿐.
‘오케이.’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미다스는 더 이상 추가적인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골드야, 첫 전투다.”
미다스가 가디언을 불렀고, 그 부름에 가디언이 다가와 물었다.
“주인님 , 그것이 제 이름입니까?”
“그래, 가디언답게 아주 굳세라는 의미에서 금강불괴. 줄여서 금괴, 영어로 골드. 어때 좋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작명.
그 작명에 가디언이 대답했다.
“받기에 숭고할 정도로 멋진 이름에 그저 감격할 따릅니다. 주인님의 성은에 온몸을 받쳐 보답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확고부동한 충성심을 발휘하는 골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