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 12화. 유명세 (2). >
5.
미다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비린내 나는 숲을 떠나 위가의 숲에 도달한 다음이었다.
그것도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골목에 접어든 후에야 미다스는 품에 안고 있던 럭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는 안고 다니기도 쉽지 않네.’
품속에 감추고 다니기 힘들 만큼 덩치가 커진 럭키.
미다스가 그러한 럭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눈에 띄어도 좋으니 쑥쑥 자라기만 해라.”
헥헥!
미다스의 손길에 럭키가 숨소리와 함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미다스의 손길을 핥기 시작했다.
“정말 수고했다, 수고했어.”
미다스가 재차 그런 럭키를 격려했다.
“인벤토리.”
그렇게 럭키를 쓰다듬던 미다스가 인벤토리를 활성화했다.
인벤토리 안에는 많은 아이템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미다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인벤토리 2칸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개의 아이템뿐이었다.
[학살자 오크의 보물]
[학살자 오크의 보물]
학살자 오크 세트 아이템 중 1개를 무작위로 얻을 수 있는 보물 상자.
‘학살자 오크 세트 중에서 제일 비싼 학살자 오크의 도끼 시세가 150만……'
물론 무작위란 개념이 통하지 않는 미다스에게 아이템의 가치를 계산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걸로 다음 달 생활비도 끝이다.’
그렇게 계산을 마친 미다스가 다시 한 번 럭키를 쓰다듬었다.
‘이 녀석 없었으면 꿈도 못 꿨을 일이지.’
더 놀라운 건 소득 정산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었다.
미다스는 곧바로 다음 소득을 확인했다.
[학살자 오크 사냥꾼]
- 타이틀 설명 : 학살자 오크를 사냥한 자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 타이틀 보상 : 근력과 지력 +4
[학살자 오크를 홀로 상대한 자]
- 타이틀 설명 : 학살자 오크를 홀로 사냥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 타이틀 보상 : 모든 능력치 +7
이번 학살자 오크 사냥으로 얻은 타이틀 보상 역시 어지간한 유니크 아이템을 얻은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보통의 플레이어들이라면 이 성과만으로도 입에서 넋을 잃을 정도의 수준.
그러나 미다스는 넋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미다스는 이 모든 성과를 눈앞에서 닫은 후에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진짜 대박은 이제부터이지만.’
그런 미다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NPC사할린의 집이 있었다.
6.
“학살자 오크를 잡아 올 줄이야.”
자신이 내려준 임무를 수행해온 미다스를 향한 NPC사할린의 얼굴 표정은 무덤덤하기 그지없었다.
그 사실에 미다스는 오히려 만족했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어진 그 퉁명스러운 반응에도 미다스는 만족했다.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이제 대단한 걸 달라고.’
미다스 입장에서도 이보다 더 어려운 퀘스트를 받아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래도 임무를 수행했으니 보상은 줘야겠지.”
그전에 NPC사할린은 이번 퀘스트에 대한 보상부터 정리했다.
NPC사할린이 잠시 미다스를 보더니 이내 제 열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 중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던 파란색 반지를 미다스에게 던져줬다.
미다스가 그 반지를 허공에서 낚아챈 후 옵션을 확인했다.
[사할린의 반지]
- 등급 : 유니크
- 착용 가능 레벨 : 20레벨 이상
- 위가의 도시에 숨죽이고 살고 있는 은둔자 사할린의 반지다.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
- 모든 능력치 +20
- 공격력 +5
- 체력 및 마력 회복 속도 +25퍼센트
- 습득 시 귀속 (거래 불가)
!융의 반지 장착 시 숨겨진 세트 옵션 발동
기본 옵션에 히든 옵션까지, 줄줄 보이는 그 옵션에 미다스의 눈이 쉴 새 없이 굴러갔다.
‘끝내주는군.’
충분히 감탄이 나올 만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미다스는 사할린의 반지에 눈길을 오래 주지 않았다.
“이제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진짜 중요한 건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내 이야기는 아니고, 아는 사람 이야기이지만.”
미다스는 그 말에 괜한 잡음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고, 그 모습에 NPC사할린은 멈추지 않고 제 말을 이어갔다.
“신들이 세상의 피조물을 통해 전쟁을 치르기 시작한 후 많은 이들이 자신이 모시는 신좌를 위해 싸웠어. 그중에서 많은 이들이 전설적인 결과물을 만들었지.”
말을 하던 NPC사할린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로 빛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러낸 빛무리는 이내 검을 쥔 전사의 모습이 되었다.
“그도 그랬어.”
그 손바닥 위의 전사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모시는 신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웠고,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고 종국에 전설이 됐지. 정말 대단한 전설이 됐어. 모두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전설.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NPC사할린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
말과 함께 그녀가 주먹을 쥐자 빛무리가 모래가루처럼 바닥에 흘러내렸다.
