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5화 이건 진짜 좀 (1)
“반복되는 자발적 기흉이 있다, 이 말이죠?”
“네. 근데 그 위치가 너무 이상해요.”
“허어……. 그렇네요. 여기 이런 게 왜 생기는 거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뭔지 모르겠어요, 당최. 저도 뭐 오늘 외래로 온 거다 보니 차차 더 고민을 해 보면 뭔가 나올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한데…….”
태화 흉부외과 과장은 아선 병원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개소리라 생각했다.
딱 봐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경우 나중에라도 알게 되는 경우가…….
‘결코 흔하지 않지.’
물론 환자 보는 일이 딱 시험 문제 푸는 것과 같지는 않기 때문에 검사 소견이 쌓이다 보면 실마리가 잡히기도 하긴 하는데…….
이 케이스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적어도 아선 병원 교수가 알 정도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겠는데 지가 무슨 수로 아나?’
후종격동 쪽에서 반복되는 자발적 기흉이라니.
이건 진짜 듣도 보도 못했다.
물론 아까 수혁이 해결해 주었던 폐동맥 내부에 발생한 원발성 악성 종양이라고 해서 어디서 들어 보거나 봤던 적이 있던 건 아니긴 했다.
하지만…….
딱 케이스 들었을 때, 다 같이 모르는 케이스라고 해도 이게 더 어렵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이번 것이 그랬다.
이건 사리에도 맞지 않는 케이스여서 더더욱 그러했다.
“좋아…….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구만.”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2시였다.
보통 이 정도 되면 피곤함이 느껴져야 정상이었다.
집도의로서는 정점일지 몰라도 슬슬 노화가 시작되다 못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이이지 않나.
헌데 오늘만은 예외였다.
수술 때문도 아니고 그냥 남의 수술하는 거 보다가 시간을 다 보낸 셈인데도 그랬다.
오히려 두근거리고 있었다.
뭔가 즐겁다고 해야 할까?
‘근데 대체 뭐지?’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진단에 대한 갈망이지 않나?
수술하는 과라고 해서 진단이 쉬운 건 결코 아니긴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열어서 절제하는 걸 전제로 깔고 있는 과이니만큼 보다 직관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더군다나 흉부외과 집도의는 수술을 연마하는 것만 해도 아주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만진다는 게…….
상식적으로 쉬운 일일 수는 없지 않겠나?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 넘게 정말이지 수술 하나만 생각하고 살아온 참이었다.
‘뭐야, 이거?’
그러다가 덜컥 어려운 케이스를 찾아서 받게 되었다 보니 뭔가 두근거리는 마음이 들었다.
이러다 내가 해결하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세 시…….’
허나 느낌은 그저 느낌으로 끝날 뿐이었다.
새벽 세 시가 넘도록 이것저것 검색도 해 보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걸려드는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실마리가 잡히기는커녕 아무것도 없다고 해야 할까?
‘잠이나 자자…….’
해서 과장은 지친 얼굴로 연구실에서 잠을 청했다.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잠들 때를 놓치면 잠이 안 와서 고생을 하곤 했었는데 심신이 지쳐서 그런가, 아니면 다음 날이 너무 기대되어서 그런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아, 네. 교수님.”
-어디 아프세요?
덕분에 8시쯤 되었을 때 나름 꿀잠을 자고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래 봐야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에게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아, 아뇨. 어제 케이스 때문에 고민하다 세 시쯤에 잠이 들어서요.”
-아…… 아이고. 그래서 해결은 하셨어요?
물론 상대가 컨디션이 좋건 나쁘건 간에 수혁이 알 바는 아니었다.
오히려 케이스 얘기에 눈을 빛냈다.
속으로는 혹시 해결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였다.
“아, 아뇨. 모르겠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면 되죠?
근데 그게 아니라지 않나?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덜컥 몸을 일으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태화 의료원 흉부외과 과장이면 실력이 꽤 좋을 텐데 아예 모르고 있다는 뜻이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어제 너무 열과 성을 다해 진료를 본 탓에 볼 환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요사이 안대훈을 필두로 해서 제자들 실력도 부쩍 좋아지고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어지간한 케이스는 그들 선에서 해결이 되고 있었다.
해결이 안 되어서 올라오는 케이스라고 해서 무조건 흥미롭거나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우리 실력이 너무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실력이 늘었다는 말에 ‘너무’라는 말을 써도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둘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어제 보고 또 보네요!”
하여간, 다리가 불편한 사람의 속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빠르게 도착한 수혁은 무척 밝은 얼굴이었다.
과장은 역시나 희한한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손을 마주 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병원에서 이토록 활기찬 인사를 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환자분은 어디 계시죠?”
“아……. 저희 환자는 아닙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수혁은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개도 아니고 코까지 벌름거리면서였다.
저런다고 환자 위치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도 그랬다.
‘아니, 천재는 좀 다른가?’
어제 수혁의 압도적인 위력을 보지 못했더라면 단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뭔가 다르긴 하지 않겠나.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으니 그걸 지켜보는 사람의 감상 또한 그러기에 십상이었다.
“네? 그럼……?”
“아선 병원 환자입니다. 어제처럼 관련 자료를 다 받아 놨습니다. 이거 혹시 실례는 아닌지…….”
저렇게 기대하던 사람에게 환자가 없다고 하는 건…….
