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1화. 운수 좋은 날 (2).
3.
정현우, 그는 공부와 그다지 친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분석과 계산, 확률 같은 듣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지는 숫자놀음과 친해졌던 건 다름 아니라 그가 한국프로야구선수가 됐을 때였다.
“구속은 잘 나와야 135킬로미터. 100구 넘게 던지는 타입도 아니고, 어깨, 허리, 무릎 중에 뭐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몸뚱이. 가진 재주는 제구력 하나뿐. 너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대가리 열심히 굴려야 한다.”
처음 만난 투수코치 밑에서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고, 그때부터 그 숫자놀음을 했다.
타자를 분석하고, 그들의 모든 행동을 수치화하고 그를 통해 확률 싸움을 시작했다.
물론 그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숫자놀음은 나쁘지 않았다.
‘그때 거기서 어깨만 안 나갔어도.’
단지 그 숫자놀음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어깨란 놈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됐을 뿐.
어쨌거나 그 때문이었다.
‘그보다 내가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아, 지금 트럭이 나한테 오는구나. 이게 주마등인가? 아니, 그런데 무인 자율차 보급 이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몇 퍼센트였더라?’
지금 이 절체절명의 순간, 빗길에 균형을 잃고 도로를 벗어난 트럭이 자신을 향해 머리를 들이미는 상황 속에서도 확률 따위를 머릿속으로 가늠한 것은.
‘씨발 재수도 없지.’
더 나아가 정현우는 무인 자율 자동차가 보급화 된 이후 그 무인 차량에 의한 사망자 숫자가 1년에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보다 적다는 사실마저 떠올릴 수 있었다.
‘로또나 당첨될 것이지.’
거기까지였다.
끼이익!
트럭이 그대로 정현우를 덮쳤고, 정현우의 사고는 그 순간 멈추었다.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꽈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졌다.
그 후 지독한 적막이 깔렸다.
시간이 멈춘 듯 그리고 세상이 멈춘 듯,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광경이었다.
“헉.”
그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정현우의 막힌 숨이 뚫리는 짤막한 소리 한 줄이었다.
“사, 살았나?”
이후 정현우의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말과 함께 정현우가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자신 대신 자신 옆에 있던 전봇대를 치고 지나간 거대한 트럭의 모습과 그 트럭이 싣고 있는 트레일러가 보였다.
만약 트럭이 조금만 더 운전대를 제대로 틀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을 광경이었다.
구사일생.
그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 상황, 그 상황 속에서 정현우가 제 심정을 토해냈다.
“씨발!”
거칠기 없는 욕지거리였다.
마땅한 소리였다.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경험을 했는데 좋은 소리가 나온다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닌가?
“씨발! 우와, 우와!”
그렇게 터진 욕설은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땀구멍에서 땀도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우와, 씨발!”
정현우는 내리는 빗줄기도 잊은 채 제 모자를 벗고 머리를 적신 땀방울을 씻었다.
“하하, 으하하!”
그다음은 웃음이었다.
말과 함께 실성한 듯한 미소를 지은 정현우가 그대로 저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정현우의 머릿속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내 정현우는 이혁주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트럭에 치인 주인공이 회귀했다는 게임 판타지에 대한 대화.
“와, 회귀 당할 뻔했네.”
그때의 대화를 떠올린 정현우의 입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한 웃음소리를 내뱉는 정현우의 입가에 점차 미소가 번졌다.
‘아, 이거 보상금 나오려나? 얼마쯤 나오지?’
이 사고에 대한 위로 보상금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쁨의 미소였다.
‘생각보다 꽤 짭짤하게 나올 거 같······.’
그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무렵.
“끽!”
정현우가 그대로 쓰러졌다.
감전이었다.
4.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정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병원이 싫었다.
프로야구선수 시절에 어깨가 박살이 나면서,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던 이후 더더욱 병원이 싫어졌다.
그 후에 그 누구보다 소중했던 형과 형수님이 사고를 당한 이후 정현우에게 병원은 지옥이었다.
죽어도 가기 싫은 곳.
“으으······.”
때문에 정현우는 눈을 뜨는 순간, 천장을 보는 순간 이곳이 병원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벼, 병원? 왜?’
물론 왜 병원에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리는 부서질 듯이 아팠고, 기억은 혼란스러운 탓이었다.
“으으······.”
