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10화. 비밀 제단 (4).
13.
몬스터의 사냥 난이도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즉, 공격력이 강하다는 게 전부가 아니다.
공격력은 약한데 방어력이 강해서 까다로운 놈이 있고, 공격력도 방어력도 별 볼 일 없는데 스킬이 특별해서 까다로운 놈도 있다.
이게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밸런스였다.
부패하는 오크의 경우에는 HP와 공격력에 집중한 타입이었다.
그게 언데드 타입의 특징이기도 했다.
언데드 타입들은 대개 높은 HP와 공격력을 가진 대신 방어력이 낮거나 이동속도가 느렸다.
물론 느리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력과 체력 스탯이 높은 탱커, 근접 딜러의 입장에서의 이야기.
마법사나 힐러 클래스, 모든 능력치를 지력이나 마력에 투자한 클래스의 경우에는 결코 도망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오히려 파티 플레이를 하는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설정이었다.
탱커들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힐러와 딜러를 보호하기 위해 몬스터를 지척에서 상대해야 하는데, 상대의 공격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하다면?
심지어 HP가 높아 전투 시간도 필연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다면?
무슨 몬스터 밸런스를 이딴 식으로 만들어! 개새끼들 밸런스 좀 제대로 맞추라고!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끔찍한 일.
“아, 괜히 쫄았네.”
그러나 부패하는 오크의 특성은 오히려 미다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천적.
쉽게 표현하면 그런 관계였다.
“피통이 왜 이렇게 크나 했는데, 이속 고자였네.”
미다스가 부패하는 오크 앞에서 이제는 여유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럭키야, 돌아와.”
왕?
“느긋하게 가자고.”
심지어 미다스는 막 부패하는 오크에 달려들려는 럭키를 다시 불러들였다.
크어어!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부패하는 오크는 자신을 공격한 미다스를 향해 움직였다.
보통의 마법사 클래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속도였다.
미다스 역시 저 속도가 가당찮을 정도로 느리다고 생각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이곳에서 가장 긴 직선거리는 약 35미터.’
몬스터가 느리다고 해도 공간이 협소하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법.
‘저 정도 속도라면 20미터 거리에서 캐스팅을 마친 후에도 최소 2초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미다스가 가지는 여유는 주변 환경을 비롯해 자신의 상태, 그 모든 요소를 염두에 둔 계산 끝에 나오는 것이었다.
즉, 계산에 허점은 사실상 없었다.
‘완벽하게 잡을 수 있다.’
미다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그가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강제로 로그아웃을 당하지 않는 이상 질 수 없는 승부라는 셈.
‘그럼 완벽하게 해야지.’
그렇기에 더더욱 미다스는 철저하게 움직이고자 했다.
최대한 빨리 이 전투를 끝내고 보상을 즐기고자 했다.
“럭키야, 이 주인님의 크고 아름다운 딜을 제대로 보여주마.”
왕!
당연히 미다스는 자신이 넣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데미지를 주기 위한 계산을 시작했다.
“내가 아주 제대로 극딜을······.”
왕!
그 순간이었다.
“잠깐.”
왕?
미다스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지금 내 스킬 중에 보스 몬스터 관련 타이틀이 뭐였지?’
14.
갓워즈에서 가장 많은 건?
이 질문에 사람들은 가장 먼저 직업이라는 대답을 꺼낼 것이다.
그러면 다른 누군가가 스킬이라고 대답을 가로챌 것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말할 것이다.
“당연히 타이틀이지. 스킬 하나에도 걸린 타이틀이 대여섯 개가 훌쩍 넘는데.”
갓워즈에서 가장 많은 건 다른 무엇도 아닌 타이틀이라고.
그만큼 갓워즈에는 몬스터와 스킬 그리고 NPC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타이틀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높았다.
특히 레벨이 높아질수록 그 영향력은 더 커졌다.
레벨은 올리기 힘들어지고, 아이템은 교체하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타이틀만큼 능력치를 올리기 좋은 것도 없으니까.
문제는 타이틀 획득 조건이 생각보다 쉽게 세간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공개됐다고 하더라도 타이틀 달성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는 것.
개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건 다름 아니라 보스 몬스터와 관련된 타이틀이었다.
기본적으로 일반 플레이어가 보스 몬스터를 조우하는 게 매우 힘들 뿐더러,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더 힘들었다.
