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41화 (1,241/1,303)

1241화 아프다 (2)

“아버지! 불효자 먼저 갑니다!”

수혁과 바루다의 추론은 그 후로도 얼마간 계속되었다.

말려 줄 사람이 없이 그냥 이어지다 보니 추론의 끝에 이르러서는 사망이 거의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경로의 감염 가능성이 없었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경로의 감염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지 않겠나?

그렇다면 기저질환이 있었을 거란 얘기가 되는데, 당뇨나 기타 간단한 검진에서 대강 윤곽이 드러나는 질환은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암 같은 것이 떠올랐더랬다.

“얘……. 지금 뭐래는 거냐?”

마침 주말이다 보니, 통합진료센터 사람들과 신현태 조태진 등이 오전 회진을 일찌감치 마치고 병문안을 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수혁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상태로 이현종을 보면 이렇게 외쳤다.

이현종으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불효자가 간다느니 뭐 한다느니…….

“모르겠네……. 얘 그냥 편도염인데.”

“그런 줄 뻔히 아는 새끼가 소변줄을 처박았어?”

“그때는 그게 확실하지 않았으니까, 그랬지.”

“뭐가 확실하지가 않아! 너네 때문에 얘 좀 이상해진 거 아냐? 왜 이래?”

이현종은 다시 한번 수혁을 내려다보았다.

왜 이럴까? 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빠……. 나 암이야…….”

“뭐?”

그러다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뭐라고?’

현실감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암이라니?

내내 멀쩡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암?

이게 다른 놈 입에서 나왔으면 일단 뒤통수부터 후렸을 거다.

아파서 누워 있던 놈이 갑자기 암이라고 하면 황당하지 않나?

아니, 황당한 것보다 화가 나는 게 맞다.

평생 대학 병원 교수로 살아와 원하건 그렇지 않건 합리적인 생각밖에 못 하게 된 사람이다 보니 그랬다.

허나…….

‘이 자식의 추론 능력은……. 평범하지 않아. 아니, 괴물의 영역에 있어!’

상대는 수혁이다, 이수혁.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영원한 친우이자 라이벌이 되었을 놈이고.

다른 시대를 타고난 지금은 부모의 연을 맺게 되었을 정도로 뛰어나면서 좋은 놈이다.

그렇다면…….

이거 뭔가, 뭔가이지 않을까?

물론 이현종도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안 좋은 말에 대한 반론을 본능적으로 듣고 싶어졌다.

해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았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안 돼에에에에! 어찌 하늘은 이리 무심하시단 말인가!”

아, 방금은 안대훈이고 저 녀석이 합리적인 반응을 보일 거란 기대 따위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원래도 수혁과 관련된 일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미친놈처럼 구는 놈인데 암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아마 이 오피스텔 샤시가 조금만 덜 견고했더라면, 지금쯤 떨어져 죽었을 거다.

진짜 그럴 생각이 절로 들 만큼이나 강렬하게 유리와 벽 아무 데나 자신의 몸을 처박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안 돼!”

신현태……. 이놈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뭐……. 평생 감염병이나 보던 놈이니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막말로 뭐 어? 그렇잖아.

심장내과에 비하면 뭐…….

“오, 오빠. 안 돼! 우리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손주까지 보기로 했잖아!”

우하윤?

쟤도 뭐…….

원래도 아주 뛰어난 애는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하기엔 학생 때 내내 1등이었고, 전공의 시험도 1등이었지만 일단 그런 사소한 문제는 무시하기로 했다.

게다가 사랑은 사람의 눈을 가리는 법이지 않나.

사실 이현종 본인부터가 이기자 교수와 서로 꽁냥꽁냥 하면서 지내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무시하기로 했다.

설마하니 이 많은 사람 중에 정상적인 반응 보이는 놈이 하나도 없으려고 하는 생각을 애써 품으면서였다.

“암이라고 다 같은 암이 아니지.”

역시.

역시!

조태진 너밖에 없다.

혈액종양내과…….

심장내과에 비하면 조금 처지지만 그래도 뭐 나름 어려운 과 아닌가?

자칫하면 환자들이 죽어 나갈 수 있는 과를 선택한 사람인 만큼, 조태진은 상당히 침착해 보였다.

그 뒤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어두운 기운 또한 만만치는 않았지만…….

여하간에 방금 말은 마음에 들었다.

“고칠 수 있어. 아직 수혁이 나이도 어리고……. 게다가 어제 찍은 CT나 내시경에서 뭐가 없었단 말이야. 복부나 흉부에는 뭐가 없다는 얘기지. 백혈병이라고 하면 혈액검사에서 뭔가 나왔을 것이고.”

이어지는 말들도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다.

자식, 역시!

한 가지 불안한 점이 있다면 얼굴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 수혁이가 아프니까 그럴 수 있었다.

설령 치료가 가능한 암이라고 해도…….

치료가 쉬운 건 아니지 않나.

옛날보다야 많이 나아지긴 했다.

표적 치료도 나오고, 면역 항암제도 나오고, 카 티 세포 치료도 나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온전히 쓸 수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긴 했다.

감수해야 할 부작용이 많았다.

“그런데 안 나왔지……. 그렇다면 우리가 검사하지 않았던 부분에 암이 있다는 건데…….”

이현종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겠나?

하나뿐인 자식이 아픈 상황이니까.

아, 물론 딸도 있긴 한데…….

이기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직은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기보다는 이기자가 낳은 딸이란 느낌이 훨씬 강했다.

다행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 딸도 딱히 지금의 소원한 관계에서 더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그럼 머리뿐이야. 안 돼에에에에에!”

이현종이 나름 합리적인 추론과 계획을 수립하려고 하는 동안 조태진은 결국, 급발진을 선택했다.

