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13화. 1+1 (1). >
1.
“으으!"
건장한 체격에 짙은 수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40대 초반의 사내.
“괜찮으십니까?”
그 사내가 자신을 향한 걱정 어린 소리에 조금씩 눈을 뜨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으으......"
그러나 앓는 소리만 짙어질 뿐, 눈을 뜨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여긴 위험합니다. 정신 차리세요. 빨리! 빨리!”
거듭 사내를 향해 내뱉는 걱정 어린 목소리의 톤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아주 그냥 죽……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일어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어, 같은 협박처럼 들릴 정도.
기어코 사내, NPC요시는 눈을 떴다.
“다, 당신은?”
눈을 뜨는 순간 가장 먼저 그는 자신을 구해준 이의 정체를 물었다.
“저는 미다스입니다.”
상대가 곧바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곳은 좀비로 가득한 저주받은 숲이며, 저는 위가의 도시에서 온 모험가입니다.”
아주 친절하게.
“쓰러진 당신을 이곳에서 발견했으며, 현재 긴급한 상황입니다. 만약 놓고 오신 물건이 있거나 혹은 제게 하실 부탁이 있으시면 기꺼이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너무나도 친절해서 딱히 더 이상 추가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 친절함에 감동한 것일까?
NPC요시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줘서 고맙소. 내 이름은 요시라고 하오.”
그리고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주었다.
“저주받은 숲을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갑자기 좀비들의 습격을 받아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소.”
구구절절, 자신의 현재 처량한 처지를 설명했다.
허나, 그 말을 듣는 이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럭키야, 다른 거 없어?”
왕!
“없다고?”
왕!
아니, 무덤덤한 수준을 넘어 말을 하는데 그 앞에서 다른 짓을 할 정도.
그 사실에 NPC요시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해서 부탁이 있소.”
그리고 이제 부탁을 했다.
“구해준 것도 고마운데, 이러한 부탁을 해서 염치가 없지만 연구를 위해 모든 자료를 잃은 지금 부탁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소. 좀비들이 가지고 있는 저주받은 흔적 100개를 구해주시겠소?”
정말 문자 그대로 염치없는 부탁.
그러나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왕!
2.
[요시의 부탁(히든)]
- 퀘스트 랭크 : 유니크
- 퀘스트 레벨 : 39레벨 이하
- 퀘스트 내용 : 저주받은 숲을 연구하는 연구자 요시의 연구를 위한 저주받은 흔적 100개를 구해 다 주자. 저주받은 흔적은 좀비를 사냥할 경우 높은 확률로 얻을 수 있다.
- 퀘스트 보상 : 스킬 카드북(유니크)
퀘스트 내용을 살펴본 미다스는 미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지.”
어차피 좀비 1천 마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온 퀘스트는 그의 말처럼 일거양득이었으니까.
“럭키야, 잘했어.”
왕!
미다스가 럭키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니지, 이제부터 럭키님으로 모셔야지. 럭키님 정말 잘하셨습니다!”
왕!
이제는 칭찬이 아니라 아부를 할 정도.
‘진짜 럭키님이라니까.’
그러나 그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번 소득은 엄청났다.
앞서 말했듯이 시장에 나오는 스킬 카드 중 대부분은 무작위로 등장하는 NPC를 통한 히든 퀘스트 보상들이었다.
즉, 이 퀘스트를 통해 얻는 스킬 카드는 거래가 가능한 물건이었다.
더불어 스킬 카드는 기본 시세 자체는 무기나, 방어구와 비교가 불가했다.
‘1티어급만 나오면 1만 골드…… 대충 천만 원.’
그 종류에 따라서는 1만 골드, 한화로 약 1천만 원이 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꿀꺽!
침이 넘어갈 일이었다.
‘천만 넘는 돈 한 번에 만져보는 건 계약금 받을 때 이후 처음인 거 같은데?’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한 번에 받아보는 것 역시 그가 프로야구구단과 계약하며 계약금으로 3천만 원을 받을 때, 그 이후 처음이었다.
정말 이제는 아득하기까지 한 추억.
달리 말하면 미다스는 이 기회를 자신이 누릴 생각이 없었다.
‘진짜 쩔긴 쩌네. 이런 목돈도 만지게 되고.’
솔직히 당장 어느 정도 생활비가 마련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활비에 불과했다.
보다 안정적으로 게임을 위해선 어느 정도의 목돈이 필요한 것이 현실.
물론 이에 대한 고민은 당장 보상을 얻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럭키님, 그럼 이제는 다시 사냥을 하겠습니다.”
왕!
미다스, 그가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3.
저주받은 숲.
“젠장, 튀어!”
