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14화. 레벨업 (3). >
8.
[스트랭스]
- 스킬 등급 : 유니크
- 스킬 효과 : 대상의 근력을 강화시키며, 근력에 영향을 받는 모든 기술의 사거리를 늘려준다.
등장한 100장의 스킬 카드 중 유일한 유니크 스킬인 스트랭스 스킬을 보는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거 럭키한테 쓰면 좋겠는데?’
나쁠 건 없겠다.
실제로 럭키의 능력을 생각하면 스트랭스 버프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다른 99개의 스킬들을 외면하고 스트랭스를 고르는 것은 좀 그랬다.
아무리 유니크 랭크 스킬이라고 해도 딜러인 미다스가 버퍼 스킬을 가질 이유는 없었으니까.
물론 버퍼가 가능한 마법사의 몸값은 꽤 높았다.
일단 마법사 계열 버퍼와 사제 계열 버퍼는 역할이 달랐다.
힐링 능력을 가진 사제는 대부분 탱커나 근접 딜러를 따라 움직이는 반면, 마법사 버퍼들은 원거리 딜러들과 움직였다.
때문에 원거리 딜링도 가능하고 버퍼도 가능한 마법사에게는 추가 수당이 지급됐다.
그러나 지금 미다스에게 매력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차라리 공격 쪽으로……'
오히려 공격 마법 하나가 더 도움이 될 터.
‘잠깐.’
그때 미다스의 머릿속을 스친 것은 다름 아니라 스트랭스 스킬의 또 다른 효과였다.
‘이거 마법사들 사거리에도 영향 줬었지?’
스트랭스 효과 중 하나는 근력에 영향을 받는 스킬의 사거리 증가.
활이나, 투척 무기를 쓰는 원거리 딜러들이 스트랭스 스킬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재미난 건 이 범위에 마법사도 포함된다는 점이었다.
‘아니지, 오히려 마법사들이 영향받는 범위는 더 크지.’
포함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파이어볼, 아이스 애로우, 파이어 스피어, 마법사의 스킬 중 대부분은 투척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근력에도 영향을 받았다.
단지 일정 근력 이상이 되면 굳이 근력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며, 딱히 세게 던진다고 데미지가 올라가지 않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뿐.
더 나아가 사거리 자체도 큰 의미는 없었다.
롱토스 스킬이 있다면 모를까.
그러나 롱토스 스킬을 가진 마법사는 많지 않을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60미터 정도면 충분했다.
그 이상 먼 거리에서 던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었을뿐더러 던질 수 있다고 해도 명중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갔다.
3점슛 성공률이 80퍼센트인 슈터도 중앙선에서 공을 던지면 명중률이 급격히 내려가는 법 아닌가?
미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미 60미터 거리, 롱토스 효과를 최대한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충분한 명중률을 보이고 있었다.
'......사거리 얼마나 늘어나려나?’
그 거리가 70미터가 되고 80미터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파티 플레이라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솔로 플레이라면?
10미터 거리로 벌 수 있는 몇 초의 시간으로 마법 하나를 더 명중시킬 수 있다면?
하물며 미다스의 약점인 애로우, 볼트 계열의 명중률과 사거리를 높일 수 있다면?
[스킬 카드를 선택했습니다.]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미다스의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9.
보통 사냥을 할 때 플레이어들은 사냥감을 앞에 두고 주변에 다른 사냥꾼이 없는지 살폈다.
저주받은 숲이 외면 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검은 안개 탓에 몬스터를 확인해도, 그 몬스터 주변의 플레이어까지는 확인하기 힘들었으니까.
지금 오울과 그의 동료들 상태가 그러했다.
“야, 저거 혼자 맞지?”
26레벨, 3인 파티로 저주받은 숲에 들어온 그들은 외로이 서있는 좀비 오크를 바라보며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 거 같은데?”
“주변에 아무도 없어.”
“확실해?”
