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1화. 운수 좋은 날 (3).
6.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 1은 넘쳐나지만 1+1을 만들어줄 +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그러한 +들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꾼다.>
김민수, 그가 바로 플러스였다.
애초에 그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어릴 때부터 상식 이상의 무언가를 가졌던 그는 20살의 나이에 다양한 가상현실프로그램을 만들었고, 30살의 나이에 완벽한 수준의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게이트 캡슐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갓워즈를 탄생시켰다.
인류가 거듭한 혁명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혁명을 혼자 힘으로 이룩한 것이다.
이후 그가 설립한 게이트 캡슐 제조 업체 플러스 컴퍼니와 갓워즈 제작사인 알파 컴퍼니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높은 기업 1위와 2위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 가치는 김민수가 불치의 병으로 32세에 운명을 달리 한 이후에 도리어 더 높아지며 인류 역사상 그 어떤 기업도 가치로 맞상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아니, 갑자기 게임 접속이 안 된다니까요. 주민등록번호에 지문까지 맞는데 대체 왜 접속이 안 된다는 겁니까? 아니, 그러니까 생체 코드가 달라서 그렇다는데 그 코드가 왜 달라집니까? 안 달라지니까 홍채니, 지문 대신 쓰는 거 아닙니까? 변호사 고용해서 법적으로 조치하라고요? 아니, 그게 무슨······ 어? 어!”
고작 동양의 작은 나라에 인간이 내뱉는 인간의 주절거림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도 될 정도.
“끊었어?”
정현우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데에는 3분 남짓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 사실에 정현우가 다시 한 번 잽싸게 재다이얼 버튼을 활성화했다.
그러나 그 버튼을 터치하진 못했다.
이미 인지했으니까.
‘젠장, 어차피 똑같은 소리 할 텐데······.’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든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똑같다는 것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애초에 지금 상황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체 코드가 바뀌다니?’
생체 코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생체 신호를 코드화 시킨 것으로 현 시대에서 가장 완벽한 자기 증명 수단이었다.
지문은 손가락이 잘리면 쓸 수 없고, 홍채는 눈알이 사라지면 쓸 수 없지만 생체 코드는 죽어서 생명 활동이 사라지지 않는 순간 팔다리가 잘리고 눈알이 사라지고 이빨이 전부 뽑혀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증명할 수 있는 수단.
현 시점에서는 제대로 위조되거나 변조된 적 없는 것이었고 때문에 모든 분야에 걸쳐 사용 중이었다.
게이트 캡슐에도 마찬가지였다.
갓워즈에 생성된 아이디에 접속하기 위한 열쇠는 생체 코드가 유일했다.
‘젠장, 나 같아도 못 믿지.’
그러한 생체 코드가 달라졌으니 어떻게 해달라는 말을 갓워즈 고객지원팀에서 정상적인 말로 받아들이면 그게 오히려 보안에 큰 문제가 있는 일일 터.
특히 갓워즈는 개인정보 보안을 그 어느 곳보다 철저히 하는 곳이었다.
랭커들의 몸값이 수백억 원을 훌쩍 넘는 시대에서 보안 문제로 그 랭커들의 캐릭터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까.
솔직히 정현우도 자신이 지금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 갑자기?’
더군다나 그의 입장에서는 하루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것이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설마?’
아니, 가늠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서, 설마?’
아주 의심 가는 요소가 없진 않았다.
‘감전?’
그 짧은 순간 무언가가 영향을 미쳤다면 그 감전 사고밖에 존재치 않을 터.
그 사실에 이르는 순간 정현우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맙소사.’
만약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지금 정현우에게 일어난 일이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정말 생체 코드가 변한 사고라는 의미.
‘아, 안 돼.’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한 사고에 대한 문제를 갓워즈를 운영하는 알파 컴퍼니가 손수 나서서 그것을 해결해줄 일은 장담컨대 1퍼센트도 없을 것이다.
진짜 그들이 한 말대로 정현우가 변호사를 고용하고 소송을 통해 권리를 찾는 수밖에.
‘말도 안 되는 짓이야.’
당장 통장 잔고가 비어가는 청년이 연쇄엽기살인마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만들어주는 플러스 컴퍼니와 알파 컴퍼니의 법무팀을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
그 아득한 사실에 정현우는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풀썩,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그렇게 주저 않는 정현우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덜덜, 제 얼굴을 감싼 그의 손이 쉴 새 없이 떨렸다.
‘아.’
