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6화. 함 해보입시더 (2).
4.
갓워즈의 별과 같은 콘텐츠, 보스 몬스터 레이드.
그런 보스 몬스터 레이드가 어려운 이유는 간단했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1대1로 버틸 수 있는 플레이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1백 명이 덤비든, 1천 명이 덤비든 누구 한 명은 보스 몬스터를 1대1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서 어그로를 관리하는 이들이 가장 많은 몸값을 받는 이유였다.
크르르!
챔피언 고블린도 마찬가지였다.
160센티미터의 신장, 고블린이라기보다는 사람에 가까운 체격에 가죽으로 된 갑옷을 두르고 원시인이 나무로 만든 법한 가면을 쓴 놈은 10레벨 플레이어가 어찌 해서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챔피언 고블린랑 맞짱 뜨면 난 컵라면 익는 시간 동안도 못 버틴다.’
미다스, 그는 자신이 챔피언 고블린의 손아귀에 잡히는 순간 3분 안에 게임오버를 당한다는 사실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을 정도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미다스는 도망쳤다.
‘하지만 이렇게 도망만 쳐서는 사냥 자체가 성립되지 않지.’
그러나 제아무리 잘 맞추는 재주를 가진 미다스라고 해도 자기보다 근력과 체력 스탯이 우수한 챔피언 고블린으로부터 유유자적 도망치면서 마법이나 짱돌을 명중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
이대로 도망치기만 하는 건 답이 아니었다.
‘필요한 건 시간이다.’
미다스가 지금까지 준비한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자신이 표적을 상대로 무언가를 던질 시간을 벌기 위한 것들.
‘왔다!’
그런 미다스의 눈에 X자 표시가 긁힌 나무기둥 하나가 들어왔고, 그것을 보는 순간 미다스는 보폭을 달리했다.
그의 보폭이 물웅덩이를 건너뛰듯 좀 더 커진 채로 그대로 땅 위를 지나갔다.
“뛰어!”
왕!
럭키 역시 미다스의 외침에 미다스가 넘어간 곳을 크게 점프하며 도약했다.
끄르르!
하지만 챔피언 고블린에게는 그럴 의지는 없었다.
놈은 미다스와 럭키가 밟지 않은 곳을 그대로 밟았다.
푸홧!
그 순간 땅이 꺼지면서 챔피언 고블린의 몸뚱이의 절반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크으!
챔피언 고블린의 입에서 나오던 소리가 비틀렸다.
챔피언 고블린이 함정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함정은 매우 조잡했다.
챔피언 고블린이 힘 좀 쓰면 금방 탈출할 수 있을 정도.
크으!
당연히 챔피언 고블린은 그대로 함정을 나오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 위에서 나무로 만든 통 하나가 그대로 추락했다.
파악!
추락한 나무통은 그대로 고블린 머리와 부딪치며 산산조각이 났다.
자연스레 그 안에 있던 것이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를, 가면을 쓴 머리를 흥건하게 적셨다.
퍼엉!
그때 미다스가 던진 파이어볼이 그대로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통에 적중했다.
화르르!
삽시간에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통이 불길에 휩싸였다.
나무통에 담긴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기름.
‘1콤보 성공!’
이게 미다스의 노림수였다.
그는 곳곳에 챔피언 고블린의 발목을 잡기 위한 함정을 설치해두었다.
목표는 표현 그대로 발목을 잡는 것.
오래 잡을 필요도 없었다.
‘3초면 충분하지.’
참담하게 실패했지만 그래도 프로의 무대에서 투수로 뛰었던 미다스다.
‘이래 봬도 내가 대도 킬러였어. 도루 시도하는 새끼들 잡아버리는 대도 킬러.’
공을 던지는 게 느리면 도루를 당하는 마운드, 그 마운드 위에서 빠르게 공을 던지는 법도 충분히 몸에 익어 있었다.
‘······그 후에 코치한테 주자를 내보내지 않으면 그런 지랄할 필요가 없다고 한소리 듣긴 했지만.’
더욱이 주자를 내보내지 않는 날보다 내보내는 날이 많았기에 더더욱 몸에 잘 익어 있었다.
심지어 눈치도 빨랐다.
크르, 크르르!
땅에 몸이 반절 박힌 채로 머리가 불에 휩싸인 챔피언 고블린이 빠져나오는 것보다 머리의 불길을 끄려고 행동을 우선하는 것을 보는 순간 미다스의 눈빛이 빛났다.
‘요 새끼, 걸렸다!’
미다스 입장에서는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 셈.
그때를 대비해서 미다스는 당연히 준비를 했다.
쉭!
미다스가 손을 뻗자, 근처에 미리 준비해둔 짱돌 하나가, 아주 야구공처럼 생겨서 던지기 좋은 놈 하나가 그대로 미다스의 손에 잡혔고 미다스는 그 순간 다시 한 번 공을 던졌다.
빠악!
오버핸드, 그 깔끔한 투구폼에서 나온 공이 멋진 호선을 그리며 그대로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통에 꽂혔다.
크르!