“빌어먹을 좀비 새끼들! 그냥 잡는 게 어때?”
검은 안개 탓에 잘 보이지 않는 그 숲 곳곳에서 플레이어들의 악에 받친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잡기는 개뿔! 그냥! 도망쳐! 피하는 게 우선이야!”
“하지만 계속 도망만 치고 있잖아?”
“뒈져서 80시간 날리는 것보단 도망치는 게 낫잖아!”
갑자기 좀비들에게 포위당한 이들이 사냥이 아닌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변한 소리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플레이어들이 도망치느라 바쁜 건 아니었다.
세상 어디에나 그렇지만, 내가 못하는 걸 아주 우습게 해치우는 이들은 존재하는 법.
넘치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오히려 아주 빠르게 사냥을 마치는 파티들도 있었다.
“오케이, 잡았다!”
“앞에 하나 더 온다!”
“그럼 하나 더 잡지 뭐!”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역시 돈지랄한 보람이 있네. 좀비 새끼들이 녹네, 녹아.”
“내가 왜 스킬을 구매했는지 알겠지?”
좋은 실력 그리고 좋은 아이템, 그 두 가지보다 더 확실한 비결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역시 루이스 님! 사냥 실력이 차원이 다르시네요!”
“당연하지! 본캐 레벨이 150레벨이 넘어가시는 분인데! 우리랑 수준 자체가 다르시다고!”
경력.
때로는 아이템과 스킬마저 뛰어넘는 비결이었다.
지금 미다스가 전부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좀비들은 플레이어들을 쫓는 와중에 뭉치며, 그렇게 뭉친 지역은 상대적으로 리젠되는 숫자가 적어지지. 한 번에 등장할 수 있는 몬스터의 개체 수는 조절되니까. 그러니 오히려 좀비가 뭉쳐 있는 지역이 하나씩 잡기엔 제격이다.’
미다스 역시 저주받은 숲을 공략한 경험이 있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게임을 시작했을 때, 갓워즈 초창기에는 고수 소리를 듣던 미다스다.
그런 그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갓워즈 초반에 기울인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불어 좀비 오크와 좀비 고블린의 대상 인식 범위는 35.4미터, 그 거리 밖에서 공격하면 유인이 가능하다…… 이거 하나 얻으려고 진짜 말도 안 되는 짓을 몇 번이나 했지.’
당시에는 경쟁이 치열한 탓에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직접 제 스스로 얻었어야 했었으니까.
‘재능 있는 놈들은 이딴 짓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미다스 본인이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된 무대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은 이렇게까지 분석하고, 노력했음에도 그저 타고난 실력을 갖춘 이들을 따라갈 수 없음을 느꼈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들처럼 싸울 수 있었다.
‘어차피 좀비의 이동 속도는 별거 아니다. 굳이 빨리 맞추려고 할 필요는 없다. 한 발, 한 발.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 딜 속도를 높이는 게 아니라 딜 로스를 줄이는 게 핵심이야.’
그럼에도 미다스는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
페이스를 올리지 않은 채, 확실하게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 공격했고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그는 위기를 타개하는데 시간을 소모하는 것보다 그냥 위기에 빠지지 않는 게 남는 장사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그게 진용 코치님 가르침이었지.’
그것도 하루이틀, 그저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었다.
아주 오랜 시절부터, 많은 이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몸으로 체득한 것들이었지.
그게 이유였다.
[좀비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미다스, 그의 남다른 사냥 속도를 보이며 빠르게 좀비들의 개체 수를 줄여나가는 이유.
‘좋아, 이제 200마리 잡았다.’
드디어 미다스가 200마리 고지, 이부능선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일단 1차 목표치 달성.’
여기서 미다스는 한 번 쉼표를 찍고자 했다.
“럭키야, 수고했다.”
왕!
“이제 조금만 쉬고 올게.”
장시간 게임을 위해서 한 번쯤 로그아웃을 하고 환기의 시간을 가져볼 속셈.
끼잉.......
그런 주인의 모습에 럭키가 가지 말라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미다스가 럭키의 턱밑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가서 밥 좀 먹고, 카페인 좀 충전하고, 당 좀 충전하고 올 거야. 오래 안 걸려."
그 말에도 럭키는 이렇다 할 대답 대신 머리를 푹 숙였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아주 깊게.
그 모습에 미다스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럭키야, 미안해. 금방 올게.”
그러자 럭키가 미다스에게 가지 말라는 듯이 대답했다.
왕왕!
<주인님, 저기서 사람 냄새가 나요!>
“……아이고, 럭키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존댓말을 하는 걸 까먹었었네요.”
미다스의 발목을 완벽하게 잡는 말이었다.
4.
