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11화. 학살자 (1).
1.
누군가 말했다.
인류 역사상 종교 다음으로 갓워즈만큼 헛소문을 많이 만든 것은 존재치 않았다고.
당연한 일이었다.
갓워즈는 김민수라는 가늠할 수 없는 천재가 아니었으면 탄생하지 않았을 게임이었고, 김민수는 그 갓워즈의 비밀을 품에 안은 채 그대로 땅에 묻혀버렸으니까.
당연히 대부분의 소문들은 헛소문으로 치부되고는 했다.
그 소문도 마찬가지였다.
‘갓워즈에는 레전더리 등급을 뛰어넘는 등급의 아이템이 존재한다.’
갓워즈가 등장하고 1년째가 됐을 때, 레전더리 등급 아이템을 놓고 엄청난 일들이 매일 생겨났을 때.
그때 누군가 말했다.
그 레전더리 등급을 뛰어넘는 등급의 아이템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개소리였지.’
사실 이미 닳고 닳은 소문이었다.
레전더리 등급을 뛰어넘는 신화급 무기가 있고, 그 신화급 무기를 뛰어넘는 갓급 무기가 있으며, 그것마저 뛰어넘은 갓갓갓급의 무기가 있다는 소문은 솔직히 소문 취급도 안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웃기지도 않는 소문에 대한 어느 한 명이 반응했다.
‘그 소문에 허정훈이 대답하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게임디렉터 허정훈.
김민수가 갓워즈 세계를 창조하고 관리할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를 제작할 당시 그와 접촉했던 몇 안 되는 인물이던 그가 그 소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었지?’
김민수의 입을 통해 올마이티 클래스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충분히 그런 아이템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코 확신에 찬 대답은 아니었다.
그저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을 뿐.
그러나 그 말이 불타오르는 갓워즈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됐다.
‘그때 분위기 진짜 장난 아니었지.’
물론 그 후 그 누구도 올마이티 클래스, 일명 신화급 아이템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그 이야기는 헛소문이 되었다.
허정훈 본인 역시 그 이후 갓워즈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자세를 취했다.
자연스레 열기도 가라앉았다.
말 그대로였다.
“럭키야, 진짜 올마이티 클래스 아이템이 공개되면 이 게임 개판 될 거다.”
왕!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화산이 잠잠해진 것과 같았다.
지금 미다스의 눈앞에 보이는 건 그 화산을 터뜨릴 수도 있는 도화선이었다.
‘이건 지금 공개하면 끝이다. 그 이후부터는 내가 손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지금의 미다스가 섣불리 건드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
‘하지만 제대로 터뜨리기만 하면······ 진짜 크게 땡길 수 있다.’
반대로 그 폭발력을 다룰 수 있다면?
미다스가 벤츠를 할부로 뽑을지 리스로 뽑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큰돈을 만질 수 있을 터.
‘어쨌거나 지금은 학살자 오크부터 잡는 게 우선이다.’
물론 이러한 모든 이야기도 미다스가 학살자 퀘스트를 공략한 다음의 이야기였다.
지금 미다스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미리 숨겨진 정보를 보았을 뿐, 진짜 정보를 습득한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그 사실에 이른 미다스는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까볼까? 럭키야, 뭐 나올 거 같아?”
미다스가 스킬 카드북을 손에 든 채 럭키 앞에서 흔들었고, 그 사실에 럭키는 목을 높게 들며 소리쳤다.
호우우!
그런 럭키 앞에서 미다스가 손에 쥔 스킬 카드북을 펼쳤다.
2.
스킬 카드북을 여는 순간 미다스의 눈앞을 가득 채운 것은 다섯 장의 카드들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모양새들.
그러나 미다스의 눈에는 그 카드들이 품은 황금빛이 여과 없이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감탄이 나와 마땅한 광경.
“후우.”
그러나 그 광경 앞에서 미다스는 감탄을 내뱉기보다는 오히려 긴 한숨을 내뱉었다.
왕?
주인의 한숨에 고개를 갸웃하는 럭키, 그 럭키 앞에서 미다스는 제 고뇌를 내뱉었다.
“벤츠나, BMW냐 그것이 문제로다.”
유니크 등급의 스킬 카드를 고를 때도 머리를 쥐어뜯었던 미다스 아닌가?
그런 그에게 레전더리 스킬 중 하나를 콕 찍어 고르라는 건 평생 차 한 번 가져보지 않은 남자에게 BMW랑 벤츠 중 차를 하나 고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드래고닉 마나? 마력 회복률 증가? 엘리멘탈 마스터리! 모든 속성 공격력 증가시켜주는 스킬이잖아!’
