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5화. 럭키 (3).
7.
갓워즈의 직업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전사 클래스만 하더라도 검, 창, 망치, 방패 등 무기에 따라 나누어져 있을 정도.
여기에 전사, 투사, 기사, 성기사, 암흑기사까지······ 갓워즈의 직업이 넘치는 이유였다.
이런 설정에 대해 일부는 이렇게 말했다.
“갓워즈가 카드깡으로 돈을 벌려고 아주 지랄을 하네.”
갓워즈 특유의 캐릭터 선택 시스템, 그 시스템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직업을 세분화한 것이라고.
하지만 갓워즈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진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다.
사실 그게 정상이었다.
그냥 게임이라면 게임 내 캐릭터가 검을 들든, 창을 들든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게임 패드를 누르면 자동으로 공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가상현실게임은 달랐다.
검으로 최고 실력자인 플레이어에게 창을 주면 본래 가진 전력의 몇 퍼센트를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직업이 여러 상황에 따라 세분화되는 것이 당연했다.
마법사 클래스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사 클래스의 경우에는 큰 틀에서 네 개로 나누어졌다.
공격(Attack), 버프(Buff), 소환(Creature)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종류의 것(Different)들.
일명 ABCD.
이 안에서도 속성 그리고 타입에 따라 다시 한 번 카테고리가 나누어져 있었다.
[염력]
- 스킬 랭크 : F
- 스킬 효과 : 염력으로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
‘염력.’
지금 미다스의 눈앞에 등장한 염력의 경우에는 D타입으로 분류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D타입으로 분류된 이유였다.
‘와, 염력술사 스킬들은 진짜 희귀 스킬인데.’
보기 드문 것들, 그러한 것들은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기 힘들기에 D타입으로 크게 묶은 것이었다.
‘그것도 염력이 나올 줄이야.’
더욱이 염력 스킬의 경우에는 그 효용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물론 스킬 랭크가 낮고, 지력과 마력 능력이 떨어지면 움직일 수 있는 물리력은 별로 대수로울 게 없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무거운 돌멩이 정도는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무기 회수에 이만한 게 없었지.’
치열한 전투 속에서 투척용 무기를 회수하는 데는 제격의 능력인 셈.
실제로 염력 스킬은 보조 스킬로 많은 길드나 게임 컴퍼니에서 환영을 받았다.
갓워즈의 설정에 따르면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소유할 때는 빼앗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플레이어가 아이템 소유를 포기하는 경우에는 소유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착용하는 방어구의 경우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
문제는 플레이어가 자의적으로 아이템을 놓아버리는 순간.
예를 들면 아이템을 투척하거나 혹은 몬스터의 몸뚱이에 아이템이 꽂힌 상태에서 그 아이템을 놓는 경우.
그 경우에도 갓워즈 시스템은 아이템 소유를 포기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러한 갓워즈의 설정 속에서 치열한 전투 도중에 전장에 무기를 놓친 이들을 보조하기에는 염력만한 스킬이 없었다.
하물며 그 아이템이 레전더리 등급이라면?
무기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했으며, 그 외에 소모 아이템 역시 실시간으로 전달이 가능했다.
‘염력 스킬 랭크랑 레벨만 갖추고 아이템만 전달해주고 받는 돈이 내가 목숨 걸고 싸우는 돈보다 많았지.’
희귀하면서 효용 가치는 제법 높으니 몸값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가드도 붙고.’
무엇보다 그런 염력술사들은 희귀한 만큼 전장에서 게임 오버 당하지 않게 관리도 받았다.
공사판으로 따지면 미다스 같은 마법사는 그냥 직업소개소에서 데려온 일용직 노동자들이지만, 염력술사들은 포크레인을 다룰 줄 아는 기술직인 셈.
신분 자체가 달랐다.
‘그거 보고 나도 염력술사 키울까, 정말 고민했었지.’
때문에 과거 미다스는 염력술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해보고는 했다.
그게 그 무렵에 미다스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이기도 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아는 법.
대마도사 같은 선택 받은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얻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달리 말하면 미다스는 나름 염력이란 스킬을 가졌을 때를 가정하고 많은 상상을 해봤다.
‘염력술사가 되면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
전투 방법도 상상해 보았다.
‘사냥감을 묶는데에 염력만한 게 없지.’
줄을 뱀처럼 움직인 후에 몬스터의 발을 묶는다면?
‘도망치거나 추격해오는 놈들 발목 잡기에도 좋고.’
혹은 도망치거나 요리조리 움직이는 몬스터의 이동을 조금이라도 방해한다면?
‘도망칠 때 일부러 다른 곳에 소리를 내서 시선을 끄는 것도 좋고.’
또는 숨죽인 상태에서 몬스터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을 터.
‘다른 플레이어가 땅에 떨어뜨린 아이템 훔치는 것도 좋겠네.’
소소하기 그지없는 사용법.
하지만 미다스에게는 그게 현실이었다.