거듭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말투에는 근심걱정이 역력했다.
어쩔 수 없었다.
“잘 봐봐. 저번처럼 괜히 주변에 이상한 거 건드렸다가 나 뒈지는 꼴 보지 말고.”
파티의 탱커인 오울은 이미 저주받은 숲의 쓴맛을 한 번 맛본 상태였으니까.
재차 상황을 살피는 건 당연했다.
물론 언제까지 상황만을 살필 수는 없는 노릇.
“확실해. 이글 아이 스킬을 써서 주변 50미터 탐색했는데 주변에 좀비는 저거 말고 둘 뿐이고,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어. 개새끼 한 마리도 없다니까.”
파티 내 원거리 딜러인 궁수 사오루의 말에 오울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자신의 투구를 고쳐 썼다.
“후우!”
그리고 짧게 숨을 고른 오울이 자기 몸뚱이 크기의 방패를 앞세운 채 나지막한 목소리를 흘렸다.
"실드 업!"
스킬을 외치는 순간 오울의 방패 주변으로 반투명한 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등장한 반투명한 막이 오울의 몸의 반절을 가릴 듯이 커졌다.
그제야 오울이 좀비 오크를 향해 소리쳤다.
“간다!’’
그 외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퍼엉!
거대한 폭음이 고요하던 숲을 깨웠다.
크어!
그 이후 좀비 오크의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좀비 오크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우왁!”
그 광경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본 오울이 기겁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이윽고 오울이 뒤를 보며 소리쳤다.
“야! 근처에 아무도 없다면서!”
그 말에 궁수 동료가 고개를 돌린 후에 다시 한 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없어. 적어도 반경 50미터 내에는 진짜 아무도 없어.”
“그럼? 어디서 날아온 건데?”
“그야…… 50미터 밖이겠지.”
그 순간 모두가 파이어볼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10.
퍼엉!
먼 거리에서 마치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소리에 미다스는 제 오른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조금 전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았다.
‘와, 이게 맞네?’
80미터, 축구장 길이에 버금가는 거리.
공을 던져서 닿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 짝이 없는 그 거리의 표적을 맞췄다는 사실에 미다스가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스트랭스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이야.’
스트렝스가 만들어준 기적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종합적인 결과물이었다.
일단 현재 미다스의 근력 스탯이 매우 높았고, 그로 인한 스트랭스 효과도 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명중률이 만들어질 리 만무.
정확도의 비결은 다름 아니라 미다스의 눈에 있었다.
먼 곳의 적의 HP는 물론 이제는 드래곤스 아이 효과로 대상의 약점이 분명하게 보이는 상황.
던지는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맨 벽에 공을 던져서 한가운데를 맞추는 것과 한가운데 큼지막한 점을 찍은 채 던져서 맞추는 것은 전혀 다른 난이도였으니까. 물론 가장 놀란 건 이것을 시도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뭐, 보통은 이런 거 안 하지.’
80미터 거리 밖에서 맞춘다, 갓워즈에서 굳이 필요한 재주는 아니었다.
일단 성공했을 경우 메리트가 크지 않았다.
롱토스 스킬이 있다고 해도 60미터까지가 한계일 뿐이었으니까.
몬스터와의 거리가 멀어짐으로써 생기는 이점이 없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탱커의 지원 아래에서 마법을 사용했다. 안전을 위해 거리를 무리해서 벌리는 것보단 탱커를 믿고 확실하게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는 거리에서 딜링을 하는 게 정상.
이뿐만이 아니었다.
‘덕분에 아이스 애로우랑 라이트닝 볼트 명중률도 꽤 높아졌어.’
미다스의 약점이었던 활 계열 마법 스킬의 명중률 역시 사거리가 늘어났다.
‘이거 장난 아닌데?’
엄청난 일이었다.
기존 60미터였던 미다스의 사거리가 100미터로 늘어난다는 것.
꼭 드래곤스 아이 효과를 누릴 필요도 없었다.