무엇보다 몸이, 감각이 이상했다.
‘뭐, 뭐지?’
마치 시간이 느려진 듯한 느낌.
슬로우 비디오로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그 기괴한 느낌에 정현우는 알 수 없는 혼란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자네, 일어났군.”
그러한 감각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준 건 묵직한 한 줄기의 음색이었다.
“헉!”
숨이 터질 듯한 소리를 내뱉은 정현우가 그대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눈에 한 노인이 보였다.
나이는 60대, 머리칼을 뒤로 말끔하게 넘긴 채 묵직한 뿔테 안경을 쓴 것이 교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인이었다.
이곳이 병원이니 당연히 의사일 터.
그렇기에 정현우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질문을 던졌다.
“제가 며칠 째 잠들었습니까?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되나요?”
그 물음에 노인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2034년 3월 9일일세.”
“예?”
그 순간 정현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상황을 이해한 정현우가 표정을 경악으로 바꾸며 말했다.
“자, 잠깐만요. 지금이 2034년이라고요? 2038년이 아니라?”
노인은 대답 대신 두 눈을 감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모습에 정현우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 진짜 과거로 돌아온 건가?’
과거 회귀.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상황이 정말 자신에게 일어난 것일까?
‘자, 잠깐. 그럼 어떻게 해야지? 뭐부터 해야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정현우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두근두근두근!
그러는 와중에도 이것이 천금 같은 기회임을 본능적으로 느낀 듯 심장은 거세게 요동치며 흥분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양현수 환자님!”
그러한 정현우의 혼란을 정리한 건 다름 아니라 간호사의 목소리였다.
“환자분에게 멋대로 말을 걸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어요!”
간호사의 날 선 목소리에 정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환자?’
말과 함께 정현우가 노인의 얼굴이 아닌 차림새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노인이 입고 있는 정갈하기 그지없는 환자복이 눈에 들어왔다.
끼이!
그 순간 노인과 정현우의 사이로 로봇 한 대가 끼어들었다.
쓰레기통 위에 모니터를 올려놓은 듯한 모습의 로봇, 그 로봇의 모니터에는 의사 가운을 입은 사내가 있었다.
- 정현우 환자분, 일어나셨군요.
진짜 의사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5.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길 위의 정현우의 기색은 무척 안 좋았다.
“빌어먹을 치매 노인네.”
평소라면 속으로 내뱉었을 혼잣말, 그러나 정현우는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그 혼잣말을 거침없이 소리로 내뱉었다.
여러모로 기분이 좋지 못하다는 증거.
‘진짜 일진이 왜 이래?’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트럭은 덤벼들지.’
트럭에 치일 뻔한 사고를 경험했다.
‘살았다고 하는 순간 감전 당하지.’
그 후 운 나쁘게 감전이 되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졌다.
‘거기에 미친 치매 노인네까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치매 환자에게 농락마저 당한 상황.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심지어 병원비도 본인이 납부했다.
덕분에 정현우의 계좌 잔고는 이제 네 자릿수가 된 상황.
반나절 만에 일어난 이 모든 상황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정현우가 이를 꽉 물었다.
‘내가 합의금 얼마나 뜯어내는지 두고 봐.’
이 분노를 어떤 식으로든 대가로 만들리라!
그리한 각오를 품은 채 거닐던 정현우의 걸음이 멈춘 것은 문자 그대로 건물의 숲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건물, 자그마한 유리창이 건물 벽면에 촘촘히 박혀 있는 건물들이 햇빛 한 점 들기 힘들 정도로 빼곡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곳.
정현우가 사는 임대주택단지였다.
‘이 빌어먹을 곳.’
물론 주택단지라는 느낌보다는 사육장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저렴한 집세를 명분 삼아 인간을 그냥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육장.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가진 것 없는 이들만이 사는 것이 허락되는 한국사회의 가장 밑바닥이었다.
‘어떻게든 여길 나간다.’
하루빨리 정현우가 탈출해야 하는 곳이었고, 그게 정현우가 이토록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는 이유였다.
그렇게 각오를 곱씹은 정현우가 정문을 지난 후에 231동 앞에 섰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들이 수없이 줄지어 늘어선 문 앞에 섰다.
2031호.
그 숫자를 확인한 정현우가 자신의 손바닥으로 문고리를 그대로 꾸욱 잡았다.
