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대마도사-35화 (35/485)

35화.  11화. 학살자 (3).

9.

파티 플레이로 오크를 상대할 때 꼭 지켜야 할 철칙이 있다.

딜러들은 탱커가 오크를 건드리기 전까지 절대 오크를 건드리지 말 것!

그것이 철칙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딜러가 오크의 어그로를 끄는 순간 그리고 오크가 그 딜러를 향해 돌진을 시작하는 순간 탱커 입장에서는 그것을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

지금 광경도 그러했다.

크어어!

오크 한 마리가 분노로 가득 찬 괴성을 토해내며 나무로 된 가면을 뒤집어쓴 플레이어 한 명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하나 남은 볼링핀을 향해 볼링공이 달리는 듯했다.

돌진을 멈출 방법 따위는 감히 생각이 나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때였다.

“럭키야!”

오크의 돌진,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그 돌진의 끝에 있던 플레이어가 소리를 내질렀다.

“막아!”

이윽고 그 두 글자, 막아! 라는 글자가 플레이어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근처에 숨죽이고 있던 진돗개 크기의 털북숭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드러낸 털북숭이는 입을 벌리며 소리쳤다.

크-헝!

호랑이의 포효를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소리가 오크와 플레이어, 그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럭키가 오크를 상대로 사생결단의 의지를 표현합니다.]

그 뒤를 이어 알림 하나가 들렸다.

그 순간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크헉!

그 알림이 터짐과 동시에 플레이어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던 오크가 그 자리에서 몸을 멈췄다.

당연한 말이지만 과속이나 다름없이 달리던 오크의 몸뚱이는 쉽게 멈추지 못했다.

오크의 몸이 급정거하며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수고.

그러나 오크는 그러한 수고를 하면서까지 자신이 노리던 사냥감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크어!

그리고는 이제 럭키를 향해 다시 돌진을 시작했다.

오크의 어그로가 강제로 털북숭이를 향하는 순간,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광경은 그다음이었다.

푹!

플레이어의 손끝에서 날아온 얼음 화살이 그대로 오크의 등판에 꽂혔다.

오크의 분노를 다시 돌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깊게.

어그로를 다시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깊게.

크어!

크왕!

그럼에도 공격을 당한 오크는 자신을 향해 짖어대는 짐승을 향해 달려갔다.

사생결단!

그러한 각오를 품은 오크의 돌진은 거듭된 플레이어의 얼음 화살 공격에도 변하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제아무리 공격을 해도 고개조차 돌려주지 않았다.

퍼엉!

이윽고 불덩이가 오크의 머리통에 꽂히는 순간, 그제야 오크는 움직임을 멈췄다.

털썩!

멈춘 채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지면서도 오크의 몸은 여전히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을 향하고 있었다.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파이어볼의 스킬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스킬 랭크업을 알다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와······.”

그 광경을 본 미다스가 가면 안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실소를 머금었다.

왕!

그런 그에게 럭키가 다가왔다.

왕! 왕!

그리고는 자신의 활약에 칭찬을 해달라는 듯이, 이제는 조금 거대해진 몸을 미다스의 다리에 비비기 시작했다.

미다스가 기꺼이 럭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러면서 말했다.

“진짜 네가 최고다.”

그 말을 뱉는 목소리에는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스킬이야.’

어그로 관리는 탱커들에게 있어 가장 많이 마주하는 문제이자, 가장 난해한 문제였다.

쉽게 말하면 탱커에게 있어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그런 이유로 어그로를 다시 끌어올 수 있는 스킬, 일명 도발 계열 스킬 카드들은 값이 꽤 비쌌다.

그마저도 완벽한 것들은 아니었다.

조건을 충족하거나 시간 제한이 있는 등 스킬 등급과 종류에 따라 효과 차이도 많았다.

그렇기에 미다스는 사생결단 스킬에 대해서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짖으면 스킬이 발동하다니.’

일단 사용 조건이 너무 간단했다.

럭키가 미다스의 명령을 듣고 울부짖는 순간 스킬 효과가 발동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1대1밖에 안 되는 게 흠이지만······.’

사생결단 스킬은 동시에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즉, 1대1 상황에서만 유효했다.

또한 스킬이 발동하는 순간 그 대상이 죽기 전까지 스킬 대상을 바꿀 수도 없었다.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분명 단점이 될 만한 요소들이었다.

‘대 보스전 상대로 이거만한 게 없다.’

반대로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는 정말 완벽하기 그지없는 도발 스킬인 셈이었다.

문자 그대로 보스 몬스터가 죽을 때까지 혹은 럭키가 죽기 전까지 어그로를 끌어준다는 것 아니었는가?