어떻게 봐도 실례가 아니겠는가?
사실 실제로 환자를 보고 진단을 내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과장이 잘 알았다.
일반인들의 의사에 대한 인식, 특히 부모님 세대의 인식은 거의 만병통치약이지 않던가.
지인의 지인의 일까지 툭하면 물어 오는데 막상 성의껏 답을 해 주려고 물으면 잘 모르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 일단 병원에 가보라고 하면 넌 교수라는 놈이 그런 것도 모르냐, 혹시 돌팔이 아니냐 하는 말들이 날아들었다.
“아, 아뇨. 오히려 좋습니다. 가시죠.”
수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환자를 보면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수혁이니만큼 실제로 환자를 보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더 컸다.
그 말은 이편이 난이도가 훨씬 올라간다는 뜻이었다.
[뭐…… 이 정도는 돼야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아선 가면 되고.’
[그렇죠.]
어려우면 좋다, 그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과장의 말에도 표정이 밝기만 했다.
무엇보다 안 될 거 같으면 그곳이 설령 남의 병원이라고 해도 쳐들어가면 된다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데다가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미친놈이다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과장으로서는, 수혁이 그래도 연장자에게 나름 예의는 차리는 편이구나 하면서 연구실로 향했다.
다음 케이스는 될 수 있으면 원내에서 찾기는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려 주는데 자신도 그래야 함이 인지상정이지 않겠나.
“이 환자입니다.”
“흐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보니 연구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일단 자료부터 건네주었다.
어제 받은 것에 오늘 아침 기록까지 더한 자료였다.
아선에서 일차적으로 본 환자가 아니라 로컬에서 보다가 쏜 환자다 보니 진료 볼 일자에 비해 자료는 꽤 많은 편이었다.
‘흉통으로 집 근처 응급실을 갔었네.’
[엑스레이를 보면…… 이 정도면 그냥 두어도 흡수가 될 정도긴 하네요.]
‘그래, 아무것도 안 했어.’
기흉.
가슴에 공기가 차는…….
그러니까 폐에 물리적인 손상이 생긴 상황을 말하는 병인데, 그럼 무조건 큰일 아닌가 싶겠지만 무조건 수술로 가는 건 또 아니었다.
생각보다 우리 몸의 회복력이 대단해서 그랬다.
실제로 복강 내 출혈이 있는 경우라도 그 양에 따라 자연 흡수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또 흉통이 발생했네.’
[이때도 엑스레이상에서는 그리 심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위치가……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이렇다면 완전 자발적인 원인보다는 뭔가 다른 기질적인 원인을 찾아보긴 해야 했을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이다.’
외상의 흔적이 없이 후종격동, 그러니까 등 쪽 폐에 기흉이 발생하는 경우가 어디 흔하겠나.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할 것은, 환자가 남자고 또 40대 후반이다 보니 폐암이 될 터였다.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건 아니겠지만 놓쳤다가는 환자 목숨도 놓치게 되기 일수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해당 병원에서는 그냥 경과 관찰만 하다가, 이번에, 그러니까 세 번 재발을 하고 나서야 CT를 찍었다.
그 CT상 다행히 폐 내부에 종양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이거 뭐지?’
[종양인가?]
대신 후종격동 벽에 뭐가 있었다.
CT상에서는 종양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소견이었는데, 이걸 보다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MRI를 찍어 봐야 할 거 같았다.
로컬 병원은 MRI가 있긴 하지만 거기서 찍는 대신 아선으로 전원시키는 것을 택했고, 따라서 MRI부터는 아선 병원에서 시행한 상황이었다.
CT 또한 다 같은 CT는 아니기 때문에, 아선에서 다시 시행했다.
해상도도 다르고 세팅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쪽이 보기가 좋네. 흐음……. 우측 9번째 흉추 쪽으로 대략 1cm…….’
[정확히 12mm x 10mm 크기의 종양입니다. 주변과는 아주 잘 구분이 되는군요.]
‘악성은 아닌 거 같네.’
[MRI도 보시죠.]
수혁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상을 열고 드르륵 돌리고 닫는 동안 흉부외과 과장은 수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각하지 못한 채 입을 살짝 벌리고서였다.
‘말이 되나?’
영상 보는 속도도 속도지만, 그 전에 기록 파악하는 속도도 너무 빨랐다.
아무리 익숙한 언어로 쓰여 있다고 해도…….
또 자신이 미리 좀 언질을 주었다고 해도…….
이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속도였다.
‘영상을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다고?’
게다가 영상은 더했다.
드르륵 소리가 나나 싶으면 이미 뭔가 봤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단지 그뿐이라면 이 사람이 좀 허세가 심하구나, 천재로 보이는 자신을 사랑하는구나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T1, T2에서 상당히 균일하게 보이네요. 주변부 침범도 없고…… 아무래도 일차적으로는 신경성 종양을 줬을 거 같은데, 맞습니까?”
“네? 아, 네네.”
판독도 내렸다.
그것도 아선 병원에서 내린 판독 그대로였다.
아니, 사실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서 태화 쪽에도 물었는데, 지금 보이는 것만 봐서는 신경성 종양을 1번으로 놓고 봐야 할 거 같다는 의견을 보내왔더랬다.
거기까지만 해도 무척 놀라운 일인데…….
거대 병원 두 곳의 영상의학과와 같은 소견을 내린 수혁은 만족스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