주저앉는 정현우의 머릿속으로는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
절망 어린 탄식만이 흘러다닐 뿐.
그렇게 얼마나 탄식을 내뱉었을까?
우웅!
정현우의 스마트폰으로 문자 알림이 도착했다.
[레이드 세부 일정 잡혔다! 파일 첨부했어.]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정현우는 이제 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자신이 남은 일생을 바쳐 이룩한 것이 하루아침에 다시는 만질 수 없는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7.
갓워즈.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으며, 그 안에서 플레이어는 현실 이상의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곳.
“갓워즈는 현실보다 더 위대한 세계다!”
그러한 갓워즈의 세계를 놓고 무수히 많은 이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갓워즈에도 부조리함이 가득 했다.
개중 가장 큰 부조리함은 선발주자들, 이미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거대 세력들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게임 서비스 5년째에 이르러서 상위 1퍼센트 유저들은 그야말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됐으며, 사실상 그들이 갓워즈를 지배하며 갓워즈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부귀영화를 독점하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신의 자식들, 선택받은 자들이라 일컬었다.
물론 그들이 아니더라도 이미 일찍이 게임을 시작한 덕분에 남들보다 레벨이 높고, 좋은 아이템과 스킬을 확보한 자들 역시 충분한 대우와 조건을 받았다.
정현우, 그가 그래도 나름 프로 플레이어로 두 명이나 되는 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끝났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게임 캐릭터, 미다스를 제외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부 끝이야.’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비참하고, 나약하고 보잘 것 없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일반인일뿐.
‘그때처럼 모든 게 끝났어.’
더불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때처럼······.’
어깨 부상과 함께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을 때, 그때 평생을 해오던 야구를 접었다.
‘빌어먹을.’
물론 그때는 지금과 달랐다.
평생 해오던 야구를 접었음에도 기댈 곳이 있었다.
그 무렵의 형은 휠체어 신세가 아니라, 제법 잘 나가는 프로그래머였으며 결혼도 하고 형수님과 딸아이와 함께 지내며 정현우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남아 있었으니까.
그 형이 밑바닥에 추락한 정현우를 끌어올려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형.’
오히려 반대, 정현우가 모든 걸 잃으면 그에게 기대고 있는 형마저 밑바닥에 떨어지는 상황.
‘혜린이.’
그리고 그 귀여운 조카마저 같이 시궁창에 빠지는 상황.
빠득!
사고가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정현우는 이를 꽉 물었다.
그것은 표현이었다.
‘그래, 다른 선택지 따윈 없어.’
지금까지 해온 것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한다, 그러한 여유나 여력이 자신에게는 없음을 깨달았음을 보여주는 표현.
실제로 그랬다.
초중고 시절 내내는 야구만 했고, 20대 초반도 야구로 보냈으며 그 이후에는 게임으로만 5년을 보냈다.
이제는 20대 후반에 접어든 정현우가 게임마저 포기한다면 그는 그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한 자에 불과하다는 말.
무엇보다 지금 시대는 분명히 갓워즈의 시대였다.
사람들이 갓워즈를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대.
아니, 굳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갓워즈 안에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넘쳤으니까.
‘채굴꾼이라도 하자.’
채굴꾼.
갓워즈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광석, 약초 따위를 채굴하는 자들.
기계가 모든 것을 해주는 시대에서 유일하게 기계가 해줄 수 없는 일이었고, 때문에 시급이 꽤 높았다.
달리 말하면 인간을 기계 취급하는 일이었다.
‘정신이 나갈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한 달도 채 하지 못한 채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말도 안 될 정도로 힘든 일.
‘당장은 돈부터 벌어야 해.’
그 생각에 이른 정현우는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나마 캐릭터 생성권이 하나 있어서 다행이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8.
“캐릭터 새로 만드신다고요?”
“그래.”
“왜요?”
이혁주의 반문에 정현우는 굳이 자신이 지금 마주한 비참한 현실 따위는 말하지 않았다.
“게이트 캡슐이나 열어.”
그저 낮게 가라앉은 어조로 자신의 분위기가 결코 좋지 못함을 넌지시 드러낼 뿐.
“아, 예.”
그 기색에 이혁주는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때 이혁주가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캐릭터 생성 카드는 있으세요?”
그 질문에 정현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돈독 오른 새끼들.’
갓워즈는 새로운 캐릭터를 얼마든지 생성할 수 있다.
플레이어 한 명이 1억 개의 캐릭터를 생성해도 문제될 건 없다.
