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대마도사-47화 (47/485)
  • 47화.  < 15화. 도리도 광산 (2). >

    5.

    ‘입금됐다.’

    자신의 계좌에 입금된 금액을 확인한 정현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진짜 입금됐어!’

    솔직히 의심은 남아 있었다.

    라이징 스타 채널이 계약을 파기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들이 괜히 이상한 트집을 잡아서 돈을 안 줄지도 모른다는 의심.

    실제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바닥이기도 했다.

    눈앞에 돈이, 자신이 당장에라도 빳빳한 지폐로 인출할 수 있는 돈이 찍히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바닥.

    눈앞의 액수는 그런 의심을 말끔히 씻어내 주었다.

    ‘그런데……'

    그러나 그런 액수를 확인했음에도 정현우의 표정은 여전히 썩 좋지 못했다.

    [조만간 확실하게 답변 드리겠습니다.]

    약속된 액수 입금과 함께 라이징 스타 채널이 보낸 이메일 속 문구가 원인이었다.

    사실 딱히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 문구였다.

    흔히 쓰는 상투적인 문구였으니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건가?’

    하지만 정현우가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는 아니지 않은가?

    밑바닥이긴 하지만 나름 이 바닥에서 구를 만큼 구른 고인물이지.

    당연히 정현우는 이 문구가 그냥 상투적인 문구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확실한 건 내 수준이 라이징 스타채널 입장에서 쌍수를 들고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겠지.’

    모든 바닥이 그렇다.

    확실한 것에는 베팅을 아끼지 않는다.

    야구판만 해도 그랬다.

    150짜리 공을 쉽게 던지는 고졸 투수를 영입할 때 간을 보면서 밀고 당기는 짓을 하는 구단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딴 곳으로 갈까봐 있지도 않은 공수표를 남발하는 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지.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다.

    만약 라이징 채널 기준에서 BJ대마도사에게 크게 베팅할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그들은 이런 두루뭉술한 표현 따윈 결코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특별한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특별함이 부족하다는 것은 정현우, 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없기에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도리도 광산에서 한 번 더 제대로 어필을 해야 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추락을 하더라도 최후까지 발악을 할 셈이었다.

    “현우 형! 준비 다 됐어요!”

    그런 정현우에게 이혁주가 발악을 할 때가 왔음을 알려줬다.

    6.

    도리도 광산.

    위가의 도시에서 남쪽으로 제법 먼 곳에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광산으로 그 크기가 여의도 2배 크기로 스케일이 남달랐다.

    더불어 사냥 방식 역시 이제까지 사냥터와는 조금 달랐다.

    “여긴 어려울 거 없어. 돌아다니다 보면 광산 던전이 발견되는데, 그 안을 들어가면 돼.”

    광산 곳곳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구멍, 광산 던전에 들어가서 공략을 마치는 것.

    “괜히 필드에서 몬스터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지.”

    즉, 인스턴스 던전이었다.

    “등장하는 몬스터는 광부 코볼트와 전사 코볼트 그리고 희귀 몬스터로 개두더쥐가 등장하지. 오크에 비해서 딱히 난이도가 높은 놈들은 아니야. 오히려 고블린 강화판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난이도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갓워즈를 하는 플레이어들이 비린내 나는 숲에서 최대한 레벨을 올린 후에 저주받은 숲을 건너뛰고 도리도 광산으로 바로 넘어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적어도 레벨과 아이템을 평균 수준으로 맞춘 이들이라면 각 던전마다 요구하는 머릿수만큼 맞춰서 들어갈 경우 큰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물론 여기서 진짜 제대로 레벨업을 하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문제는 보통, 그 이상을 노리는 경우였다.

    앞서 말했듯이 도리도 광산에서 등장하는 던전에는 저마다 입장 제한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6인 파티가 5인 던전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6인 이상이 있는 던전을 찾고자 할까, 아니면 실력이 떨어지는 이를 배제할까?

    만약 3인 입장 가능한 던전이라면?

    그런 이유로 진짜 위를 노리는 플레이어들은 도리도 광산을 기점으로 옥석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때 결국 옥이 되지 못했지.’

    미다스도 그랬다.

    예전 캐릭터를 키울 당시 그는 도리도 광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실력이 꽤 좋은 플레이어들과 파티 플레이를 했었다.

    저주받은 숲부터 무언가 그들과 실력 차이가 났음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미다스는 그들과 같이 뛰었다.

    그러나 도리도 광산에서 결국 배제됐다.

    실력이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뛰어나다고 할 순 없었을뿐더러, 그러한 실력을 커버할 만큼 아이템 세팅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운이 좋아 대마도사 같은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그것이 결국 더 큰 차이를 벌렸다.

    실력 있는 이들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더 빠르게 성장하는 법이고, 반대로 실력 없는 이들은 서로 발목을 잡으며 더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법이기에.

