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4화 이번 주 놀아라 (4)
“음.”
김진실 교수는 자리에 누워 있는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초음파를 들고서였다.
“저……. 괜찮을까요? 쿨럭.”
의식이 없는 환자는 아니었다.
뭐……. 특별한 일은 아니긴 했다.
대개 조직검사 의뢰로 오는 환자들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기 전이기에 그랬다.
일단 조직검사를 해야 치료 계획도 짜고 하지 않겠나?
의뢰하는 과 입장에서도 최대한 환자 상태를 만들어 놓는 편이었다.
물론 아무리 만든다 해도 혈소판 등이 부족하면 조직검사 자체가 불가할 정도로 출혈 경향이 심해지기도 하지만…….
‘일단 이 환자 같은 경우에는 아직 뭐…… 그렇게 나쁘진 않으니까.’
김진실 교수는 환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수혁 교수가 의심하는 질환이 뭔지 알 것 같단 말이지?’
그것도 암이긴 하다.
그래도 폐암보다는 나았다.
느리게 자라나는 암이니까.
“네, 괜찮을 겁니다.”
“휴……. 갑자기 간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너무 놀랐어요.”
“검사 자체는 좀 아프실 수 있어요. 당연히 국소마취를 하고 찌르지만 그래도 안으로 들어갈 때 좀 뻑뻑할 겁니다.”
“그…… 네, 참을게요.”
김진실 교수의 눈에 비치는 환자는 아직 젊었다.
애초에 삼십 대 초반이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김진실 교수도 기껏해야 30대 후반이긴 했다.
하지만 환자는 10kg이 빠졌다지만 아직 살집이 좀 있어서 그런가, 나이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대학 병원에서 30대 환자를 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니 더더욱 어리게만 느껴졌다.
‘제발 이수혁 교수 말이 맞기를.’
김진실 교수는 초음파로 간을 비춘 후, 기다란 바늘, 즉 18g 코어 니들(core needle)을 집어 들었다.
환자는 뭔 짓 하는지 모를 터였다.
이미 마취도 되었겠다, 시야도 가려졌겠다 당연한 일이었다.
괜히 이런 칼 같은 바늘 보여 줘 봐야…… 움직이기나 하지, 좋을 게 없었다.
“조금 아플 수 있어요.”
“네…….”
하여간, 김진실 교수는 초음파로 보이는 간 종양들 중 제일 조직검사에 용이해 보이는 종양을 향해 바늘을 찔러 넣었다.
당연하지만 중간에 혈관이나 기타 위험할 만한 것이 없는 것 또한 고려했다.
푹.
아마 옆에 이하언 교수가 있었다면 과연 내 제자라고 하면서 즐거워했을 만큼이나 과감하면서 동시에 정확한 술기였다.
물론 그보다 더 대단하게 여겨지는 것은 지금 김진실 교수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확실히…… 상피양 혈관내피종 같은데……?’
수혁에게 이런저런 힌트를 듣긴 했다.
하지만 힌트를 듣는다고 해서, 아직 진단명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데 바로 수혁이 떠올리고 있는 진단명을 유추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아마 수혁이 이 자리에 있었다 해도 퍽 놀랐을 터였다.
지금 김진실 교수에게 주어진 힌트는 혈종 교수에게 주어진 것보다도 더 적었으니까.
‘찌르는 느낌 하며…… 확실히…… 흐음.’
허나 영상의학과의 공부량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복부는…….
복강 내 장기가 한두 개인가?
그리고 그 장기마다 발생 가능한 병이 한두 개인가?
수혁하고 비교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지간한 내과 의사랑 비교한다면 그 공부량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일 터였다.
환자 보는 것보다도 어찌 보면 공부하는 게 더 중요한 직업이니까.
‘상피양 혈관내피종이라고 한다면…… 흐음.’
초음파로 보기에도 그렇고, CT상 소견도 그렇고, 찌를 때 느낌도 그렇고…….
확실히 상피양 혈관내피종 맞는 거 같았다.
