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9화 친애하는 가이드님 (4)
공교롭게도 앰뷸런스는 LA 마운트사이나로 향했다.
수혁이 마운트사이나뿐 아니라 근거리에 있는 스탠포드를 비롯한 미국 유수의 병원에서 다 노리는 사람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응급실에 있던 의사가 수혁을 알아보거나 하진 못했다.
“네? 만성 뇌경막하 출혈이라고요? 양측일 가능성도 있다고……?”
해서 웬 동양인이 하는 말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야, 잠시.”
“왜.”
응급의학과 스탭의 뒤로 다른 스탭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급실 소속은 아니고, 그냥 콜 때문에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길에 수혁을 알아본 덕이었다.
“저 사람…… 나 학회에서 본 거 같은데.”
“학회? 아……. 의사 같긴 하더라.”
“한국 의사인데…….”
“한국? 아니, 그럼 지금은 관광 중이라는 거잖아. 아, 유X버셜에서 왔지. 그럼 그냥 놀지 왜…….”
“말 좀 끝까지 들어 줄래?”
“어?”
나라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다르긴 하겠지만 보통 응급의학과 의사는 다른 과 의사들과 어느 정도 잘 지낼 필요가 있는 법이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겠지만, 응급의학과는 대개 콜해서 불러 내려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어차피 콜 안 받으면 불이익이 가는 데다가 받아야 돈을 더 잘 벌게 되다 보니 꼬장 부리는 일은 거의 없다지만…….
그런다고 이쪽에서 먼저 틱틱거릴 건 또 없지 않은가.
해서 말은 끝까지 들어 보기로 했다.
“저 사람 이수혁…… 응, 맞네. 이수혁이네.”
내려와 있던 의사가 딱히 수다쟁이가 아닌데 이러는 걸 보면 뭔가 있긴 하겠다 싶기도 해서 그랬다.
실제로 휴대폰에 막 뭘 검색하는가 싶더니 위키가 떴는데, 거기에 방금 봤던 동양인 의사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왜 한국인 의사의 문서가 영어로 적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의문을 되새길 여운도 주지 않은 채 상대가 말을 이어 나갔다.
“진짜 실력 좋더라. 강의도 잘하는데…… 들어 보니까 원격 협진? 뭐 그런 걸로 도움받은 병원이…… 아, 맞아. 우리 병원도 그렇다던데? 지금 저 사람 스카우트하려고 혈안이래, 재단에서.”
“그, 그래? 확실한 거야?”
“어. 여기 봐. 어딜 가나 환자만 보면 진료하려고 애쓴다고 쓰여 있잖아. 유X버셜에서 왔다고? 딱 맞네, 그럼.”
“아니…….”
근데 왜 위키에 성전이라는 말이 적혀 있는 거지?
이게 그냥 인물 정보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말씀을 기록한 것처럼 보이잖아.
‘잉? 위키가…… 아니잖아?’
아예 제대로 만든 독립된 사이트였다.
카테고리를 보니 간증란도 있었다.
뭔가 대단히 수상했다.
여기 들어와 있는 친구 녀석도 수상했고.
“이수혁 교수님!”
그 수상한 놈이 돌연 손을 뒤흔들면서 동양인 의사, 즉 수혁을 불렀다.
“응? 절 아세요?”
“알죠. 이번 학회 때 강의 잘 들었습니다.”
“아……. 네네. 감사합니다. 혹시 여기 근무하시는……?”
“네, 맞습니다. 이 녀석이 담당이고요.”
“네. 우선 이 환자분 빨리 CT 찍고요, NS 콜해서 수술하도록 하시죠.”
“하하. 이것참. 제가 NS입니다. 수술 미리 잡죠.”
그러더니 아직 CT도 찍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진단도 되지 않았는데 수술을 잡아 버렸다.
-MRI는 찍었어?
-응? CT에서……
-MRI도 안 찍고 어떻게 수술 계획을 정확하게 짜. 빨리 찍어, 그때 다시 부르고. 아, 이 건은 정식으로 항의할 거야.