그 공격에 챔피언 고블린이 비명을 냈다.
물론 그 비명으로 챔피언 고블린의 의중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
그리고 미다스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빨간불!’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 위에 뜬 빨간 불빛이 지금 놈의 상태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여주었으니까.
“럭키야, 튀자!”
왕!
그 순간 미다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럭키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아!
그사이 단숨에 함정에 박힌 제 몸 반절을 끄집어낸 챔피언 고블린이 도망치는 미다스를 쫓기 시작했다.
크아아!
제 머리에 남아있는 불길을 끌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달리는 챔피언 고블린의 눈에는 미다스만 보일 뿐, 그 외에는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이 빠진 함정, 그로부터 5미터 앞에 놓인 또 다른 함정을 볼 주변머리 따위도 없었다.
푸홧!
그렇게 다시 한 번 챔피언 고블린의 몸뚱이가 땅에 꽂혔고, 빠악! 다시 한 번 챔피언 고블린의 머리 위에서 나무통이 떨어졌다.
떨어진 그 나무통은 조각나며 안에 있던 기름이 이번에는 챔피언 고블린의 몸을 흠뻑 적셨다.
이번에는 굳이 불길을 더할 필요도 없었다.
화르르!
잔불들이 챔피언 고블린의 몸뚱이 곳곳에 불길이 번졌으니까.
퍼엉!
물론 미다스는 그런 챔피언 고블린에게 조금의 망설임 없이 파이어볼을 날렸다.
‘두 번 머겅!’
퍼엉!
그 후에 낌새를 살핀 후에 여유가 있음을 확인한 미다스가 재차 파이어볼을 던졌다.
빠악!
그다음에는 연달아 짱돌을 던졌다.
연속 공격이 먹히는 순간.
그러나 반대로 미다스는 조금도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이 정도 공격을 했는데도 HP 다는 거 봐.’
보스 몬스터의 HP는 일반 몬스터와 수준 자체가 달랐다.
애초에 고작 이 정도 공격으로 가시적인 데미지 딜링을 할 수 있었다면 보스 몬스터 레이드가 어렵다는 소리는 조금도 나오지 않았을 터.
‘저런 걸 초보자 잡으라고 만들다니.’
실제로 연달아 공격을 날렸음에도 챔피언 고블린의 HP상태는 처음과 비교해서 그렇게까지 큰 차이를 보이진 않고 있음이 두 눈에 분명하게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게 미다스가 챔피언 고블린 사냥을 확신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였다.
‘앞으로 최소 열 번은 더 해야지 2페이즈로 넘어가겠어.’
고지가 얼마 남았는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이 명확하게 보인다는 것.
그것이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서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미다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못할 건 없지.’
미다스, 그의 가슴 속에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자신감을 깃들기 시작했다.
“럭키!”
그 자신감을 품은 채 미다스가 럭키를 향해 소리쳤다.
“튀자!”
왕!
그리고 다시 미다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럭키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어어!
그 모습에 챔피언 고블린이 조금 전 보다 분노가 더 가득한 소리를 내지르며 땅에서 올라와 미다스를 쫓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푸홧!
그 순간 두 번째 함정 바로 앞에 파인 세 번째 함정이 챔피언 고블린을 다시 한 번 집어삼켰고, 어느새 등을 돌린 미다스가 파이어볼 한 덩이를 챔피언 고블린에게 던졌다.
퍼엉!
그렇게 파이어볼을 맞추는 미다스의 얼굴에는 확신이 있었다.
‘원래 같은 전략에는 세 번 당하는 법! 걸릴 줄 알았다!’
5.
보스 몬스터 레이드, 갓워즈에서 플레이어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콘텐츠.
어설픈 준비와 실력으로는 쉬이 도전조차 할 수 없는 콘텐츠.
때문에 보스 몬스터에 대한 공략은 갓워즈의 그 어떤 것보다 세밀했다.
최상위 레벨 플레이어들이 사냥하는 보스 몬스터들이야 대부분 데이터가 적으니 공략법이랄 게 없지만, 레벨이 낮은 구간의 보스 몬스터들의 경우에는 공략법이 분명 존재했다.
챔피언 고블린도 마찬가지였다.
“챔피언 고블린의 페이즈는 총 3개.”
“HP가 70퍼센트 이하가 2페이즈가 발동하면서 방어력이 10퍼센트 감소하는 대신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가 20퍼센트 증가해. 잘 염두에 두어야 해.”
“HP가 30퍼센트 이하가 되면 3페이즈 발동, 이때는 모든 능력치가 20퍼센트 증가하고, 자신에게 가장 많은 데미지를 준 타깃만을 최우선으로 쫓아. 원거리 딜러를 잘 지켜야 해.”
페이즈 숫자, 페이즈 구간, 페이즈에 따른 변화까지.
사실상 답은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챔피언 고블린 사냥에 나서는 파티들 중에 사냥에 실패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집중력 잃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이 작업을 실수 없이 끝까지 반복해야 해.”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것.
미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중력의 한계는 분명히 온다.’