맞출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미다스가 누릴 수 있는 데미지 딜링 폭은 압도적으로 커질 터.
스트랭스의 효과가 놀라울 따름.
크르르!
물론 이 효과로 가장 전투력이 높아진 건 럭키였다.
왕!
스트렝스 효과로 근력이 상승한 럭키 앞에서 좀비 오크는 장난감조차 되지 않았다.
럭키가 좀비 오크를 향해 몸을 날릴 때마다 좀비 오크의 몸뚱이가 주걱으로 아이스크림 파내듯 뜯겨져 나갔다.
푸홧!
이제는 럭키의 입만이 아니라, 발톱마저도 좀비 오크의 몸에 짙은 상처를 남길 정도였다.
그리고 럭키는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물어뜯고, 할퀴는 작업을 뒤섞은 채 쉴 새 없는 데미지 딜링을 넣었다.
이상한 광경은 아니었다.
럭키는 1티어 중에서도 전투로는 최고로 평가받는 펜리르를 신좌로 둔 신수.
소프트웨어 수준 자체가 달랐다.
[럭키가 좀비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호우우우!
그렇게 홀몸으로 좀비 오크를 잡아낸 럭키가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하울링을 내질렀다.
‘이러면 계산을 다시 해야겠는데?’
그 하울링을 들은 미다스는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어디 보자, 사거리 늘어나고, 럭키의 전투 능력치를 대략적으로 더하면……'
그렇게 계산을 하던 미다스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만.’
그리고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이상하다……'
그런 그는 거듭 자신의 계산에 의문을 던졌다.
어쩔 수 없었다.
‘솔로킬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그의 수준을 벗어나는 상황이 왔으니까.
11.
누더기 주술사.
저주받은 숲의 보스 몬스터인 녀석은 저주받은 숲처럼 플레이어들에게 그리 인기가 많은 녀석이 아니었다.
사냥 난이도가 높을뿐더러, 루팅 가능한 아이템이 학살자 오크에 비해 매우 값이 나가거나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누더기 주술사는 5인 이상의 파티 사냥이 기본이었으며, 보통은 7인 이상 혹은 10인 이상의 파티를 구성해 잡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머릿수대로 수입을 나누다보면 굳이 이걸 위해서 잡아야 했나? 같은 심정이 드는 게 사실.
물론 인기가 없다 뿐이지, 보스 몬스터를 그냥 놔둔다는 의미는 결단코 아니었다.
“누더기 주술사 리젠까지 얼마나 남았지?”
“얼마 안 남았을 걸?”
누더기 주술사를 잡기 위한 여러 파티들이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진짜. 보스 리젠 타임 같은 거 초 단위로 보여주면 안 되나? 유료 아이템이라도 좋으니 팔았으면 좋겠다!”
“난 그런 건 됐고, 어디 근처에서 등장하는지 알려만 줬어도 소원이 없겠다. 아니, 숲 크기를 생각하면 출몰 지점 정도는 말해줘야지!”
“그냥 이 게임은 모든 게 운빨이라니까, 운빨.”
하염없는 기다림.
그러한 하염없는 기다림 속에서 누군가가 소식을 가져왔다.
“누더기 주술사 사냥 시작됐다!”
그 소식에 몇몇 플레이어들이 소리쳤다.
“에이, 또 공 쳤네!”
“그러니까 그냥 먼저 대기 타자니까!”
또 놓쳤구나!
그러한 심정을 담은 푸념으로 어수선해진 분위기 사이로 누군가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어느 파티야?”
그 질문에 대답이 나왔다.
“파티가 아니야.”
“뭐? 무슨 개소리야?”
“솔로킬이야!”
삽시간에 어수선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12.
여러 개의 몸뚱이를 이어 붙인 듯한 큼지막한 몸뚱이 위에 달린 두 개의 머리.
끄어어!
으어어!