문제 되는 건 다름 아니라 캐릭터를 하나 만들 때 필요한 캐릭터 생성 카드가 무려 88만 원이나 한다는 것.
물론 명분은 있었다.
갓워즈는 캐릭터를 생성하기만 하면 세 달 동안 게임 이용료인 33만 원이 무료로 제공된다.
오히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굉장한 혜택인 셈.
‘캐릭터 카드로 한해에 버는 수입이 벤츠 수입보다 많지.’
문제는 원하는 직업을 고를 수 없는, 흔히 말하는 랜덤 박스 구조라는 것.
‘이거로만 수억 원 넘게 쓴 놈들도 있었지.’
좋은 직업 하나를 얻기 위해 상식을 초월하는 돈을 쓰는 이들도 적지 않을 정도.
‘랭킹 3위인 아즈모가 대마도사를 최초로 얻는데 쓴 돈이 10억 원이 넘어갔지.’
개중에서도 다섯 가지 전설 등급 직업 중 하나인 대마도사 직업을 최초로 얻기 위해 아즈모란 플레이어가 쓴 돈은 여러모로 전설이었다.
이후에도 그 대마도사 직업을 얻은 이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81명이 채 되지 않았다.
정현우 역시 그 도박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도 마법사 하나 얻는데 5백만 원이나 썼고.’
그 역시 마법사 직업을 얻기 위해 무려 5백만 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했었다.
‘그나마 행사 때라서 덜 들어갔지.’
그마저도 당시 2+1행사 덕분에 돈이 적게 들어간 셈이었다.
물론 지금 정현우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때 남은 캐릭터 생성 카드를 그냥 남겨둬서 다행이다.’
그때 남은 캐릭터 생성 카드를 쓰지 않은 덕분에 한 장이 남아있다는 것.
‘직업이야 아무렴 어때.’
그리고 이미 채굴꾼이 되고자 작심을 한 그에게 직업 따위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
“형, 준비됐어요. 11번 캡슐 들어가세요.”
그렇게 정현우가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9.
은빛 쟁반, 그 위에 올라선 정현우를 맞이한 건 새하얀 빛의 무리였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것이 가상의 공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광경.
어째서 세상 사람들이 갓워즈를 현실 이상의 세상이라 표현하는 게 이해되는 광경.
그러나 그 광경을 마주한 정현우의 표정 어디에도 놀라움 따위는 없었다.
‘볼 때마다 좃 같은 광경이야.’
이곳이 이제부터 그가 개처럼 살아가야 할 무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그러한 정현우에게 갓워즈는 물었다.
[신들의 전쟁에 참가할 것인가?]
“예.”
그 물음에 정현우는 대답했다.
그러자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이 나왔다.
[이름이 무엇인가?]
“미다스.”
그 질문에 곧바로 정현우의 눈앞에 창 하나가 떴다.
[미다스]
- 레벨 : 1
- 신좌 : 없음
- 직업 : 없음
- 능력 : 근력(5)/체력(5)/지력(5)/마력(5)
능력창이 뜨는 순간.
그 순간 곧바로 정현우의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뒷면만을 보여주는 그 카드들은 마치 벽처럼 보는 이를 답답하게 그리고 아득하게 만들었다.
[네가 모실 신을 택하라. 그리하면 신이 네게 힘을 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알림이 들렸고, 그 알림에 정현우가 대답했다.
“응?”
대답과 함께 정현우가 제 양손 모두를 주먹으로 만든 채 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보았다.
그 후에 정현우는 대답했다.
“자, 잠깐만요.”
10.
“응?”
이혁주, 캡슐방 아르바이트생인 그의 일은 별거 없었다.
캡슐 이용자들이 들어가기 전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들이 나온 후에 자리를 치우는 것.
삐!
그런 그에게 청소의 시간이 왔음을 알리는 알림은 특별할 게 없었다.
“어? 현우 형?”
그러나 그 소리가 난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몇 분 전에 캡슐에 들어간 정현우란 사실이 그를 놀라게 했다.
“왜 갑자기 나와요? 급똥이에요?”
그 물음에 정현우는 대답 대신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에 이혁주가 피식, 웃었다.
“급똥이시네.”
그러한 이혁주의 실소를 뒤로한 채 화장실에 도달한 정현우는 거울 속의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질문했다.
‘왜 카드 내용이 눈에 보이는 거지?’
정현우, 그가 자신에게 찾아온 기적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