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303화 (1,303/1,303)

1303화 경애하는 이수혁 님 (4)

-뭐야?

-이 라이브 뭐야?

-여기 산타모니카잖아. 뭔 사고라도 났나?

-총기 난사? 이 새끼 맨날 그런 거만 찍으러 다니잖아.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이들 중 몇몇은 스트리머이기도 했다.

뭐…… 말이 스트리머이지, 평균 시청자 수 20, 30명 정도 되는 수준에 불과하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이런 상황에 라이브를 켤 수 있다면 프로가 아니겠나.

“아니, 아니. 지금 트위터에 난리 난 그 닥터 리가 해변에서 진료 중이야!”

-지랄…….

-예수님이냐? 산타모니카가 갈릴리호숫가야?

-좀 있으면 오병이어의 기적 나올 듯.

물론 시청자들은 대번에 믿거나 하진 않았다.

왜냐면 너무 황당한 일이라서 그랬다.

뭔 놈의 의사가 해변에서 진료를 한단 말인가.

해변인 척하는 진료실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 화면에 비추는 광경은 정말 산타모니카였다.

장대하게 펼쳐진 해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뒤로 자리한 작은 놀이공원까지, 완연한 평소의 산타모니카 해변 그 자체란 말이었다.

“아니, 진짜라니까?”

-그래서 그 의사가 누군데, 씹덕아. 너만 아는 얘기하지 말고 천천히 알아듣게 얘기해 봐.

-위에 놈은 지가 모르면서 지랄이네.

-지금 난리 난 거 모르냐? 웬 한국인 의사가 한국 전쟁 당시 도와준 거 갚겠다고 공짜로 후손들 치료해 준 거?

-그랬음? 아…… 지금 봤다. 미쳤네…… 그래서 저게…… 응? 진짜 같은데?

확실히 화면 가운데 잡혀 있는 사람이 동양인이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양인은 그리 드문 존재가 아니었다.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미서부는 100년 전부터 이미 동양인들의 이민 장소가 되어 왔으니까.

게다가 화면 속 동양인은 의사같이 옷을 입지도 않았다.

흰 바탕에 검은 꽃무늬가 커다랗게 박힌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흰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양말은 또 웬 처음 보는 민머리 사내 프린트가 붙어 있는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진짜 닥터 리라고. 지팡이를 봐. 진술이랑 같잖아.”

-아……. 그렇네. 저 지팡이…… 지팡이가 비싸 보인다고 하던데.

-지팡이가 비싸 보일 수도 있구나.

-그래서 지금 뭐 하는 건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수혁은 그의 시그니처 중 하나로 지팡이를 탑재하고 있었다.

지팡이가 보통 지팡이가 아니라 병원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산 녀석인데, 그 병원 사람들이라는 게 교수 아니면 안대훈과 같은 충신들이라 진짜 비싼 지팡이였던 것이 주효했다.

한 번이라도 봤으면 아, 저거 이수혁 지팡이로구만 할 정도로 특색이 있었다.

“저기! 제 말 좀!”

라이브를 시작한 스트리머가 한둘이 아니고, 또 그저 몰려드는 구경꾼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절박해 보이는 건 역시나 몸이 아픈 사람들이었다.

미국, 그중에서도 로스앤젤레스면 여유로운 도시이지만…….

의료비가 너무나 비싼 나라인 데다가 빈부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는 곳이다 보니 막상 몸이 아플 때 병원 가기가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꽤나 있기 마련이었다.

“줄! 줄을 서시오!”

“아아니, 이 사람들 이거! 줄 서라고!”

처음엔 마구잡이로 몰려들었는데, 덩치가 산만 한 사람들도 꽤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간 안 그래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서 있어야 하는 수혁이 그대로 휩쓸려서 죽을 거 같았다.

해서 이현종과 신현태 그리고 안대훈은 졸지에 질서 요원이 되었다.

삐- 삐요옹-

물론 어차피 일반인들이다 보니 그들만으로는 통제가 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말 잘 듣는 편에 속하는 한국 사람들도 아니고, 미국 사람들이지 않나.

한때 세계 최강 깡패 국가였던 영국도 쌩 까고 독립했던 나라의 후손들 아니랄까 봐 뭐 하라고 하면 일단 ‘NO’부터 외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백신 안 맞는 사람 비율이 선진국에서 제일 높겠나.

독감 백신 접종률이 70% 이상을 찍는 대한민국과는 여러모로 다른 나라다 보니 아주 난리법석이었는데…….

“뭡니까!”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공권력이 상당히 강했다.

특히나 산타모니카 해변 주변은 평일에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보니 늘 경찰들이 돌아다니는 편이었고.

그중 둘이 사이렌과 함께 다가왔다가,

“아…… 저 사람?”

“여기서 진료……? 불법…… 아니, 아닙니다. 어어, 총 내려!”

“줄, 줄이나 세우자. 나쁜 짓 하는 건 아니잖아?”

“하긴…… 여기서 약을 줄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나머지 셋 다 더불어 줄 서게 하는 데 합류하게 되었다.

“어이, 거기! 총 맞고 싶어?”

“뒤로, 뒤로 가!”

셋이서만 할 때보다는 아무래도 훨씬 나았다.

누가 미국 경찰 아니랄까 봐 한 덩치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살덩이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근육 덩어리다 보니 다들 흔적 기관처럼 남아 있던 질서 의식이 부활해서 줄을 아주 잘 서고 있었다.

“여기, 여기 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어딜 가나 예외는 늘 있기 마련이었다.

“어허!”

그렇게 튀어나온 못처럼 거슬리는 사람을 향해 경찰이 눈을 부라렸다.

보통 이쯤 되면 수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지금 손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처럼 얌전해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도리어 더 절박한 얼굴이 되어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제발 좀!”