당연히 미다스는 한 번쯤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솔킬 도전해볼까?’

학살자 오크 솔킬.

이제까지 정말 극소수의 플레이어들, 재능과 재력, 두 가지 모두를 가진 이들만이 이룩했던 업적.

투수로 따지면 160짜리 공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성공을 보장해줄 순 없지만, 기꺼이 드높은 나무를 쳐다볼 수 있게 해주는 일.

이제까지 미다스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미다스는 그것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탱커는 문제 될 게 없다.’

일단 미다스가 보기에 럭키의 능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어그로는 완벽하게 끌 터.

탱커의 역할은 그거면 충분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그런 질문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내 데미지 딜링이지.’

해야 할 질문은 딜러가 얼마나 빨리 끝낼 수 있느냐? 그뿐.

즉, 성공의 여부는 미다스 손에 달려 있었다.

그때였다.

번쩍!

미다스의 세상이 잠시 동안 붉게 깜빡였다.

그 사실에 미다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학살자 오크 등장까지 남은 시간 2:59:59]

보스 몬스터 리젠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가 보였다.

“하하.”

그 타이머의 등장에 미다스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이내 럭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럭키야, 이거 아무리 봐도 솔킬하라는 거지?”

왕!

럭키가 긍정하듯 짖었다.

“그래, 솔킬 내고 아이템도 혼자 다 처먹어야지. 그걸 뭐하러 나눠 먹어?”

왕!

“네 생각도 그렇다고?”

왕!

거듭 짖는 럭키의 모습에 미다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미다스가 결단을 내렸다.

“좋아, 솔킬 한 번 따보자.”

미다스 그가 학살자 오크 솔킬을 준비했다.

10.

학살자 오크.

갓워즈에서 별이 되기 위한 이들이라면 어떻게든 자신의 사냥 커리어에 넣어야 하는 존재.

그만큼 놈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학살자 오크? 경쟁률이 너무 심해.”

대부분은 그 이유로 경쟁률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린내 나는 숲에는 학살자 오크를 잡기 위한 파티가 항시 넘쳐 났으니까.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건 잡지도 못하는 놈들이 하는 소리이지.”

그러나 정말 학살자 오크가 잡기 힘든 이유는 그런 경쟁자의 유무가 아니었다.

“학살자 오크가 잡기 어려운 건 그냥 놈을 사냥하는 게 어려워서 그런 거야. 잡을 능력이 있으면 경쟁자 따위는 상관없어. 잡으면 되니까.”

학살자 오크 자체가 매우 사냥하기 힘든 몬스터라는 것.

크르르!

비린내 나는 숲, 탐험가 라인 밖에 위치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학살자 오크는 온몸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일단 체격은 보통 오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180센티미터의 신장, 근육질의 몸매, 키가 좀 더 큰 듯했지만 의미를 둘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착용한 아이템은 일반 오크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학살자 오크는 맨몸뚱이로 고간 정도만을 가리고 다니는 허약한 오크 따위와는 달리 정교하진 않지만 그래도 두꺼워 보이는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얼굴에 쓰고 있는 철로 된 가면과 손에 쥔 큼지막한 도끼였다.

그게 학살자 오크인 이유였다.

콰직!

마치 시위를 하듯 철가면을 쓴 채 주변의 애꿎은 나무를 도끼로 내리찍은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호러 영화에 나오는 학살자의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실제로 학살자 오크를 사냥하는 플레이어들 중에는 그 외형에 겁을 먹어 사냥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영상으로 볼 때보다 실제로 보니까 더 섬뜩하네.’

그러한 학살자 오크를 먼 곳에서 발견한 미다스는 학살자 오크의 상태를 확인했다.

[학살자 오크(Lv31)]

!적을 발견 시 무자비한 돌진 사용

!HP가 60퍼센트 이하일 경우 ‘섬뜩한 외침’ 스킬 사용

!HP가 20퍼센트 이하일 경우 ‘학살자’ 모드 발동

그러자 학살자 오크의 페이즈에 대한 정보들이 눈에 보였다.

딱히 눈여겨 볼 대목은 아니었다.

‘학살자 오크 공략이야 넘치지.’

이미 워즈튜브에는 학살자 오크 공략 영상이 많은 수준을 넘어 넘칠 정도였으니까.

‘고맙게도.’

그게 미다스가 이번 사냥에 자신감을 가지는 첫 번째 이유였다.

데이터 베이스가 충분하다는 건, 학살자 오크가 무슨 행동을 하든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의미.

실제로 미다스는 NPC사할린으로부터 학살자 퀘스트를 받은 이후부터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 학살자 오크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수집한 후에 분석하고 그에 맞는 공략법 내놓은 상태였다.