“위가의 도시로 찾아오시오. 그리하면 내 보상하겠소.”
그 말과 함께 가죽 갑옷을 입은 궁수가 잽싸게 검은 안개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NPC의 흔적을 바라보던 미다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재크의 부탁]
- 퀘스트 랭크 : 레어
- 퀘스트 레벨 : 35레벨 이하
- 퀘스트 내용 : 위가의 도시의 병사 재크가 당신에게 좀비 100마리 사냥을 요구했다. 좀비 100마리를 사냥한 뒤 재크를 찾아가자.
- 퀘스트 보상 : 스킬 카드북(레어)
그러자 새로운 퀘스트가 그를 반겼다.
“어이가 없네.”
그런 미다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퀘스트를 이렇게 2개나 받는 게 말이 돼?’
길 가다가 돈을 주우면 분명 신기하지만 기쁜 일이다.
미다스 같은 인간이라면 잽싸게 그 돈을 주머니에 넣고 누가 자신을 부르기 전에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가기 바쁠 정도로 기쁜 일.
그러나 만약 돈을 두 번 주우면?
‘저주받은 숲이 아무리 버림받았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혹시 누군가 돈을 흘린 게 아닐까?
그런 종류의 의심.
‘탐험가 길드가 노는 것도 아닐 텐데?’
더욱이 저주받은 숲에도 탐험가 라인이 있었으며, 그 라인을 관리하는 탐험가 길드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탐험가 길드의 또 다른 역할 중 하나가 보스 몬스터 사냥, 히든 던전 발견, 히든 퀘스트 발견이었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탄생한 탐험가 길드가 그런 알토란 같은 수익 아이템을 놔둘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탐험가 길드 애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 구조 요청 서비스 정도만 했지.’
그렇게 시작된 의심이 미다스의 시선을 바꾸게 해주었다.
‘확실해. 분명 저주받은 숲을 관리하는 탐험가 길드의 인력에 공백이 생긴 거야.’
물론 무언가 대단하게 바뀌거나 그러는 건 아니었다.
‘개꿀 타임이네.’
정말 지금 이곳에 탐험가 길드 애들의 인력 공백이 있다면, 그건 미다스에게 있어 기회라는 것.
“럭키야.”
왕!
“좀만 더 게임할까?”
그리고 지금 고작 한 시간 정도 더 게임을 하기 위해 이 기회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것.
왕!
그러한 미다스의 말에 럭키가 전심전력을 다해 우렁차게 소리를 내질렀고, 그 소리에 미다스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지팡이를 쥐었다.
“그래, 럭키야, 가즈아!”
5.
비린내 나는 숲에 위치한 쉼터.
언제나 플레이어들이 모이는 그들이 주로 하는 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솔로킬 영상 봤어?”
“뭐? 오크 학살자?”
“응.”
“템빨에 신수빨에 스킬빨, 3빨 지리더라.”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그래도 맞추기는 잘 맞췄잖아? 그 거리에서 그렇게 맞추는 거 쉬운 건 아닌데.”
“그런 건 연습좀 하면 되는 거지. 그 정도 템이면 실수해도 무슨 대수가 있겠어? 또 맞추면 되는데. 운이 좋았던 거야. 그러고 보니 운빨도 추가해야 하네.”
“그건 됐고 대체 걔 정체가 뭐야?”
“BJ대마도사라든데?”
“아니, 이름 말고. 현실 정체 말이야. 신수도 그렇고, 데미지 딜링도 그렇고 보통 놈은 아니잖아?”
“한국 재벌 회장 아들이라는 말이 있어.”
“아즈모가 키우는 포스트 아즈모라든데?”
“그래서 라이브 방송 주소가 뭐야? BJ대마도사라고 몇 번이나 검색을 해도 안 나오던데?”
“듣기로는 VIP들만 볼 수 있는 비밀 방송이라든데? 그래서 방송 경품이 엄청나대. 막 벤츠 같은 거 경품으로 뿌린다는데?”
“와, 대체 얼마나 대단한 부자인 거야?”
어느 순간부터는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던지고 마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보다 갑자기 탐험가 길드 애들이 많아진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나? 탐험가 라인 밖에서도 보이던데?”
“라인 확장하는 거 아니야? 대개 그랬잖아? 위가의 도시 근처에 있는 탐험가 길드 소속 전투원들 일시소집하는 거 하면.”
자연스레 그들의 주제는 다른 이야기로 번졌다.
“이건 소문이긴 한데, 탐험가 길드가 뭘 찾는 거 같다던데?”
“뭘?”
“무슨 퀘스트를 찾는다던데?”
물론 이 역시 오래 가지 않을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개소문이네.”
“사실, 내가 지금 지어낸 개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