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8화. 너의 목소리가 보여 (3).
6.
김민수,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상의 세상을 완벽하게 설계할 수 있는 자.
그런 그가 갓워즈 제작을 선언했을 때 세상 이들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왜 하필 게임입니까?”
가상현실에 만들 수 있는 다른 좋은 것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게임 따위를 만드냐고.
그 질문에 김민수는 대답했다.
“그냥 만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취미 삼아 만드는 거니까 큰 의미는 두지 마세요. 돈 벌 생각도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저 혼자 만드는 건데 제가 뭘 만들든 제 마음이죠. 꼬우면 당신들이 다른 거 만드시든가. 뭐, 만들 수 있을 때 이야기이지만.”
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라고.
어쨌거나 김민수는 갓워즈를 만들었고, 그 갓워즈가 사람들의 상식을 가뿐히 짓밟은 채 삽시간에 세상을 집어삼키면서 사람들은 왜 게임을 만들었느냐, 같은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시작했다.
대체 김민수, 그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김민수가 죽고 난 후 사람들은 그 질문을 갓워즈란 게임에서 찾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누구도 그 이야기를, 일명 메인 시나리오를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 미다스의 눈앞에 있는 홀로그램 창은 그런 거였다.
[이름 없는 신의 흔적]
- 퀘스트 랭크 : Main Scenario
- 퀘스트 레벨 : 1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시작의 마을에서 이름 없는 신의 흔적을 아는 NPC를 만나보자.
- 퀘스트 보상 : 알 수 없음
!시작의 마을 NPC 융을 찾아가 키워드 ‘이름 없는 신의 흔적’을 언급할 경우 퀘스트 진행 가능.
!퀘스트 보상으로 ‘융의 반지(유니크)’ 획득
퀘스트 랭크, 메인 시나리오!
5년 넘게 갓워즈에서 단 한 반도 세상에 알려진 적 없었던 이야기였다.
그 사실 앞에서 미다스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말이 돼?’
일단 미다스는 의문을 가졌다.
‘아니, 5년 넘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고?’
이것을 찾기 위해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이들이 갓워즈란 세상을 샅샅이 헤집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시작의 마을, 초보자들의 세상에서 이 퀘스트의 시작점이 나오다니?
‘아니, 알파 컴퍼니 새끼들 뭐하는 놈들이야? 이 정도면 기획 오류 아니야?’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을 넘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
왕!
그렇게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미다스를 향해 럭키가 관심을 달라는 듯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그 럭키를 향해 미다스가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미다스의 머릿속에 갓워즈가 걸어온 5년이란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야. 생각해보면 알파 컴퍼니가 김민수가 만든 갓워즈의 설정에 그 어떤 터치도 안 했어.’
갓워즈를 제작한 알파 컴퍼니는 세상의 거듭되는 게임 설정 변경, 업데이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명분은 위대한 천재 김민수가 남긴 유산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
갓워즈 안의 플레이어들이 미쳐 날뛰는 이유였다.
게임의 운영자들이 일절 개입하지 않는데 미쳐 날뛰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 아닌가?
‘시작의 마을이 이 꼴이 된 것도 그 때문이지.’
시작의 마을이 확실한 증거였다.
알파 컴퍼니가 조금만 게임을 건드렸더라도 탐험가 길드가 시작의 마을을 지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파가 이런 상황을 만들 줄은 아마 김민수도 예상 못했겠지.’
그리고 그러한 일이 게임을 변질시켰다.
본래대로라면 발견됐어야 할 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시작 루트가 5년 넘게 땅에 묻혀 있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 미다스조차도 간신히 발견할 정도로 땅속 아주 깊은 곳에.
그 사실에 이른 미다스는 더 이상 왜? 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희열을 느꼈다.
‘차원이 다른 기회다.’
이 정보의 가치는 얼마일까?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의 기회.
이제까지 언제나 비참했던 나날을 행복과 영광의 나날로 바꿀 수 있는 기회.
당연히 미다스가 고민할 건 없었다.
‘이거 무조건 해야 돼. 팔고 자시고 할 게 아니야.’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하는 건 다른 운 좋은 경쟁자가 생기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이득을 챙기는 것뿐이니까.
‘융이면 졸업시험 주는 NPC지? 걔 방은 졸업시험자만 들어갈 수 있으니 탐험가 길드랑 부딪칠 필요도 없네.’
미다스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그린 후에 곧바로 홀로그램 창을 껐다.
왕!
그때 럭키가 재차 울음을 토해냈다.
“그래, 럭키야.”
미다스가 기분 좋은 미소로 럭키의 머리를 열심히 그리고 신이 나게 쓰다듬었다.
