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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254화 (1,254/1,303)

1254화 이제 나이가 있어요 (3)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간에 급성 구획 증후군에 대한 근막 절개술은 그리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다.

절개창 자체도 작았다.

그러니까, 절개할 부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랬다.

또 이놈의 구획 증후군의 발생 원인이 감염이 아닌 운동과 같은 비감염 질환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랬다.

“음.”

수혁은 피부를 살짝 절개하고 나서, 장갑 낀 손을 그 안에 대었다.

진피층까지 절개가 된 참이다 보니 피가 좀 나오고 있었는데, 아까 국소마취할 때 이미 에피네프린을 섞어서 찔러 두었기 때문에 그 양이 많지는 않았다.

애초에 절개도 최대한 출혈을 피해 들어간 덕이었다.

‘뭐지?’

보조는 흉부외과 의사가 하고 있었다.

이제 38살, 외과 의사로서는 젊디젊은 교수였다.

운도 좋고, 머리도 좋고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전문의 따고 군대 갔다 오면 34살이니 기껏해야 펠로우와 임상강사까지 다 해서 4년 하고 교수를 달지 않았나.

흉부외과 수술이라는 게 보통 하면 할수록 적자다 보니 제아무리 태화 의료원같이 커다란 병원이라 해도 교수 TO가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하면 수혁 다음가는 능력자라 해도 좋았다.

‘뭐야?’

수술도 잘했다.

아니,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게 시니어가 되었건 주니어가 되었건 아니면 레지던트가 되었건 간에 수술‘을’ 잘한다고 했다.

논문이나 다른 것도 훌륭하지만 결국, 수술을 잘해서 교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라 이 말이었다.

원래도 사람이 다른 사람 심장에 칼을 대려면 남들보다 훨씬 더 강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상황이 이러하니, 당사자도 자신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허나 지금 그 자신감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어때?’

[손가락 감각과 인체 내부 파악을 동기화합니다…….]

‘갑자기 깡통처럼 나불거리지 말고.’

[네, 거기 옆에 째십쇼.]

‘너무 사람처럼 말하지도 말고.’

[우측으로 3mm. 이동해서 4cm가량 절개하세요.]

‘오케이.’

수혁은 손가락을 대다가 바루다의 파악에 따라 툭 절개를 넣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흉부외과 의사로서는 도저히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일단 첫 절개부터가 그랬다.

교수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칼잡이가 아니라면, 절개가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하늘에 맹세코 신현태나 조태진은 절개 진짜 이상하게 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헌데 수혁은 달랐다.

지익 소리를 내며 수직으로 쭉 긋는데, 딱 봐도 밑에 구조와 근막 절개할 위치 및 출혈 정도를 다 고려한 절개였다.

절개 자체도 미쳤는데 위치나 길이도 미쳤다, 이 말이었다.

지이익.

헌데 이번 절개를 보니 아깐 너무 빨리 놀랬단 생각이 들었다.

근막이…… 갈라지고 있다.

밑에 근육엔 전혀 손상을 주지 않은 채로.

원래 근막이라는 게 질긴 놈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구획 증후군이 발생한 상황 아닌가.

근막 밑으로 근육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빵빵 부어서 누르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 단적인 예로 근막이 절개되자마자 그 틈새로 근육이 주욱 밀고 나오는 게 보였다.

“후우…….”

이현종 또한 압박감이 사라졌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수술이 아주, 아주 잘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냐고…….’

뭐?

근막 절개술이 쉽다고?

쉽긴 하다.

영상 찍고 뭐 하고 한 상황이라면 그랬다.

하지만 지금 여긴…….

‘여기…… 식당 룸이잖아.’

심지어 이현종은 식탁 두 개 붙여서 누워 있다.

아무래도 수술대처럼 사람 몸 크기에 딱 맞춘 것이 아니다 보니 거리도 멀었다.

그러니까 수술하는 사람과 환자 사이의 거리가 좀 있다, 이 말이었다.