그렇다면 예후가 어떨까?
김진실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환자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애써 불편감을 참고 있는 얼굴은 찡그리고 있음에도 젊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앳되었다.
‘폐암이면 죽어……. 1년 내 사망이야. 그걸 감안하면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암은 아무리 온건한 종류라 해도 암이다.
상피양 혈과 내피종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생존율이 60%에서 70% 정도 된다.
암치고는 상당히 괜찮지만, 반대로 말하면 열 명 중에 3, 4명은 사망한다는 뜻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종류다 보니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였다.
‘그나마 나는 이렇게만 만나고 끝이지만.’
이럴 때 김진실 교수는 자신이 선택한 과에 더더욱 만족하는 편이었다.
임상과가 아니다 보니 생기는 아쉬움, 그러니까 환자가 좋아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건 있지만…….
반대로 나빠지는 것도 직접 보진 않아도 되지 않나.
실제로 혈종, 즉 암 보는 내과 교수들이 정신과 진료 보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통계가 있는 걸 보면 중환자 보는 일은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일임에 틀림없었다.
“상피양……. 혈관내피종……?”
“네, 맞습니다. 역시.”
김진실 교수가 바이옵시를 다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쯤에서야 혈종 교수는 수혁이 머릿속에 품고 있던 진단명을 말할 수 있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머리에 쥐 나는 줄 알았다.
‘역시는 무슨!’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눈으로 은근한 압박을 보내길래 뭐 좀 흔한 병인가 했다, 처음에는.
해서 그런 쪽으로 머릿속 지식을 뒤져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견들이 맞는 게 없었다.
설마 저 자식에게는 이런 것도 당연한 건가 싶어서 어려운 케이스들을 뒤져 보았는데, 다행히 수혁의 입술이 답답함에 못 이겨 달삭거리기 시작했을 무렵 정답을 말할 수 있었다.
“방금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이 상피양 혈관내피종은 간에서 더 명확하게 보이듯이 혈관을 따라 번집니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암이기 때문에 파종성 전이랑 굉장히 헷갈리는데 영상만으로는 분간이 사실 굉장히 어려워요.”
간신히 말한 그 답에 대해 수혁은 술술 떠들어 재끼고 있었다.
저렇게 말하니까 뭐 당연한 거 같지만 사실 엄청 드문 병이다, 상피양 혈관내피종은.
실제로 혈종 교수뿐 아니라 태화 의료원에 오는 복부 환자란 환자는 다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김진실 교수도 평생 몇 건 못 봤을 정도다.
허나…….
수혁은 그 질환 전문가라도 되는 양 얘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환자의 전반적인 컨디션과…… 조직검사죠. 이 환자의 경우에는 폐에만 있었으면…… 좀 그랬을 텐데 간에 있어서 조직검사 자체는 용이했습니다. 다만 간에 대해서는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난이도가 꽤 있는 수술일 겁니다. 그래도 태화는 유능한 외과 의사들이 많으니 어떻게든 될 테죠.”
“그렇군……. 하긴 수술로 제거가 가능한 곳은 절제를 하는 것이 예후에 도움이 되죠?”
“왜 모르는 사람처럼 묻습니까, 교수님. 하하.”
헷갈려서 물은 것인데 이렇게 답을 해 오니 약간 맥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수혁의 눈을 확인한 후에는 진짜 그냥 순수한 상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역시…… 어려운 케이스 있으면 던질 수 있어 좋다지만 너무 깊이 엮이면 자괴감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이 괜히 떠도는 게 아니로구만…….’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그러니까 통합진료센터의 이현종, 이수혁 부자를 뭐라고 한담?
비유가 적절할는지는 모르겠는데, 딱 교수가 젊은 시절 유행하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검 같았다.
그 왜 쥐면 빨리 강해지긴 하는데, 사용하면 할수록 사용자에게 해가 되는 그런 거.
‘거리를 둬야겠다.’
교수는 그렇게 결심했다.