“그때 그는 깨달은 거야. 무수히 많은 전설이 쌓여왔음에도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란 것을.”
‘레전더리 아이템으로는 안 된다, 이 말이네.’
그 순간 미다스는 여기서 말하는 전설이 무슨 의미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전설을 뛰어넘을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지. 이 기나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말이야.”
‘그럼 그 이상의 아이템이 나오는 수밖에.’
그리고 이제 NPC사할린이 무슨 말을 할지도 알았다.
“올마이티, 신화마저 종결시킬 수 있는 전지전능한 것을.”
그 순간이었다.
[올마이티 클래스를 알다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미다스에게 새로운 타이틀의 획득을 알리는 알림이 들렸다.
곧바로 옵션도 보였다.
[올마이티 클래스를 알다]
- 타이틀 설명 : 전설을 뛰어넘는 전지전능한 클래스를 알게 된 이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 타이틀 보상 : 모든 능력치 +30
모든 능력치 +30!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효과였으나, 미다스는 그 효과에 놀라지 않았다.
‘찍었다.’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남겼다는 것, 그 사실 만으로도 미다스는 자신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가득 채웠으니까.
그럴 만했다.
‘신화급 무기가 언급된 걸 찍었어.’
지금 이 광경은 이제까지 갓워즈의 멈춰있던 시간을 움직이게 할 거대한 폭탄과도 같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그 순간 NPC사할린이 말을 멈추었다.
“이야기를 듣는 데에도 값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그 후 말을 뱉는 NPC사할린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느낌표 대신 물음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 물음표를 단 NPC사할린의 질문에 미다스는 대답했다.
“예."
대답하는 미다스의 얼굴에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삼킨 각오로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기에 더 이상 각오를 삼킬 필요도 없었다.
“좋아, 그럼 이번에도 그때처럼 같은 과제를 내지.”
그런 미다스에게 NPC사할린이 기꺼이 새로운 퀘스트를 주었다.
“저주받은 숲에 등장하는 좀비들 1천 마리를 잡아 와.”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항목에 새로운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그 퀘스트 내용에 미다스가 미소를 지었다.
이름 잃은 신의 파편을 찾아오라!
그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고, 당연히 미다스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크으, 역시 갓겜!’
이번 퀘스트 역시 그때처럼 쉽게 할 수 있으리란 것을.
‘이번 것도 퀘스트템 가진 놈 하나만 찾으면 되겠네. 낙승이다, 낙승!’
그런 미다스의 앞에 퀘스트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주받은 숲]
- 퀘스트 랭크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2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저주받은 숲의 저주를 조사하기 위한 사료가 필요하다. 그곳에서 등장하는 몬스터 1천 마리를 잡아오자.
-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보상 : 스킬 카드 (유니크)
!퀘스트 완료 시 ‘저주받은 돌’ 진행 가능
‘응?’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미다스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후 미다스가 진심을 담아 NPC사할린에게 말했다.
“진짜 1천 마리를 잡아야 하나요?”
NPC사할린이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되물었다.
“왜? 싫어?”
그 되물음에 미다스가 미소를 지었다.
“아뇨, 아주 좋습니다.”
‘역시 이 게임, 개쓰레기 게임이야.’
아주 어색한 미소를.
7.
“형, 수고하셨어요.”
현실로 돌아온 자신을 반겨주는 이혁주의 목소리에 정현우는 대답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덜덜, 마치 수전증 환자처럼 손가락이 떨리는 게 보였다.
“제대로 집중하셨나 보네요, 진이 빠지신 거 보니.”
“그래, 아주 제대로 노가다 뛰었지.”
대답하는 정현우의 머릿속으로는 마지막 장면이 떠올렸다.
‘앞으로는 말도 안 되는 노가다를 뛰어야 하고.’
저주받은 숲에서 등장하는 좀비 1천 마리 사냥.
‘미치겠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저주받은 숲 자체가 비린내 나는 숲의 상위 사냥터로 대개 3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사냥터로 점찍은 무대였다.
‘플레이어들도 건너뛰는 곳에서 1천 마리라니.’
더불어 그 30레벨대의 플레이어들도 사냥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무대였다.
몬스터 자체의 난이도도 난이도이지만, 저주받은 숲이 가지는 지형적 특성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정현우 입장에서는 좋을 것 없는 이야기였다.
“형, 여기 폰이요.”
그렇게 고민하는 정현우에게 이혁주가 그의 폰을 건네주었다.
그 모습에 놀란 정현우가 폰을 받으며 말했다.
“웬일이냐? 갑자기 서비스가 좋아졌네?”
“조금 전에 전화 왔었어요.”
“전화?’’
이내 액정 위로 뜬 부재중 전화 표시를 확인한 정현우가 굳은 표정으로 폰을 터치했다.
