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7화 왜들 이렇게까지 (3)
[피똥 싸지 않았다는 말…… 믿을 만하겠죠?]
‘그래야지. 의사잖아.’
[어째 얼굴은 돌팔이 같은데…….]
‘사람 생김새 가지고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고 그러는 거 아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출혈에 의한 저혈압인데요.]
‘그건 그래.’
수혁은 바루다의 억측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환자에게 이유 모를 출혈이 있다는 건 동의했다.
그리고 그 출혈이 명백한 외상에 의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일단 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인간은 통증을 느끼게끔 되어 있지 않던가?
흔히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을 보면 고통을 느끼지 않는 병사들이 마치 최강의 존재들인 것처럼 나오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만약 정말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사들이 있다면 일상생활 도중에 팍팍 죽어 나갈 공산이 무척 컸다.
일명 비전투 손실로.
“환자분.”
“환자 아니라니까…….”
“제 기준에서는 제 발로 못 서는 분은 환자인데요.”
“그…….”
말이 환자이지, 사실 동문 아닌가.
수혁보다 열댓 살 이상 많은 사람이니 선배도 보통 선배가 아닌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단 아픈 사람 앞에서는 의사-환자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수혁이었다.
당장 아까 이현종마저 수술하고 온 참이지 않나.
생전 처음 보는 선배를 특별 대우해 주는 것도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상대가 삐딱하게 나온다면 또 모를 일인데…….
‘얘가 이수혁 교수구나…….’
이제 이현종에 대한 소문만 도는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현종에 대한 소문은 돌 만큼 돈 데다가 이제 와서는 뭘 해도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다.
김승규처럼 무장공비니 뭐니 하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있으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덕인지 뭔지 수혁에 대한 말이 요새 훨씬 더 많았다.
‘미친놈이라더니…….’
나이가 40대 중반쯤 되면, 공자님 말씀처럼 불혹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세간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는 된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 왔다면 보통 인격이 더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보니 그렇다.
동시에 뒷말에 귀 기울이는 일도 확 줄어들게 되기 마련이고.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이 말이었다.
직접 본 것만 믿겠다, 뭐 이 수준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판단을 유보 하고 있었거늘.
‘눈이 이상해…….’
대면한 수혁은 말 그대로 미친놈이었다.
뻔히 선배인 걸 알 텐데 환자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물론 제 발로 서지도 못하면서 골프 치겠다고 고집부리는 순간 선배로서의 권위는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면 이런 짓도 하지 않지 않았겠나.
그저 수혁의 똘기 어린 위엄에 짓눌려 있을 뿐이었다.
“이번 골프 대회하면서 찢어지는 느낌은 없었어요?”
“찢어지는…… 그건 잘…….”
“잘 모르긴! 아까 아프다고 했잖아.”
위엄에 눌린 사람은 환자 당사자만은 아니었다.
옆에 있던 친구도 저도 모르게 집중해서 듣고 있었더랬다.
그 덕에 수혁의 말에 얼버무리려 하던 환자의 말을 정정해 줄 수 있었다.
“아까? 아……. 근데 그건 그냥 근육통인데.”
“야, 우리 나이가 몇인데. 그냥 근육통이 어딨어. 찢어진 거 아냐?”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찢어질 만큼 근육이 많지도 않고.”
“이 새끼 자학 개그 시작하는 거 보니까 기운 빠지는 거 같은데. 이 교수님. 얘가 술 취하면 이러거든요?”
단지 그 정도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수혁을 돕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잘 보니까 친구 놈이 골프가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보여서 그랬다.
숨도 몰아쉬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제 발로 일어서지 못한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골프에 정신이 너무 팔려 버려서 거기까지 사고가 미치지 못했는데…….
병원에서 이런 환자를 봤으면 당장 이런저런 검사부터 하면서 호들갑을 떨어 댔을 터였다.
“술 마셨어요?”
“아뇨, 아뇨. 그만큼 힘든 상태다, 이거죠.”
“그래 보입니다. 일단 카트로 가시죠.”
“아……. 저도요?”
“제 생각에는…….”
수혁은 영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힐끔 카트에 붙어 있는 패드에 표시된 점수를 보니 17홀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60타를 넘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뭐 17홀 첫 타도 치지 않은 상황이니 삽질하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삽질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추어들끼리 하는 대회에서 저 정도면 우승권이었다.
수혁이야 골프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했지만 이현종이나 신현태가 가끔 하던 얘기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까운 점수인 것은 맞았다.
아마 어지간한 상황이었다면 더 치도록 두었을 터였다.
[환자의 상태가 상당히 급박하게 변하고 있어요.]
‘그렇지? 나 혼자서는 응급 상황에서 손이 모자랄 거야.’
[네. 기껏해야 정신 잃는 데까지…… 5분? 10분?]
‘카트 타고 도착하면 잃겠네.’
[그렇죠. 앰뷸런스를 미리 하나 더 부르길 잘했네요.]
‘응. 욕을 왜 먹은 거지.’
아무리 봐도 이번 골프 대회가 심상치 않으니 한 대만 더 보내 달라고 했더랬다.
일단 이현종부터가 사실 초응급이지 않았나?
거기에 더해 뇌 내 정맥 혈전 또한 응급이다.
뭐 자잘한 갈비뼈 골절들도 사실 응급 질환이긴 하지 않나?
오늘 본 케이스들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는 아니긴 했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갈비뼈 골절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긴 했다.
그렇게 세 명인가 네 명을 한 차에 태워 보냈다.
-아직 경기가 절반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 더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앰뷸런스를 대기시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혹여나 이송 없어도 비용 지불하겠습니다. 주변에 응급 생기면 그쪽으로 가셔도 되고요. 근데 아무래도 여기 좀 심상치가 않아서.