호우우우!
그 손길에 럭키가 기분 좋은 듯 고개를 들며 하울링을 내질렀다.
그 순간이었다.
[전쟁만을 위한 용이 당신에게 준 기회를 아직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10레벨 달성 보상을 받지 않았음을 알리는 알림이 들렸다.
“예.”
그 알림에 대답하는 미다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제 심정을 드러냈다.
이번 스킬 카드깡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공격 스킬은 충분하니, BCD타입 중 괜찮은 거 고르고 빨리 퀘스트 깨러 가자.’
지금 눈앞에 거대한 황금이 있는 상황에서는 크게 이상할 것 없는 반응이었다.
‘어차피 잘 나와야 레어일 텐데.’
그리고 솔직히 미다스의 상식 속에서 레벨업 보상으로 받는 스킬 카드로 레전더리 등급 스킬을 얻었다는 사례는 지극히 적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매주 로또에 당첨되는 당첨자 숫자가 더 많을 정도.
기대감을 가지면 그게 이상한 일일 터였다.
호우우우!
그러한 주인의 심정을 알 리 없는 럭키는 하울링을 이어가며 주인을 응원했다.
[스킬 카드를 선택하십시오.]
이윽고 미다스의 눈앞에 100장의 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그리고 미다스는 볼 수 있었다.
[폴리모프]
- 스킬 등급 : 레전더리
- 스킬 효과 : 사냥한 대상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황금으로 빛나는 전설 카드를.
7.
무법자들을 위한 세계 갓워즈.
그러나 시작의 마을은 그러한 무법 세계에 어울리지 않게 질서정연하기 그지없었다.
플레이어들은 마치 고속도로 위 자동차처럼 다른 것에는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정해진 길만을 갔으며, NPC들이 위치한 건물 앞에서는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곳곳에 배치된 탐험가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러나 딱 한 곳만큼은 탐험가 길드의 영향에서 벗어난 채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시작의 마을에서 가장 큰 3층 건물, 시작의 마을을 관리하는 촌장 융의 집이었다.
“야, 진짜 벌써 졸업하게?”
“여기 백날 있어봤자 할 것도 없어. 퀘스트 받는 것도 일일이 돈내야 하잖아? 차라리 빨리 졸업해서 밖으로 나가는 게 낫지. 어차피 이리 구르나, 저리 구르나 똑같잖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졸업시험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탐험가 길드 입장에서 딱히 관리할 필요가 없는 이유였다.
졸업을 하는 순간 플레이어들은 그대로 시작의 마을을 벗어나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며, 그렇게 떠난 플레이어는 다시는 시작의 마을에 돌아올 수 없으니까.
“빨리 들어가자.”
“어? 그냥 들어가면 돼? 차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긴 예외야. 동시에 들어가도 돼.”
더욱이 융의 집은 다른 NPC들이 있는 지역과 다르게 다수가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일종의 인스턴스 던전처럼 들어온 플레이어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었다.
즉, 탐험가 길드가 감시하거나, 관리하는 게 설정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의미.
사실 그게 당연했다.
탐험가 길드가 졸업시험마저 관리했다면 갓워즈란 게임은 아예 진행 자체가 되지 않았을 테니.
‘이렇게 만들 수 있으면 다른 NPC도 똑같이 만들지.’
그 광경 앞에서 미다스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생각처럼 만약 모든 NPC를 융처럼 만들었다면 탐험가 길드가 활개 치는 일도 없었을 터.
달리 말하면 다른 NPC들이 저렇게 관리되는 건 개발자가 의도했다는 의미였다.
‘김민수, 이 인간은 대체 이 게임을 무슨 이유로 만든 거야?’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천재의 의중이 참으로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물론 미다스는 그 사실에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끼잉······.
“럭키야, 조금만 참아.”
미다스가 지금 해야 하는 고민은 제 품속에 숨긴 럭키를 들키지 않은 채 융의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으니까.
‘괜히 주변 시선을 사서 좋을 건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시작의 마을에서 신수를 데리고 다닌다면 장담컨대 모든 유저가 달라붙을 것이다.
그리고는 ‘신수 어떻게 얻으셨어요?’, ‘나도 신수 주세요!’ ‘님 파티해주세요!’ ‘씨발 금수저 개새끼 나가서 트럭에 치여서 이세계나 가라!’ 따위 말을 지껄일 것이다.
좋을 건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탐험가 길드 애들이 달라붙을 수도 있고.’
최악은 탐험가 길드에 의심을 받는 일이었다.