아무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저 사람 뭔가 대단한 사연이라도 있나? 싶을 수준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줄을 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가벼운 질환의 소유자들이거나 혹은 아예 아픈 데는 없지만 그저 지금 핫한 사람과 얘기나 나누고 싶은 이들이었기에 유독 도드라졌다.

“음.”

“뭐지?”

그렇다 보니 경찰이나 이현종 등도 이젠 더 이상 그를 막무가내로 다그치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이현종은 일반인이 아니라 의사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시. 제가 먼저 볼게요.”

“아니, 저는 의사를…….”

“저도 의사예요, 아니, 내가 더 유명해 사실은.”

원래 병원이라는 곳이 그런 곳이지 않나.

흔히 줄 선 순서대로 의사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위급한 순서대로 의사를 보는 게 맞는, 어찌 보면 좀 특이한 규칙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응급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산타모니카 해변에 놀러 온 사람들이 아프면 뭐 얼마나 아플까 싶긴 하지만…….

“아무튼, 왜 그래요?”

“제 친구가…… 이상해요!”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질문부터 던졌다.

그 또한 어마어마한 실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수혁보다도 더한 경험을 보유한 사람인 만큼 슥 소리친 사람을 스캔하면서였다.

버럭버럭 소리 지를 때부터 알아보긴 했는데 역시 환자 본인이 아니라 보호자였던 모양이었다.

몸 놀리거나 말을 하는 데 있어 일말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대신이라고 하면 뭣한데,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 화면이 눈에 좀 띄었다.

트위터였는데, 이제 보니 아까 그 성기능 장애 있던 사람이 올린 것이었다.

-미쳤다…… 나 진짜로 뇌경색이래. 닥터 리 아니었으면 평생 불구 될 뻔했다…….

-성기능 불구?

-죽을래?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역시 우리 수혁이…… 대단하구만.’

아까 그게 맞았구나 싶었다.

사실 이현종도 들으면서 긴가민가하긴 했었더랬다.

성관계 후 두통은 드물지만, 그 진단명이 갖는 흥미로움 때문에라도 유명한 편이긴 했다.

하지만 대마가 그와 유사한, 그렇지만 영구적인 장애를 가질 수 있는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아예 처음 들어 봤다.

‘대마…… 이 나이에 마약류도 새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건가?’

예전 같았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 터였다.

마약 청정국인 고국을 생각하면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심히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미국 같은 나라나 마약을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단 얘기다.

하지만…….

-전국 하수 처리장에서 마약 검출

-부검 사체에서 마약류 검출 건수, 지난해에 비해 60% 이상 늘어

잠깐 생각해도 이런 기사가 순식간에 떠오를 만큼이나, 대한민국 또한 마약이 만연해져 버린 마당이었다.

얼핏 듣기로 강남에서는 꼭 클럽에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 주문을 통해 집에서조차 마약을 받아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게 뭐 아예 카더라가 아니라 아는 정신과 의사가 해 준 얘기니만큼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했다.

물론 지리적 특성상 미국과는 주로 쓰이는 마약이 좀 다르긴 하겠지만…….

‘좋지. 이 나이에 완전 새로운 공부라니, 두근두근하잖아.’

아무튼 간에 이제 대한민국에서 의사 노릇 제대로 하려면 마약류에 대해 해박해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이현종은 이런 생각을 돌리면서도 대화는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환자는 어딨어요.”

“저기…… 너무 이상해요.”

보호자의 손가락 끝에 걸린 환자를, 이현종뿐만 아니라 신현태, 안대훈도 돌아보았다.

뒤에 서 있던 경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까부터 저랬어요?”

이현종은 바로 뛰었다.

보호자를 잡아끌고서였다.

아무리 이현종이 최근에 하체 운동도 하고 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젊은이를 잡아끌고 달릴 수 있는 정도로 건장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허나 보호자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현종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기에 그랬다.

“아, 아뇨! 아까는 저렇지는 않았어요. 그냥 숨만 좀 몰아쉬고…….”

“근데 왜 저래! 전에는 저런 적 없어?”

“그…… 아뇨, 없었어요.”

“이런 망할! 이거 안 좋은데!”

이현종이 평소에 좀 이상한 모습을 보이긴 한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는 심지어 경찰한테 뒷목 잡혀서 보닛에 뺨을 문대는 등, 심각한 일도 겪긴 했지만…….

그는 의사이지 않나.

그것도 매우 우수한 의사.

심지어 그가 주로 담당하는 영역이 어 하는 순간 사람이 죽어 나가는 심장내과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더더욱 빛을 발하기 마련이었다.

“야! 들것! 911 연락하고!”

“네!”

환자는 간질 발작 중이었다.

이현종은 그런 환자에게 다가가 우선 기도부터 확보하고, 혀를 깨물지 않도록 조치하면서 신현태, 안대훈에게 각각 지시를 내렸다.

경찰들 또한 다행히 이러한 상황에 익숙하진 못해도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선가 용케 들것을 찾아 들고 와 환자 옮기는 자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좋아. 멈췄어! 환자분! 이봐! 환자 이름이 뭐야!”

“닉이요!”

“닉?”

“네.”

“이봐요, 닉!”

다행이라고 하기엔 좀 이른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계속 간질 발작이 이어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의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름을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 정신을 차리진 못했다.

“앰뷸런스는 언제 온대?”

“지금 완전 트래픽 잼인 데다가…… 여기 해변가에 이상하게 평소보다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꽤 걸릴 거 같은데…….”

안대훈의 말에 지금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해도 좋을 수혁이 끼어들었다.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 은밀하고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나 하는 생각을 모두가 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보이면서였다.

“그럼 일단 진단부터 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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