-아니……. 뭘 모르시는 모양인데, 앰뷸런스 그렇게 막 부르는 거 아니에요. 119 함부로 신고하면 벌 받아요.
-119 아니잖아요. 사설이잖아요.
-그건…… 그렇긴 하죠.
암만 봐도 환자 더 생길 것 같아서 요청을 했더니 이상한 말을 하길래 일단 논리로 눌렀다.
그다음?
-콜비로 100만 원 낼게요, 일단.
[100, 100이요?]
아, 이건 바루다다.
돈의 가치를 항상 먹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놈이니만큼, 100만 원의 가치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막 길바닥에 뿌리는 건…….
-네? 아, 네. 그럼 보내겠습니다.
반대였지만, 뭐 어쩌겠나.
몸의 주인은 수혁이고 사실 돈도 수혁이 번 건데.
아무튼, 돈까지 써서 누르니까 얌전히 달려와 대기 중이었다.
“친구분 곧 정신 잃을걸요.”
“네?”
“아니, 내가…… 왜…….”
“길어야 5분이에요. 상황이 어떤지에 대한 문진도 친구분이 해 주셔야 하고, 상황 터지면 보조도 해 주셔야 해요.”
“그…….”
“으…….”
이쪽도 절차는 비슷했다.
일단 논리로 눌렀다.
돈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시벌……. 웬만한 놈이면 무시하겠는데…….’
이수혁의 이름값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적’라는 단어를 써도 좋을 만큼 대단하기에 그랬다.
우우웅.
해서 직원까지 해서 넷은 곧 카트를 타고 센터로 향하게 되었다.
다행히 근처에 쉬던 사설 구급차가 있어서, 벌써 대기 중이었다.
“야……. 여기 좋긴 좋네. 대기 타면서 100이라니, 개꿀이긴 한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보통 집에서 쉬다가 일하게 되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업체에서 가라고 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응급구조사는 긴가민가한 기분이었다.
보너스가 지급된다고 해서 그랬다.
그렇다고 마냥 좋지는 않았다.
‘뭔가 쌔한데…….’
보통 사람의 쌔함도 그냥 넘기기엔 찝찝한 법이다.
하물며 응급구조사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어지간한 응급 상황에는 홀로 대응이 가능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흉부압박과 같은 처치는 바이털과가 아닌 의사들보다도 잘할 터였다.
워낙 자주 그러한 상황을 접해서 그런 것인데…….
이쯤 되면 느는 게 단지 실력만은 아니었다.
경험도 늘고, 감도 는다.
“환자분!”
“아니, 야! 진짜로…… 어…… 이거 죽는 거 아니죠?”
이런 건 좀 빗나가면 좋을 텐데.
혹시 몰라 열어 둔 창문을 통해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어떡하죠?”
직원들로 보이는 웅성거림부터…….
“야, 야!”
친구의 새된 소리.
그리고…….
“예상대로예요. 아까 드라이버 샷 날리고 나서 이쪽이 아프다고 했다고 했죠?”
여상한 말투 또한 들려왔다.
‘이건 뭐지?’
본능적으로 차 문을 열고, 들것까지 든 채로 뛰어가던 응급구조사의 머리는 자못 혼란스러웠다.
이렇게까지 침착한 건 또 처음이라 그랬다.
옆에서 우왕좌왕하는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아, 네, 네! 저는 대흉근 쪽인줄 알고…….”
“아뇨, 아닐 겁니다.”
“그럼, 설마 심장!”
“아뇨……. 그랬으면 죽었죠.”
심장 문제였으면 카트 도착할 때까지도 살아 있을지 없을지 장담 못 했을 터였다.
뭐 주변에 다 의사니까 기본적인 흉부압박은 했겠지만…….
의사라고 해서 신은 아니지 않나.
수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내출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는 건…….
또 보통 체격의 성인 남성이 불과 15분 내외 만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급격한 내출혈이 발생했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드문 상황입니다만…… 이론적으로 들어맞는 혈관은 하나입니다.]
‘그래, 내유동맥(Internal mammary artery)…….’
[이게 터질 수도 있군요, 골프 때문에.]
‘서울 근처에는 골프장 없나? 가끔 다니고 싶어졌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건…… 진짜 초희귀 케이스일 거 같은데요.]
‘맞다면 말이지. 틀려도 희귀 케이스이긴 하겠지만.’
내유동맥은 이름이 붙은 동맥이니만큼 꽤 큰 동맥이다.
찢어지면 엄청난 출혈을 동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정신을 잃은 건 좀 다른 이유에서일 터였다.
“어, 어떤 상황입니까?”
친구가 아직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한 상황에서 구조사가 도착했다.
수혁은 일단 구조사가 들고 온 들것에 환자를 실으면서 말을 이었다.
“내출혈이에요. 직원 분, 일단 같이 가 주시죠.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합니다.”
“아…… 그, 네.”
도와달라고 하면서 고사리 운운하는 게 맞나 싶긴 했지만, 뭐 어쩌겠나.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이긴 해도 지금까지 본 것에 의하면 상대는 거의 의학의 신이었다.
“내출혈……?”
“내유동맥이요. 일단 가슴이 눌리고 있는 겁니다. 출혈 때문에…… 삽관이 필요해요. 우측폐라도 제대로 숨을 쉬어야 해요. 안에 있죠?”
“아……. 네. 있습니다.”
구조사는 쌔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면서도 응당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일단 응급구조사가 되기도 힘들지만 되고 나서도 혹독한 일을 해야 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있었다.
수혁은 그러한 도우미가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면서, 환자가 앰뷸런스 뒤쪽으로 이송되자마자 일단 플라스틱 관부터 집어 들었다.
“보조 잘해 주세요.”
“어, 네.”
얼결에 따라온 친구를 채근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