그는 자신의 한계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주제파악, 미다스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 였으니까.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서면 실수는 생길 수밖에 없어.’
그래서 오히려 철저하게 계산을 했다.
로그아웃을 한 상태에서 소파에 앉아서 수건을 덮은 채 하던 것도 바로 그 계산이었다.
과연 자신이 한계에 도달하기 전까지 원하는 목표를 실수 없이 달성할 수 있을까?
‘내 계산상으로는 할 수 있었다.’
그때 미다스는 할 수 있다고 답을 내렸다.
‘하지만 그건 프로야구선수 때도 마찬가지였지.’
물론 프로야구선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야구선수 정현우 역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그에 대해 현실은 말했다.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개박살이 났지.’
넌 틀렸다고.
네 확신은 그저 망상일 따름이라고.
‘뭘 하든 그랬어.’
그 후에도 현실은 거듭 미다스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미다스의 확신은 망상이었고, 그의 선택은 결국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가 됐다.
‘이제까지 내 인생은 언제나 그랬어.’
그런 인생이었다.
‘이제까지는.’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미다스는 처음으로 자신의 확신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았다.
크아아!
거듭된 미다스와의 추격전 속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챔피언 고블린.
‘이 장면을 봤다.’
미다스가 수건을 덮은 채 상상했던 그대로의 장면이었다.
‘계획대로 3페이즈에 돌입했어.’
실수 없이 챔피언 고블린을 함정으로 유인하고, 그렇게 번 시간 동안 공격을 해 데미지를 누적시킴으로써, 놈의 HP를 30퍼센트 이하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집중력은 한계.’
물론 달리 말하면 미다스의 집중력은 소모됐다는 의미.
이제까지 처럼 완벽하게 계획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허나, 그 역시 당연히 예상한 바였다.
‘뭐, 더 이상 공격할 필요는 없지.’
대처법 역시 당연히 마련해두었다.
아니, 대처법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챔피언 고블린에 대한 정보는 이미 인터넷으로 찾아도 나올 정도로 뻔히 나와 있었다.
놈의 HP가 30퍼센트 이하가 되면 3페이즈에 돌입하며 이 경우 챔피언 고블린은 자신에게 가장 많은 데미지를 준 대상만을 무조건 쫓는다.
그러니 이제부터 챔피언 고블린은 그 어떤 공세 속에서도, 심지어 온몸이 불에 타더라도 미다스를 쫓을 것이다.
“럭키야.”
즉, 이제부터 럭키가 챔피언 고블린에게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
“너만 믿는다.”
호우우우!
그러한 미다스의 말에 럭키가 기다렸다는 하울링을 길게 내뱉었다.
6.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위대한 야구선수 요기 베라의 말.
미다스는 솔직히 그 말이 마음에 와닿은 적이 없었다.
‘다 있는 놈들 이야기지. 쥐뿔도 없는 놈들에게는 끝장을 볼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고.’
본인이 끝장을 보고 싶다고 해도 대부분은 그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까.
‘그전에 강판당하지.’
야구선수도 그랬다.
차라리 정신이 나갈 정도로 타자들에게 맞고, 점수를 내주었다면 깔끔하게 야구를 접었을 텐데 그 전에 감독은 그를 강판했다.
갓워즈를 시작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투입된 미다스는 그저 부품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 하나 오롯이 제 힘으로 시작을 열고 끝을 맺은 적이 없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게 마음에 와닿을 만큼 끝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챔피언 고블린과의 전투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끝이 해피 엔딩이든 배드 엔딩이든 간에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하는 무대였으니까.
이제까지 미다스가 경험해 본 적 없는 무대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 끝을 봤다.
쓰러진 챔피언 고블린.
호우우우!
그 고블린 위에서 피범벅이 된 주둥이를 나팔처럼 하늘을 향해 내민 채 하울링을 내뱉는 럭키.
[챔피언 고블린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사냥이 끝냈음을 알려주는 알림.
그 알림에 미다스는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두 눈은 질끈 감은 채 하늘을 향해 외쳤다.
“으아아아!”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인 무언의 울분을, 처음으로 끝을 보았다는 사실에 대한 환호를 터뜨렸다.
그런 미다스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타이틀 ‘챔피언 고블린 사냥꾼’을 달성했습니다.]
“으아아아! 끄아아아!”
타이틀 획득을 알리는 알림 앞에서도 미다스는 듣지 못한 듯 평생 쌓아온 것을 토해냈다.
아니, 솔직히 들었다.
들었으나 미다스에게는 그것보다는 지금 이 가슴 속 것들을 터뜨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감정만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증거였고 때문에 미다스는 들리는 것을 무시하고자 했다.
[타이틀 ‘초보 졸업’을 달성했습니다.]
[타이틀 ‘신수와 함께’를 달성했습니다.]
[타이틀 ‘챔피언 고블린을 혼자 잡은 자’를 달성했습니다.]
[전쟁만을 위한 용이 당신의 훌륭한 승리에 기회를 줍니다.]
“······아? 잠깐.”
‘뭐가 이렇게 많아?’
그러나 무시하기에는 알림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