    ‘뭐,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지만.’

    물론 지금은 달랐다.

    저주받은 숲에서도 솔로 플레잉을 했던 미다스 아닌가?

    그런 그의 현재 전투력으로는 도리도 광산, 그 어느 던전도 문제가 없는 상황.

    더군다나 지금 그의 전력 상태는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상황이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템도 있고.’

    사할린의 지팡이!

    이미 데미지 딜링을 확인한 미다스는 솔직히 말해서 도리도 광산에서 사냥에 딱히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즈가를 찾는 건데……'

    그가 고민하는 것은 퀘스트 진행을 하는 것.

    그런 그에게 주어진 퀘스트 난이도는 결코 낮은 게 아니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이제까지 했던 그 어떤 퀘스트보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할지도 모르는 퀘스트였다.

    여의도 2배 크기의 도리도 광산, 그곳에서 등장하는 광산 던전의 숫자는 가늠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한 것을 일일이 탐색하면서 그 안에서 즈가라는 NPC를 찾아라?

    모래사장에서 루비 하나를 찾는 것과 비슷한 일.

    아득한 작업이었다.

    다른 이들이 이 퀘스트를 받았다면 장담컨대 도리도 광산이 아니라 알파 컴퍼니 본사를 먼저 방문했을 정도로 아득한 작업.

    '아.'

    물론 미다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럭키야, 저기다."

    왕!

    미다스에게는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으니까.

    도리도 광산의 인스턴스 던전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었다.

    하나, 입장 가능 인원을 통해 난이도 예측이 가능했다.

    둘, 외부 요인에 따른 변수 개입 여지가 적었다.

    셋, 광산이라는 장소에 대한 대처법만 안다면 쉽게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문제는 당연히 세 번째 요소였다.

    의외로 광산 같은 동굴 타입의 던전에서 싸우는 것은 방법을 모르면 골치 아픈 일이었다.

    탱커가 오는 몬스터를 막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 상태에서 공격을 하고자 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탓이었다.

    “야! 빨리 뎀딜 좀 해!”

    “잠깐!"

    “잠깐은 무슨 잠깐이야! 빨리 처리하라니까! 이거 막는 거 빡세다고!”

    “네가 길을 막고 있잖아!”

    “뭐?"

    탱커 너머에 있는 몬스터들을 맞추는 건, 그 작업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인 법.

    여기서 능숙한 탱커들은 자기 역량을 발휘해서 공간을 만들고는 했다.

    그리고 능숙한 딜러들은 그 적은 틈도 정확히 노리면서 공격을 하고는 했다.

    물론 미다스의 경우에는 달랐다.

    왕!

    럭키, 그 어떤 탱커보다 훌륭하게 어그로를 끌어주면서도 자그마한 몸뚱이를 가진 녀석은 주인에게 너무나도 좋은 무대를 마련해주었으니까.

    “라이트닝 볼트!”

    그리고 그 기회를 미다스는 완벽하게 이용했다.

    파직!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마주한 몬스터들의 황금빛 과녁에 마법을 꽃아 넣었다.

    [코볼트 광부를 처치했습니다.]

    그러한 미다스와 럭키의 사냥 속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이거 뭐 그림이 나오고 자시고도 없네. 누가 봐도 그냥 템빨로 날먹하는 그림이지."

    플레이어의 실력 따위가 개입할 여지조차 없을 정도.

    왕!

    “그래, 아주 좋은 거지.”

    미다스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었다.

    이게 미다스가 예전부터 바라던 이상적인 그림 아니었던가?

    ‘어차피 내 실력 따위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어? 차라리 어그로라도 끄는 게 낫지.’

    그렇게 아이템 루팅을 마친 미다스가 광산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일단 즈가란 놈부터 만나자고.’

    미다스와 럭키가 다시 이동했다.

    8.

    NPC즈가와 만난 것은 미다스가 광산 던전 안에 들어오고 20여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이쿠, 이곳까지 사람이 올 줄이야.”

    곡팽이를 든 드워프 한 명이 반갑게 미다스를 맞이했다.

    “설마 날 찾아온 겐가?”

    “사할린 님이 당신을 찾아가라 하셨습니다. 저주받은 돌을 나침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즈가 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요."

    미다스는 괜한 시간 끌 것 없이 자신의 목적 전부를 친절하게 내뱉어주었다.

    “왜 나를 찾아왔는지 알겠군.”

    그런 미다스의 심중을 이해한 듯, NPC 즈가는 괜한 폼 따위를 잡고 바로 말을 이어갔다.

    “사할린, 그 노움 마법사의 더러운 성격을 생각하면 이제까지 고생이 많았겠어.”

    NPC 즈가의 말에 미다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닙니다.”

    부정했으나 그의 입가는 씰룩거리고 있었다.

    ‘이번 NPC 하고는 뭔가 통할 것 같은 느낌인데?’