그런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여유롭게 타이틀 달성을 위한 작업을 하는 것 역시 쉬울 리 만무
물론 아주 막강한 세력과 재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안 될 것은 없는 일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제까지 미다스와는 보스 몬스터 관련 타이틀은 거리가 무척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그 기회가 미다스에게 왔다.
[파이어볼]
!보스 몬스터 333회 타격 시 ‘강심장’ 타이틀 획득
[아이스 애로우]
!보스 몬스터 505회 명중 시 ‘명사수’ 타이틀 획득
[용의 위엄]
!보스 몬스터 300회 공격 시 ‘물러서지 않는 자’ 타이틀 획득
현재 미다스가 가진 스킬 중 파이어볼과 아이스 애로우 그리고 용의 위엄, 그 3개의 스킬을 통해 얻을 수 타이틀 중에 보스 몬스터를 타격할 경우 충족되는 게 있었다.
‘좆나 때리면 된다.’
조건은 공격을 많이 하는 것.
보통 경우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부분이었다.
이제까지 마주한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그럴 여유를 부릴 일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여유가 올 가능성은 무척 낮았다.
‘앞으로 이런 기회는 안 와.’
어떤 의미에서 지금 마주한 부패하는 오크가 유일할지도 모르는 그 기회인 셈.
‘이번에 놓치면 이 타이틀 달성은 최소 40레벨 이후, 50레벨 이후에나 가능할 거야.’
남은 건 하나였다.
이 기회를 잡느냐 안 잡느냐, 그것을 선택하는 것 뿐.
고민은 길지 않았다.
크어어!
미다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부패하는 오크를 보는 순간 자신이 손에 든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15.
치고 빠진다, 그 자체로 어려울 건 없는 작업이다.
실제로 이 작업 자체를 못하는 플레이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것을 반복할 때 생겼다.
내가 왜 갑자기 그랬을까? 자기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실수가 나오고는 했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살아오면서 긴장의 끈을 유지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고, 굳이 배울 필요도 없었다는 것.
“파이어볼!”
예를 들면 미다스, 프로야구선수 시절의 그처럼 마운드에서 실수를 하는 순간.
그리고 그 실투가 타자의 안타로 이어지는 순간 곧바로 짐을 싸서 2군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앞서 말한 것을 배우기 위해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낼 이유는 없었다.
퍼엉!
그게 미다스가 무려 38분에 걸친 작업을 실수 없이 완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물러서지 않는 자 타이틀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룬이 지급됩니다.]
‘됐다.’
그토록 기다리던 결과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비결.
[부패하는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계산대로 됐어.’
더 나아가 미다스는 이 모든 종점에서 부패하는 오크의 죽음을 계산해두었다.
타이틀 달성을 위한 마지막 파이어볼이 부패하는 오크에 닿는 순간 사냥이 끝나도록.
‘자, 그럼 정산을 들어가야지.’
그러함으로써 한 번에 모든 보상을 한 번에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즉, 이제 미다스에게 남은 것은 눈앞에 있는 보상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강심장]
- 타이틀 설명 : 보스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파이어볼을 던진 자에게 어울리는 타이틀이다.
- 타이틀 보상 : 지력+15
[명사수]
- 타이틀 설명 : 보스를 상대로 피하지 않고 활시위를 당긴 자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 타이틀 보상 : 지력+15
[물러서지 않은 자]
- 타이틀 설명 : 용의 위엄을 가진 자는 왕 앞에서 물러서지 않음을 증명한 자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 타이틀 보상 : 모든 능력치 +11
그렇게 미다스가 여유 있게 자신의 보상을 확인했다.
‘보스급 타이틀이라서 그런지 옵션 끝내주네.’
그 보상에 미다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미다스]
- 레벨 : 20
- 신좌 : 워드래곤
- 직업 : 대마도사
- 능력 : 근력(5+115)/체력(5+115)/지력(110+193)/마력(25+143)
그리고 자신의 능력치 앞에서는 놀라움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아, 현기증나네. 밖에 나가서 라면이나 먹어야겠다.’
거짓이 아니라 정말 현기증이 날 것 같을 정도.
이 능력치 아니더라도 기나긴 작업에 대한 여파는 남아 있었다.