-야……. 우리 친구…….
-친구면 업무 시간에 방해해도 되나?
지금도 이 새끼가 이 지랄 했던 게 눈에 선했다.
유도리 있게 그냥 들어가면 되는데……
자기 회진 도는 데 방해했다고 삔또 상해서 그런 건데…….
뭐 꼭 그거 아니라고 해도 예민하게 구는 놈이었다.
진짜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그랬는데…….
‘이 새끼가 어디 가서 약이라도 빨았나?’
그냥 하는 생각이 아니라 진짜 한 번쯤 진지하게 곱씹어 봐야 할 문제였다.
여긴 LA니까.
당장 병원 옆 골목만 가도 아마 약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놈 한 놈은 있을 거다.
실제로 병원 내에서, 그러니까 업무 중에 약 빨았다가 의사 면허 박탈된 놈도 있지 않던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알을 살폈는데 딱히 핏줄이 섰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눈빛이 좀 이상하긴 했다.
맑았다.
‘맑으면 보통 좋은 건데 이상하네. 느낌이 왜…… 미친놈 같지.’
한국 사람이었다면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 종류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LA 사람이다 보니 그건 무리였다.
게다가 뭔가 파악하고 넘어가기엔 시간이 무척 촉박했다.
이미 CT실로 가고 있었다, 환자가.
“처, 처방은?”
“내가 넣었어.”
“아니. 너…….”
“조용히 해, 인마. 저분 실력이 어떤지 몰라서 그래 너는.”
“아니…….”
원래 이렇게 공손하고 적극적인 친구 아니잖아…….
그냥 하던 대로 안 하니까 너무 무섭잖아…….
드르륵.
속으로 투덜거리던 순간 문이 열렸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환자 의식이…….”
“아, 네.”
도와달라는데 어쩌나, 도와야지.
해서 일단 가서 환자를 붙잡았다.
‘이상한데? 아까까지만 해도…… 의식은 명료했는데?’
그러고 보니 진짜 의식이 가라앉고 있었다.
“으…….”
팔을 휘적거리는데, 다리는 거의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하지 위약 또한 더 진행한 것 같았다.
‘진짜…… 뇌출혈인가?’
단순 척수병증이나 근골격계 질환 또한 하지 위약 정도는 충분히 동반하는 법이었다.
그 경우가 훨씬, 아예 비교도 불가할 정도로 흔하고.
특히 이 환자처럼 원래 앓고 있던 질환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응급의학과에서 일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런 류의 증상을 많이 보다 보니 수치화되진 않아도 느낌적으로 딱 흔하고 안 흔한 정도가 머릿속에 잡히는 법인데…….
그걸 비추어 봤을 때 이 환자가 수혁의 말대로 만성 뇌경막하 뇌출혈일 가능성은 5%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자, 찍습니다!”
“네!”
아까까지 그랬다는 얘기다.
지금은 머릿속에 뇌출혈 가능성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응급의학과 의사는 최선을 다해 CT 찍는 동안 환자를 붙잡고 또 살폈다.
위이잉.
다행이라는 말을 지금 이 시점에서 쓰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CT는 촬영 시간이 짧은 검사 장비다 보니 검사는 금세 끝났다.
그동안 밖에 나와 있던 수혁과 NS 의사는 대화를 나누었다.
딱히 환자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다.
“저 환자…….”
“네, 믿습니다.”
수혁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그렇듯 눈앞에 환자가 있으면 일단은 그 생각밖에 못 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박수 치듯 맞장구를 쳐 줘야 가능한 법이었다.
“아니, 저 환자…….”
“네네. 믿습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그렇다는 걸 지금 실시간으로 깨닫는 중이라고 해야 옳을 터였다.
‘뭐야, 이 사람……?’
[안대훈 흑인 버전 같은데요.]
‘너무 무서운데.’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요새는 안대훈이 전처럼 그러지는 않던데…….]
‘광신도 보존의 법칙, 뭐 이런 건가.’
[모르겠습니다. 근데 대체 어떻게 이 먼 만리타향에…….]
