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9화 태화가 좀 수상하지 않아? (2)
박태식 교수는 칠성과 아선뿐 아니라 자기 입김이 닿을 만한 거의 모든 병원에 연락을 싹 돌렸다.
그렇게 부탁을 받은 과장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상한 새끼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어려운 환자 보는 거…….
물론 맨날 똑같아 보이는 환자만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환자를 보고 싶어지냐고 하면……..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고 하는 게 맞았다.
도전적인 느낌을 받게 되지만, 그러다가 예후가 안 좋기라도 하면 마음도 확 안 좋아지기에 그랬다.
‘뭐……. 나쁠 거 없지.’
허나 대부분 여기서 끝이었다.
원래 대학 병원 교수 생활이라는 게 좀 힘들지 않은가.
아직 미국 연수를 가기 전, 그러니까 주니어 스탭일 적이라면 미국 연수를 꿈꾸면서라도 버틸 수 있겠지만…….
이미 다녀온 후에라면 병원 생활 말고는 낙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태식이……. 다녀왔다고 했지?’
무엇보다 박태식 교수는 이혼한 사람이었다.
이게 뭐 예전처럼 흠이란 얘기는 아니었다.
다만 인생의 버팀목이 아무래도 가정이 있는 사람에 비하면 적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버팀목이기는커녕 독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제 다 이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버팀목일 거라 예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터였다.
아무튼, 가정생활 또한 낙이 되어 주지 못한다고 하면 대체 얼마나 병원 생활에 진심이 될 수밖에 없겠나.
‘그래. 뭐……. 이해해 줘야지. 이러다 박 교수 나간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병원끼리는 경쟁 구도가 맞다.
특히 칠성, 아선은 그렇다.
하지만 과끼리로 들어가면 좀 애매해지기 마련이었다.
잘나가는 과들이야 오히려 병원보다도 훨씬 더 경쟁적일 수도 있겠지만, 산부인과는…….
빈말로도 잘나간다고 하기가 어려운 과가 되어 버리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전우애라는 게 있었다.
누구 하나 관두면 환자가 늘어서 좋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의료 체계가 무너질 것 같다는 위기감을 지속적으로 느껴 오고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네네. 오……. 어려운데요?”
“그러니까 말야. 어렵지?”
“네네. 아이구,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힘들면 병원 진료도 마다하지 말라구. 술에만 의지하지 말고.”
“네?”
“내가 다 알지. 병원 일이 어디 만만한가? 게다가 과장은 홍혜리고……. 이런 나라도 괜찮으면 부르라고. 같이 마셔 줄 테니까.”
“아……. 네네. 감사합니다.”
그런 동료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박태식은 모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도 불안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신년 기도회에서 다른 병원 교수님들 건강까지 빌었겠나.
누구 하나 덜컥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진짜 큰일 나겠다 싶은 심정이었다.
‘약간 양심 찔리네, 이거.’
그런 오해를 하고 있으신데, 막상 자신은 수혁에게 케이스 갖다 바치고 실력이나 올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아까부터 심장 어림에 쿡쿡 찔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지……? 진짜 경색 같은 거 아니지?’
물론 마음 놓고 앉아 있지만은 못했다.
하필 박태식의 나이가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닌 데다가, 40대 이상 남성에게 심근경색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그랬다.
어어 하다가 갈 수 있다, 이 말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동료 이비인후과 교수 하나가 외래 보다가 자꾸 소변 마려운 증상이 있어서 화장실 갔다가, 하필 전주에 있었던 심근경색 강의가 생각나 친구 진료 보다가 그대로 심혈관 중재실로 실려 간 적도 있다.
평소 운동량으로 비교해 볼 것 같으면 그쪽 반의반도 안 되는 게 박태식의 현 상황이다 보니 일단 심장내과로 직행해 진료부터 보았다.
“경색…… 이겠냐?”
“아냐?”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동기가 심장내과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지. 애초에 이쪽이 쿡쿡 찔리는 게, 이게…….”
“그래? 그럼 이런 건 완전 무시해도 되나?”
“너무 극단적으로 가진 말고. 오긴 잘했어. 병원 일 하는 장점이 뭐야. 이런 거지, 뭐.”
“하긴, 그래. 요새 자꾸 부고 소식 듣다 보니까 겁나서…….”
“아, 그렇지. 장례식장 갈 거지? 우리 병원이래.”
“어……. 저녁때 가려고. 아니, 뭔 일이래? 얼마 전에 돌잔치 했는데.”
사람이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아는 사람의 부모가 아니라 그냥 아는 사람이 죽기도 한다는 걸 요즘 들어 실감하고 있는 박태식이었다.
이번에 사망한 친구는 동기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비인후과 개원의.
둘째를 늦게 낳아서 돌잔치도 다녀왔더랬다.
막상 대학 병원 교수가 더 바쁠 것 같겠지만, 사실 개원의야말로 그럴 때 아니면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라 그랬다.
특히 이비인후과 쪽은 뭔 지령이라도 받았는지 뭔지 365일 여는 병원이 꽤 있는 편인데, 그 친구가 그랬다.
“와이프가 퇴근할 때가 되었는데 안 오고 전화도 안 받고, 이상해서 병원으로 가 보니까…….”
“어어. 뭔가 들은 게 있구나, 너는.”
“그렇지 않아도 진료받았어. 아니……. 그냥 전화긴 했는데. 그 새끼는 쉬질 않았으니까.”
“아…….”