만약 플레이어가 시작의 마을에서 신수를 얻었다는 게 확인되면 탐험가 길드는 시작의 마을에 엄청난 인력을 투입할 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사냥터 밖, 탐험가 라인 너머도 조사할 것이다.
말 그대로 조사였다.
몬스터를 잡고, 사냥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땅에 코를 박고 보물을 찾는 조사.
그러다가 미다스처럼 히든 던전을 발견하게 되면, 미다스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생기는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탐험가 길드라는 말도 안 되는 경쟁자가.
‘무조건 평상시처럼 간다.’
미다스에게는 오히려 탐험가 길드가 변함없이 시작의 마을을 관리해주는 게 베스트 시나리오인 셈.
‘평상시처럼.’
그 의지와 함께 천쪼가리를 덮은 럭키를 가슴에 숨긴 채 미다스가 융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한 미다스를 향해 특별한 시선을 보내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플레이어들은 다른 플레이어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미다스의 심정은 달랐다.
‘미치겠다.’
마치 세상 모두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사실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끼잉······.
품에 꼭 숨긴 럭키의 신음 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치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자연스레 신경이 곤두섰고, 주변의 소리에 민감해졌다.
“야, 그거 들었어? 선 밖에서 PK가 있었데.”
“PK? 양민 학살자 새끼들이 플레이어 사냥하려고 우글거리는 곳에서 선 밖에서는 일상이잖아?”
“그게 말이야, 그 양민 학살자가 학살당했다네?”
“뭐?”
그때 플레이어들의 대화가 미다스의 고막을 두드렸다.
“양민 학살자가?”
“어, 그것도 1대3으로.”
“1대3? 양민학살자 하나를 3명이 잡았다는 거야?”
“아니, 그 반대.”
“미친, 그게 말이 돼?”
“나도 들은 거야. 여하튼 내용은 이래. 3인 파티가 선 밖에서 사냥 중에 양민 학살자 파티에 당하는데, 누군가 등장하더니 그 양민 학살자를 역관광한 거지.”
“아니, 왜?”
“이야기 들어보니까 라이브 방송 중이었데. 양민 학살자 잡는 거 방송한 거지.”
“아, 그건 이해가 되네. 그래서 방송 이름이 뭔데?”
“BJ대마도사였든가?”
미다스, 그의 이야기였다.
‘소문 퍼졌구나.’
아무래도 그때 사일러 일행을 잡은 일이 소문이 되어 퍼지는 모양.
목격자가 있었으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BJ대마도사라고?”
“응, 직업이 대마도사인 모양이야. 불하고 얼음 마법을 동시에 썼다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였기에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 역시 특별할 건 없었다.
“씨발 금수저 새끼가 돈지랄로 대마도사 직업 얻고 방송하는 모양이네. 여하튼 좆같은 게임이라니까. 돈 많은 놈들은 돈지랄해서 희귀 직업 얻고, 방송해서 돈 벌고.”
“그래, 개좆같은 새끼지. 죽창을 꽂아야 해.”
“장담하는데 조만간 그 새끼 라이브 도중에 죽창 맞는다.”
이어진 대화 내용 역시 특별할 건 없었다.
갓워즈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내용.
‘······라이브 방송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미다스 입장에서는 등골이 오싹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미다스가 융의 집 앞에 도착했다.
8.
쿵!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플레이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융의 집에 들어왔습니다.]
[이 공간은 격리된 공간입니다. 로그아웃 시에 융의 집 밖에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내 플레이어를 반기는 알림을 들은 후에야 플레이어, 미다스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휴.”
그 한숨과 함께 미다스는 품에 숨기고 있던 럭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왕! 왕! 왕!
럭키가 참은 소리를 신명나게 토해냈다.
“소란스러운 손님이군.”
그때 중후한 목소리가 미다스의 귀에 꽂혔다.
집이라기보다는 무기 상점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벽면에 온갖 종류의 무기로 도배된 1층의 공간, 그 공간의 주인인 NPC융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와 함께 등장한 NPC융은 마을 촌장이라기보다는 은퇴한 영웅과 같은 모습이었다.
몸은 단련된 흔적이 역력했고, 무엇보다 사각형 모양의 얼굴에는 강인함이 가득 해 있었다.
그런 NPC융이 미다스를 향해 질문했다.
“그래서 네 녀석도 마을을 졸업하고 싶은 건가?”
모든 플레이어들이 예, 라고 대답했던 질문.
5년 전 미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곳에서 융의 질문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예, 라고 대답을 지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름 없는 신의 흔적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미다스, 그가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한 대답은 굳이 필요 없었다.
‘오케이, 퀘스트 떴다.’
융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던 물음표가 보이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