뚜뚜, 착신음이 짧게 귓가를 스쳐 갔다.
이윽고 착신음이 끝나는 순간 정현우가 말했다.
“어, 형. 무슨 일 있어?”
- 삼촌!
“혜린아?”
형이 아닌 조카의 목소리에 정현우의 머릿속으로는 며칠 전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혜린아, 무슨 일이야?”
그때의 감정을 꾹 억누르며 질문하는 정현우에게 혜린이가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말했다.
- 혜린이 상 받았어!
"응?"
- 현우냐?
그때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무슨 말이야?”
- 혜린이가 그때 그린 그림으로 상을 받았어.
그 순간 정현우의 머릿속에 있던 안 좋은 상상들이 연기처럼 사그라졌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혜린이야. 그래서 유치원에서 1등 한 거야?”
- 아니, 시에서.
"응?"
- 일단 시에서 대상 받았고, 도 대회에 출품한다고 하네.
“어……"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결과에 정현우의 사고가 잠시 느려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린 정현우가 형에게 말했다.
“그럼 축하해야지. 형, 혜린이한테 오늘 저녁은 치킨이라고 말해줘.”
- 잠깐만
짧은 침묵 후에 대답이 나왔다.
- 혜린이가 고민하네.
“고민?”
- 프라이드를 할지, 양념을 할지.
조카의 고민에 정현우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생각해보니 언제나 한 마리 나눠 먹었지.’
생활비도 빠듯했던 나날에 익숙해진 조카의 모습에 대한 안쓰러움이 차오른 탓이었다.
그 순간 정현우가 말했다.
“고민은 무슨 고민을 해. 그냥 다 시켜.”
- 뭐?
“혜린이한테 말해. 프라이드 한 마리, 양념 한 마리는 물론 간장에 갈릭까지 한 마리씩 주문하라고. 디저트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으로!"
그 말을 끝으로 정현우가 통화를 종료했다.
‘그래, 이 맛에 돈 버는 거지.’
그런 정현우의 머릿속에 더 이상 고민은 없었다.
‘까짓것 천 마리 잡으면 될 일이지. 학살자 오크도 혼자 잡았는데, 기껏해야 좀비 새끼들을 못 잡을까. 아니, 이번 기회에 그냥 렙업이나 제대로 하자고. 아주 경험치 쪽쪽 빨아먹을 수 있겠네.’
도리어 의지를 불태웠다.
“혁주야, 수고했다.”
그 의지를 품은 채 정현우가 내일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는 캡슐방을 떠날 준비를 했고, 이혁주 역시 다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윽고 정리를 마친 이혁주가 카운터에 앉는 순간 옷을 갈아입은 정현우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일 보자!”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짧은 인사를 끝으로 정현우가 사라졌고 적막감이 캡슐방에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쯧쯧!
그 적막감 속에서 이혁주는 짧게 혀를 찼다.
‘불쌍한 현우 형, 계정 정지당하는 바람에 채굴로 돈 버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무리하시네……'
조카를 위해서 없는 돈을 쥐어짜내는 정현우가 이혁주는 퍽 안쓰러웠다.
"응?"
물론 그러한 심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워즈TV 새 영상 올라왔네?’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게 많은 세상이었으니까.
‘어디 보자…… 이것이 템빨좆망겜이다, 학살자 오크 솔로킬 긴급 입수?’
8.
“끅!"
캡슐방 문앞에 모습을 드러낸 정현우가 트림 소리를 내뱉었다.
‘치킨 시켜서 남긴 적은 또 처음이네.’
그리고는 짧게 소화 불량의 원인을 떠올린 정현우가 짧게 혀를 찼다.
‘아, 이거 소화 안 되면 게임 시간 줄어드는데.’
그렇게 걱정을 하며 캡슐방 안으로 들어간 정현우를 이혁주가 무시로 마중했다.
“야, 손님 왔는데 인사도 안 하냐?”
“아, 형!”
그제야 정현우의 등장을 깨달은 이혁주가 손에 든 폰을 내려놓으며 일어났다.
“오셨어요?”
“뭘 그렇게 보기에 정신이 나갔어?”
이어진 질문에 이혁주가 실소를 머금었다.
“어제 워즈TV에 영상 하나 올라왔거든요. 지금 꽤 핫해요.”
“뭔 내용인데?”
“금수저 새끼가 템빨로 보스 솔로킬 내는 영상이요.”
그 대답에 정현우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주 그냥 빌어먹을 게임이라니까. 여하튼 그런 금수저 새끼들은 죽창을 찔러야 해. 죽창을! 그래서 뭐 잡았는데?"
“학살자 오크요.”
“학살자 오크? 쪼랩존 보스몹? 난 또 무슨 100레벨 넘어가는 보스 몬스터라도 잡은 줄……"
그 순간이었다.
정현우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야,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