물론 그럴 때가 있다.
‘응?’
그중에서 갑자기 유난히 빛나는, 마치 갑자기 포르쉐 같은 놈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경우.
‘어?’
미다스의 눈에 보인 그 스킬이 그랬다.
[드래곤스 아이]
- 스킬 랭크 : 레전더리
- 스킬 효과 : 대상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하여 보다 많은 데미지를 준다.
드래곤스 아이.
‘이거, 설마 그거?’
미다스가 얼마 전 보았던 유니크 등급의 스킬인 불스 아이 스킬의 상위 등급 스킬이었다.
스킬 효과는 간단했다.
패시브 스킬로 적의 몸에 과녁이 생기며, 그 과녁의 한 가운데에 가까이 맞출수록 데미지가 증가했다.
즉, 잘 맞추면 데미지가 증가하는 스킬이었다.
설명만으로도 그 가치가 적지 않음을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스킬이었다.
‘메이저리그 사이영상을 받았던 그렉스를 스타로 만들어준 그 스킬?’
무엇보다 그렉스, 전직 메이저리거를 갓워즈를 대표하는 마법사 중 한 명으로 만들어준 스킬이기도 했다.
스킬 효과도 효과이지만 보는 맛이 남달랐다.
보통 마법사들은 정확히 맞춘다고 해서 특별할 게 없지만, 이 스킬은 정말 정확히 맞추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메리트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렉스가 정확히 맞출 때마다 후원금이 장난 아니었지.’
더욱이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33승, 한 해에 가장 뛰어났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도 수상했었던 그렉스의 경우에는 시작부터 그 팬들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동양의 자그마한 나라에서 1군에서 1승조차 거두지 못한 어느 투수와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정도.
그렇기에 미다스는 더더욱 고민이 없었다.
‘이거다.’
드래고닉 마나나 엘리멘탈 마스터리 등 나머지 스킬들 역시 충분히 좋았으나, 미다스는 망설이지 않고 드래곤즈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그러자 미다스의 눈앞에 세 번째 레전더리 스킬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즈 아이]
- 스킬 랭크 : F
- 스킬 효과 : 대상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하여 보다 많은 데미지를 준다.
!77회 연속 약점 명중 시 타이틀 ‘사수(射手)’ 달성
!999회 약점 명중 시 타이틀 ‘베테랑 사수’ 달성
그리고 무수히 많은 타이틀 달성 조건들 역시 미다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롱토스에 드래곤스 아이 중첩이면 데미지 증가량이 장난 아니겠는데?’
그것을 보며 미다스는 이제부터 이 스킬이 보여줄 효과를 상상했다.
“여기에 발리스타 같은 스킬만 나오면 이 게임 갓겜 되는 건데.”
왕!
“그래, 럭키야. 너무 욕심 부리면 안 되지. 이딴 좆망겜에서 가지고 싶다고 나올 리가 없으니까.”
왕!
물론 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럼 이제 학살자 오크를 잡아야 하는데······.’
이제부터는 현실을 마주할 때였으니까.
‘이것도 골 때리겠네.’
쉽지 않은 현실을.
3.
학살자 오크.
비린내 나는 숲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꼭 이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이유나, 학살자 오크가 주는 유니크 등급 아이템이 다른 동급 아이템보다 우월하거나, 하는 건 없었다.
그러나 학살자 오크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경쟁률은 손에 꼽을 정도로 높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걔를 잡아야 루키로 인정받을 수 있지.’
학살자 오크가 갓워즈를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명예와 돈을 위해서 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쥐어야 하는 트로피라는 것.
야구로 따지면 초등학교 야구 대회 같은 것이었다.
취미로 야구를 한다면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나 프로를 꿈꾼다면 그 대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재능과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결과를 남겨야 했다.
때문에 경쟁률이 무척 심했다.
‘뭐, 대부분은 사냥에 실패하지만.’
동시에 학살자 오크는 무척 강했다.
챔피언 고블린과는 수준이 달랐다.
그게 트로피 몬스터가 된 이유였다.
레벨 좀 올리고, 아이템 좀 갖췄다고 해서 누구나 잡을 수 있는 몬스터를 잡았다고 해서 인정받을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 외에도 암묵적인 조건들이 여러 있었다.
5인 이내의 파티로 잡아야 하며, 어그로 관리를 비롯해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말아야 한다 등······.