고블린과 오크, 각기 다른 두 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기괴한 울음을 토해내며 몸에 달린 네 개의 팔을 흐느적거리는 괴물.
누더기 주술사.
놈은 자신의 외형을 통해 자신에게 붙은 이름이 왜 누더기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보다 더 섬뜩한 것은 누더기 주술사의 등장과 함께 소환된 좀비 오크 다섯 마리와 좀비 고블린 다섯 마리였다.
으어어!
으아아!
마치 울타리를 만들 듯 누더기 주술사의 주변을 가득 채운 놈들은 사냥을 준비하는 이들의 도전조차도 쉬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득한 것은 그 형태가 검은 안개들 탓에 어렴풋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할까?
그러한 고민에 대한 답을 쉬이 용납지 않는 광경.
“오케이.”
물론 미다스에게는 검은 안개 따위는 조금의 방해도 되지 않았다.
방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시커멓게 물든 세상은 그만이 볼 수 있는 숫자와 데이터들 그리고 황금빛 과녁을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실내 사격장에서 모든 불을 꺼주고 자신의 사격지에만 스포트라이트를 켜준 듯했다.
자신감이 샘솟는 게 당연지사.
‘주변 몬스터는 정리했다.’
물론 일찌감치 이 근처 좀비들을 처치함으로써 무대를 만들었다는 사실 역시 자존심이 샘솟는 이유였다.
‘잡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넘치는 자신감은 이번 사냥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그렇기에 미다스는 한 발자국 더 갔다.
‘어떻게 잡느냐, 그게 문제이지.’
결과가 뛰어나다면 그다음에는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법.
‘여기서는 강하게 나가야지.’
그 사실을 미다스는 프로의 무대에서 경험해 보았다.
똑같이 아웃카운트를 잡더라도 그냥 땅볼로 아웃카운트를 잡는 이와 삼구삼진, 그 마지막 공을 150짜리 직구를 던져 잡는 이에 대한 환호성은 전혀 달랐으니까.
몸값 역시 전혀 달랐다.
‘여기서 내 상품 가치를 증명해야 해.’
그렇기에 미다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BJ대마도사입니다. 오늘 저는 누더기 주술사 솔로킬을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솔직히 저거 잡을 생각은 없었는데요, 라이징 스타 채널에서 제게 의뢰를 하더군요.”
왕?
말을 뱉기 시작하던 미다스가 이내 럭키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액수라고 해봤자, 제가 키우는 강아지들 사료값 수준이지만 그래도 억지로 쥐어짜낸 게 정중함과 간절함이 묻어나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죠. 이렇게 정중하게 부탁하는데 들어줘야겠다고.”
왕!
럭키가 호응하듯 짖었고, 그 호응에 미다스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사고 싶은 자동차를 다음 달에 사기로 하고 아이템 쇼핑 좀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레전더리로 도배하고 싶었는데 매물도 없고, 솔직히 조만간 또 레벨 오를 텐데, 팔고 사고 귀찮잖아요?”
누가 보더라도 돈이 넘쳐 주체를 못하는 자 같은 연기를 했다.
말 그대로 연기였다.
그가 있는 세상은 예의 바른 샌님보다 빌어먹을 개새끼가 더 인기를 끄는 무대였으니까.
자극이 무엇보다 중요한 무대였으니까.
“자, 그럼 누더기 주술사 솔로킬을 시작하겠습니다.”
당연히 미다스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참고로 솔로킬 과정에서 단 한 대도 안 맞고 잡아보겠습니다.”
왕!
“응? 뭐라고요? 한 대라도 맞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왕!
“맞는 순간 그 자리에서 벤츠 경품 걸고 추첨 해드립니다. 물론 옵션은 풀옵션으로요. 전 옵션 없는 차는 차로 취급 안 합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공수표를 던진 미다스가 전투를 알리는 소리를 내질렀다.
“파이어볼 앤 파이어 스피어!”
호우우우!
쇼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