‘로그아웃하는 순간 피로감 장난 아니겠네.’
갓워즈 속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뿐 밖으로 나가는 순간 지독한 피로감이 엄습할 것이다.
‘그전에 전설 카드는 까야지.’
물론 그 전에 미다스는 모든 것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대로 위가의 도시로 돌아간 후에 NPC사할린으로부터 자신의 세 번째 전설 스킬을 얻어낼 것이다.
“크으!”
미다스가 새로운 전설을 얻는 순간을 상상하며 일찌감치 전율을 느끼기 시작했다.
<네놈!>
“으헉!”
그때 비명과도 같은 거친 호통 소리에 미다스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이제 HP가 0이 된 채 점차 녹아내려가는 부패하는 오크가 있었다.
그때와 같았다.
주술사 고블린을 잡을 당시와.
때문에 미다스는 그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야! 깜빡이는 좀 켜고 이벤트 진행해!”
도리어 자신을 놀라게 한 부패하는 오크를 나무랐다.
물론 그 씨알도 먹히지 않을 외침을 부패하는 오크는 가볍게 무시한 후 제 역할을 이어갔다.
<네놈도 결국 그것을 노리는 모양이구나!>
“아, 새끼. 그냥 빨리 뒈지면 안 되나?”
미다스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
<신화마저 종결 낼 수 있는 무기를!>
“아, 됐고. 빨리 경험치나 뱉······.”
그 순간이었다.
“잠깐, 너 뭐라고 했냐?”
미다스가 부패하는 오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미 완전하게 녹아내린 채 아주 지독한 비린내만을 풍기는 부패하는 오크는 대답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뭐라고 말했지?’
결국 미다스는 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화마저 종결 낼 수 있는 무기라고?’
그리고 스스로 답을 내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갓워즈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소문 하나가 떠올랐다.
‘레전더리 위에 존재하는 신화급 아이템이 있다는 게 개병신 소리가 아니라 리얼이라고?’
그 사실에 이르렀을 때 미다스는 저도 모르게 굳었다.
‘그게 실존한다면······ 벤츠 뽑고 자시고 하는 수준이 아닌데?’
이제까지 마주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보.
때문에 미다스는 그에 대한 답을 섣불리 내리지 않았다.
“······럭키야, 도시로 돌아가자.”
왕!
16.
“대단하네. 정말 그걸 찾을 줄이야.”
그 말과 함께 NPC사할린의 머리 위에 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이제 보상을 받을 때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
그러나 그 기꺼운 신호에 미다스의 표정은 환해지기보다는 계속 굳어진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런 그에게 NPC사할린이 손짓을 했다.
휙!
그 손짓에 책장을 이루고 있던 책 한 권이 그대로 날아와 그녀의 손에 잡혔다.
“노력에 대한 선물이다. 네 주제에는 과하겠지만.”
그녀가 그 책을 미다스에게 건네줬고, 미다스가 그 책을 받았다.
[레전더리 스킬 카드북(거래 불가)]
레전더리 스킬 카드 중 하나를 임의로 얻을 수 있는, 갓워즈에서는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혹시 무슨 말 듣지 않았어?”
그 순간 NPC사할린이 질문을 던졌다.
평소라면 보상에 정신이 팔려 대충 대답했을 일, 하지만 미다스는 도리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신화조차 종결 낼 무기를 노리냐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에 NPC사할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래서 그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
“예.”
NPC사할린의 머리 위에 새로운 물음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면 내가 아는 것을 말해주지. 어때?”
“좋습니다.”
그 대답에 미다스의 눈앞에 곧바로 퀘스트창이 등장했다.
[학살자]
- 퀘스트 랭크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2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NPC사할린이 당신에게 학살자 오크 사냥을 부탁했습니다.
- 퀘스트 보상 : 사할린의 반지
비린내 나는 숲의 필드 보스 몬스터, 학살자 오크를 사냥하라는 것.
결코 쉽지 않은 퀘스트였다.
그러나 미다스는 그보다 아래에 있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퀘스트 완료 시 ‘저주 받은 숲’ 진행 가능
!퀘스트 완료 시 ‘미스틱 클래스를 알다’ 타이틀 획득
미스틱 클래스!
그것을 보는 순간 미다스는 확신했다.
‘신화급 무기가 진짜 존재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