‘염력으로 레어템 하나 꽁으로 먹으면······ 그날은 삼겹살 사다가 먹어야지.’
소소함, 그게 미다스가 원하는 전부였다.
‘자, 그럼 청심환도 먹었겠다 제대로 시작해볼까?’
그런 소소함을 얻기 위해 미다스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럭키야, 가자.”
왕!
“선 한 번 넘어보자.”
왕왕!
미다스, 그가 선을 넘었다.
8.
갓워즈에는 탐험가 라인이란 표현이 있다.
그 표현의 정체는 다름 아니라 탐험가 길드, 그들이 필드에 그은 선이었다.
그 선 안에서는 탐험가 길드의 규칙이 적용됐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그 선 안에서는 탐험가 길드의 말이 곧 법이었다.
봉이 김선달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말도 안 되는 짓.
그러나 의외로 갓워즈의 플레이어들은 그런 탐험가 라인 안에서 사냥을 즐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탐험가 길드가 있는 게 낫지.”
탐험가 길드는 자신들이 지정한 선 안에서 자신들의 허락 없이 몰이 사냥 금지, PK금지, 의도적인 몬스터 스틸 금지, 아이템 강탈을 금지했다.
즉, 탐험가 라인 안에서는 충분히 상호 협력적인 사냥이 가능했다.
“아무렴. 탐험가 길드 없었을 때는 아주 그냥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면서?”
실제로 과거 탐험가 길드가 이토록 세가 크지 않았을 때, 갓워즈 초창기에 사냥터에서는 몬스터를 싸우는 일보다 플레이어와 싸우는 경우가 훨씬 많았었다.
특히 초보자들에 대한 공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개판이 아니라 도축장이었지.”
아예 뉴비 도살자라는 초보자들을 학살하는 것을 콘텐츠로 삼은 길드를 만들고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있었다.
“희귀한 클래스 얻은 게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죽이는 또라이 새끼들이 그걸 자랑하고 다녔으니까.”
특히 운이 좋은 자들, 특별한 행운을 얻은 자들에 대한 공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다른 이들도 그걸 방관했지.”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주변인들이 개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방관자가 되어 행운의 소유자가 나락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속으로 미소 지을 뿐.
그야말로 아귀지옥과도 같은 무대.
그래서 오히려 탐험가 길드가 사냥터 통제를 들어갔을 때 일반 플레이어들은 그 사실을 환영했다.
처음에는 돈을 받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플레이어들이 수고했다고 기부금을 냈을 정도.
어쨌거나 그러한 상황은 5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후에 갓워즈의 절대 규칙 중 하나가 되었다.
모두가 탐험가 라인 안에서는 그들이 정한 규칙을 지켰다.
달리 말하면 그 탐험가 라인 밖에서는 그 규칙을 완벽하게 어기는 행위가 이루어졌다.
몬스터 몰이, 이유도 없는 묻지 마 PK, 아이템 강탈, 몬스터 스틸.
시작의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선 너머는 보통이 아니구나.’
탐험가 라인 밖, 소위 선 너머라고 불리는 영역은 이제까지 미다스가 사냥한 무대와 달랐다.
끼이, 끼이!
끼이이!
일단 고블린들이 최소 세 마리 이상 무리를 짓고 다녔다.
개중에는 무려 열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한곳에 뭉쳐 있는 경우도 존재했다.
‘어떤 놈이 몰이 사냥을 하다 뒈진 모양이네.’
몰이 사냥에 실패한 흔적이었다.
몬스터들을 좀 더 빨리 잡기 위해 무리해서 몰이를 했으나 오히려 그 무리에 잡아먹힌 흔적.
탐험가 길드가 몰이 사냥을 금지하는 이유였다.
저런 식으로 몰이 사냥을 하고 나면 몬스터가 다수 모이게 되고, 그러한 무리를 일반 플레이어들은 처리할 수 없게 되니까.
‘확실히 자기 주제를 모르는 놈이 많다니까.’
더욱이 갓워즈는 일반적인 게임과 전혀 달랐다.
일반적인 게임처럼 몬스터를 모으면 그저 단순히 머릿수만 늘어나는 게 아니었다.
난이도가 차원이 달라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전투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때문에 숙련된 플레이어들은 절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몰이 사냥을 하지 않았다.
‘일단 무시하자.’
물론 제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미다스는 열 마리나 되는 고블린 무리에 집착하지 않았다.
‘죄다 잡템 뿐이고.’
속 빈 강정들을 잡기 위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쟤들 말고도 잡을 건 많으니까.’
무엇보다 굳이 저 고블린 무리가 아니더라도 필드에는 고블린 무리가 넘쳤다.
이게 선을 넘지 않는 이유이자, 반대로 선을 넘는 이유였다.
탐험가 라인 밖은 몬스터 사냥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에 그 개체수도 훨씬 많았다.
리스크와 메리트, 그 두 가지가 존재하는 셈.
이제까지 미다스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편이었다.