깨닫는 중이라는 것도 좀 이상한 말이긴 했다.
이해를 못 하는데 뭘 깨닫는단 말인가.
“아, 역시.”
해서 잠시 스턴 걸린 게임 캐릭터처럼 오도카니 서 있었더니, 그사이에 NS 의사는 넘어온 영상을 보며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게 편견일 수도 있는데…….
흑인 중에는 나이가 들면서 어딘지 모르게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괜히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모건 프리먼이 하나님역으로 나온 게 아니지 않나 하는 게 수혁의 생각이었다.
이번에도 그 편견이 강화되는 계기가 있었다.
눈앞의 NS 의사, 즉 신경외과 의사는 너무 성스러워 보였다.
그것까지만 하면 나쁠 건 없는데, 문제는 그 얼굴 그대로 수혁을 보면서 눈을 감았다는 점이었다.
‘하지 마라…….’
[이쯤 되면 수혁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망할. 의사가 아니라 교주를 했어야 하나?’
수혁의 넋두리에 바루다는 이미 교주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참았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못 참았을 텐데…….
많이 성장하지 않았나.
이젠 뭐 수혁보다도 더 인간다운 면모도 있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수혁은 너무 흔들면 역효과가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행복해지면 결과물이 더 좋아진달까?
하윤과 데이트 시작하면서도 나름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히 더 잘하고 있었다.
아니, 다행이라기보다 하윤까지 미쳐 가지고 센터 전체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고 해야 할 거 같았다.
“저는 그럼 바로 수술하러 가 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음, 네.”
수혁은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쥐흔들다가 사라져 가는 흑인 의사를 바라보다가, 이내 수술방에 따라가 보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너무 부담되지?’
[네. 저기서 더 적극적으로 되면 우리 한국 못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리고 나도 해X포터 지팡이 휘두르는 건 좀 궁금해.’
[그래요…….]
해X포터라니.
바루다는 인간이란 역시 쓸데없는 거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 수혁이 아파서 쓰러진 이후로는 휴식의 중요성에 대해 인정하게 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해X포터 지팡이를 사면 그걸로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얘기는 솔직히 바루다도 좀 혹하게 되는 사실이었다.
해서 수혁은 왔던 길 그대로 우버를 타고 돌아가 일행과 다시 한번 조우했다.
“어땠어요?”
“어떠긴, 지팡이 사서 너 기다리고 있었지.”
암만 빨리 갔다 왔다 하더라도 LA의 트래픽 잼은 끔찍한 것이다 보니 벌써 2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현종은 지팡이를 쥔 채 기다린 모양이었다.
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자에 옷까지 산 마당에 기다리다니.
“아빠…….”
“아들! 사람 살리고 온 거 맞지!”
“네, 살 거예요.”
“좋아. 너에게는 해X포터 지팡이를 주마.”
“아빠는요?”
“나? 난 볼드모트야.”
“왜…… 굳이……?”
수혁의 말에 이현종은 후후 웃었다.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자가 지을 법한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학회에서의 나는 볼드모트니까.”
“아…….”
이해가 바로 갔다.
확실히 학회에서의 이현종은 볼드모트지 않나.
‘근데 수혁아. 너도 비슷한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신현태와 안대훈은 연신 공감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수혁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애가 신나 가지고 엑스펠리아르무스! 인센디오! 윙가르디움 레디오사!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오……. 진짜로 저거…….’
[신기하다…….]
심지어 이게 주문만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지팡이를 정해진 대로 휘둘러야 대상이 움직인다는 게 매력 포인트였다.
그래 봐야 대부분 애들이 하고 있긴 한데…….
수혁과 이현종이 지팡이를 내려놓은 것은 거의 두 시간이 더 흐른 후의 일이었다.
그사이 마운트사이나 LA에서의 수술도 끝이 났고, 뒤늦게 찾아온 유X버셜 스튜디오 직원과 수술받은 본인은 집도의에게 수혁에 대한 찬송을 듣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트X터에 글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