“뭔 개소리야, 인마!”

“다른 데는 우리가 어제 다 검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암이라고 한다면 뇌종양밖에 더 있어요? 교수님은 어찌 그리 무정합니까, 사람이!”

“무, 무정하다니! 나도 마음이 아파! 하지만 의사잖아! 사, 살려야지!”

“의사이기 전에 아빠죠!”

“으읏.”

나머지 언급하지 않았던 놈들이야 원래부터 정신을 놓고 있던 데다가,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던 조태진까지 급발진을 하고 있다 보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지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수혁이 이걸 붙잡아 주었을 텐데…….

지금은 심마에 사로잡힌 상황이었다.

꼭 그렇지 않다 해도 아파서 정신이 많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띵동.

그때 벨이 울렸다.

내다보니 우창윤이었다.

예비 사위가 아프단 말에 과일이라도 사서 온 참이었다.

물론 가발은 정말이지 심혈을 기울여서 쓰고 왔다.

이미 소문이 다 번져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된 마당이지만, 그럼에도 쓰고 온 것은 최후의 자존심이었다.

“어어.”

“아니…….”

이현종이 문을 열어 주어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오고 보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장례식 같았다.

그것도 호상 말고 아주 좋지 못한 그런 장례식장.

“아이고……. 아이고…….”

“이제 가면…….”

“왜 하늘은…….”

우창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저 편도염인데 이런저런 꼴을 당해서 그렇지……. 그렇게 아픈 거 아닙니다.

어제 이 새끼들이 하고 호들갑을 떨길래, 걱정이 돼서 통화도 하지 않았나?

그때 들었던 말과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면서도 이게 가는 게 맞나 싶었거든.

사위 편도염에 병문안 가는 장인이라니.

이거 좀 너무…….

팔불출이잖아?

근데 막상 와서 보니 태화 의료원 내과의 중추란 중추는 여기 다 와서 울고 있었다.

잘 보니까 냉혈한 그 자체라 해도 이상할 거 없을 인간인 이현종의 눈가에도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뭐예요?”

“암이래!”

“네? 암이요?”

암이란 말에 잠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았지만…….

놀랍게도 우창윤은 이현종에게서 좋은 점을 받아들인 후였다.

프락치를 심었다, 이 말이었다.

덕분에 수혁이 어제 취한 검사 결과를 다 알고 있었다.

‘뭔 암인데?’

검사 결과는 깨끗하기만 했다.

그걸 보면서 어떤 기분까지 들었냐면…….

결혼 전에 사위 건강 검진해서 건강한지 아닌지 확인한 느낌이었다.

“무슨 암이요?”

해서 솔직하게 물었다.

누가 암이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위기만 봐서는 수혁이 같은데, 아무리 봐도 아니었으니까.

“어…….”

그러자 이현종이 평생 처음 지어 봤을 것 같은, 실로 멍청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다 그랬다.

‘뭐야……. 약이라도 하나. 단체로.’

우창윤 교수는 불안해졌다.

지금 이 집 안에 있는 이 사람들…….

길거리에 나가면 아무도 못 알아보겠지만 학회에서는 못 알아볼 사람이 없을 만큼 대단한 놈들 아닌가?

심지어 펠로우나 임상 강사들도 그랬다.

대단한 놈들이다 이 말인데…….

이게…….

“수혁아 무슨 암인데?”

“네?”

영문을 모르겠으니 뭐 어쩌겠나.

가만히 있어야지.

해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웅성웅성하다가 이내 수혁이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헌데 이상했다.

수혁 또한 실로 멍청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암이냐고.”

“모르죠, 그건. 암 같아요. 아무리 봐도.”

“그게…… 무슨 소리냐?”

그 광경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당연한 말인데, 이현종이 제일 빨랐다.

“일반적인 감염은 아닐 거란 말이죠.”

수혁은 그런 이현종을 향해 어젯밤 그리고 새벽에 내내 이어 나갔던 추론을 털어놓았다.

그걸 듣는 이현종은 아주 복잡한 마음이었다.

‘얘가……. 진짜 머리가 아픈가?’

교묘하게 설득력이 아주 없지만은 않긴 했다.

그렇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추론이었다.

애초에…….

“너 지금 열 안 나는데?”

“네? 어? 그렇네.”

항생제가 제대로 들어간 지 48시간도 안 돼서 열이 내렸잖아.

임상 경과 앞에서 추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확한 진단명 좀 모르면 어떤가?

해가 되지 않을 만한 치료로 좋아졌는데?

그리고 어차피 감기로 퉁 칠 수 있는 병인데?

“이 새끼……. 암이라고 해서 놀랐잖아!”

“추론은…….”

“됐다, 이놈! 오랜만에 안아나 보자!”

머릿속으로는 혼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말이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걸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안 간 상황이지만 어쩐지 기분만은 하나뿐인 아들이 죽다 살아난 느낌이었다.

“아빠!”

“아들!”

그렇게 이현종은 오랜만에 수혁을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와……. 형 아직 안 죽었네.’

노인은 몇 년만 지나도 팍팍 늙는다던데.

이현종은 기력도 좋았다.

아무래도 말년에 사랑도 이루고 자식도 생기고 해서 좀 다를 것 같긴 했는데, 진짜 다르긴 한 모양이었다.

“지금 이게 뭔 상황이에요?”

우창윤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갔다.

아니, 아까보다 더 안 갔다.

갑자기 울면서 껴안더니 빙글빙글 돈다고?

진짜…….

‘약했나?’

우창윤은 자신도 모르게 수상한 가루나 주사기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신현태는 그런 우창윤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부자간의 사랑. 화합.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갑자기?”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혼란 그 자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