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6화 왜들 이렇게까지 (2)
“원래 이렇게 위험한 운동인가요?”
“아…….”
흉부외과 교수는 이미 자리를 또 비운 참이었다.
다른 갈비뼈 골절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가면서 ‘시발 별일을 다 보겠네’라고 했다는 말을, 수혁은 직원들의 수군거림을 톨해 들을 수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수혁도 좀 놀란 상태긴 했다.
남들과는 다르게 폭넓으면서도 의학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는 그가 보기에 골프가 생각보다 격렬하긴 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 봐야 축구나 농구랑 비할 바는 아니지 않나.
“그게.”
그래서 물었더니, 직원은 대답하기가 곤란한지 연신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단어를 반복하고 있었다.
잘 훈련받았다는 티가 나는 게, 그러면서도 웃고는 있었다.
참 대단하다고, 수혁은 생각했다.
“그냥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저야 뭐, 여기 환자 보러 온 거라.”
직원은 여상한 말투로 물어 오는 수혁을 돌아보면서 아, 이 사람은 확실히 골프 인구는 아니구나 싶었다.
일단 지팡이를 짚고 있지 않나.
기본적으로 서서 하는 운동인 골프는 다리가 불편하면 할 수 없는 운동이었다.
“아……. 이렇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너무 많은 걸까요?”
애초에 의사는 사회 진출하는 나이 자체가 30대 중반이지 않나.
전문의 따고 군대 갔다 오면 현역으로 했다고 해도 34살인데, 그 후로 펠로우도 보통 2년은 하니까 36살이다.
그럼 이제 사회에 나온 전문의 중에 제일 꼬꼬마가 되는 셈이니, 총동문회에 올 정도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생기려면 암만 빨라도 마흔 중반이다.
근데 이번 총동문회는 그중에서도 잘나가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초청했다 보니 평균 연령이 60대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암만 관리를 잘했다 해도 내구성이 떨어지는 법이었다.
그런 생각에 질문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답은 예상을 조금 빗나가 있었다.
“아, 아뇨. 골프가 아무래도…… 비싼 운동이라 원래 연세 많으신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저희 클럽 평균 연령도 60대를 넘는걸요.”
“잉? 그래요? 뉴스 보면 MZ 세대가 골프에 열광한다고…….”
“아……. 그거 뭐. 아무거나 MZ 붙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암표상도 티켓 리셀러라는 이름으로 마치 MZ 세대가 만든 것처럼 말하던데요.”
“아, 그럼 아니에요?”
“뭐…….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치시는 분들이야 있겠죠. 근데 그렇게 쳐서 우리 클럽에 오시면 아예 타수 세지도 못할 겁니다. 보통 다른 클럽에서 싱글 치시는 분들이 여기 처음 오시면 80에서 90타 나옵니다.”
직원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데다가 말도 부드럽게 하는 수혁이 편한지, 또 이번에 아프다고 하는 환자가 꽤 먼 홀에 있는지 자연스레 말을 이어 나갔다.
고객 응대를 워낙에 많이 해 온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타고나기를 그런 건지는 몰라도 수혁의 관심사를 용케 캐치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근데 그럼 더 나이 많은 분들도 괜찮다는 말이죠?”
“네, 보통은요. 어디 다치거나 하시는 분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보통은 인대 늘어나거나 삐는 정도지, 오늘처럼 뭐…… 아유, 이게.”
직원은 아까 앰뷸런스 타고 간 환자의 병명을 떠올렸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충격적일 정도로 무서운 병명이어서 잊지 못하고 있었다.
‘뇌내 정맥 혈전증……?’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의학적인 지식은 없지만 뇌 정맥 내에 혈전이 생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보통 그렇게 되면 큰일 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물론 의사들의 태도나 환자 태도를 보면 당장 죽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될 건 아닌 것 같긴 했지만…….
하여간, 무서운 병이었다.
“그렇구나. 그럼 대체 왜 이럴까요?”
“아, 그건…….”
이어지는 수혁의 질문에 직원의 입이 마치 조개처럼 앙 다물렸다.