[등록되지 않은 생체 코드입니다.]
그러자 곧바로 알림이 들렸다.
“응?”
놀란 정현우가 자신의 손바닥을 본 후에 다시 한 번 호수를 확인했다.
‘아니, 이게 뭔 개소리야? 내 집인데?’
다시 상황을 확인한 정현우가 손바닥을 댔다.
[등록된 생체 코드가 아닙니다.]
똑같은 알림이 들렸다.
그 순간 정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동을 잘못 찾았나?’
머릿속으로 자신이 들어올 때의 주변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숲속 나무처럼 빼곡하게 자리 잡은 똑같은 형태의 아파트들이 스쳐 지나갔다.
충분히 잘못 찾아도 이상할 것 없는 광경.
끼이!
그때 문이 안쪽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삼촌!”
그 후에 7살로 보이는 귀여운 단발머리의 소녀가 밝게 소리치며 정현우를 맞이했다.
그제야 정현우도 미소를 지었다.
“어이구, 우리 혜린이 잘 있었어?”
“응!”
정혜린.
정현우의 하나밖에 없는 조카.
“아빠는?”
“여기 있다.”
그런 조카의 뒤로 정현우의 세상에 둘 밖에 남지 않은 혈육인 형, 정태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현우와 비슷한 생김새, 그러나 정현우보다 훨씬 더 잘생긴 느낌이 나는 사내였다.
두 형제를 세워두면 정현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을 정도의 기괴한 차이.
허나, 그러한 사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하나, 정태우가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
“병원 다녀왔다면서? 무슨 일 있었어?”
그러한 정태우의 걱정 어린 말에 정현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게임 폐인한테 병이 있어봐야 뭐가 있겠어? 별거 아니야.”
“어디 아픈 거냐?
제차 이어진 정태우의 말에 정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별거 아니라니까. 문제 있으면 이렇게 멀쩡히 온 게 아니라 병원에 입원했겠지.”
말을 하는 정현우의 머릿속으로는 4년 전 있던 그 날이, 참담한 날의 기억이 떠올렸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동생보다 5살 더 많다는 이유, 고작 그 이유 하나 때문에 14살에 가장이 되었던 형이, 그러한 이유로 온갖 고생을 치르며 간신히 광명을 찾았던 형이 또 다시 한 번 자신의 소중했던 것을 잃었던 기억이.
‘괜히 말할 필요는 없지.’
그 참혹한 기억을 떠올린 정현우는 굳이 형에게 자신이 경험한 하루를 말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힘든 기억으로 가득한 형의 머릿속에 악몽 한 페이지를 더 추가하지 않았다.
“그보다 저거 생체 인식 장치 고장 난 거 같은데?”
자연스레 정현우가 화두를 돌렸다.
그 말에 정태우가 동생을 지그시 바라본 후에 눈살을 찌푸린 채 대답을 했다.
“고장이 났다고? 인식이 안 돼?”
“응.”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말을 하는 정태우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전직 프로그래머로 나름 잘 나갔던 이였기에 나올 수 있는 확신이었다.
그러한 정태우의 확신에 정현우가 피식 웃었다.
“없긴 왜 없어? 기계가 고장 날 수도 있는 거지.”
“이 동네 보안 설비에 쓰인 알고리즘은 게이트 캡슐에도 사용되는 알고리즘이다. 기계 자체가 고장 나서 작동이 안 한다면 모를까, 생체 코드 인식이 됐는데 안 맞는 경우는 1백만 번의 1번 꼴에 불과해.”
1백만 번의 1번 꼴이란 구체적인 확률에 두 번이나 안 되던데? 라는 말을 내뱉으려던 정현우의 표정이 굳었다.
“잠깐.”
“왜?”
“저기 있는 게, 그러니까 우리집 현관 보안 장치가 게이트 캡슐에도 사용된다고?”
게이트 캡슐.
갓워즈에 접속할 수 있는 가상현실접속장치.
그러한 게이트 캡슐을 이용할 때는 생체 코드를 이용하게 된다.
“그래.”
당연히 생체 코드가 다르면 본인의 캐릭터에 접속할 수 없다는 의미.
그 사실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그게 이유였다.
“혀, 형, 잠깐. 잠깐만. 나 근처에 캡슐방 좀 다녀올게.”
정현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길한 상상을 하는 이유.
그리고 그러한 상상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