‘데미지도 충분해.’

두 번째 자신감은 당연한 말이지만 말도 안 되는 스탯과 스킬에서 나오는 데미지였다.

제대로 맞출 수만 있다면 데미지 딜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게 미다스의 세 번째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맞추는 것 하나는 리그 최고였고.’

제구, 그것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최근 컨디션도 최고였고.’

그리고 그러한 미다스의 제구력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변치 않고 빛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거 솔킬로 잡으면······ 대박이다.’

마지막으로 미다스를 움직이게 하는 요소는 다름 아니라 솔킬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부터가 달랐다.

학살자 오크, 놈이 가진 유니크 아이템들의 값어치는 지금 미다스가 착용한 챔피언 고블린 아이템보다 훨씬 비쌌으니까.

‘일단 기본 2장이지.’

더욱이 챔피언 고블린은 잡을 경우 하나의 유니크 아이템만을 얻을 수 있지만, 학살자 오크의 경우에는 2개의 유니크 아이템을 가질 수 있었다.

미다스처럼 혼자 잡는다면 그 2개의 유니크 아이템을 독식할 수 있다는 이야기.

‘혜린아,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그러한 사실들은 미다스에게 더 이상의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럭키야, 가즈아!”

호우우우!

전투가 시작됐다.

11.

탐험가 라인의 경계선.

여러 플레이어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는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하나 더 있었다.

“저기, 헤인즈 파티다.”

“헤인즈 파티라면 요즘 핫한 길드 중 하나인 라이징 스타 길드?”

“학살자 오크 3인 파티로 사냥하려고 온 모양이네.”

학살자 오크를 사냥할 수 있는 자와 그저 구경만 할 수 있는 자.

두 부류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확실한 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저 검 봐. 유니크 템인가?”

“때깔부터가 다르네.”

“3명 모두가 챔피언 고블린 가면 썼네?”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만 보더라도 그쪽이 어느 부류인지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학살자 오크, 아주 무서운 놈이지. 내가 이 캐릭터 키우기 전에 놈을 두 번이나 잡았거든.”

더불어 제 스스로 대놓고 학살자 오크를 잡으러 왔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소위 관심을 받기 위해 떠벌리는 경우였다.

“근데 둘 다 파티원들이 병신이었어. 내가 하드 캐리를 해서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니까.”

그다지 보기 좋은 경우는 아니었다.

“혹시 영상 찍으셨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그게 내 천추의 한이었다니까. 너무 긴박해서 영상 찍는 걸 까먹었었지. 아! 그때 내가 그걸 영상으로 남겼으면 진짜 차 한 대는 뽑았을 텐데! 진짜 개쩔었는데.”

진위 여부도 확인할 수 없는 일을 영웅담이랍시고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지껄이는 건 민폐인 법.

더군다나 이곳은 휴식을 위한 장소였다.

“장담하는데 이 중에서 몇 명은 잡다가 게임오버 당할 거야. 내가 잡아봐서 알아. 진짜 어렵다니까. 어중이떠중이 좆밥 새끼들이 덤벼서 잡을 만한 놈이 절대 아니야. 아, 내가 시간만 있어서도 직접 잡는 거 보여주는 건데.”

특히 학살자 오크가 등장할 때를 대비해 사냥 대기 중인 플레이어들에게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플레이어의 허세는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결국 한 명이 말했다.

“그렇게 대단하면 학살자 오크 솔킬 한 번 해보시든가.”

툭, 혼잣말을 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목소리 크기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뭐?”

그 말에 ‘내가 왕년에 말이지’ 라며 영웅담을 내뱉던 플레이어가 눈빛을 날카롭게 떴다.

“지금 뭐라고 했어?”

“아니, 그렇게 자신 있으면 오크 솔킬하라고. 딱 봐도 개구라이지만.”

“개구라? 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그 둘 사이의 분위기가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변의 분위기는 평소와 같았다.

대부분의 이들은 그 둘의 눈싸움을 딱히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싸우는 거야?”

“재미있겠네.”

“야! 갓워즈에서 무슨 주둥이 배틀이야? 그냥 붙어!”

일부는 오히려 싸움을 부추겼고, 일부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들을 무시했다.

갓워즈에서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그때였다.

“학살자 오크 뜬 거 같다!”

누군가가 학살자 오크의 리젠 소식을 알렸다.

그 알림에 대기 중이던 플레이어들 중 일부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도 주변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 밖이야, 안이야?”

“지금 순번 어떻게 돼? 몇 명 대기 중이야?”

“그래서 지금 누가 잡고 있어?”

이 역시 갓워즈에서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어, 그게······ 지금 솔킬 시도 중이라는 소식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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