주제를 잘 알았으니까.
자신에게는 만화 속, 영화 속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처럼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세 마리.’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제 그에게는 능력이 있었다.
‘오케이, 일단 몸풀기부터 가보자.’
9.
빠각!
전투의 시작은 기름 포션병이 깨지는 소리였다.
끼이?
끼이!
그 소리에 무리 짓고 있던 세 마리의 고블린들이 반사적으로 기름 포션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퍼엉!
그 순간 고개를 돌린 정반대 방향에서 불덩이 하나가 날아와 기름 포션으로 머리를 적신 고블린의 얼굴을 휘감았다.
끼이이!
불덩이에 맞은 고블린이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에 달라붙은 불을 끄기 위해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다른 두 마리의 고블린은 명명백백하게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끼이!
끼에!
그리고는 앙칼진 소리를 내뱉으며 불덩이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끼익!
그 순간 고블린 한 마리의 몸뚱이가 그대로 거꾸로 뒤집어진 채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의문을 토해내는 고블린의 발목에는 줄이 묶여 있었다.
‘오케이.’
그 줄은 나뭇가지를 지나 미다스의 손에 잡혀 있었다.
“럭키!”
그런 미다스가 럭키를 외쳤고, 그 외침에 납작 엎드린 채 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럭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왕!
앙증맞은 울음 소리.
그러나 등장과 함께 단숨에 고블린의 목덜미를 한 움큼 물어뜯는 럭키의 모습은 전혀 앙증맞지 않았다.
크르르!
이후 핏물을 머금은 채 끓는 소리를 내는 럭키의 모습은 어느새 맹수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끼이끼이!
그 맹수를 마주한 고블린의 모든 감각이 오로지 그곳만을 향하는 건 당연했다.
뻐억!
그 순간 어느새 접근한 미다스가 몽둥이로 고블린의 뒤통수를 완벽하게 가격했다.
‘하나부터 확실하게 해치운다.’
현재 두 마리의 고블린은 여러 이유로 전투 불가 상태.
그런 상태에서 굳이 전투가 불가능한 놈을 잡기 위해 애쓸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하나를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
더불어 이 방법은 막연히 머릿속으로 만든 방법 따위가 아니었다.
‘이 방법이 제일 좋았어.’
벌써 열여덟 번이나 되는 전투를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미다스가 내놓은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
달리 말하면 쉰하고도 한 마리째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세 마리의 고블린을 순서대로 전부 잡는 순간 미다스의 귓속으로 성장을 알리는 알림이 들렸다.
‘아.’
그 알림에 미다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자신이 처음 캐릭터를 키울 때의 기억이었다.
시작의 마을, 그곳에서 미다스는 꽤 빨리 성장하는 케이스였다.
전직 야구 선수라는 타이틀을 앞세워서 나름 실력 좋은 플레이어들과 사냥을 했고, 덕분에 빠른 레벨업이 가능했다.
‘비교가 안 되네.’
그러나 지금 미다스의 레벨업 속도는 그때의 성장을 아등바등한 것으로 치부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대단했다.
호우우!
그런 주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럭키가 미다스 옆에 다가와 하울링으로 주인의 레벨업을 축하해주었다.
그 사실에 미다스가 미소를 지으며 럭키를 쓰다듬어줬다.
헥헥!
미다스의 손길에 럭키가 배를 내밀며 있는 힘껏 애교를 부렸다.
“네가 복덩이다, 복덩이.”
그 모습에 미다스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럭키를 얻은 게 진짜 럭키였어.’
솔직히 말해서 럭키가 없었다면 이런 식의 사냥은 시도는 커녕 꿈도 꾸지 않았을 터.
아니, 혹여 꿈을 꾸더라도 악몽 취급을 했을 것이다.
‘럭키 없이 이곳에 들어왔으면 지금쯤 휴게소에서 씨발씨발 거리고 있겠지.’
미다스 혼자서는 선 밖의 세상에서 제대로 버틸 수 있을 리 만무, 그런 그에게 선 밖의 세상에서 사냥을 하는 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으니까.
미다스가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는 럭키를 한없이 인자한 미소로 바라보는 이유였다.
“럭키다, 럭키.”
그때였다.
‘응?’
미다스의 시야가 갑자기 붉게 깜빡였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인지했다는 사실이 도리어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로 짧은 순간.
‘뭐야?’
어쨌거나 미다스는 그 사실을 인지했고, 그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두 눈도 연거푸 껌뻑였다.
더 이상의 이상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거지?’
그러나 이 알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한 미다스의 표정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뭔가 있었어.’
게임을 하다가 이런 식으로 시야가 순간 변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
그때 미다스는 볼 수 있었다.
‘어?’
녹음이 우거진 숲, 그 녹음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 세상에 있는 숫자들을.
[챔피언 고블린 출몰까지 남은 시간 59분 55초]
“어!”
보스 몬스터 리젠 상황을 알리는 알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