“협심증 같아서 약 처방받아 먹으라고 했지. 아무튼, 가 보니까 차에 시동도 못 걸고 죽어 있었다더라.”
“주차장에서?”
“어.”
“하이고…….”
박태식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아까 아팠던 심장 어림 주변을 살피면서였는데,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의 눈길을 훅 빼앗은 존재 때문이었다.
‘배가…… 언제 이렇게 나왔지.’
그래도 한때 왕 자도 있었고, 그래서 산부인과 선배들한테 이쁨도 받았던 기억도 있는데……
그러다 눈 맞은 선배랑 짧지만 결혼 생활도 했었는데.
‘이건…….’
그냥 물렁물렁, 앉을 때만 나오는 정도로 나온 것도 아니었다.
불툭 튀어나온 배는 그저 복부 지방 덩어리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부터 허리띠가 필요 없어졌던 거 같은데…….
“어, 교수님.”
그렇다고 생활에 여유가 있나?
절대라는 말을 써도 될 정도로 없다.
말마따나 병원 생활 말고는 달리 인생에 낙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이 덜컥 들었다.
만진다고 해서 배가 빠지는 것도 아닐 테지만, 하염없이 배만 만지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뭐 하세요? 복도에서.”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익숙한, 악의 없이 웃는 얼굴이 보였다.
이수혁이 있다, 이 말이었다.
“아, 네네. 그…….”
“복부 지방 체크하세요? 그러고 보니 꽤 많으시네요.”
“하하.”
“아시죠? 정도 이상 복부 비만이 있으면 사망률이 오른다는 거. 팔다리를 보니 근육 운동은 전혀 안 하시는거 같은데……. 이렇게 되면 40대 사망할 가능성도 있어요.”
“하하…….”
푹푹 찌르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는 순수하기만 했다.
실제로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을 터였다.
오히려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소문이 좀 나쁘게 돌 때도 있는 거 같지만…….
박태식은 전에 세게 겪으면서 이 인간의 위력과 특성을 진하게 파악하게 되지 않았나.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아프긴 하군.’
40대인 사람한테 눈앞에서 40대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이토록 서슴없이 할 수 있다니.
과연 대단했다.
박태식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후,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제가 어려운 케이스를 받았는데요.”
“받아요?”
“네, 칠성 병원 산부인과 케이스입니다.”
“으음…….”
분명 좋아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은 것도 겪은 거지만 들은 것도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이상한데요? 흉부외과도 그렇고……. 외과도 그렇고. 이제 산부인과까지……?]
‘그러니까. 병원 내에서도 잘 요청을 안 했던 과들인데 갑자기 이렇게 막 물어 오네?’
[좋은 게 좋은 거긴 한데…….]
‘우리 병원 명성이 갑자기 더 올라갔나?’
[올라가기는 했겠죠. 코비드 사태 때부터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허나 수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반가움보다는 의아함이 더 커서 그랬다.
‘어……. 뭔가…… 알아챘나?’
박태식으로서는 본인의 욕망을 들켰나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말이 안 좋아서 그렇지, 욕망이라고 해 봐야 수술 실력 높이는 게 다라는 생각을 떠올리고 나서야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혁도 바루다와의 대화를 통해 뭐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계속 어려운 환자를, 그것도 내과, 소아과가 아닌 생소한 외과계 환자를 물어 온다면 나쁠 것이 없다는 결론에 아주 빠르게 다다랐기 때문에 금세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말씀해 주세요.”
“아……. 네. 근데 여기서는 좀. 연구실로 가시죠. 자료를 이메일로 받아서요.”
“아, 네. 그러죠.”
“네, 이쪽으로.”
해서 둘은 박태식 교수 연구실로 향하게 되었다.
심장내과로 달려올 때만 해도 거리가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막상 돌아가려니까 생각보다 멀었다.
‘어색하구만…….’
옆에 있는 게 과장님도 아니고 이수혁이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수혁은 딱히 그렇게 느끼고 있진 않았다.
‘산부인과……. 이쪽도 분야에 따라 환자가 아예 다르던데.’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부인과가 아닌 산과에도 특이한 케이스가 많더군요.]
‘그렇지…….’
임신 관련한 질환이야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원래도 그런데, 지금은 초혼 연령이 올라가면서 출산 연령 또한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기에 더더욱 질환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별의별 케이스가 많은데, 보기에 딱히 즐겁진 않았다.
사실 모든 병이 그렇긴 한데…….
이쪽은 이제 막 시작하려는 생명 또한 사그라질 가능성이 높은 케이스가 많다 보니 마음이 좋기가 어려웠다.
‘웃다가 인상 쓰다가……. 천재들은 감정도 널을 뛴다더니…….’
박태식은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통해 수혁을 훔쳐보다가, 역시 개인적으로 친분 쌓는 건 좀 더 고민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아니지. 이것도 웃기는 생각이네.’
그러다 문득 상대가 인싸 중에서도 핵인싸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태화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서도 초청하려고 난리지 않나.
학회 참석을 빌미로 세계 유수의 병원들에서 스카우터들이 왔었단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친분 쌓는 걸 고려해?
주제 파악을 좀 더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런 마음이 들켰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고.
물론 수혁은 딱히 박태식 교수 개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까부터 케이스만 떠올리고 있었다.
“어떤 환자예요?”
박태식은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자신에게 관심을 안 보이는 것에 대해 속상해야 할지 헷갈려 하면서, 칠성 비장의 무기를 꺼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