‘그게 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노상 수술방 왔다 갔다 하는 사람에게는 이 차이도 컸다.

어색할뿐더러 불편하다 이 말인데…….

“좋아. 흐음…….”

[감염 징후는 전혀 없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이현종 근육이 꽤…….]

‘그러니까. 나보다 좋네.’

[수혁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좋죠. 그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뭔가…… 으음. 스쿼트 잘 칠 거 같은 다리네, 이거.’

[괜히 전외측으로 온 게 아닙니다. 보통 운동 중에, 그중에서도 전외측으로 오는 경우는 하체 근육 발달이 상당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 와중에 수술을 이렇게 잘해 놓고, 수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을 뿐이었다.

밖에서 보기엔 그랬다.

실은 바루다와 대화 중이었지만, 흉부외과 교수가 알 게 뭐란 말인가.

바루다의 존재는 안대훈도 모르는데.

“자, 다음.”

그렇게 놀라고 있는 사이에, 수혁은 이미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일반적인 수술방이었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할 수도 있겠지만 거리가 멀어서 그랬다.

“뭐 해요?”

“아, 네네.”

해서 흉부외과 교수도 덩달아 건너가야 했다.

넋 놓고 있던 참이라 한 소리 듣고서였는데,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꺾였으니.

“당, 당기겠습니다.”

“네.”

수혁은 이번에도 바로 절개를 넣는 대신 손을 대었다.

바루다는 손가락 감각과 인체 내부 파악을 동기화해서 원래도 나쁘지 않았던 절개 위치를 재조정해 주었다.

지이익.

흉부외과 의사로서는 살짝 의아한 부위였다.

아까랑도 다르고, 일반적인 절개도 아니어서 그랬다.

허나…….

‘실수가 아닐 거 같아…… 아무리 봐도…….’

피부가 잘리는데, 그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피도 아까보다 안 났다.

무엇보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안쪽 구조물은 정말이지 빵빵했다.

툭 손대면 터질 것같이.

물론 근막은 진짜 질긴 조직이다 보니 바늘로 찔러도 터지진 않겠지만, 기분이 그렇다 이 말이었다.

‘빨리 안 째고 뭐 하지?’

흉부외과 교수는 본능적으로 손을 움찔거렸다.

원래 외과 의사는 이렇게 딱 째기 좋은 걸 보면 칼이 마려워지는 법이라 그랬다.

조급해진다, 이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진 않았다.

지금껏 봐 온 게 있어서 그랬다.

‘아니, 아냐. 방금도…… 이 방향에서 들어갔으니까 딱 여기가 나온 거야.’

미친 수준의 절개 아닌가.

딱 보니 벌써 다리가 아픈지 살짝 구부러져 있는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세계적인 흉부외과 의사가 될 거란 확신마저 들 지경이었다.

해서 조용히 있었다.

그사이 수혁은 이번에도 바루다를 이용해 최적의 절개 지점을 계산해 칼로 쨌다.

지이익.

그와 동시에 두꺼운 근막이 쭉 갈라졌다.

압력이 풀리면서 근육이 밀려 나오는 것이 육안으로 확인되었다.

“흐…….”

이현종의 입에서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

뭔가 깨달은 흉부외과 교수의 입에서는 탄식 비슷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지점이 아니라, 수혁이 짼 지점을 째야 제일 적게 째면서 동시에 가장 효과적으로 압력을 줄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서 그랬다.

졌다.

승부를 한 적도 없지만…….

‘미친……. 완패다. 어찌 이럴 수가 있지?’

너무 황당하니까 화가 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떠오른 것은 수혁과 수술방에 들어갔다 나온 후 실력이 좀 는 것 같다 했던 외과 친구였다.

아직 교수가 되진 못한 친군데…….

실제로 그가 집도하는 수술에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장준혁이라고 딱 봐도 야망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한 교수님 수술에 들어왔었다 했다.