할 말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그랬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천 마디 말보다 한번 입 다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야! 너 지금 공 흔들렸어!
-바람 불었잖아…….
-지랄!
-지랄? 야, 지랄이 얼마나 나쁜 말인데, 지랄?
캐디마다 지금 난리였다.
이런 손님들은 처음이라고 하면서였다.
의사들이고 그중에서도 학력도 제일 높고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음 편하게 있다가…….
거의 봉변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 이거 어떻게 쳐야 되나. 골 깨지네.
-골 깨져? 나 신경외과라고 멘탈 흔들리라고 하는 말이지?
-미쳤어?
-어어. 이놈 봐. 정신과 멘탈도…….
말꼬리 잡는 솜씨가 거의 뭐…….
그것만 놓고 보면 프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이쿠.”
이런 말을 아무리 골프 치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같은 단체에 속한 사람인데 어찌 전달할 수 있겠나.
그냥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었다.
해서 직원은 짐짓 길이 험한 척을 하면서 카트 모는 데 집중했다.
수혁은 카트를 몰아 본 적이 없다 보니 그냥 그런갑다 하고 있었다.
사실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짐작 가는 게 아주 없진 않아서이기도 했다.
‘우리 아빠만 봐도 뭐…….’
[그러니까요. 아까 말은 안 했지만…….]
‘근육 상태가 아주 최근에 혹사당한 거 같았지?’
[네. 그러고 보니, 이현종이 요새 단백질 음료를 엄청 챙겨 먹었습니다.]
‘그렇네……. 주의 깊게 살피진 않았는데…… 너튜브로도 골프 영상을 유독 보더라고.’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인간들이란…….]
‘인간들이라고 퉁 치지 마. 나는 아니니까.’
에잇브릿지라는 말이 골퍼들의 마음에 주는 울림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 의학적인 것 외에 신경을 쏟는 놈이 있으면 말 그대로 발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현종조차 그 난리 법석을 칠 정도면…….
다른 사람들이야 뭐 말할 것도 없지 않겠나?
문제는 이 양반들이 20대가 아니란 점이었다.
원래 나이 들어서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신체적 무리조차 조심해야 하는 법인데…….
그걸 알 만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어기고 있으니 사달이 안 나고 배기겠나.
“17번 홀. 다 왔습니다. 아, 저기 계시네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혀를 차고 있으려니 도착이었다.
17번 홀이면 18홀 경기에서 거의 막바지 아닌가.
그렇다 보니 환자도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하, 할 수 있어. 아직…… 할 수 있어! 나 스코어 진짜 좋잖아…….”
“어지럽다며. 아웃이지, 그럼.”
“누구, 누구 마음대로!”
“아니, 아까 비틀거렸잖아.”
“갑자기 해 봐서 그렇다니까?”
“그럼 일어나 보든가. 말로는 누가 못 해. 너 공식적으로 이제 아웃한다? 나는 더 쳐야 돼. 너만 스코어 좋냐? 나도 좋아, 인마.”
상대도 그랬다.
지금 아픈 사람 때문에 계속 못 쳐서 이대로 가다간 혹 자신도 아웃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주고받는 대화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평소 친분이 있어도 보통 있던 게 아닌 것 같은데 참 정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성이 다소 약화된 수혁조차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직원은 어땠겠나.
속으로는 역시 의사 놈들이라고 하고 있었다.
“모셔 왔습니다. 같이 가시죠.”
“가긴 어딜…… 저 괜찮다니까요?”
그것도 옛말이었다.
아니, 상당히 점잖은 표현이었다.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었다.
-지금 여기 손님 한 분 어지럽다고 하더니 주저앉으셨어요!
여기 캐디가 뭐 보통 캐디들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다.
그 예민한 대회 앞둔 프로들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인, 대통령, 기업 총수 등등…….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 다 겪은 사람들인데 아까처럼 소리를 질렀다는 건 말이 주저앉은 것이지, 그냥 주저앉는 형태로 넘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실제로 손님 얼굴엔 암만 봐도 바닥에 뒹군 것이라고밖에는 생각이 안 되는 흔적들이 있었다.