이카루스처럼 수혁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놈도 있긴 했다.
조태진이 있지 않나.
그 새끼는 대체 어떻게…… 이 옆에서 견디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아니지……?’
더 깊이 생각해 보니까 조태진…….
걔가 원래도 좀 잘하는 편이긴 했다.
태화 의료원 출신이니만큼 머리야 기본으로 있는 데다가 운동을 열심히 한 덕에 체력도 좋으니 병원에서 일하면서 연구하는 데 특화되어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녀석이 진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수혁과 본격적으로 엮이고 나서였다.
‘잉……. 엮여야 되나?’
교수가 헷갈려 하는 사이, 수혁은 몸을 일으켰다.
기록에 치료 계획까지 싹 다 써 놓은 채였다.
“어…… 어디 가세요?”
“아, 제가 몸이 아파 가지고.”
“아……. 맞네. 들었습니다. 아유, 근데도 이렇게…….”
“복수는 해야 하니까요.”
“네? 복수요?”
“이번에 혈종 환자 없어진 거…… 다 조태진 교수님 때문입니다. 나중에 청구하세요.”
“어…… 네?”
뭔 소리야?
뭔 미친 소리야?
영문을 모르겠어서 잠시 넋을 놓고 수혁을 바라보았지만, 그게 뭐 소용이 있겠나?
벌써 사라져 버렸다.
이현종이 몸을 부축해 준 덕인지 뭔지 상당히 빠르게 시야에서 벗어났다.
‘조태진 때문에 복수를 한다고…… 으음……. 환자를 다 봤다고?’
그렇게 허공이 된 공간을 보면서 다시 생각을 해 보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저놈은 워낙에 천재고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서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살짝 나쁘긴 한데…….
아무튼, 볼 환자가 없어졌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다시금 좋아지고 있었다.
“어?”
“왜.”
“교수님, 처방이 다 나가 있는데요?”
“아까 그 환자? 내는 거 우리 다 보고 있었잖아. 딴 생각했냐?”
“아니……. 그게 아니라요. 다른 환자까지 다…….”
“응? 이건 또 뭔 소리야?”
좋아지다가 영문을 모르겠는 말에 또다시 팍 식어 가는 찰나에 눈에 들어온 것은 레지던트의 말마따나 내일까지 모든 처방이 완료된 환자 목록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록까지 다 써 있었다.
장난으로 대충대충 쓴 게 아니라 완벽하게 쓰여 있었다.
자신이 손을 댈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보면서 자신이 배울 것도 있을 지경이었다.
‘미친……?’
이렇게 되면 할 일이 없어지는 셈이었다.
내일까지는 아예 할 게 없고, 이번 주 내내 그렇게까지 빡세지 않을 터였다.
중요한 환자 다 봤는데 뭘 어쩐단 말인가.
‘개꿀이네?’
수혁과 이현종에게는 안타깝게도 이걸 딱히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혈종 교수가 일반인에 가까운 사람이라서도 아니었다.
“응? 진짜?”
“네, 환자 다 보셨습니다.”
장덕수도 신나 하고 있었다.
“오!”
신현태도 그랬다.
“와!”
조태진도 그랬다.
물론 신현태와 조태진은 다른 이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했다.
“야, 태진아!”
“네, 형님!”
“시간도 남는데 수혁이 병문안 가자!”
“물론이죠! 저 지금 백화점입니다!”
“응? 백화점은 왜 갔어?”
“어떻게 병원 지하에서 파는 과일을 사서 갑니까. 우리 수혁이가 무리하다가 편도염 걸려서 뻗었는데!”
“네 말이 옳도다. 그럼 나는…… 수혁이 좋아하는 갈비 구워 와야겠다!”
둘은 복수 당한 김에 너무 신나서 다시금 수혁에게 쳐들어가고 있었다.
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안대훈, 김성진, 김인수 등도 마찬가지였다.
셋 다 최선을 다해 수혁에게 바칠 공물을 찾고 있었다.