‘아니……. 아냐. 이래서 그렇게…… 외과 새끼들. 혼자 꿀 빨고 있었네, 진짜?’

반신반의했다.

수혁의 위대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원래 사람의 재능은 분야라는 게 있기 마련 아니겠나.

내과에서는 최고라는 평가조차 부족해 보이는 재능을 가진 사람인데 어찌 외과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냐는 것이 지배적인 평이었다.

외과 놈들이 일부러 소문을 안 내려고 노력한 것도 있긴 있었다.

지금 외과 수술 들어오는 것도 순서 맞춰서 부탁하고 있는데 다른 놈들까지 부르게 되면 어지러워서 살겠냐는 말이 있어서였다.

“봉합할게요.”

“네.”

친구는 잘 두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수술은 진행 중이었다.

근막은 그대로 둔 채, 피부만 닫았다.

약간의 장력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근막 안에 갇혀 있을 때보다는 압력이 약하기도 한 데다가 다리 전체로 분산되기까지 할 테니 괜찮을 터였다.

무엇보다 감염이 없다면,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근육을 붓게 할 요인이 없다면 이걸로도 충분할 터였다.

“약은 들어가고 있고.”

“약?”

“아, 네. 제가 아까 라인 잡을 때 넣었어요.”

“아……. 그렇구나. 미친. 언제 넣은 거야.”

허나 수혁은 아버지 치료하는 데 있어 무엇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상황에서 골프 치다 다친 사람이긴 해도…….

어찌 되었건 아빠 아닌가.

친아버지가 아니네 어쩌네 하는 얘기는 이제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에게 있어 이현종은 사실상 아버지 그 이상의 존재가 된 지 오래였으니까.

“진통제도 넣었어요. 자꾸 움직이면 좋을 게 없으니까.”

“잘했다. 에고, 형 자네.”

신현태도 뭐 이현종보고 맨날 뭐라 하긴 하지만, 제일 친한 친구 아닌가.

그런 친구가 식탁 위에 누워서 수술받고 자고 있는 것을 보니 짠하기 그지없었다.

“센터장님……. 에휴.”

조태진이라고 해서 감정이 크게 다르거나 하진 않았다.

평소 가운 걸치고 돌아다니는 것만 보다가 헐렁한 골프 웨어만 입은 채로, 그것도 상의만 입은 채 누워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못했다.

“아니, 근데 형이 많이 늙었네. 이렇게 보니까.”

“그러니까요. 그런 것치고는 다리 근육은 아주 훌륭한데…….”

“그러게. 아니, 이 양반이 이거 언제 이렇게 하체 운동을 했지?”

“하체는 좀 타고나는 부분이 큰데…… 원래 이러신 거 아니에요?”

“아니, 아냐. 골프 칠 때 하체 약하다고 한 소리 듣고 그랬어.”

“누구한테요?”

“같이 강습받고 그랬거든. 골프에는 진심이잖아.”

“근데 다리가 이래?”

물론 잠시뿐이었다.

다 나았으니까.

설마하니 여기서 뭐가 어떻게 되겠나?

“그건 모르겠는데, 다리가 이래서 생긴 병이에요. 근육이 지나치게 크니까…… 밀리면서 부어 버린 거죠.”

거기에 수혁의 말까지 듣고 나니, 이현종의 건강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단 생각만 들었다.

예전과 달리 근육량에 대한 의사들의 관심이 지대해지지 않았나.

그중에서도 하체에 대한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허리둘레 대비 허벅지 둘레 또는 엉덩이 근육량이 수명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해서 걱정에서 넋두리로, 넋두리에서 잡담으로 이어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찰나라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아, 여기 계시네.”

그마저도 그리 오래 허락되진 않았다.

“네?”

“다친 사람이 있어서요.”

“아아아.”

나이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골프를 치기 시작해서 그럴까?

다치거나 아픈 사람들이 꽤나 나오고 있었다.

이현종은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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