잔디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이 말이었다.
근데도 자기 괜찮다고, 끝까지 치겠다고…….
‘국가 대표세요?’
누가 보면 등 뒤에 태극 마크라도 단 줄 알겠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은데…….
왜 이러실까.
“손님. 규정상 컨디션 저하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에는 경기 진행이 어렵습니다.”
“내가 의산데! 내가 판단하지!”
“나도 의사야 인마! 너 못 친다고! 아까 그거 찍어 놨어야 되는데.”
“그럼 일어나 보시죠. 혼자 일어나서 샷을 날릴 수 있다면, 제 권한으로 속행시켜 드리겠습니다.”
“그, 그래.”
“일어나긴 개뿔…… 얘 빈혈 있나 봐요.”
같이 치던 사람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뭐 나이 있다고 해서 진상 짓을 안 하는 건 아닌데 지금처럼 술기운 하나 없이 이러는 건 처음 봤다.
‘에잇브릿지 같은데 처음 오시나 보지.’
이해 못 할 일은 아니긴 했다.
뭐……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긴 더 칠 수 있다고 고집부리는 게 다지 않나.
이 정도면 진상 중에서는 그나마 귀여운 수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흐, 흐아아압!”
아니, 좀 웃긴다고 해야 할까?
방금 전까지 나무 밑에 주저앉아 있던 손님이 일어나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 귀한 골프채를 지팡이 삼아서.
있는 고함 없는 고함 다 지르면서.
딴에는 기합이라고 넣는 모양인데…….
“으, 으으으. 왜 이렇게 힘들지! 왜에에에!”
별 소용은 없어 보였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지 않나.
“흐음.”
해서 그만 포기하라고 하려는 찰나, 수혁이 나섰다.
아마 아직 수혁의 진단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면, 뭐 하나 하고 막았을 테지만.
이미 몇 차례 보지 않았나?
심지어 그중 하나는 식당 룸에서 고쳐 버렸다.
물론 후속 절차를 위해 잠깐 병원에 가긴 했지만…….
아무튼, 직원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환자분.”
“나, 환자 아니고…… 골퍼…….”
“골퍼 아니잖아요. 아무튼, 봅시다.”
“으…….”
환자 또한, 그러니까 동문 의사 또한 수혁을 모르지 않았다.
이현종이 가는 곳마다 자랑을 해 놓은 데다가, 요새 가장 핫한 의사 중 하나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동문회에서도 문자로나마 여러 차례, 물론 김다현에게 돈 받고, 수혁의 치적을 알린 바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눈꺼풀이 창백해.’
[입술만 봐도 그렇죠.]
‘맥박도 아주 약해. 빈혈과 저혈압이 동반되어 있는 상황…….’
[나이만 고려하면 만성 빈혈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보통 그런 경우에는 몸이 적응했을 겁니다.]
‘그렇지. 뛰는 것도 아니고 스윙 몇 번 한다고 유산소에 의해 발생 가능한 증상이 생기진 않지.’
[그렇다면…….]
덕분에 수혁은 방해 없이 환자를 살필 수 있었다.
이미 움직이는 것부터 해서 다 보지 않았나.
거기에 더해 지금 본 소견까지 있다 보니 이미 초반 추론은 완료되었다.
“환자분, 출혈이 있는 거 같은데…….”
문제는 어디서 출혈이 있냐는 것이었다.
“응?”
“혹시 최근에 변 볼 때 뭐 이상한 건 없었나요?”
나이를 고려하면, 또 성별을 고려하면 대장암이 의심이 된다.
상대가 의사다 보니 출혈이 있을 정도의 대장암이 있다면 이미 알았어야 할 테지만…….
그래도 물어는 봤다.
“아니, 없는데…….”
당연하게도, 아니란 답이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다시 고민의 순간이었다.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이다, 이 말이었다.
‘골프…… 재밌는 운동이잖아?’
[그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