    NPC 즈가가 마음에 슥 들어오는 순간.

    “아니긴, 그 더러운 성격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줬을 게 뻔하지. 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구할 수 없는 걸 구해오라고 하고, 시험을 한답시고 몬스터를 천 마리 정도 잡아 와라, 딱히 할 필요도 없는 임무 따위를 주면서 뺑뺑이를 돌렸겠지.”

    “다 뜻이 있으신 거겠죠.”

    이어진 말에 미다스가 부정하듯 손을 내저었으나, 이미 입가에는 감출 수 없을 만큼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 바쁜 모양이니 뒷담화로 괜히 자네 시간을 잡아먹지 않겠네.”

    속전속결.

    말과 함께 NPC 즈가가 자신이 목에 차고 있던 목걸이를 푼 후에 미다스에게 던져줬다.

    미다스가 그 목걸이를 잡았다.

    휘이!

    그 순간 목걸이에 달린 팬던트가 살아있는 뱀처럼 NPC 즈가를 향해 움직였다.

    “도리도 광산에서 구할 수 있는 희귀 광석, 소울 메탈로 만든 목걸이이네. 보다시피 특별한 처리를 하면 마력의 주인을 향해 반응을 하게 되지.”

    그 말에 미다스는 이번 퀘스트 내용을 바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럼 제가 그 소울 메탈을 캐오면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이번에도 재료 아이템 수집 퀘스트가 되려는 모양.

    ‘이번에도 또 노가다네.’

    미다스가 이번 퀘스트 상황에 대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필요가 없네. 채굴이야 내가 하면 될 일.”

    그러나 이어진 NPC 즈가의 말에 미다스가 반색했다.

    “네?”

    “자네는 어차피 소울 메탈을 캐낼 수도 없을 테니까.”

    그 말에 미다스가 미소를 지었다.

    “예, 제가 좀 손재주가 많이 부족하긴 합니다.”

    이 순간 미다스는 확신했다.

    ‘NPC 즈가, 마음에 든다!’

    이번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는 퍽 쉽게 풀릴 것 같다고.

    미다스의 마음에 슥 들어왔던 NPC 즈가 이제는 쏙 들어오는 순간이었고, 그 사실에 미다스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그럼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그 미소를 향해 NPC 즈가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채굴은 내가 할 테니까 자네는 광산 청소를 좀 해주게. 111개 정도만 해주게.”

    “아, 예, 당연히 해드……"

    그 순간 미다스는 깨달았다.

    “예? 몇 개요?”

    “111개. 이게 참 희귀한 광석이라서 그 정도는 해야 목걸이 하나 분량은 나오네.”

    NPC 즈가 역시 NPC ㅜ사할린과 다를 바 없음을.

    “왜? 못하겠나?”

    “……아뇨, 해야죠.”

    9.

    “111개를 청소하면, 나를 찾아오게. 방법은 간단하네. 내가 준 목걸이가 내가 있는 곳을 가리켜 줄 테니까.”

    NPC 즈가와의 그 대화를 끝으로 목걸이를 받고 밖으로 나온 미다스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111개.’

    광산 던전 111개 공략.

    ‘하나 공략하는데 보통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리니까 1시간에 3개, 그럼…… 최소 37시간인가?’

    “에이, 진짜.”

    난이도를 떠나 시간을 크게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임무 앞에서 미다스가 결국 쓴소리를 내뱉었다.

    “즈가라는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즈가는 무슨 좆까지. 아니, 그리고 차라리 그냥 깔끔하게 100개로 하지, 111개는 뭐야? 굳이 11개를 추가로 넣어야 해? 응?”

    이후 짧게 푸념을 내뱉은 미다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어쩔 수 없지.’

    제아무리 푸념을 내뱉는다고 해서 111개라는 숫자가 100개가 될 일은 없을 터.

    퀘스트 진행을 포기하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미다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광산 던전 111개를 공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차라리 좋은 기회야. 프로젝트 111이라고 하고, 압도적으로 광산 던전을 깨는 걸 보여주자고.”

    그리고 기왕이면 더 맛있는 밥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닌가?

    “광산 던전 111개 솔플! 압도적인 템빨로 광산 던전 날로 먹는 방법! 던전 공략이 제일 쉬웠어요! 던전 공략? 마법 캐스팅해서 쓰면 됩니다. 참 쉽죠?”

    미다스는 이번 기회를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 만들고자 했다.

    “럭키야, 응? 어때? 이런 컨셉 나쁘지 않지?”

    왕!

    “응? 뭐라고?”

    그 말과 함께 럭키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제야 미다스는 확인할 수 있었다.

    럭키 머리 위에 뜬 물음표를.

    "......아, 네가 캐리해줄 테니까 입 다물고 따라만 오라고?”

    왕!

    2차 진화의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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