그러한 조건을 뚫고 잡아야 그때부터 경력에 학살자 오크 사냥을 넣을 수 있었다.
‘솔플은 힘들어.’
어쨌거나 정현우가 지금 혼자서 잡을 수 있는 놈은 아니었다.
정현우가 열심히 스마트폰을 만지막거리며 학살자 오크를 사냥하고자 하는 파티 구인 공고를 살펴보는 이유였다.
“뭘 그렇게 보냐?”
그때 휠체어에 앉아 있던 정태우의 질문에 정현우는 스마트폰의 화면 내용을 바꾸며 말했다.
“템 좀 팔려고.”
그 대답에 정태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굳이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 없는 그 쓴웃음에 정현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형, 요즘 수입 짭짤해서 기분 좋거든? 그러니까 괜히 여기서 눈물 나오는 분위기 만들지 말고 제대로 웃어줄래?”
그제야 정태우가 입가에 진 쓴웃음을 실소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 실소 사이로 한숨을 내뱉었다.
“왜 갑자기 또 한숨이야?”
“너 같은 놈을 데려갈 제수씨가 고생할 걸 생각하니까 절로 나오네.”
형의 말에 정현우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형제의 대화는 끝이 났고, 서로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정현우의 표정에는 다시 진지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수입이 나쁘진 않아.’
조금 전 형에게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최근 정현우의 수입은 짭짤했다.
‘잡템을 독식하니까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커버 돼.’
오크를 잡아 나오는 재료 아이템들 역시 팔면 돈이 됐으니까.
더욱이 정현우에게는 몬스터가 가진 아이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보통 플레이어들과는 레어 등급 아이템을 얻는 확률이 차원이 달랐다.
그게 생활비가 남는 비결이었다.
보통 다른 플레이어들이 빠른 레벨업을 위해 수입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지.’
그러나 지금 정현우가 보고 있는 풍경을 그저 간신히 유지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하자. 어차피 파티 플레이 할 거, 어설픈 애들하고 같이 해서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는 없잖아?’
그 순간 정현우가 스마트폰을 껐다.
‘미끼 좀 뿌려서 대어 애들이 오게 해야지.’
앞서 말했듯이 프로 플레이어들 중 상당수가 학살자 오크를 잡고자 대기 중이었다.
당연히 그들 안에는 옥석이 따로 있었다.
주제도 모르고 도전의식만 불태우는 부류가 있었고, 주제 파악을 끝난 건 물론 이미 완벽한 준비도 마친 부류가 있었다.
학살자 오크를 보다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는 옥과 손을 잡아야 하는 게 정답이었다.
문제는 옥쯤 되는 애들은 이미 견고하게 파티 멤버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설픈 실력자가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혹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진한 미끼를.’
달리 말하면 진짜 실력자가 끼어들 틈은 충분히 있었다.
정현우, 그가 노리는 건 그 틈이었다.
우웅!
그때 정현우의 스마트폰이 알림을 토해냈다.
‘시간 리셋.’
플레이 가능 타임이 리셋됐음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4.
비린내 나는 숲.
왕!
“그래, 럭키야. 잘 있었어?”
그 한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미다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럭키를 쓰다듬는 것이었다.
왕, 왕!
럭키는 그런 미다스의 손길에 거듭 자신의 몸을 부비며 반가움을 열심히 표현했다.
그러나 미다스는 그런 럭키에게 쉬이 신경을 쓸 수 없었다.
‘파티플을 하게 되면 분명 내 캐릭터네임이 알려질 텐데······ 뭐, 미다스란 이름이 나만 쓰는 건 아니지만······.’
학살자 오크를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는 파티 플레이를 피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파티 플레이가 무조건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또한 타인과 같이 게임을 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신경 쓸 것이 적지 않았다.
아이템 분배 같은 문제부터 시작해서 호흡을 맞추는 문제까지.
이 세상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것만큼 신경 쓰이는 건 없는 법 아닌가?
‘아, 골치 아프다. 그냥 돈 받고 까라면 까는 게 속편하긴 했어.’
왕!
그런 미다스의 고민을 알 리 없는 럭키는 거듭 미다스에게 제 몸을 부비며 존재감을 표시했다.
왕! 왕!
거듭해서.
“그래, 나한테는 너밖에 없······.”
미다스가 옅게 웃음을 흘리며 그런 럭키를 향해 제대로 된 관심을 가졌다.
그제야 미다스는 볼 수 있었다.
“······럭키야 머리 위에 그 물음표 뭐냐?”
왕!
럭키의 머리 위에 뜬 새로운 물음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